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의 시간을 품은 청정자연 영덕
동해의 시간을 품은 청정자연 영덕
  • 글 이지혜 | 사진 전재호
  • 승인 2020.11.0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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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를 담은 푸른 동쪽 바다와 싱싱한 제철 해산물의 도시 영덕

‘파도를 담은 푸른 동쪽 바다와 싱싱한 제철 해산물의 도시 영덕’ 쯤으로 생각하고 떠난 그곳은 생각지도 못한 얼굴을 보여주고, 생생한 기억을 남겼다.

뛰노는 고래를 보던 바다
어느새 겨울을 품은 서울의 아침 공기를 차게 마시며 4시간여를 달렸다. ‘블루시티 영덕’이라는 전광판이 크게 붙여진 도로를 지나 ‘고래불 해변’에 도착했다. 아직 여름인 듯 따뜻하고 비릿한 바람이 코끝을 스친 후, 비로소 꽤 멀리 떠나 온 것이 실감 났다.

먼 옛날, 날이 좋으면 먼 바다에서 헤엄치는 고래들을 해변에서 바라볼 수 있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이곳이 한참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는 단순하다. 고래가 보일 만큼 깨끗하고 너른 바다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 위엄을 눈으로 보기 위해 대진해수욕장이 시작하는 곳에 자리한 상대산을 올랐다. 목적지는 산 정상 서편 바위 절벽에 있는 ‘관어대’다. 185m를 올라 짧은 숨을 고르고 경치를 바라보니 막힘없이 탁 트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동해와 읍령, 포항 호미곶과 울진 후포가 동서남북으로 절경을 선물한다. 뛰어노는 물고기까지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곳의 이름이 이해되는 경치다.

지난 2017년 해양수산부가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으로 선정된 고래불 해변은 총길이 4km로 덕천, 대진, 영리, 고래불 해수욕장으로 이어져 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예전부터 이곳을 각자의 해수욕장 이름이 아닌 고래불 해변으로 통칭해 부른다.

영덕은 동해를 세로로 지르는 770km의 해파랑길 49개 구간 중 4개 구간인 63km를 지나치는 해파랑길의 중심 도시다. 덕분에 날 좋은 가을의 끝자락, 해파랑길을 걷는 여행자들을 참 많이도 지나쳤다. ‘고래불로’를 따라 드라이브하며 고래불 해수욕장으로 올라가는 길에, 아름다운 해안가를 걷다가 쉬다가 바라보는 여행자들이 많이 보였다.

고려의 역사를 간직한 장육사
고래불 해수욕장을 지나 벙영리에 자리한 메타세쿼이아 숲에 도착했다. 아직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입소문만으로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는 이곳은 영덕이 고향인 장상국 씨가 나무 심는 것을 낙으로 여긴 어머니의 추억을 보존하고자 손수 가꾼 명소로 현재까지 입장료 없이 무료로 개방되고 있다. 20만 평의 잘 정비된 숲에 8천 여 그루의 메타세쿼이아, 편백, 잣나무가 하늘로 뻗어있다. 곳곳에 벤치와 쉼터를 만들어 누구나 즐길 수 있는데, 여름철에는 꽤 많은 사람이 찾는 숨은 명소이다.

동해안에 자리해 해가 더욱 짧은 영덕이다. 어둠이 깔리기 전에 서둘러 ‘장육사’로 향했다. 고려 말, 나옹 선사가 창건했던 장육사는 조선 세종 연간에 한번 전소되어 다시 지어졌다. 주소상으로는 영덕에 위치하지만, 영남의 동해안-포항, 청송, 영양, 울진에 이르기까지 전체를 아우르는 경북 동해안 유일의 템플스테이 사찰이기도 하다. 낯선 스님이 친근한 웃음으로 잠시 들어와 앉았다 가라며 우리를 불러 세웠다.

