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
  • 정다솜
  • 승인 2019.12.1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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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스카치 위스키

연말이 되면 지난 숱한 연말엔 어디서 뭘 하고 있었던가를 곰곰 되짚어본다. 작년엔 어디서 뭘 했더라. 재작년엔, 또 그 전해에는? 곱씹은 장면들 대부분에선 기본적으로 술을 마시고 있다. 동행자와 장소가 다를 뿐. 아무튼 제각기 특별했지만 그 가운데서도 재작년은 여러모로 특기할 만한 날이다.

나는 내가 지난 연말에 마신 술을 알고 있다
2017년 12월 28일. 유달리 기분이 싱숭생숭한 세밑이었고, 한파가 기승을 부리던 날. 반가운 이들과 저녁 식사를 했다. 부드러운 빵과 고소한 수프가 애피타이저, 메인은 생면 파스타와 연어 스테이크. 반주로는 슈무커 둔켈 바이젠을 곁들였다. 수프만큼 따듯한 작별 포옹과 조금 이른 새해 덕담까지 가득 받아들고서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뺨에 오른 훈훈한 기운이 이 밤 내내 식지 않았으면 해서 집으로 향하던 발길을 공덕역 출구 앞에서 돌려세웠다. 그러고는 한 차례도 주춤하는 일 없이, 아주 거침없이 걸었다. 그 밤, 나는 내 목적지를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세 번 만에 입성한 기묘한 바
앞선 두 차례의 방문 시도엔 어두컴컴했던 간판이 오늘에야 불을 밝히고 있었다. 육중하고 둔탁한 나무문을 덜컥 밀고 안을 휘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다. 범상치 않은 공간이었다. 상상 속의 바란, 으레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술병이 열 맞춰 정돈돼 있고 딱 떨어지는 수트 차림의 점잖은 바텐더가 그 술병 중 몇을 슉슉 꺼내어 휘황한 기술을 선뵈고서는 찬란하게 생긴 술잔에 의미심장한 미소까지 띄워 슥 건네는 곳인데, 술병이 많다는 점 빼곤 모든 게 상상과 어긋났다. 일단 평소 금기의 영역으로 보이기만 하던 바 공간은 아주 커다란 통나무 테이블이 길게 가로지르고 있어 개방된 것과 마찬가지였으며 대중없이 그러모은 듯한 각종 빈티지 소품과 장식, 그림들이 역시 대중없이 여기저기 놓여있었다.

거참 희한한 바네, 하며 두리번거리는 중에 동그란 안경을 쓰고 머리에 두건을 두른, 나이가 어림잡아 예순에 가까워 보이는 남자가 나타난 순간 히죽 웃음이 나왔다. 그렇지. 상상의 다른 이름은 현실의 배신일 뿐임을. 그래도 이번 배신은 왠지 썩 맘에 들었다. 테이블 끝자리로 안내받은 나와 동행이 메뉴판을 탐독하는 동안 주인장은 멸치며 돌김 따위의 마른안주를 내왔다. 위스키를 마셔보고 싶은데요, 좀, 아주 묵직한 거로.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가 술병을 골라 집었다. 곧 ‘라가불린 16년’이라 쓰인 병으로부터 짙은 호박색 액체가 흘러나와 아래가 둥글고 위가 좁은 잔을 서서히 채웠다.

섬나라의 섬나라에서 온 위스키
묵직하다 못해 인체의 구조를 실감케 하는 맛이었다. 바비큐를 하고 남은 나무 조각을 입에 넣은 것처럼 매캐한 훈연 내를 코와 혀 사방팔방에 흩뿌리며 등장한 술은 식도의 위치를 정확히 짚어주며 내려가더니 명치 언저리에 안착해서는 위장에 뜨거운 김을 후후 불어넣었다. 태연자약한 척 한 모금 두 모금씩 삼켜내다 보니 점점 익숙해졌고, 뜨끈하니 나쁘지 않았다. 맛이 어떤가요. 흠흠, 맘에 드네요. 다음 잔은 주인장께서 가장 좋아하는 위스키로 부탁합니다. 짙은 녹색을 띤 병을 집어 든 그가 이번엔 계량도 않고 술을 콸콸 따르더니, 잔을 내줌과 동시에 내 등 뒤의 지도를 가리켰다. 스코틀랜드 지도예요. 자전거로 스코틀랜드를 일주하면서 요 증류소들을 전부 다녔더랬지요. 여기 섬이 있죠? ‘아일라(Islay)’라는 섬입니다. 라가불린도 그렇고 이 ‘아드벡’도 아일라에서 왔어요. 가장 좋아하는 술입니다. 섬나라의, 섬에서 온.

