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재밌는 여행을 꿈꾸는 청년 사업가
모두가 재밌는 여행을 꿈꾸는 청년 사업가
  • 박신영 기자 | 사진제공 무빙트립
  • 승인 2019.12.24 07: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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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전문 액티비티 여행사 무빙트립 신현오 대표

갑자기 팔꿈치와 무릎 아래 마비가 왔다. 잠깐 왔다 지나가는 경미한 증상인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도 마비는 계속됐다. 의사는 샤르코 마리 투스라는 진단서를 내밀었다. 샤르코 마리 투스는 사지가 마비되는 희귀 난치병이다. 족보를 샅샅이 뒤졌지만 장애를 가진 조상은 없었다. 신현오 씨는 돌연변이 장애인으로 태어났다.

공기 좋고 물 좋은 전북 순창에서 매일 뛰어놀던 말괄량이 초등학생은 달릴 수 없게 됐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찾아왔을까’ 하루하루가 원망의 나날이었다. 부모님은 병을 고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난치병을 치료할 수 없었다. 대신 아들을 긍정적인 사람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부지런히 행동했다. 시골임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여기저기 밖으로 데리고 다니며 세상을 보여줬다. 심지어 사다리 두 개를 엮고 그 위에 넓은 판을 올려 아들을 가마처럼 이고 산을 오르내렸다.

현오 씨가 고등학생이 되자 연필을 쥘 수 없을 정도로 양손에 마비가 왔다. 하지만 법관이 돼 장애인 관련 법안을 만들고 싶었기에 공부를 놓지 않았다. 과목당 문제집과 해설집을 사서 눈으로 전부 암기했다. 그러나 샤르코 마리 투스는 현오 씨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마비가 양 눈까지 퍼져 시야가 뿌옇게 흐려진 것. 결국 그는 공부를 잠정 중단했다.

겨우 시력을 되찾고 입학한 전북대 경제학과에서 즐거운 대학 생활을 시작할 줄 알았다. 그런데 중고등학교 때 겪은 두 번의 골절이 현오 씨에게 휠체어를 안겨줬다. 무거운 휠체어는 밖으로 나돌기 좋아하고 자존심 강한 그에게 버거웠다. 집, 학교. 다시 집, 학교생활이 이어졌다. 사회생활에 적응 못 하고 집안에만 박혀 사는 히키코모리와 다를 바 없었다.

그가 세상을 마주한 건 스포츠센터 국두홍 교수와 만난 후였다. 갑자기 자취방으로 찾아온 교수는 그를 집 밖에 놔두고 대문을 잠갔다. “저녁거리 장 봐와라” 그는 가기 싫은 마음을 꾹꾹 누르며 휠체어를 굴렸다. 비좁은 길과 높은 보도 턱 등 휠체어가 지나갈 수 없는 공간을 맞닥뜨리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생애 첫 장보기를 마쳤다. 밖은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았고 타인의 시선도 따갑지 않았다.

그 뒤로 나 홀로 여행을 떠났다. 장애인 콜택시를 타고 동네를 한 시간 돌아보는 것. 답답했던 마음이 한순간에 해소됐고 야외 활동에 자신감이 붙었다. 나 혼자 외식, 산책, 여행, 패러글라이딩에 도전하다가 문득 ‘장애인들을 위한 체험 여행이 없을까?’ 의문이 들었다.

국내 굴지의 여행사엔 장애인을 위한 상품이 존재했다. 박물관과 전시회 등 관람 위주의 나들이 상품이었다. 물론 정적인 활동도 좋지만 그의 여행 욕구는 여행사 상품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시선을 해외로 옮기자 장애인도 가능한 체험 여행 상품이 보였다. 국내와는 판이한 환경에 씁쓸했지만 곧바로 사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국내 최초 장애인 전문 액티비티 여행사를 만들자고.

사업은 빠르게 진척됐다. 먼저 장애인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국내 장애인 250만 명 중 80만 명이 임금 근로자, 그들의 평균 월급은 300만원, 그리고 90%가 후천적 장애인이다. 즉, 액티비티를 즐길 충분한 경제력을 갖추고 있거나 이전에 액티비티를 경험한 장애인이 많다. 그들은 국내엔 장애인 전문 여행사가 없다고 판단해 해외여행을 하고 있었다. 해외로 나간 장애인 여행객과 외국 장애인 여행객을 국내로 옮겨오면 시장성은 충분했다.

2018년 12월 현오 씨는 장애인 전문 액티비티 여행사 무빙트립을 오픈했다. 사업이 확정되자 그는 액티비티 체험장으로 갔다. 장애인도 즐길 수 있는 활동을 개발하기 위해 직접 스킨 스쿠버, 패러글라이딩, 낚시, 스카이다이빙, 오프로드 등에 도전했다. 그리고 체험마다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보조기를 개발했다. 패러글라이딩에 동력 장치를 달아 땅에서도 날아오를 수 있도록 했고, 몸을 못 가누는 장애인을 위해 고정 장치도 만들었다. 해변에서 잘 굴러가고 바다에서 둥둥 뜨는 해변용 휠체어는 비장애인에게도 인기다.

기존 장애인 여행 상품은 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활동만으로 구성됐다면, 무빙트립은 장애인도 할 수 있는 체험 여행이다. 휠체어 경사로가 없는 맛집이라면 휴대용 경사로를 설치하고 좌식만 있는 카페라면 주인장과 타협해 입석을 마련한다.

무빙트립이 ‘장애인 전문 액티비티 여행사’라는 타이틀을 가졌다고 장애인만 즐기는 상품을 만드는 것도 아니다. 현오 씨의 목적은 모두가 재밌는 여행을 꿈꾸는 세상이다. 보통 장애인 여행엔 비장애인 가족이 서포터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아 모두 만족스러운 여행이 되기 어렵다. 현오 씨는 이런 점을 보완하고자 인솔자를 타 여행사보다 몇 배로 증원해 비장애인들도 함께하는 여행을 개발했다.

무빙트립은 순항중이다. 고객은 나날이 늘어가고 게시판엔 감사의 말로 가득하다. ‘장애인 청년 사업가가 운영하는 국내 최초 장애인 전문 액티비티 여행사란 독특한 이야기는 SNS로 전파됐고 KBS 1TV 프로그램 <사랑의 가족>을 포함 다양한 미디어에 등장했다. 최근엔 교육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수여 하는 ‘2019 대한민국 인재상’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시상식에서 수상자를 대표해 소감을 발표했다. 소감에서 밝힌 현오 씨가 꿈꾸는 세상은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로운 곳이다.

“처음엔 장애를 가진 제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을지 두려웠지만 여행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동력 패러글라이딩에 탑승하면 발아래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죠. 휠체어 이용으로 황량한 바닥만 봤던 제게 동력 패러글라이딩은 자유와 ‘장애인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심어줬습니다. 세상엔 과거의 저처럼 뭔가 하고 싶지만 방법을 모른 채 숨어 지내는 장애인이 많습니다. 무빙트립을 통해 그들에게 제가 걸어왔던 길과 앞으로 해낼 것들을 알려주며 당신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가 사라지고 모두 함께 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앞으로 꾸준히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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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tzim 2019-12-24 12:18:38
정말 멋있습니다 . 대표님을 통해 많은 장애인분들이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