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 식재료 이야기] 三月, 봄동
[제철 식재료 이야기] 三月, 봄동
  • 박신영 기자 | 정영찬 사진기자
  • 승인 2020.02.28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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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봄동
농촌과 외국인 노동자

계절은 땅의 기운과 인간의 감정을 좌우한다. 봄바람이 불면 몸과 마음이 들뜨듯 대지의 생명은 기지개를 켠다. 우리는 예부터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며 제철 식재료를 탐해왔다. 거친 땅을 뚫고 지면 위로 올라오는 제철 식재료의 힘으로 계절을 나는 우리. 이번 달에는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봄동이다.

청산도와 계절
서울에서 자동차와 배를 타고 약 일곱 시간. 지칠 대로 지쳐버린 심신을 단숨에 위로해주듯 청산도는 매력적이었다. 쪽빛 바다와 푸른 하늘 그리고 초록으로 물든 구들장 논이 청산도에 채색을 더한다.

청산도민들은 예부터 자연이 주는 식재료로 계절을 지냈다. 봄엔 봄나물, 여름엔 보리와 귀리, 가을엔 쌀, 겨울엔 전복으로 배를 채웠다. 그들에게 비닐하우스나 불법 양식은 다른 세계 이야기다. 청산도는 겨울에 땅이 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눈이 내려도 금세 땅으로 스며들어 노지 재배에 최적화됐다. 바다도 마찬가지다. 최근 완도군이 청산도를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등재 신청할 만큼 청정지역이다. 그래서 청산도민은 건강한 토지와 깨끗한 바다를 활용해 최고급 농산물을 생산한다.

청산도산 모든 작물이 최고라고 해도 3월엔 봄동이 제일이다. 남도 해풍을 맞고 자란 청산도 봄동은 달짝지근하고 고소해 전국 각지에 불티나게 팔린다. 청산도 봄동은 시각적으로도 아름답다. 11월부터 3월까지 잎을 활짝 벌린 봄동이 임야 수십 만 평을 메꾸면 황량한 겨울이 어느새 봄으로 변한다.

에디터가 방문한 2월의 청산도 역시 봄동이 지천이었다. 청산도 도청항에서부터 상큼한 봄동 냄새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고 봄동 박스를 담은 트럭이 섬 구석구석을 누볐다. 한편에선 삼삼오오 짝지은 농부들이 옷을 두툼하게 껴입고 봄동밭으로 향했다.

청산도 봄동을 먹어 봤나요?
도청항에서 구불구불 산길을 오르면 금세 봄동밭이다. 농부들을 향해 나지막이 인사를 건네니 금세 순박한 미소가 돌아온다. 봄동밭 주인장 박윤 대표도 환한 미소로 일행을 맞이했다.

“때맞춰 잘 왔습니다. 오늘이 이번 달 마지막 봄동 수확이거든요. 봄동도 최상의 질을 자랑하는 때고요. 한번 잡숴보세요.”

박 대표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활짝 핀 봄동을 골라 가장 안쪽 노란 잎을 내어줬다. 청산도 봄동은 식용으로 인정받은 수입 해조류 농축액과 여름 수확 후 남은 보릿대를 퇴비로 사용해 그 자리에서 바로 먹어도 인체에 무방하다.

봄동 뿌리에 묻은 흙을 훌훌 털어내고 한 입 베어 먹자 아삭한 소리와 함께 입안에서 봄 냄새가 퍼졌다. 첫맛은 달콤하고 씹을수록 고소해 배추와 다른 느낌이었다.

“우리나라 봄동 생산량의 90%가 진도, 완도, 청산도에서 재배됩니다. 그중 청산도가 가장 으뜸이지요. 청산도 봄동은 눈을 맞고 얼었다가 해풍을 맞으며 녹기를 반복해 잎이 크고 부드러워요. 게다가 청산도의 따뜻한 바닷물이 땅 기온을 올려주고 해무가 밭으로 올라와 단맛을 배가합니다. 그래서 봄동 좀 먹어봤다 하는 사람들은 전부 청산도 봄동을 찾죠.”

