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여행] 대나무와 함께하는 산책
[담양여행] 대나무와 함께하는 산책
  • 박신영, 고아라 기자 | 아웃도어DB
  • 승인 2020.10.0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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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여행의 A to Z

동생은 자동차에서 내내 투덜거렸다. 12살짜리 어린이는 담양에 언제 도착하느냐고 계속 칭얼거렸다. 인천에서 꼬박 네 시간 동안 자동차를 타는 건 어린이에겐 큰 스트레스라 생각해 나긋하게 달래주었지만 이 계집애는 어린이가 아니었다. 옆에서 차분히 설명하는 에디터의 말은 무시한 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면서 볼멘소리를 해댔다. 이미 이런 상황에 익숙한 엄마는 우리의 실랑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이따금 “창밖을 보라”며 한마디 던졌다.

담양 죽녹원에 가까워질수록 동생의 성질머리는 고약해졌는데 에디터는 그런 동생을 이해할 수 없어 뾰로통한 표정으로 쏘아봤다.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내비게이션 소리가 냉전을 끝내줄까 기대했지만 문을 쾅 닫는
동생을 보자 자매 싸움 2차전이 발발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화를 꾹꾹 누르고 엄마의 팔짱을 끼려고 했는데 그새 동생이 엄마 옆에 착 붙어서 재잘거렸다. 그 모습이 어찌나 밉던지 엄마와 동생을 앞에 두고 멀찍이 떨어져서 걸었다. 이럴 때일수록 상대방의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야 화가 풀리니까.

불난 속을 다스리며 죽녹원으로 한 걸음 옮겼다. 가느다란 대나무가 끝을 모르고 하늘로 쭉쭉 뻗었다. 댓잎이 숲을 푸른색으로 채웠고 대나무 마디의 가느다란 선이 우아미를 더했다. 흔들리는 댓잎을 따라 영화 <와호장룡>의 하이라이트인 대나무 결투 장면이 연상됐다. 영화 주인공들의 현란한 칼사위가 죽녹원에 덧입혀지자 사색에 빠져 들었다.

“언니!” 동생의 부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혼자서 뭐하냐며 호통을 치는 바람에 어버버하며 동생을 바라보니 동생의 표정엔 걱정과 귀차니즘이 반반 섞여 있었다. 동생은 내 팔을 끌어당기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미 죽녹원 한 바퀴를 산책한 엄마는 출구에 서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고 계셨다. 동생은 내 팔을 내팽개치고 쪼르르 엄마한테 달려갔다. 스무 살이 넘어서 어린 동생과 함께한다는 건 정말이지 어지간히 피곤한 일이다.

동생과 나 사이에 애매한 신경전이 흘렀다. 서로서로 투명 인간처럼 대하는 기이한 상황에도 엄마는 여전히 본채만 채다. “점심 뭐 먹을래?” 엄마가 정적을 깨고 질문을 던졌다. 에디터와 동생은 그간의 다툼을 전부
잊어버렸는지 눈빛을 주고받고 큰소리로 외쳤다. “대통 밥이랑 떡갈비!”

걸음이 느려지는 곳, 담양

담다
담양의 이야기는 대나무로 시작해 대나무로 끝날 만큼 대나무가 많다. 담양 사람들은 예부터 대나무를 이용해 소쿠리, 채반, 죽부인 등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들어 썼는데, 워낙 품질이 좋아 담양을 대표하는 기념품이 됐다. 대나무 용품이 일상 곳곳에 쓰이고 죽공예 장인이 넘쳐나는 담양으로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모여들었으나 70년대 이후 플라스틱이 생활 용품을 대체하며 죽공예에 대한 관심도 줄었다. ‘담다’는 이런 안타까운 현실을 극복하고 죽공예를 발전시키기 위해 장인들이 힘을 모아 만든 브랜드다. 트렌드에 맞는 제품을 고심한 결과 육각 플레이트, 도마, 빵 칼, 차 도구 등의 제품을 출시했다. 결과는 대성공. 모던한 디자인은 물론 친환경으로 제작해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담다의 작품은 메타프로방스 내 ‘키다리 대나무’ 숍과 죽녹원 후문 공예관에서 만날 수 있다.

