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고니아를 빌려드립니다
파타고니아를 빌려드립니다
  • 글 사진 백종민
  • 승인 2019.02.18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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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겁의 시간 속으로
크레바스의 위험성 및 자연 보호 때문에 빙하 투어는 전문 가이드 동행이 필요하다.
크레바스의 위험성 및 자연 보호 때문에 빙하 투어는 전문 가이드 동행이 필요하다.

장비 대여점의 내막
텐트를 빌려주는 일이 이렇게 장사가 잘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처음에 내가 가게를 열 때만 해도 동네 사람들이 피식 웃더란 말이지. 물론 확신이 있어서 시작한 건 아니야. 다들 큰 배낭에 장비들을 잔뜩 담아오니 내가 설 자리가 있겠어? 그런데 생각해 보라고. 남미에 오는 여행객이 파타고니아 트레킹만 생각하는 건 아니잖아. 마추픽추에 온 사람들이 우유니 소금 사막도 가고 싶고 이구아수 폭포도 보고 싶어 하더라고. 그걸 어떻게 아냐고? 내가 가이드로 꽤 오래 일해 봤잖아. 그 때 만났던 사람들이 하는 말이 그래. 이 멀리까지 왔는데 가능한 많이 보고 싶다고. 그런데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만큼은 쉽게 결정을 못 내리더란 말이지. 며칠 트레킹하자고 여기서 텐트를 사자니 돈이 아깝고 그렇다고 롯지에서 머물자니 예약하기가 쉽지 않고. 누가 텐트 좀 빌려주면 좋겠다고 하기에 내가 시작했던 거야. 가이드 일이라는 게 늘 있는 건 아니니 부업으로도 괜찮고 말이야.

외계인이 지구인들 눈을 피해 추락한 우주선을 숨기기에 딱 알맞은 곳이래. 틀린 말은 아니지. 인간이 접근할 수 있는 길을 벗어나면 한 번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비밀스러운 곳이니까. 전기도 안 들어오고, 인터넷도 없는 그 길에서 며칠을 보내고 온 모두가 황홀한 경험이라는 거야. 얼마나 좋았는지 다음에 또 오겠다는 말을 잊지 않아. 이번에는 W코스와 토레스 봉우리만 다녀왔는데 나중에는 꼭 일주 코스를 돌 거라면서 말이야. 그나저나 W코스 란 이름은 누가 붙인 거지? 지도 위 글자 모양만 보면 사실 누운 E잖아?

길가에 핀 작은 들꽃과 풀들이 무거운 발걸음을 움직일 힘이 되어준다.
W코스에 위치한 로스 쿠에르노스Los Cuernos 산장.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내에서 규모가 큰 편이며 간단한 식사와 샤워를 할 수 있다.

길가에 핀 작은 들꽃과 풀들이 무거운 발걸음을 움직일 힘이 되어준다.
길가에 핀 작은 들꽃과 풀들이 무거운 발걸음을 움직일 힘이 되어준다.

파타고니아의 뜻이 뭐냐 하면
참. 자네 파타고니아가 무슨 뜻인 줄 아나? 등산복 브랜드가 아니라고! 대항해 시대에 마젤란이라는 양반이 원정대와 함께 배를 타고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넘어가는 길을 찾았어. 그 때 지났던 바닷길이 마젤란 해협이야. 뱃길을 찾느라고 육지에 내려 몇 달을 보냈는데 그 때 원주민들의 만났대. 원정대 말을 빌리자면 ‘거인처럼 키가 큰 사람’이라고 했는데 그게 누군지는 확실치 않아. 뭐, 이 곳 원주민들 발이 크다고는 하는데 실제로 키도 컸던 건지 아니면 발자국 흔적을 보고 그렇게 믿었던 건지 알 수 없지. 아니면 자신들의 무용담을 과장하고 싶어서 사실을 부풀렸거나. 누가 진실을 알겠나. 그 옛날 일을 말이야.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트레킹의 백미는 토레스 삼봉이다. 체력은 물론 날씨 운도 따라야 세 개의 봉우리를 모두 볼 수 있다.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트레킹의 백미는 토레스 삼봉이다. 체력은 물론 날씨 운도 따라야 세 개의 봉우리를 모두 볼 수 있다.

아무튼 마젤란은 원주민들을 ‘파타곤Patagon’이라 기록했고 그들의 땅이라는 의미로 이 지역이 ‘파타고니아Patagonia’라고 불리게 된 거지. 파타고니아가 어느 나라냐고? 이 사람 참. 남미 대륙의 크기만큼 생각의 폭도 좀 넓혀 보라고. 파타고니아는 한 나라나 행정 단위 상 지역을 뜻하는 게 아니야. 남위 약 38도 이남 지역을 통칭한다고. 워낙 넓은 땅이니 칠레와 아르헨티나 두 나라 모두에 속하는 거지. 빙하도 있고 사막, 초원도 모두 볼 수 있는 지역이 바로 파타고니아라네. 시베리아라고 불리는 지역이 러시아 땅이긴 하지만 유럽부터 아시아 끝까지 걸쳐 있다는 걸 생각해 보게. 이러면 이해가 되나?

