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가는 여행자, 스페인 바르셀로나 이야기
살다가는 여행자, 스페인 바르셀로나 이야기
  • 글 사진 백종민
  • 승인 2019.05.24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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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의 생생한 이야기 전달하는 여행 소설

바르셀로나 호텔리어의 사정
자기도 우리 집에 와봐서 알지? 집에 남는 방이 하나 있잖아. 하우스 메이트를 찾을까 하다가 위치도 좋고 호텔보다 저렴하게 내놓으면 손님이 꽤 들 것 같아서 숙박 공유 사이트에 올렸거든. 해보니까 마음먹고 달려들면 돈도 꽤 벌겠더라고. 나중에 은퇴하면 본격적으로 뛰어들 참이야. 아무튼 지금은 호텔리어가 내 메인 잡이니까.

바르셀로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벙커.
바르셀로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벙커.

우리 호텔이 좀 바쁜 거 알지? 객실도 많고, 전세계에서 사람들이 몰려드니 밤낮 가리지 않고 손님을 맞아야 하잖아. 데스크에 있으면 예약 응대 해야지, 로비에 있으면 짐 날라 줘야지. 또 손님들 오기 전에 새 시트로 갈아 줘야지, 체크아웃 하면서 짐 보관해 달라 하면 그래야지. 여기 붙들려 있으니까 정작 우리 집에 오는 손님 챙기기가 쉽지 않더라고. 세상에. 나 좀 편하자고 한 달 묵을 사람만 받겠다고 했는데 그래도 꽤 연락이 온다니까. 난 일주일 휴가 내는 것도 쉽지 않은데 한 달씩 여행 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놀랍지 않아?

바달로나 해변에는 가족 단위로 시간을 보내는 현지인들을 만날 수 있다.
바달로나 해변에는 가족 단위로 시간을 보내는 현지인들을 만날 수 있다.

그래 봐야 그들도 결국 여행자일 걸
호텔 손님들은 도착하자마자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어떻게 가느냐, 바르셀로네타 해변은 어떠냐, 피카소 미술관 할인티켓은 없냐, 보케리아 시장은 몇 시에 문을 여는지 까지 하나하나 물어 보잖아. 조식 먹으러 가면서 질문하고, 방에 있다가 생각나면 전화하고, 샤워하고 젖은 머리로 내려와서 또 물어보고 밤낮이 따로 없어. 질문하는 사람만 바뀌고 나는 했던 말 또 하고. 뭐, 호텔 직원의 일이 그런 거라지만 힘든 게 사실이지. 나대신 안내 기계를 놓고 싶을 정도라니까. 아휴. 일자리 빼앗길 수 있으니 나 그만 둔 다음에나 놓으면 좋겠지만 말이야. 그런데 우리 집에 오는 사람들은 하루 이틀 묵고 가는 호텔 손님들 하고는 좀 달라. 특히 얼마 전에 온 동양인 커플은 뭐 물어보는 것도 없고, 자기들끼리 알아서 다니더라고. 너무 잘 찾아 다니길래 예전에 바르셀로나에서 유학이라도 했나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래.

아파트 사이로 보이는 성가족 성당. 100년이 넘도록 공사중이다.
아파트 사이로 보이는 성가족 성당. 100년이 넘도록 공사중이다.

하루 저녁은 궁금해서 물어봤거든. 산타 카타리나 시장에 들려서 하몽도 사고, 바르에 가서 타파스에 클라라도 한 잔 했더라고. 또 구하기 힘든 티켓을 어떻게 예매했는지 캄푸 누 경기장에서 FC 바르샤도 보고 왔대. 하지만 제일 놀랜 건 매일 해지기 전에 바달로나 해변에 가서 선탠을 하고 온다는 거야. 이건 뭐 얘기만 들어보면 현지인이라고 해도 믿겠더라니까. 참, 그라시아 지구에 있는 그 먹물 파에야 집도 다녀왔대. 자기도 그 가게 알지? 거긴 가이드북에 나오지도 않는 현지인들만 가는 진짜 맛집인데 어떻게 찾아 갔나 몰라. 주인장이 워낙 까칠해서 추천해도 웬만해선 좋은 소리도 못 듣는데 그 커플은 꽤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온 모양이야. 이쯤 되니까 그들이 다른 여행객들이랑 뭐가 다른지 궁금하지 않아?

FC바르셀로나의 홈구장임을 증명하려는 듯 펄럭이는 클럽기.
FC바르셀로나의 홈구장임을 증명하려는 듯 펄럭이는 클럽기.

투어리스트 고 홈
자기도 알잖아. 요즘에 그 ‘안티투어리즘’ 때문에 여기저기 말이 많은 거. 우리 호텔만 해도 밤늦게까지 술 마시고 큰 목소리로 떠드는 손님들 때문에 시끄럽다고 민원이 얼마나 많이 들어오는데. 특히 보른지구의 피해가 심각한 가봐. 골목 여기저기에 ‘여기는 노인과 아이들이 사는 동네입니다. 밤 10시가 넘으면 조용히 해주세요’라고 붙여 놨으니 말 다했지.

