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 24시, 역시 낚시 천국답다
대마도 24시, 역시 낚시 천국답다
  • 글 사진 김지민
  • 승인 2019.03.19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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벵에돔, 참돔 등 다양한 어종 풍성

최근 TV 프로그램 <도시어부>를 통해서 대마도가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 하지만 낚시인들에게 대마도는 이미 오래전부터 유명했다. ‘낚시 민박’을 이곳에서는 ‘쯔리 민숙’이라 부르는데 한 마디로 낚시인을 위한 숙박업소다. 대마도라 말이 안 통할 것 같지만, 실제로 쯔리 민숙을 운영하는 절반 이상은 한국인이다. 여기에는 우연히 대마도 낚시를 접했다가 풍부한 어자원과 천혜의 경관에 홀딱 반해 아예 자릴 잡은 사람도 있고, 이미 낚시계에서 정평 난 유명 프로 낚시인이 시설을 사들이거나 인수해 운영하는 경우도 적잖다.

포인트까지 다소 험난했던 도보권 갯바위.

현지인 낚시꾼의 숭어 잡이.
현지인 낚시꾼의 숭어 잡이.

대마도에서는 2박 3일 또는 3박 4일 패키지 낚시가 유행이다. 비용은 3박 4일 기준 70만 원가량하는데 여기에는 3일간의 숙박 및 숙식, 그리고 부산 대마도 왕복 여객선과 갯바위 포인트로 실어 나르는 유서선 비용이 포함된다.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머무르는 기간 내에 사용했던 밑밥, 미끼, 추가로 선상낚시를 할 경우 비용이 발생된다. 때문에 서울에서 KTX를 타고 부산 국제여객선 터미널로 와야 하는 나 같은 서울, 수도권 꾼들에게는 3박 4일 일정에 대략 100만원 정도가 드는 것이다. 이 가격이 일반 사람들에게는 다소 비싸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대마도의 풍부한 어자원을 바탕으로 손맛을 톡톡히 본 꾼들은 그 비용이 아깝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잡은 고기는 모두 횟감용(선어)으로 반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부가적인 이득도 있다.

반대로 거금을 들여서 갔는데 기상 악화로 인해 혹은 낚시 실력과 준비 부족으로 인하여 빈작을 면치 못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예전에는 낚싯대를 담그기만 하면 대물이 퍽퍽 물리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아무래도 수온의 변화라든지, 출조객 증가로 ‘이제는 이 판도 레드오션’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어쨌든 이번 호에 소개할 내용은 그래도 대마도 하면 먹고 자고 낚시하는 평범한(?) 일과가 아닐까 싶다. 거의 모든 낚시인들에게는 로망이나 다름없는, 그러나 긴박했던 24시간을 전하고 싶다.

이날은 오후 늦게 포인트로 들어갔다. 해가 지고 나면 그때부터 대물들이 갯바위 주변으로 어슬렁어슬렁 들어오기 때문에 저녁 6시면 배로 철수해야 하는 갯바위 보다 도보로 들어갈 수 있는 포인트를 택했다. 다만, 대마도에서 동절기 낚시는 밤 9시부터 익일 새벽 6시까지 금지다. 때문에 우리의 철수 시간도 저녁 8시를 넘기지 않기로 했다. 느지막이 짐을 챙겨 현장에 도착. 중간에 이런 구간을 건너야 했고 무거운 낚시짐을 이고 자갈길을 200m나 걸어야 하는 일은 꽤 곤혹스럽다. 그냥 운동이라고 생각하자.

해넘이에 들어온 강력한 입질.
해넘이에 들어온 강력한 입질.

포인트에 도착하자 제법 근사한 갯바위가 펼쳐졌다. 뒤쪽은 주상절리가 연상되는 바위가 웅장하게 솟았다. 다들 낚시 준비는 안 하고 사진 찍기에 바쁘다. 낚시를 시작하는데 저 멀리 현지꾼이 숭어를 올리고 있었다. 우리의 목표는 숭어가 아닌 벵에돔이다. 대마도 서쪽 해안이라 수심이 낮을 것은 예상했지만 막상 던져보니 얕은 곳은 3m도 채 안 되는 것 같았다. 사실 이때만 해도 으레 벵에돔이 잡히겠지 싶었다. 그 예상이 맞았는지 시작할 때는 어른 손바닥보다 약간 큰 벵에돔이 몇 마리 잡혔다. 시간은 오후 5시. 이때 일행에게 우당탕하는 입질이 들어왔다. 낚싯대 휨새를 보니 보통 녀석이 아니다.