박 대표 말이 정확했다. 청산도 봄동에서는 얼마 전 대형마트에서 구매한 봄동의 씁쓸한 맛을 느낄 수 없었다.

농촌의 현실
봄동과 신선놀음하다 낯선 광경을 목도했다. 그날 전체 농부 45명 중 반장인 1명을 제외하고 전부 외국인이었다. TV에서는 할머니 농부들이 봄동을 캤지만 청산도 봄동밭엔 태국어가 흩날렸다.

“우리나라 농촌 실정이 안타까워요. 1980년대부터 젊은 사람들이 전부 도회지로 나가고 할머니 농부들은 노화해서 일손이 부족합니다. 얼마 전에도 한국인 채용공고를 내봤는데 지원하는 사람들은 55~65세였어요. 농부는 손도 많이 가고 힘도 드는 직업이라 젊은 사람들이 필요한데 한국에서 사람을 구할 수 없으니 외국인 노동자를 찾는 거죠.”

외국인으로서 한국 방문 비자는 3개월. 누군가는 관광으로 누군가는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청산에 와 농부가 된다. 박윤 대표는 농촌 일을 척척 해내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늘 고맙다고 말한다.

“타국에서 밤낮으로 제 일처럼 작업해주니까 항상 고맙죠. 처음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불편한 소문 때문에 걱정했는데 그건 극소수예요. 다들 심성이 고와서 수십 명씩 모아놔도 범죄 한 번 일으키지 않았죠.”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농촌이 무너지는 현실. 할머니 농부의 푸근한 인상을 그리워하기보단 타국의 일손을 반겨야할 때다.

“외국인 노동자를 배척하기보다 현실을 인정하고 더 좋은 조건으로 구직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해요. 우범률이 낮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채용할 수 있게끔 정부에서 나서는 등 적극적으로 도움이 필요합니다.”

봄동으로 식탁을 채우는 법
달콤한 봄동을 맛보러 식당을 찾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청산도엔 봄동 전문 식당이 없다. 대신 박윤 대표의 식탁에서 봄동의 다양한 요리를 맛봤다. 봄동을 식탁에서 만나는 법은 다양하다. 봄동 겉절이, 봄동 보쌈, 봄동 쌈밥, 봄동 굴국, 봄동 나물 등 집에서도 간단히 봄동을 즐길 수 있다.

봄동 겉절이
재료
봄동, 겉절이 양념(고춧가루, 마늘, 멸치액젓), 당근, 부추

레시피
1.
봄동을 한 잎씩 뜯으며 깨끗이 씻고 크기가 큰 것은 잘게 손질한다.
2. 고춧가루, 마늘, 멸치액젓을 잘 섞어 양념을 만든다.
3. 세척한 봄동, 당근, 부추를 겉절이 양념과 섞으면 끝.

봄동 보쌈
재료 봄동, 돼지 목살, 황칠나무, 새우젓, 된장, 쪽파

레시피
1. 봄동을 한 잎씩 뜯으며 깨끗이 씻고 크기가 큰 것은 잘게 손질해 냉장고에 보관한다.
2. 돼지 목살, 황칠나무, 새우젓, 된장을 몽땅 넣고 한 시간 동안 삶는다.
3. 돼지 목살이 익는 동안 된장과 새우젓으로 양념장을 만든다.
4. 푹 삶아진 돼지 목살을 먹기 좋게 잘라 봄동에 쌈 싸 먹으면 끝.

좋은 봄동 고르는 TIP
-잎이 활짝 벌어진 것
-이파리 가장자리가 청기를 띠고 가운데 부분은 노란색을 띠는 것
-이파리가 억새지 않고 부드러운 것
-하얀 줄기가 짧으며 반점이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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