클라이밍 존버로그
클라이밍 존버로그
  • 김경선 | 정영찬 사진기자
  • 승인 2020.12.1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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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번 매달려보겠습니다' 저자 설인하 작가

직장생활 7년차의 평범한 직장인이자 유연성도 근력도 부족한 소심한 내향인이 5년간 ‘존버’하며 써내려간 클라이밍 에세이 <일단 한번 매달려보겠습니다>. 평범하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상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써내려간 설인하 작가를 김포의 픽클라이밍 암장에서 만나봤다.

얼마 전 출간한 <일단 한번 매달려보겠습니다>의 부제인 ‘어느 내향인의 클라이밍 존버로그’라는 문구가 인상적입니다.
취미로 시작한 클라이밍이 어느새 5년가량 되었네요. 어릴 때부터 내향적인 성격인데다 운동신경이 그다지 좋지 않았기 때문에 학창시절에는 체육시간마다 울렁증에 시달렸었어요. 체육은 단체 활동이라 나의 모든 동작이 선생님과 반 친구들에게 그대로 노출되잖아요. 그 과정에서 운동을 잘 하는 친구와 비교하게 됐어요. 때로는 팀 경기를 할 때 나의 부족한 운동 신경 때문에 다른 팀원들에게 피해를 줄까봐 항상 불안했죠. 승부욕도 없고 무척 내향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수행 평가를 받는 것도, 체육 대회에서 반 별로 경기를 하는 것도 싫었어요. 자꾸 뒤로 숨느라 바빴죠.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클라이밍을 꾸준히 하고 있으니 스스로도 참 신기해요.

특별히 클라이밍을 시작한 계기가 있나요.
20대 때까지는 활동량이 많아 그냥 저냥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어요. 20대 중반부터 직장 생활을 시작했고 운동량이 극도로 줄어드는 것에 경각심을 느껴 이런 저런 운동을 시도했어요. 그러다 마침내 클라이밍에 정착하게 됐죠. 클라이밍이 역동적이고 외향적인 사람에게 어울리는 운동처럼 보이지만 사실 내향적인 사람에게도 잘 어울리는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클라이밍을 할 때는 나와 벽만 생각하고 집중하다 보니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게 되거든요. 방심하고 한 눈 팔면 떨어지니까요. 벽에 매달린 시간만큼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에요.

5년간 클라이밍을 해오면서 인생의 변화를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제 책 <일단 한번 매달려보겠습니다>에서 제일 좋아하는 부분을 인용하고 싶어요.

“클라이밍을 하기 때문에 더는 내 인생의 불행이 나의 삶을 잠식할 수 없다고 단언하지는 못한다. 클라이밍을 한다고 해서 내가 갑자기 슈퍼 히어로처럼 ‘용감하고 행복한 나’로 변신하는 것도 아니다. 나의 일상은 대체로 고요하며 우울은 여전하다. 클라이밍을 하든 하지 않든, 나는 그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와 끊임없이 몰려오는 어지러운 생각과 매일같이 씨름하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내는 평범한 직장인일 뿐이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클라이밍을 하든 하지 않든 저의 인생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진 않았어요.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클라이밍을 하면서 쌓인 매일의 작은 성취가 반복되는 일상에 권태를 느끼지 않도록, 소소한 활력을 줄 수 있도록 나를 잡아주었던 것 같아요. 저는 생각이 많은 집순이라 별 일이 없으면 집에 틀어박혀서 하루 종일 생각을 하거나 책을 보거나 글을 쓰는데요. 클라이밍을 하지 않았더라면 생각의 늪에 빠져 우울증에 걸렸을지도 몰라요. 클라이밍을 할 때면 온전히 과제에만 집중하다 보니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각을 멈추게 되죠. 어떻게 보면 클라이밍이라는 운동은 나에게 있어서 명상 같기도 해요.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직장인들에게 운동의 긍정적인 면을 소개해주세요.
‘안전한 모험’이랄까요? 암장에서 운동을 할 때만큼은 적당한 테두리 안에서 모험을 하는 느낌이에요. 제법 근사하게 벽에 매달리거나 완등에 성공했을 땐 제가 마치 <인디애나 존스>같은 영화 속 주인공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책에도 언급을 했지만 tvN 드라마 <미생>에 이런 대사가 나오잖아요. “네가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체력을 먼저 길러라. 정신력은 체력의 보호 없이는 구호밖에 안 돼.” 확실히 요즘 직장인들은 예전보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그걸 할 수도 있는 환경인 것 같아요. 좋아하는 운동을 하며 체력을 키우고, 그 체력을 바탕으로 본인이 원하는 삶을 계속 추구해나가는 것.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삶이 지루해지거나 무기력해지지 않는 것. 꾸준히 하다보면, 내 삶 속에서 그래도 뭔가 나아지는 게 하나쯤은 있다는 희망. 그게 바로 직장인에게 운동이 필요한 이유 아닐까요.

