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미래유산, 한양도성
서울시 미래유산, 한양도성
  • 이지혜 | 아웃도어DB
  • 승인 2020.04.0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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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이야기

600년이 만든 위대한 유산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도성. 한양으로 천도한 태조 이성계가 궁궐과 종묘사직이 자리를 잡자 축조를 시작한 성곽. 도읍지의 경계를 표시하고 그 권위를 드러내며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건축물. 서울 성곽, 성곽길, 도성길. 다양한 형태로 불리는 이곳의 정확한 명칭은 ‘한양도성’이다. 전체 길이가 18.627km로 현존하는 세계 수도의 성곽유산 중 가장 큰 규모로 현재 12.854km의 구간이 원형 또는 복원된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나머지 구간 가운데 일부는 지하유적으로 남아있다. 현재는 서울의 종로구, 성북구, 중구, 용산구, 서대문구를 아우르며 서울시 대표 문화재로 자리 잡았다.

한양도성은 서울을 둘러싼 네 산(북악산, 낙산, 남산, 내사산) 능선을 따라 성곽을 축조했다. 4대문과 4소문을 두었는데, 4대문은 흥인지문·돈의문·숭례문·숙정문이며 4소문은 혜화문·소의문·광희문·창의문이다. 이 중 돈의문과 소의문은 멸실되었다. 도성 밖으로는 물길을 잇기 위해 흥인지문 주변에 오간수문과 이간수문을 두었다. 한양도성은 사적 제10호로서 자연의 선을 손상하지 않고 지형을 그대로 따라가며 성을 쌓아 자연과의 현재까지도 자연, 도심과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대도시에서 이 정도 규모의 옛 성곽이 남아 있는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비록 훼손된 구간이 있기는 하지만, 현재는 전체의 70%가 옛 모습에 가깝게 정비되어 있다. 서울과 지방을 나누는 경계였던 한양도성은 동시에 조상들의 삶과 죽음을 가르는 매개체이기도 했다. 왕과 백성 구별 없이 생을 마감하면 반드시 도성 밖에 묻혀야 했다. 도성 안에서는 채석이 금지되어 성을 쌓는 데 필요한 돌을 성 밖에서 조달하기도 했다. 이처럼 한양도성은 단순한 도성의 의미를 넘어 삶과 죽음, 노동과 일상의 경계이기도 했던 것.

한양도성은 전국 각지의 백성들이 성곽을 축조했다. 구간마다 축조에 참여한 장인들의 실명이 새겨져 있다. 도성의 보존을 위해 내사산의 지형을 보존하거나 도성 안의 하천을 유지하기 위해 내사산의 수종들을 관리하여 왔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한양도성의 문루와 성곽을 주제로 한 문학작품과 도성 풍경을 묘사한 회화작품이 많이 남아 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연의 일부로 자리 잡았으며 문학과 예술의 대상이 되었다.

유네스코 등재 앞둔 한양도성
현재 한양도성은 국보와 보물, 그리고 사적으로 지정되어 국가 문화재로서 관리된다. 철저한 고증을 거쳐 성곽의 잔존과 훼손 구간에 대한 지속적인 복원 노력이 지금도 진행 중이다. 서울시는 한양도성 종합보존·관리와 활용 계획을 수립하고 한양도성을 세계유산의 관리지침에 부합하는 기준으로 보호하고 있다.

서울시는 2015년부터 한양도성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하려 노력하고 있다. 과거 유네스코는 문화재, 역사성에 기반을 두고 문화유산 등재를 결정해 왔는데, 최근 역사 문화재 자원의 개념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문화유산이 주위와 얼마나 어우러지는지, 문화유산이 주민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시민들이 문화유산을 얼마나 가치 있다고 평가하며 살고 있는지, 현재의 삶에 맞게 문화유산이 바꿔가고 있는지 등을 따져가며 심사한다. 이를 근거로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성곽 마을은 서울시의 이런 노력을 대표하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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