아이고. 저 놈들은 이스라엘에서 왔군. 딱 봐도 군복무 끝나고 받은 돈으로 몰려나온 폼이잖아. 군 생활하면서 야영이며, 훈련이며 질리도록 했을 텐데 뭐가 좋아서 또 야생으로 들어가는 걸까? 나라면 돈 줘도 안 할 텐데 말이야. 그나저나 저 놈들 또 공원에다 불 지르는 거 아냐? 한국에서도 외국인들이 산에 불을 지른 적이 있나? 난 이스라엘 놈들한테는 이 장비들 안 빌려 준다고. 법으로 이스라엘 여권 든 놈들은 공원 출입 자체를 막아야 해. 무슨 사연이냐고? 몇 년 전, 이스라엘 트레커가 화기火器 사용이 제한된 국립공원 안에서 담뱃불을 붙이려다 불을 냈다고. 프렌치 벨리 French Valley를 비롯한 국립공원 일부가 몇 날 며칠 타 올랐단 말일세. 그 큰 불을 내놓고 칠레 법원은 고작 벌금형으로 끝내고 말았으니 나라도 그 놈들을 막아 세울 수밖에.

파타고니아는 늘 강한 바람이 불어 바람의 방향대로 나무의 가지가 자란다.
파타고니아는 늘 강한 바람이 불어 바람의 방향대로 나무의 가지가 자란다.

전망대에서 빙하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들을 수 있다. 빙하 전망대인 ‘페닌술라 데 마가야네스Península de Magallanes’.
전망대에서 빙하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들을 수 있다. 빙하 전망대인 ‘페닌술라 데 마가야네스Península de Magallanes’.

영겁의 시간, 빙하
이곳에 사니까 공원에 자주 갈 거라고 생각하지 말게나. 내 다리를 봐서 알겠지만 사실 난 오래 걷지를 못하거든. 사고가 난 뒤, 가이드 일을 그만 두고 텐트 빌려주는 가게에 전념하는 이유기도 하지. 그렇다고 여행객들만 그 좋은 풍경을 보게 할 순 없지. 트레킹을 하지 않고도 멋진 파노라마를 볼 수 있는 곳이 있거든. 차를 타고 국경을 넘어서 아르헨티나 엘칼라파테El Calafate에 가면 돼. 병풍처럼 펼쳐진 ‘페리토 모레노 빙하Perito Moreno Glacier’를 감상하고 있노라면 빙벽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고. 우르르 쾅쾅. 천지가 부서진다면 꼭 그런 소리가 날 것 같은 거대한 폭음이야. 마치 불꽃놀이에 사용할 모든 화약을 한꺼번에 터트리는 굉음이랄까. 이 소리를 기다리려면 상당히 추울 테니 옷도 좀 든든히 입어야 할 거야. 참, 내 가게에서 등산복하고 따뜻한 방한화도 빌려준다고 말했던가?

난 다리 때문에 못해 봤지만 빙하 투어도 꽤 흥미로운 모양이야. 이름이 뭐라더라. 빅아이스? 거대한 빙하 위를 걷는 거니 제법 괜찮은 작명 이구만. 아이젠을 신고 오른 뒤 빙하 위를 반나절 동안 움직이고 그 끝에는 빙하 조각을 담근 ‘온더록‘을 마시며 얼은 몸을 덥힌다 더군. 걷는 건 싫지만 빙하 위로 흘러내리는 위스키를 생각한다면 한 번쯤 해보고 싶구만.

엘칼라파테 국제공항은 빙하 호수인 아르헨티노 호숫가에 자리하고 있다.
엘칼라파테 국제공항은 빙하 호수인 아르헨티노 호숫가에 자리하고 있다.

마젤란 펭귄의 생태 환경을 코 앞에서 관찰할 수 있는 칠레 막달레나 섬.
마젤란 펭귄의 생태 환경을 코 앞에서 관찰할 수 있는 칠레 막달레나 섬.

펭귄이 주인인 섬
귀여운 펭귄이 섬의 주인인 풍경을 본 적 있나? 시간이 된다면 푼타 아레나스에 있는 펭귄 섬도 한 번 가보라고. 거기도 파타고니아인데 아까 얘기한 마젤란 해협에 있는 섬이기도 하지. 하지만 아무 때나 가지 못해. 딱 산란기가 끝난 뒤인 11월부터 3월 사이 몇 개월이야. 자네 앞에 놓인 행운을 무시할 텐가? 원한다면 트레킹 다녀오는 사이 내가 푼타 아레나스 가는 버스표를 사다 주겠네. 지금 터미널 가서 사겠다고? 이 사람! 누가 들으면 내가 표 팔려고 수작 부리는 줄 알겠네. 아직 남미의 버스 시스템에 익숙지 않은 게로군. 터미널에서는 거기 가는 버스가 없어. 여긴 버스 회사가 직접 티켓을 팔고 정류장을 운영 한단 말일세. 저 위에 터미널은 고작 국립공원 가는 표나 국경을 넘는 버스 티켓을 살 수 있다고.

일찍 잠자리에 들고 푹 자 두라고. 앞으로 며칠 동안 오늘 침대보다 편안한 잠자리는 없을 테니까. 참, 트레킹 다녀온 사람들이랑 한 방에 머물게 된다면 꼭 귀마개를 챙기시게. 얼마나 고된 길인지 옆 침대에서 코고는 소리로 확인하게 될 거야. 자, 여기 있네. 배낭 안에 매트리스, 침낭, 코펠, 버너 그리고 텐트까지 다 넣었네. 가스는 요 앞 마트에 가면 살 수 있다네. 우리 가게에서 파는 건 품질이 좋긴 한데 한국산이라 좀 비싸. 그래도 살 텐가?

마젤란 펭귄 서식지를 방문하면 섬 제일 높은 곳에 있는 등대까지 다녀올 수 있다.
마젤란 펭귄 서식지를 방문하면 섬 제일 높은 곳에 있는 등대까지 다녀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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