“대웅전은 그 자체가 문화재로 여겨질 만큼 오랜 시간의 흔적이 느껴지는 곳이죠. 대웅전 좌편으로는 국가 보물인 종이로 만든 장육사 건칠관음보살좌상(보물 제993호)이 안치된 관음전이 위치했고, 건칠불(건칠상)은 진흙으로 속을 만들어 삼베를 감은 기본 틀 위에 종이를 여러 겹 덧붙여 금칠을 한 불상이죠. 천천히 둘러보세요.” 따뜻한 차를 마시며 듣는 장육사 이야기에 잠시 다른 장소에 도착한 듯, 경건했던 마음이 몽글해진다.

장육사를 포함한 이곳은 영덕군이 지정한 역사 문화 체험 지구이다. 장육사를 지나 조금 걸어 올라가면 나오는 인문힐링센터 ‘여명’은 몸과 마음을 가꿀 수 있는 특별한 명상센터이다. 한의학의 원리에 기반한 다양한 기공체조와 건강한 음식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1박 2일간 열 개의 명상 콘텐츠를 가지고 이론과 명상의 실전을 배운다.

의서 <황제내경>에 기반을 두고 식단을 운영하며 먹는 명상, 숙면 명상, 산책 명상 등의 프로그램으로 도심 속에 지친 몸과 마음을 힐링 할 수 있는 곳이다. 3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숙소동과 독서와 명상을 실천할 수 있는 강의동을 두고 있으며 주중은 주로 연수 프로그램, 주말에는 일반인을 위한 힐링캠프를 열어두고 있다. 여명을 나서니 어느새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해 뜨는 ‘강구항’을 보기 위해 서둘러 하루를 마무리했다.

떠난 청어가 돌아오는 곳
다음 날, 새벽부터 찾은 강구항은 만선의 배들이 닻을 내리고 있었다. 주말을 앞두고 대게를 실은 배는 들어오지 않아 대게 경매를 구경할 수 없다는 섭섭한 소식도 잠시, 활기찬 항구의 아침 풍경에 매서운 아침 바람에도 걸음이 늦춰지지 않았다. 생동감 넘치는 생선과 거친 바닷사람의 주름진 얼굴, 구수한 사투리가 섞여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강구항과 맞닿은 커다란 대게 조형물에는 마침 커다란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부터 강구항은 동해안 수산물의 집산지이자 수출의 전진기지였다. 복숭아, 꽁치, 골뱅이, 고등어, 송이버섯까지 이곳을 거쳐 일본으로 수출됐다. 안동의 간고등어도 이곳에서 가져가 시작됐다. 동해안의 어선들이 강구항으로 얼마나 모였으면, “항구 안에서 배를 밟고 끝에서 끝까지 갈 수 있었다”라고 말하는 이도, “강구항의 개들은 지폐를 물고 다녔다”는 이도 있을 정도였다.

영덕의 바다는 완만한 해수면의 경사와 오염원이 없어 폐수로 인한 환경파괴가 없다. 덕분에 지금도 먼 바다에서 고래가 목격되기도 하고 방어, 청어, 명태, 대게, 꽁치 등 다양한 어종이 잡힌다. 11월에 들어서면, 영덕은 청어 수확으로 바빠진다. 영덕의 청어는 우리가 흔히 아는 과메기로 변모해 매년 겨울, 전국으로 퍼져나간다.

그늘에서 냉동과 해동을 반복하며 바닷바람에 말려진 겨울철 별미 과메기. 과메기는 눈을 꼬챙이로 꿰어 말렸다는 뜻의 관목(貫目)에서 유래됐는데, ‘목’을 포항 구룡포 방언으로 ‘메기’라고 발음하는데서 시작됐다. 우리가 흔히 꽁치로 알고 있는 과메기는 원래 청어가 원료였다. 1960년대 이후 청어 생산량이 급격히 줄어들며 청어 대신 꽁치로 과메기를 만들기 시작한 것. 꽁치가 청어보다 값이 싸고 만들기도 한결 쉬웠던 이유도 더해졌다.