초반에 힘이 워낙 강해서 어르고 달랠 틈이 없다. 3월 수온으로 보아 방어나 부시리일 확률도 낮다. 예상되는 것은 참돔. 그런데 원래 참돔이 저렇게 힘이 센가? 힘으로는 제압하기 힘든 녀석임을 직감한 일행은 급기야 녀석이 째는 곳으로 따라갔다. 한동안 ‘찌이익‘ 소리가 나며 드랙이 풀렸고, 잠잠해질 즈음 열심히 감았다. 감으면 찌익 소릴 내며 달아나고, 힘이 좀 빠졌다 싶으면 감기를 반복하자 녀석도 지쳤는지 슬슬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디 보자. 참돔인가?

가격을 매길 수 없는 자연산 돌돔회.
가격을 매길 수 없는 자연산 돌돔회.

녀석은 참돔도 감성돔도 아닌 청돔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 서귀포 일대에서나 가끔 잡히던 녀석이다. 일본에서는 헤다이(ヘダイ)라 불리는데 참돔보다 어획량이 적고, 살은 참돔보다 더 단단하고 맛이 좋은 어종으로 여긴다. 일행의 말로는 초반에 째는 힘이 참돔보다 더 세단다. 채비가 튼튼하지 않으면, 녀석이 가는 방향으로 따라다니며 힘을 빼는 수밖에 없다. 이어서 다른 일행이 비슷한 크기의 청돔을 잡아내더니 급기야 55cm급 참돔까지 잡아낸다. 사실은 1.5호대를 가지고 왔는데 채비하던 중 초릿대를 부러트리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예비로 챙긴 1호대를 쓴 것이다. 이 낚싯대가 또 국산 제품인데 얼마나 투박하고 질기면, 60cm에 달하는 청돔을 걸고 버텼을까? 이런 걸 보면 우리나라 낚싯대도 꽤 많이 발전했다.

이제 해가 완전히 지고 어둠이 깔릴 무렵, 드디어 내게도 강력한 입질이 들어왔다. 나는 가까운 곳보다 20m 정도 멀리 던졌는데 그 부근에 간출여가 솟아 있어 찌를 근처로 바짝 붙여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거기서 입질이 들어왔는데 낚싯줄을 우악스럽게 가져간다. 줄이 광속으로 풀리자 순간 베일을 닫으면서 챔질! 와 이번 녀석은 청돔과 달리 옆으로 째지 않고 밑으로 처박는다. 밑이라고 해봐야 수심 3~4m 정도라 자칫 방심했다간 낚싯줄 쓸리고 놓치기 십상이다. 적어도 벵에돔은 아니란 생각에 LB 브레이크를 살짝살짝 주면서 버티자 녀석도 힘이 빠졌는지 천천히 끌려온다. 그 와중에도 지구력이 좋은 지 연신 힘을 쓰는 바람에 발 앞에서 첨벙거리는 상태로 30초는 더 버틴 것 같다.

오징어류 중 가장 맛이 좋다는 화살오징어.
오징어류 중 가장 맛이 좋다는 화살오징어.

겨우 둘이서 끌어내 보니 60cm에 조금 못 미치는 참돔이다. 너무 신이 나서 이 녀석을 한 손에 가까스로 들고 다른 한손으로 휴대폰을 억지로 잡아 사진을 찍는데 순간 ‘철퍼덕’ 단 한 번의 몸부림으로 녀석은 자유를 얻었다. 세상에 사용한 바늘을 보니 긴꼬리벵에돔 전용바늘이었네?(미늘이 없는 바늘이다) 이러니 손쉽게 빠질 수밖에. 완벽한 나의 실수다. 철수 시각이 얼마 남지 않아 마음이 급하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다시 바늘을 묶고 크릴을 꿰어 던졌다. 그랬더니 30초 만에 거짓말 같은 입질이 들어온다. 챔질 하자마자 낚싯대를 세우는데 우와 세워지지가 않는다. 급한 마음에 LB 브레이크를 주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으며 낚싯대를 세웠다. 그러나 엄청난 힘이 내 팔을 짓눌렀다. 좀 전에 낚은 참돔보다 세다. 이거 이길 수 있을까? 수심이 3m밖에 나오지 않아서 더는 처박을 수 없게 되자 녀석은 오른쪽으로 쨌다가 왼쪽으로 쨌다가 난리도 아니다. 여기서 무리하게 당기면 가차 없이(낚싯줄이) 터진다. ‘다 된 밥에 재 뿌린다’는 속담이 딱 이거다. 게다가 사용 중인 원줄이 1.5호라 불안함은 더했다. 그렇게 녀석과 밤바다에서 옥신각신한 끝에 겨우 올린 이 녀석. 헤드렌턴을 비추자 선홍빛이 화사한 바다의 여왕이다.

한편, 저만치에서 낚시하던 일행도 뭔가를 걸고 힘겹게 파이팅 중이다. 올려보니 방금 내가 잡은 참돔을 올렸다. 사실 유료낚시터를 위주로 다니다가 자연산 참돔을 잡아내니 기분이 얼떨떨한가보다.

“저 초짜고 여긴 처음인데 이런 거 막 잡아도 괜찮은가요?”