스페인을 대표하는 음식인 하몽은 시장에 가면 좋은 가격으로 구할 수 있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음식인 하몽은 시장에 가면 좋은 가격으로 구할 수 있다.

그것뿐이야? 객실을 떠난 뒤 흔적들을 보면 어쩜 이렇게 무신경할까 싶어. ZARA며 Desiguel이며 죄다 쇼핑백인데 남이 버려 주더라도 정리해서 쌓아 둘 수 있잖아. 객실 청소가 힘들어서가 아니야. 여기다 툭, 저기다 툭 던져 놓은 거 찾으러 다니는 게 얼마나 일인데. 혹시라도 못 찾으면 다음 손님은 또 그걸 귀신같이 발견하고 항의하니까 말이야. 호텔에서만이면 좋겠는데 시내를 돌아다니면서도 그러니 문제지. 그런데 이 커플 같다면 바르셀로나 사람들 모두 두 손, 두 발 들고 환영할 거야. 한 번씩 출근길에 쓰레기 들고 나가려고 물어보면 이미 자기들이 알아서 버렸대. 가끔 내가 바빠 보이면 자기들이 치우겠다고 두고 가라고도 한다니까. 맞다! 처음 우리 집에 와서 물어 본 것도 바르셀로나에서는 분리수거를 어떻게 하는지, 음식물 쓰레기는 어디다 버리는지 하는 거 였어. 여기서 사는 사람들이나 그런 거 신경 쓰지 않나?

스페인의 여름 별미인 가스파초Gazpacho. 토마토 스프의 일종인데 차갑게 먹는 것이 특징이다.
스페인의 여름 별미인 가스파초Gazpacho. 토마토 스프의 일종인데 차갑게 먹는 것이 특징이다.

자기. 벙커에 가 본 적 있어? 왜 있잖아. 60년대 내전 벌어졌을 때 군사기지로 쓰이다가 지금은 바르셀로나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꼭대기 말이야. 얼마 전 휴일에 호스트 노릇 좀 해보려고 이 커플이랑 놀러 갔거든. 버스에 내려서 언덕을 올라가는데 ‘투어리스트 고 홈’이라고 길바닥에 써 있는 거야. 우리 앞에 가는 이들은 여행이라는 흥분에 취해서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그 친구들은 달랐어. ‘음. 우리가 늘 환영 받는 존재는 아니군요. 동네 사람들이 관광객들 때문에 피해를 보는 모양인데 우리 목소리를 좀 낮출까요?’ 라고 하더라고.

바르셀로나는 자전거 타기 좋은 도시다.
바르셀로나는 자전거 타기 좋은 도시다.

잠깐 살다가는 여행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이곳에 살다가는 이들이라는 게 느껴졌달까? 그 커플은 도시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여행자가 아니라 새로 이사 온 동네를 찾아온 것 같대. 그러니 그냥 쓱 지나갈 ‘보른지구’ 사람들의 애절한 호소 같은 것들이 눈에 밟히는 거겠지. 자기 시간하고 돈 내서 가는 여행에서 그런 수고까지 해야 하냐고 되물었더니 여행이라는 게 결국 다른 이들이 사는 곳에 잠깐 들리는 거 아니냐고 하더군. 짧은 여행은 현지인들의 룰을 확인할 시간도 없고 또 그들을 배려할 여유가 없다는 거야. 누군가의 일상을 흔들었으면 양해를 구해야 할 판인데 우리는 그러지 못한다고.

바르셀로나는 여행자도 구매할 수 있는 월정액 티켓을 통해 대중교통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바르셀로나는 여행자도 구매할 수 있는 월정액 티켓을 통해 대중교통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어떻게 이런 손님을 받았냐고? 첫 연락할 때 느낌이 쎄하면 마지막까지 힘들더라고. 그런데 이 커플은 처음부터 느낌이 좋았어. 예약 문의로 자신들이 어떤 여행을 하고 싶은지, 우리 집에 와서 머물러도 되는지 물어 오더라니까. 왜 있잖아. 돈 낼 거니까 열쇠 달라는 사람들. 그런 이들하고는 완전히 달랐어. 마치 오래 전에 연락이 끊겼던 친구가 ‘너희 도시로 여행을 가는데 잠깐 묵을 수 있을까?’하는 것 같았어. 내가 맞이한 손님 중에 이렇게 이 도시를 존중하는 이들이 있었던가 생각이 들었는데 그 사람들 가고 나니까 확실히 알겠더라고. 난 여행자를 받은 게 아니라 잠시 친구에게 방을 내어준 거 였구나.

벙커에 올라 독서와 선탠을 즐기는 여행자의 모습.
벙커에 올라 독서와 선탠을 즐기는 여행자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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