하지만 최근 대량의 청어가 동해에서 다시 잡히기 시작하며 과메기의 옛 맛이 돌아오고 있다. 영덕의 창포리 덕장은 청어 과메기를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곳이자 과메기 최대 생산지 중 한 곳이다. 말리는 과정에서 원재료 상태보다 어린이 성장과 피부에 좋은 DHA와 오메가3지방산이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건강은 물론 기름진 맛 덕분에 겨울철 별미로 손색없다. 냉장으로 보관하는 이유도 기름기가 많아서이다.


새 아침을 맞는 고장
동해안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 극장인 강구극장을 지나쳐 경북의 아침을 울리는 경북대종이 자리한 삼사해상공원에 도착했다. 9m 높이의 인공폭포를 비롯하여 천연 공작매화석, 기둥분수와 연못, 이북 5도민의 망향을 달래기 위해 1995년에 세운 망향탑 등 볼거리가 많은 공원이다. 그중에서도 경상북도 개도 100주년을 기념해 세운 높이 420㎝, 지름 250㎝, 무게 약 29t의 경북대종은 바다를 등지고 장엄한 장관을 이루고 서 있다. 1997년부터 해마다 12월 31일과 1월 1일이면 이곳에서 해맞이 행사가 열린다. 주변에 경보화석박물관, 장사 해수욕장, 풍물거리 등이 있어 일 년 내내 관광객들로 붐비지만, 해맞이 축제가 열릴 때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삼사해상공원과 영덕에서 해맞이로 유명한 장소는 해맞이 공원이다. 야생화 2만 여 포기와 향토 수종 900여 그루가 심어진 이곳은 해돋이를 관람할 수 있는 곳까지 설치된 1500여 개의 나무계단이 유명하다.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의 <화양연화> 촬영지도 나무계단을 조금 더 올라가다 보면 만날 수 있다.
해맞이 공원을 따라 올라가면 듬성듬성 설치된 풍력발전단지가 또 다른 그림을 만든다. 1997년 이곳에서 크게 산불이 발생했는데, 3일 동안 계속된 산불 탓에 민둥산이 덩그러니 남았다. 수

많은 논의 끝에 국내 최초의 풍력발전단지를 건설했다. 당시 국내 기술이 없어 덴마크에서 발전기를 도입해 24개의 풍력발전기를 설치했다. 영덕 군민이 1년간 사용하는 전력을 생산하는 이곳에선 날씨가 좋은 날이면 포항 호미곶까지 한눈에 담을 수 있다.

과거의 부흥기를 지나도 여전히 전국에서 새 아침을 가장 빨리 맞는 고장. 떠나간 청어가 돌아오는 영덕의 바다와 산을 둘러싼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새어나온 감탄은 어느새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실어 가는 바람에 섞여 사라졌다.

로컬이 추천하는 영덕 숨은 맛집

송천강 재첩국
송천강에서 통통하고 맛있는 재첩이 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맑고 진한 재첩이 들어간 재첩국과 재첩이 풍성하게 오른 재첩 전은 그야말로 꿀맛이다.

경북 영덕군 병곡면 덕천길 173
054-733-0094

미혜횟집
진하고 달콤한 오징어가 듬뿍 들어간 물회를 먹을 수 있다. 바닷가를 바라보며 싱싱한 오징어 물회를 즐겨 보자. 고추장을 비벼 먹는 것이 특징이다.

경북 영덕군 강구면 영덕대게로 143
054-732-4949

아성식당
영덕까지 와서 서울식 불고기가 웬 말이냐 할 수 있지만, 아는 사람만 가는 로컬 맛집이다. 국내산 소고기로 만든 불고기와 진한 육수가 만들어내는 깊은 맛.

경북 영덕군 영덕읍 야성길 47
054-734-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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