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계절의 경계를 걷다
제주에서 계절의 경계를 걷다
  • 조혜원 | 조혜원
  • 승인 2020.12.0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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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끈다랑쉬오름부터 서연의집까지

이맘때의 제주는 가을과 겨울을 넘나든다. 나부끼는 억새가 가을의 끝자락을, 활짝 핀 동백이 겨울의 시작을 알린다. 한라산 산행을 한다면 가을에서 시작해 겨울로 도착한다. 제주에서 지나는 계절을 조금 더 천천히 보내주고, 다가오는 계절을 차분히 마주했다.

가을의 끝자락
아끈다랑쉬오름

제주에서 억새의 향연을 볼 수 있는 곳은 많지만, 그중 가장 멋진 풍경은 아끈다랑쉬오름이다. 다랑쉬오름 옆에 작은 소행성처럼 있는 198m의 아담한 아끈다랑쉬오름은 제주말로 ‘작은’이란 뜻으로 10분 남짓이면 오를 수 있고 분화구의 둘레도 600m라 천천히 걷기 좋다.

작지만 오름 전체가 억새로 뒤덮여있어 파도처럼 물결치는 억새 속에서 유영할 수 있다. 억새로 유명한 새별오름은 매년 들불을 놓아 새로 자라는 억새의 키가 작은 반면, 아끈다랑쉬오름 억새는 자연 그대로 방치되어 있어 사람 키를 훌쩍 넘기도 한다.

해 질 녘에 오르면 한라산 옆으로 넘어가는 석양과 붉은 물결로 흔들리는 억새의 향연을 만나기도 한다. 아끈다랑쉬오름은 길이 잘 정비되지 않아 미끄럽지만 웨딩 스냅을 찍는 커플도 구두를 신고 오를 만큼 수월하다. 그래도 접지력이 좋은 운동화를 준비하는 게 좋다.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2593-1

비자림
다랑쉬오름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비자림이 있다. 500~800년생 비자나무 자생지로, 피톤치드를 흠뻑 들이키며 산책하기 그만이다. 바닥은 화산 송이가 깔려있고 머리 위로는 나무가 울창해 비 오는 날에도 산책하기 좋다.

오히려 비 오는 날이 숲의 향이 짙어지고 사람도 적어 한적하게 걸을 수 있다.

제주시 구좌읍 비자숲길 55
09:00~18:00 (연중무휴)
성인 3천원, 청소년·어린이 1500원

계절의 중간
용머리해안

용머리해안은 산방산 해안에 있는 암석으로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용의 머리를 닮았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살 때만 해도 그냥 평범한 관광지 같아 보였지만 좁은 통로를 따라 바다로 내려가 보면 웅장하고 거친 기암괴석이 펼쳐진다. 180만 년 전 수중 폭발로 형성된 응회암층이 수천만 년 동안 파도와 바람에 다듬어지면서 신비로운 풍경을 만들어냈다. 수평층리, 풍화혈, 돌개구멍, 해식동굴, 수직절리단 등 화산활동과 자연이 만들어낸 경이로운 풍경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둘로 나뉜 돌 사이로 보이는 바다, 썰물 때 빠져나가지 못한 물고기가 남아있는 작은 웅덩이, 아이스크림 숟가락으로 파낸 듯 둥글게 파인 멋진 암석을 구경하며 걷다 보면 해녀들이 채취한 해산물도 구매할 수 있다.

해안 오른쪽에는 검은 암석이 부서지면서 만든 반원형의 검은 모래사장이 펼쳐진다. 해안가에 노출된 암석 위를 걷는 구간이기 때문에 만조시간에는 출입이 통제되며, 바닥이 미끄러운 구간이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112-3
09:00~17:00 (만조 및 기상 악화 시 통제)
성인 2천원, 청소년, 어린이 1천원

화순 금모래해수욕장
용머리해안을 둘러보고 저녁 무렵이 되었다면 화순금모래해수욕장으로 가보자. 검고 고운 모래가 펼쳐진 해수욕장이 노을을 반사해 금빛으로 변한다. 해변에 서면 가파도, 마라도, 형제섬이 보이고, 뒤로 산방산이 서 있어 풍경이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하다.

해변 서쪽에 썩은다리 전망대에 오르면 붉게 물든 해변을 더 넓게 조망할 수 있다.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해안로 69

겨울의 시작
위미리 동백 군락지

위미리의 동백 군락지는 두 곳이 있다. 17세에 위미리로 시집온 현맹춘 할머니가 황무지를 사들여 열심히 개간해 농사를 지었으나, 강한 바람에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없었다. 할머니는 한라산에 올라 동백 씨앗을 따다가 밭 왼쪽에 뿌려 바람을 막았는데, 그 후로 숲이 울창해지고 땅도 비옥해져서 오늘의 동백 군락지가 됐다. 할머니가 가꾼 동백 군락지는 한라산에서 유래한 우리나라 고유의 동백나무다. 면적 6125㎡ 부지에서 자라는 130년 된 동백나무 500~600여 그루가 제주도 기념물 제39호로 지정돼 보호·관리받고 있다.

여행객이 주로 찾는 위미리 동백 군락지는 ‘제주동백수목원’이다. 길가에서 바라봐도 둥글둥글하고 붉은 동백나무 머리들이 귀엽게 모여 있다. 수목원 안에는 동백꽃이 붉은 융단 길을 만들고, 타원형으로 자란 나무에도 동백이 고고하게 피어있다. 동백나무는 사계절 잎이 푸르고, 11월 말부터 이듬해 2~3월까지 꽃을 피워 한겨울에도 활짝 핀 붉은 꽃을 볼 수 있다.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중앙로300번길 15
제주동백수목원
09:30~17:00
3천원

서연의 집
동백꽃을 구경하고 나서 위미리를 천천히 거닐어보자. 바다를 따라 굽이굽이 이어지는 올레길 5코스에서 소담한 제주의 마을과 푸른 바다, 고즈넉한 카페를 만날 수 있다. 영화 <건축학개론>에 배경이었던 ‘서연의 집’ 카페가 여전히 인기다.

카페 2층에 영화 속 주인공이 바닷바람을 맞으며 낮잠을 자던 잔디 옥상이 그대로 남아있는데, 영화의 추억을 빼고라도 커다란 창에서 쏟아지는 바다와 햇살이 여유로운 풍경을 그리는 카페에서 잠시 쉬어가기 좋다.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해안로 86
10:00~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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