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여행] 애국의 디딤돌, 남파고택
[나주여행] 애국의 디딤돌, 남파고택
  • 박신영 기자 | 양계탁 사진기자
  • 승인 2020.10.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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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남파고택 주인어른 박경중

한국의 근현대사를 보전하고 있는 나주 남파고택. 1910년 완공 이후 밀양 박씨 청재공파의 후손들이 사는 집이다. 진귀한 기록물들이 숨 쉬는 남파고택의 주인어른 박경중 선생을 만났다.

“남파고택은 근대 건축의 표본으로 인정받아 국가 지정 중요문화재 제263호에 지정됐습니다. 고택의 가치가 뛰어나단 말이지요. 전라남도 전통 한옥 중 개인 주택으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데 일반 주택과 달리 관아의 모습을 차용해 건물을 배치했어요. 1884년 건물을 지은 박재규 선생이 당시 동헌에서 일하고 있었거든. 그래서 집과 일터를 비슷하게 꾸민 겁니다. 1910년까지 안채, 안 사랑채, 바깥 사랑채를 마련하면서 3750평에 건물 20채를 포함한 지금의 모습이 됐어요.”

1919년 3.1운동 때 사용했던 태극기, 일제시대 광주학생항일운동의 주역이던 박준채가 사용하던 교과서, YMCA 야구단의 야구 규칙서 등 박물관에서 볼 법한 자료들이 남파고택의 분위기를 고풍스럽게 만든다.

“지금은 쓰지 않는 물건들이지만 적어도 74세 먹은 내가 어린아이일 때 사용했던 것들입니다. 일부러 전시하려고 보관한 것이 아니고 그저 쓰던 것을 그대로 놔뒀어요. 나주에 솜씨 좋은 장인들이 워낙 많아서 100년 넘는 지금까지 사용하는 것도 있고요.”

남파고택의 자료들이 생활 가구, 인쇄물, 그릇이라고 도외시하면 안 된다. 남파고택은 나주의 천석꾼 집안으로 당시 가장 가치 높은 상품을 집안에 들여놨다. 무엇보다 남파고택은 의병과 독립운동가 여섯 명을 배출한 집안이다. 고택 내부의 모든 물건은 우리가 교과서에서 봤던 위인의 소지품인 셈이다.

“옛날에는 의병활동이나 독립운동을 해도 돈이 필요했어요. 쉽게 말해 굶고 할 거야, 주먹으로 할 거야. 그러니까 지역의 부잣집에서 현금을 많이 해줬죠. 전남 지방 독립운동가들이 소문을 듣고 남파고택을 찾아오면 선조들이 순사들 몰래 뒤로 자금을 줬어요. 그러면 독립운동가들이 그림이나 글씨를 써주고 갑니다. 그걸 다 가지고 있어요. 게다가 남파고택 출신 독립운동가들의 방과 물건들도 그대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국내 어디를 가도 이런 기록물은 찾아볼 수 없을 거예요.”

남파고택은 교육사에도 큰 역할을 했다. 박경중 선생의 조부인 박준삼 선생은 1960년 나주에 청운야간중학교를 설립해 1980년대까지 가난한 학생에게 무료로 공부할 기회를 제공하고 약 2천명의 제자를 길러냈다. 중학교 의무교육이 실시된 후에는 같은 자리에 한별 유치원을 세우고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내가 뿌리내리고 살았지만 남파고택은 나주 것으로 생각해요. ‘나주 근대사를 보려면 이 집을 빼놓을 수 없다’라고 사람들이 아껴주길 바라요. 고택을 방문하는 손님들도 나주의 역사를 잘 알아갔으면 싶고요.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건, 이 집은 전시관이 아니고 실제로 거주하는 집이다 보니 방문객이 몰리면 무척 힘들어요. 방문 전에 미리 방문 날짜를 말하면 내가 현장에서 역사 이야기도 들려줄테니까 오기 전에 전화하고 와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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