전남 담양군 담양읍 메타프로방스2길 6-1

국수거리
대나무가 많아 예부터 죽세공품이 유명한 담양. 품질 좋은 대나무를 사용한 덕에 전국 각지에서 죽세공품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담양으로 모여들었고, 자연스레 죽세공품을 판매하는 죽물시장이 활성화됐다. 먼 길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국수는 최고의 요깃거리였다. 뜨끈하고 얼큰한 국물이 있으며 후루룩 금세 들이킬 수 있고,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했다. ‘국수 거리’가 탄생할 만큼 지역 대표 음식으로 거듭난 지금도 저렴한 가격을 유
지하고 있다. 국수거리의 국수들은 모두 중면을 사용해 만드는데, 주로 소면으로 만든 국수를 접해온 도시 사람들은 다소 두꺼운 면에 당황한다. 하지만 한 젓가락 크게 입에 넣고 나면 씹을수록 쫄깃하고 고소한 맛에 반하게 된다. 국수거리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댓잎, 멸치, 고사리 등을 넣어 커다란 솥에 삶은 ‘약계란’. 국수만으로 어딘가 부족하다 싶을 때 약계란 하나를 까서 국물에 넣어 먹으면 맛과 양이 풍부해진다.

전남 담양군 담양읍 객사리 국수거리

죽녹원
담양 여행의 꽃은 대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죽녹원이 아닐까. 죽녹원은 사계절 중 언제 찾아도 푸르고 아름다운 풍경으로 여행자를 맞이한다.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 길을 제외 하고 산 전체에 대나무가 촘촘히 자라고 있어 그 속을 걷다 보면 아늑한 느낌마저 든다. 죽녹원을 걸을 땐 절로 말을 아끼게 되는데, 머리 위로 대나무 잎사귀들이 부딪히는 소리를 듣기위해서다. 신선한 풀 내음과 파도 소리처럼 밀려오는 나뭇잎의 속삭임을 들으며 걷다 보면 어느덧 작은 정자에 닿는다. 이때 그냥 지나치지 말고 편하게 누워 눈을 감아보자. 도시에서 지친 몸과 마음이 절로 힐링 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전남 담양군 담양읍 죽녹원로 119

까망감
담양 여행 전 SNS를 통해 가볼 만한 곳을 검색했다면 이 이름이 익숙할 것. 담양에서 가장 핫한 카페다.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한 담양호 옆 낮은 산속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어 복잡한 관광지를 싫어하는 여행자에게 제격. 고풍스러운 고급 주택을 닮은 카페 주변은 온통 나무와 풀로 덮여 있다. 이곳에 가면 커피는 물론, 담양에서 나고 자란 식재료로 만든 티와 디저트를 맛볼 수 있다. 먹시감 잎차, 까망감으로 만든 곶감, 대나무 잎으로 만든 스콘 등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진귀한 메뉴들을 선보인다. 건물 앞에는 잘 정돈된 잔디밭과 테라스 석이 마련돼 있어 가을 날씨를 만끽하며 쉬어가기 좋다. 카페 바로 옆에 까망감 스테이와 먹감촌 체험장이 있다.

전남 담양군 용면 추월산로 900-9

명아원
단순한 펜션이 아니다. 바다의 수평선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너른 차밭과 사계절 다양한 꽃이 피는 정원 속에 다정한 통나무집이 들어서 있어 입구에서 바라보면 마치 풍경화 같다. 명아원의 그림 같은 집은 주인장이 직접 디자인하고 안주인이 손수 염색한 순면 이부자리를 깔아 완성했다. 나무의 결과 감성을 그대로 살려 마치 자연 속에 머무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곳. 사방이 풀과 나무에 둘러싸여 있어 어느 방향으로 창을 열어도 가을 풍경이 담긴다. 펜션 바로 옆에는 대나무 숲이 있어 머무는 동안 자유롭게 산책을 즐길 수 있는데, 이만한 힐링이 없다. 굳이 명소를 찾아다니지 않고 명아원에만 머물러도 담양 여행의 푸른 추억을 남길 수 있다.

전남 담양군 용면 추령로 2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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