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호텔리어의 사정
자기도 우리 집에 와봐서 알지? 집에 남는 방이 하나 있잖아. 하우스 메이트를 찾을까 하다가 위치도 좋고 호텔보다 저렴하게 내놓으면 손님이 꽤 들 것 같아서 숙박 공유 사이트에 올렸거든. 해보니까 마음먹고 달려들면 돈도 꽤 벌겠더라고. 나중에 은퇴하면 본격적으로 뛰어들 참이야. 아무튼 지금은 호텔리어가 내 메인 잡이니까.
우리 호텔이 좀 바쁜 거 알지? 객실도 많고, 전세계에서 사람들이 몰려드니 밤낮 가리지 않고 손님을 맞아야 하잖아. 데스크에 있으면 예약 응대 해야지, 로비에 있으면 짐 날라 줘야지. 또 손님들 오기 전에 새 시트로 갈아 줘야지, 체크아웃 하면서 짐 보관해 달라 하면 그래야지. 여기 붙들려 있으니까 정작 우리 집에 오는 손님 챙기기가 쉽지 않더라고. 세상에. 나 좀 편하자고 한 달 묵을 사람만 받겠다고 했는데 그래도 꽤 연락이 온다니까. 난 일주일 휴가 내는 것도 쉽지 않은데 한 달씩 여행 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놀랍지 않아?
그래 봐야 그들도 결국 여행자일 걸
호텔 손님들은 도착하자마자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어떻게 가느냐, 바르셀로네타 해변은 어떠냐, 피카소 미술관 할인티켓은 없냐, 보케리아 시장은 몇 시에 문을 여는지 까지 하나하나 물어 보잖아. 조식 먹으러 가면서 질문하고, 방에 있다가 생각나면 전화하고, 샤워하고 젖은 머리로 내려와서 또 물어보고 밤낮이 따로 없어. 질문하는 사람만 바뀌고 나는 했던 말 또 하고. 뭐, 호텔 직원의 일이 그런 거라지만 힘든 게 사실이지. 나대신 안내 기계를 놓고 싶을 정도라니까. 아휴. 일자리 빼앗길 수 있으니 나 그만 둔 다음에나 놓으면 좋겠지만 말이야. 그런데 우리 집에 오는 사람들은 하루 이틀 묵고 가는 호텔 손님들 하고는 좀 달라. 특히 얼마 전에 온 동양인 커플은 뭐 물어보는 것도 없고, 자기들끼리 알아서 다니더라고. 너무 잘 찾아 다니길래 예전에 바르셀로나에서 유학이라도 했나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래.
하루 저녁은 궁금해서 물어봤거든. 산타 카타리나 시장에 들려서 하몽도 사고, 바르에 가서 타파스에 클라라도 한 잔 했더라고. 또 구하기 힘든 티켓을 어떻게 예매했는지 캄푸 누 경기장에서 FC 바르샤도 보고 왔대. 하지만 제일 놀랜 건 매일 해지기 전에 바달로나 해변에 가서 선탠을 하고 온다는 거야. 이건 뭐 얘기만 들어보면 현지인이라고 해도 믿겠더라니까. 참, 그라시아 지구에 있는 그 먹물 파에야 집도 다녀왔대. 자기도 그 가게 알지? 거긴 가이드북에 나오지도 않는 현지인들만 가는 진짜 맛집인데 어떻게 찾아 갔나 몰라. 주인장이 워낙 까칠해서 추천해도 웬만해선 좋은 소리도 못 듣는데 그 커플은 꽤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온 모양이야. 이쯤 되니까 그들이 다른 여행객들이랑 뭐가 다른지 궁금하지 않아?
투어리스트 고 홈
자기도 알잖아. 요즘에 그 ‘안티투어리즘’ 때문에 여기저기 말이 많은 거. 우리 호텔만 해도 밤늦게까지 술 마시고 큰 목소리로 떠드는 손님들 때문에 시끄럽다고 민원이 얼마나 많이 들어오는데. 특히 보른지구의 피해가 심각한 가봐. 골목 여기저기에 ‘여기는 노인과 아이들이 사는 동네입니다. 밤 10시가 넘으면 조용히 해주세요’라고 붙여 놨으니 말 다했지.