세계 최고 품질의 위스키를 최대로 생산하는 나라
위스키 생산국을 말할 때 크게 다섯 정도를 꼽는다. 우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증류소를 가진 아일랜드, 라이 위스키 강국 캐나다, 버번의 고장 미국과 아시아 위스키의 터줏대감 일본. 대망의 마지막 국가는 자타공인 ‘위스키의 본산’이라 불리는 스코틀랜드다. 그레이트 브리튼 섬 북쪽, 대한민국 영토의 2/3 정도 땅에 퍽 소박한 인구수 500만 명이 알콩달콩 사는 나라지만 증류소 수와 그들이 만드는 양질의 위스키는 소박하지 않다. 산 깊고 물 맑은 곳의 술맛이 아무렴 오죽할까. 거친 파도에 깎인 바위 지대와 드높은 산맥, 깊은 계곡을 따라 자리한 130여 곳의 증류소에서 ‘매캘란’, ‘글렌피딕’, ‘글렌파클라스’ 같이 저마다 천차만별의 풍미를 자랑하는 싱글몰트 위스키와 ‘밸런타인’이며 ‘시바스 리갈’, ‘조니워커’ 등 비교적 친숙한 이름의 블렌디드 위스키까지 아울러 생산된다.

연금술사가 전수해준 생명의 물
스카치위스키가 언제부터 만들어졌는가에 관한 정설은 없다. 다만 로마인이 잉글랜드에 들어오기 전부터 스코틀랜드 켈트족이 본인들의 고유한 문화로써 맥주를 담가 마셨다는 기록과 아쿠아-비테Aqua-Vitae(생명의 물이라는 뜻의 라틴어)를 만들기 위해 맥아를 수도사 존 코어에게 주었다"는 정부 문서가 남아있다. ‘아쿠아-비테’란 연금술사들이 와인을 증류한 고도수의 술을 칭할 때 쓰던 말로, 증류 기술을 갖고 있던 이들이 아일랜드를 거쳐 스코틀랜드로 넘어오자 켈트인들이 기술을 전해 받고 맥주를 증류해 위스키를 만들게 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실제로 위스키 만드는 과정은 맥주와 상당 부분 비슷하다. 보리를 물에 불려 맥아(malt)를 만든 다음 빻아서 맥즙을 만들고 효모를 넣어 발효시키는 과정까진 거의 같다. 단, 위스키 몰트의 경우 건조할 때 이탄(Peat)을 연료로 태우고 그 연기를 불어넣어 맥아에 이탄향이 베도록 한다. 발효 뒤 증류로 얻어낸 액체를 이전에 셰리 혹은 버번을 숙성했던 오크통에 넣어 다시 오랫동안 숙성시켜야 비로소 위스키가 되는데, 짧게는 삼 년, 길게는 수십 년에 걸쳐 숙성되는 동안 오크통 성분이 술에 스며들면 위스키의 고상한 연갈빛 색상과 향미가 갖춰진다.

밀주 시대의 궁여지책이 낳은 새옹지마
사실 초기의 위스키는 증류 직후 바로 마셨기 때문에 소주처럼 무색투명했다. 술 좋아하는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토속주로 이어져 오던 위스키가 변곡점을 맞은 것은 18세기 초.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에 합병되며 정부가 맥아세를 부과하겠다고 공표하면서부터다. 사람들은 세금을 피해 밀주를 만들었다. 석탄을 구하기 어려워지자 되는 대로 주변에 널린 이탄을 태워다 보리를 말렸고, 보관 용기가 마땅치 않아 셰리를 담았던 오크통을 눈속임용으로 썼다. 은밀히 뒷거래해야 했기에 술이 완성돼도 적절한 거래 타이밍이 올 때까진 별수 없이 산속에 숨겨서 묵혔다. 그런데 이렇게 만들고 났더니 전에 없던 독특하고 색다른 맛이 생겨났을 뿐 아니라 예쁜 빛깔까지 덤으로 얻게 되었다. 법망을 피하려 낸 꾀가 뜻밖에 술맛을 진화시키고 오늘날의 명성까지 가져다준 셈이니, 위스키 입장에선 새옹지마라 할 수 있을지도.