난생처음 잡아보는 빅 사이즈 참돔에 어리둥절한 일행이 남긴 명언이다. 숙소로 복귀하던 중 도로변에서 사슴 무리를 만났다. 노루 아니고 사슴이라는데 대마도에서는 흔하다고 한다. 사슴들이 도로 한복판에 꼼짝 않고 서 있는 건 우리가 불빛을 비추어서 그렇단다.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어두컴컴한 숲속에 불을 비추면 수십 마리가 눈에서 레이저를 쏘고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불을 비추는데 숲속에서 우릴 지켜보는 광선이 한둘이 아니다. 순간 살짝 소름이 끼쳤다.

국내에선 보기 드문 입술무늬갑오징어.
국내에선 보기 드문 입술무늬갑오징어.

철수하고 숙소로 돌아오는데 몹시 시장하다. 낚시하는데 에너지를 다 써서 그런 걸까? 그렇다면 보양식을 먹어야지. 여긴 보양식 천지인데 마침 전날 잡아두었던 돌돔을 꺼내 먹을 참이었다. 그래 봐야 물고기일 뿐인데 온갖 화려한 수식어는 다 갖다 붙게 된 돌돔. 대표적으로 ‘갯바위의 폭군’, ‘횟감의 황제’ 등이 있다. 횟집만 다녔다면 줄돔으로 알 텐데 그러면 돌돔이 서운할 것이다. 줄돔은 양식으로 길러진 어린 돌돔을 말한다. 사료 먹고 자란 돌돔과 야생에서 포식자의 눈길을 피해 전복이나 소라, 성게 따위를 먹어치우며 자란 돌돔과 어디 비교가 될까? 그나저나 겨울의 끝자락에서 맛보는 돌돔회는 처음이다. 지금까지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 맛보았지만, 봄으로 넘어가는 환절기라 이제껏 알던 맛과 얼마나 차이 나는지도 궁금했다. 아직은 산란기에 들지 않은 암컷 돌돔이라 맛은 있다. 이 맛은 5월부터 빠지게 될 듯하다.

식감은 두말할 나위 없이 탄탄하다. 그렇다고 계속 씹어도 입에 남는 질김은 없다. 적당히 씹으면 스르륵 넘어갔는데 씹을 때 그 사각거리는 식감이 과연 돌돔답구나 싶다. 저녁을 먹고 샤워를 하면 9~10시인데 잠이 안 온다. 일행과 맥주 한잔 할까 싶은데 안주가 없네? 해서 낚싯대 하나 들고 민숙집 앞 선착장에서 오징어 낚시를 하는데 와 눈앞에 아이 몸집만한 대포한치가 어슬렁거린다. 그거 잡겠다고 열심히 흔들어 봤으나 내게 잡힌 것은 화살오징어. 작아도 맛은 최고인 한치 종류다.

그렇게 우린 마지막 날을 맞이했다. 새벽에 일어나 3시간 정도 짬낚시를 마친 나는 이제 짐을 싸고 돌아갈 준비를 해야 했다. 선착장에 돌아오자 웬 괴물이? 다른 팀이 밤낚시로 잡은 닭새우란다. 일본에서는 이세에비라 부르고, 영어권에서는 크레이피시라고 한다. 언뜻 보면 랍스터 같지만, 이 녀석은 랍스터와 달리 집게발이 없다. 이 닭새우는 세 마리를 잡았다는데 그중 한 마리는 밤중에 삶아먹었다고 한다. 몸길이는 30cm를 넘어섰고 무게도 1kg는 훌쩍 것으로 보이는데 이 정도면 일본에서 거래되는 가격이 600g에 1만엔(한화 10만 원) 정도 한다. 그것도 죽었거나 자숙한 것이고, 이렇게 살아있는 닭새우는 부르는 게 값일 듯하다.

우리 팀이 수일에 걸쳐 잡은 벵에돔 조황.
우리 팀이 수일에 걸쳐 잡은 벵에돔 조황.

어창에는 그간 잡아 놓은 물고기들이 수두룩하다. 지금부터 손질해야 하는데 이 작업이 대마도 여정 중 가장 귀찮고 힘든 일이다. 셋이서 철저한 분업화로 겨우 손질을 마쳤다. 손질과 세척을 마치면 사진과 같이 올려 두어 물기를 털어야 한다. 이를 세 박스로 나누어 담아 각자 한 박스씩 집에 가져갔다. 이 많은 경비를 들여 대마도까지 왔는데 이 정도는 잡아야 체면 좀 살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풍부한 어자원과 천혜의 자연 경관을 이루는 대마도.
풍부한 어자원과 천혜의 자연 경관을 이루는 대마도.

이렇게 잡은 고기는 2일까지 냉장 보관해 회와 초밥, 회무침으로 먹고, 나머지는 소분해 반찬감으로 쓴다. 하나씩 꺼내 먹을 때면 이때의 일이 절로 생각나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열심히 일해서 또다시 가게 되는 꿈을 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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