직장 생활하면서 유튜브, 브런치 등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상과 글을 통해 끊임없이 소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많은 클라이머가 인스타그램을 운영해요. 완등한 영상을 멋지게 찍어서 올리고 해시태그를 달아 공유하는 것이 이쪽의 문화거든요. 저는 클라이밍을 위한 인스타그램 계정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지 않아서 영상을 찍고 혼자 봤었죠. 가끔 기를 쓰고 완등을 했던 문제들을 친구들에게 카톡으로 보내주곤 했는데 보기엔 쉬워 보여도 얼마나 힘들게 올라갔는지를 설명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그때 한 친구가 “이럴 거면 차라리 유튜브를 해”라고 조언을 해줬죠. 계정을 만들면서 다른 클라이밍 유튜버들을 봤는데 별다른 설명 없이 완등 영상만 올리거나, 너무 전문적이거나, 암장에 가서 운동한 것들을 일상 브이로그처럼 올린 내용이 많더라고요. 스마트폰으로 찍고 스마트폰 어플로 편집하는 아마추어 유튜버라 그들의 화려한 영상과 편집 스킬을 따라갈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초보 클라이머나 루트 파인딩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어요. 또 흥미로 클라이밍 영상을 보는 일반인도 흥미를 느낄 수 있을 만한 구성을 고민해 나온 아이디어가 ‘존버로그’죠. 계속 떨어지기만 하다가 마지막엔 완등하는 것이 ‘존버로그’ 포맷이에요. 이 사람이 누군지는 몰라도 보는 사람이 몰입하고, 영상 속 클라이머의 완등을 바라게 되는 그런 2분짜리 드라마를 연출하고 싶었죠.

유튜브 영상을 보니 심심치 않게 부상을 당하기도 하던데. 클라이밍을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클라이밍의 장단점 그리고 주의사항을 알린다면.
클라이밍은 꾸준히 하다보면 누구나 한번쯤은 부상을 당할 수밖에 없는 운동인 것 같아요. 그래서 누군가 ‘클라이밍을 하고 싶다’고 의견을 물어오면 ‘이 사람이 혹시 클라이밍을 하면 안 되는 사람인지’를 체크해요. 부양가족이 있는 사람, 평발이거나 발목 및 무릎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 허리나 목 디스크가 있는 사람, 손가락 관절이 약하거나 안 좋은 사람은 클라이밍에 적합하지 않아요. 또 외모에 민감한 사람들하고도 잘 맞지 않죠. 손은 굳은살이 생겨 두툼해지고, 다리엔 항상 멍이 생겨요. 암벽화에 구겨 넣은 발도 점점 못생겨지죠. 패디큐어, 매니큐어는 꿈도 꿀 수 없어요. 그렇지만 장점도 많아요. 그중에서 가장 큰 장점은 오늘까지 클라이밍을 꾸준히 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 성취감이죠. 어른이 되면서 수많은 인생의 문제들에 부딪히고 명확한 정답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클라이밍은 어쨌든 ‘정답’이 있죠. 이 답을 두뇌와 신체의 협공으로 풀어낸다는 것이 정말 즐거워요.

최근 출판계에서는 작가님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목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책을 통해 사람들에게 하고픈 이야기가 있다면.
사실 제가 책을 쓴 계기는 정말 우연이었어요. 브런치에 꾸준히 올린 제 글을 보고 출판사에서 연락을 해왔어요. 그 때까지 책을 쓰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못해봤죠. 매일매일 제가 좋아하는 것들, 생각한 것들에 대한 글을 브런치에 올렸고, 클라이밍도 그 일상 중 하나의 소재였어요. 서점에서 ‘클라이밍’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면 클라이밍 교과서 같은 책 이외에 에세이 형태의 책은 없더라고요. 지극히 평범하고, 실력은 항상 제자리걸음을 맴도는 거북이 클라이머인 내가 책을 내도 될까, 고민했지만 아직 아무도 쓰지 않은 클라이밍 에세이를 쓰기로 결정했죠. 출간을 결심했던 이유는 좋으나 싫으나 5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해 온 클라이밍이라는 운동에 애정 어린 헌사를 남기고 싶었어요. 그리고 ‘꼭 눈에 띄게 잘해야만 책을 쓰거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이런 생각도 했죠. 나의 클라이밍 실력은 실력자에 비하면 평범하고, 일주일에 한두 번 암장에 가서 혼자만의 사투(?)를 벌이고, 팔로워가 100명도 안 되는 유튜브 계정 하나를 기록용으로 운영하며, 가끔은 브런치에 글을 쓰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런 내 마음이 사람들에게 전해졌으면 했어요. 남들의 시선에 얽매이지 말고,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본인의 페이스로 해 나가는 삶을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것에 대해서요.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 그런 존재를 찾았으면 좋겠어요. 그게 꼭 운동일 필요는 없죠. 저의 책을 읽는 독자들은 자신만의 소중한 것을 찾아 꾸준히 ‘존버’해 나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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