그것뿐이야? 객실을 떠난 뒤 흔적들을 보면 어쩜 이렇게 무신경할까 싶어. ZARA며 Desiguel이며 죄다 쇼핑백인데 남이 버려 주더라도 정리해서 쌓아 둘 수 있잖아. 객실 청소가 힘들어서가 아니야. 여기다 툭, 저기다 툭 던져 놓은 거 찾으러 다니는 게 얼마나 일인데. 혹시라도 못 찾으면 다음 손님은 또 그걸 귀신같이 발견하고 항의하니까 말이야. 호텔에서만이면 좋겠는데 시내를 돌아다니면서도 그러니 문제지. 그런데 이 커플 같다면 바르셀로나 사람들 모두 두 손, 두 발 들고 환영할 거야. 한 번씩 출근길에 쓰레기 들고 나가려고 물어보면 이미 자기들이 알아서 버렸대. 가끔 내가 바빠 보이면 자기들이 치우겠다고 두고 가라고도 한다니까. 맞다! 처음 우리 집에 와서 물어 본 것도 바르셀로나에서는 분리수거를 어떻게 하는지, 음식물 쓰레기는 어디다 버리는지 하는 거 였어. 여기서 사는 사람들이나 그런 거 신경 쓰지 않나?
자기. 벙커에 가 본 적 있어? 왜 있잖아. 60년대 내전 벌어졌을 때 군사기지로 쓰이다가 지금은 바르셀로나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꼭대기 말이야. 얼마 전 휴일에 호스트 노릇 좀 해보려고 이 커플이랑 놀러 갔거든. 버스에 내려서 언덕을 올라가는데 ‘투어리스트 고 홈’이라고 길바닥에 써 있는 거야. 우리 앞에 가는 이들은 여행이라는 흥분에 취해서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그 친구들은 달랐어. ‘음. 우리가 늘 환영 받는 존재는 아니군요. 동네 사람들이 관광객들 때문에 피해를 보는 모양인데 우리 목소리를 좀 낮출까요?’ 라고 하더라고.
잠깐 살다가는 여행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이곳에 살다가는 이들이라는 게 느껴졌달까? 그 커플은 도시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여행자가 아니라 새로 이사 온 동네를 찾아온 것 같대. 그러니 그냥 쓱 지나갈 ‘보른지구’ 사람들의 애절한 호소 같은 것들이 눈에 밟히는 거겠지. 자기 시간하고 돈 내서 가는 여행에서 그런 수고까지 해야 하냐고 되물었더니 여행이라는 게 결국 다른 이들이 사는 곳에 잠깐 들리는 거 아니냐고 하더군. 짧은 여행은 현지인들의 룰을 확인할 시간도 없고 또 그들을 배려할 여유가 없다는 거야. 누군가의 일상을 흔들었으면 양해를 구해야 할 판인데 우리는 그러지 못한다고.
어떻게 이런 손님을 받았냐고? 첫 연락할 때 느낌이 쎄하면 마지막까지 힘들더라고. 그런데 이 커플은 처음부터 느낌이 좋았어. 예약 문의로 자신들이 어떤 여행을 하고 싶은지, 우리 집에 와서 머물러도 되는지 물어 오더라니까. 왜 있잖아. 돈 낼 거니까 열쇠 달라는 사람들. 그런 이들하고는 완전히 달랐어. 마치 오래 전에 연락이 끊겼던 친구가 ‘너희 도시로 여행을 가는데 잠깐 묵을 수 있을까?’하는 것 같았어. 내가 맞이한 손님 중에 이렇게 이 도시를 존중하는 이들이 있었던가 생각이 들었는데 그 사람들 가고 나니까 확실히 알겠더라고. 난 여행자를 받은 게 아니라 잠시 친구에게 방을 내어준 거 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