푸른 새벽에 귀동냥으로 떠난 여행
그 바에서 위스키를 진탕 마신 날 부로, 나는 투잡을 시작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사무실은 온풍이 펑펑 뿜어져 나오는데도 어딘가 공허하고 차가운데 바는 달랑 중앙에 놓인 가스난로 하나로 겨울을 남에도 불구하고 활기가 있었다. 일이 끝나 새벽이 되면 낡고 안락한 의자에 눕듯이 앉아 주인장이 건네는 위스키와 맥주를 마시며 몸을 덥혔다. 그가 말하는 위스키와 스코틀랜드 이야기를 자장가 삼아 듣다가 난로 앞에서 어김없이 잠이 들었고, 그건 마치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어서 기진맥진의 연속이었어도 그 겨울의 주말 밤들을 아꼈다. 이후로도 위스키를 마실 때면 더프타운의 길고 길기로 유명한 스코틀랜드의 겨울 밤을 종종 연상하곤 했다. 가본 적도 없는 곳을 그리워하며.

위스키 마시기 더없이 좋은 계절
그 겨울처럼 우락부락한 찬바람이 외투를 비집고 들어와 몸을 할퀴는 계절, 그러니 위스키 마시기에 더없이 좋은 겨울이 돌아왔다. 지금 나는 런던 소호의 어느 바에 앉아있다. 수염을 맵시 있게 다듬은 바텐더가 한 방울의 오차도 없이 따른 라가불린 16년 1온스가 찰랑이는 글랜캐런 잔이 내 몫으로 놓여있고 나는 잔을 바라보며 동일한 모양의 잔 십수 개가 놓인, 저 멀리 서울에 두고 떠나온 바를 생각한다. 그 길고 커다란 테이블을 꽉 채운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흐느낌 위로 피어오르던 술기운, 향초 냄새, 담배 연기 같은 것들도.

또 나는 험준한 고개가 끝없이 이어진 낯선 땅을 막연히 떠올린다. 가히 압도적인 그 풍경 속을 거슬러 오르고 내리는 자전거 한 대가 있다. 각종 공구와 책 몇 권, 티셔츠 한두 장 따위의 소박한 살림살이를 싣고 달리는 자전거 안장 위에 앉은 중년 남자가 열심히 페달을 밟는다. 깊은 골짜기를 넘고 가파른 고개를 내달린 뒤, 그는 강가에 들러 얼굴을 씻고 담배를 태우며 만년필로 메모를 할 것이다. 땅거미가 내리고 라이딩이 끝나면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술집에 들어갈 것이다. 안팎의 온도 차로 안경과 털모자에 그득히 맺힌 이슬을 툭툭 털어내면서, 아드벡 위스키 한 잔과 맥주를 주문하겠지. 나는 그 나이 지긋한 남자를 안다. 알고 있다.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

만약 우리의 언어(言語)가 위스키라면, 이처럼 고생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잠자코 술잔을 내밀고 당신은 그걸 받아서 조용히 목 안으로 흘려 넣기만 하면 된다.
너무도 심플하고, 너무도 친밀하고, 너무도 정확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 中

언젠가 어디서든 그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우리 사이엔 별다른 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 호들갑스러운 재회 인사보단 하루키의 말마따나 둘 중 하나가 잠자코 술잔을 내밀고 상대는 그걸 받아서 조용히 목 안으로 흘려 넣기만 하면 되니까. 너무도 심플하고, 너무도 친밀하고, 너무도, 정확하게. 아마 우리의 언어는 이미, 위스키이므로.

정다솜
여행과 술을 사랑하는 바텐더. 여행하면서 만나는 수많은 ‘마실 것’에 호기심이 가득하다. 그 호기심의 범위를 더 넓히기 위해 현재 런던에서 워킹홀리데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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