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진 선장의 대항해시대3
김승진 선장의 대항해시대3
  • 글 사진 김승진
  • 승인 2018.10.0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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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칼리아리~스페인 이비자

신이 처음으로 지상에 발자취를 남긴 곳이란 이름의 사르데냐. 주도 칼리아리 해변에는 높게 자란 피닉스팜과 워싱터니아팜나무가 줄지어 서있다. 열대지역인 줄 착각하게 만드는 북위 39도의 비상식적 풍경과 해안은 온통 요트로 빼곡하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장수지역 이지만 이곳 사람들은 오랜 세월 척박하게 살아왔다. 제주도 면적의 열 세배나 되는 큰 섬 한 구석에 우리의 발자취를 남긴다.

헤어짐과 만남
북위 39도15분, 동경 09도10분, 멀리 아침햇살을 받은 칼리아리의 빌딩들이 명확히 보이기 시작한다. 다가오는 문명은 4일 동안 바다에 떠있던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입항 준비를 마치고 돛을 접은 대한민국의 요트 세척이 유난히 긴 방파제를 돌아 항구로 들어선다. 내가 조종하는 타노아호가 앞장서고 있지만 넓은 항구의 어디로 가야할지 몰랐다. 우선 바늘(요트의 돛대를 멀리서보면 바늘처럼 보이는데서 발생한 은어)을 찾았다. 바늘이 많이 있는 곳이 마리나인데 이곳은 온통 바늘 천지다. 비지터 폰툰(임시 정박장, 방문한 요트가 수속하는 동안 잠시 접안할 수 있게 마련한 시설)인 듯 한 빈 선착장을 찾아 타노아를 접안하여 로프를 묶고 있는데 고무보트를 타고 관리인 한 사람이 다가온다.

“여기가 아니에요. 따라와요!”

“우리 세 척인데 빈곳 있어요?”

“얼마나 머물거죠?”

“대략 5일 정도.”

친절한 젊은이의 안내로 정박한 마리나는 ‘세인트 알모 마리나’다.

타노아호, 라르고호, 아라파니2호 순으로 정박을 마친 우리는 첫 재회의 기쁨을 나눈다. 한 사람씩 꼭 끌어안으며 토닥거린다. 해상에서의 만남은 매우 긴 시간이 필요했다. 어제 밤 해상에서 모습을 본 이후 포옹할 때 까지 10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런데 만나자 이별이다.

이곳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명진이, 재원이, 물길이, 미현이는 배낭을 지고 모두에게 작별인사를 한다.

“안녕히 계세요. 즐거운 항해하시구요.”

물길이가 작업을 마치고 뒤늦게 나온 허태완 팀장을 포옹하며 인사를 하자 그의 표정은 아쉬움으로 가득하다. 여인들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폭풍을 헤치고 달려온 총각의 허탈함과 실망감이 지켜보는 모두에게 전달된다.

“벌써 가시는 거예요?”

“네. 비행기 시간 때문에….”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그를 향해 빈정거렸다.

“어떡하냐~? 열흘을 고생하며 예쁜이들 보려고 달려왔는데…흐흐.”

굳어있는 허팀장을 뒤로하고 그들은 싸늘하게 떠났다.

2017년 뉴이어 파티
지중해 한복판에서 불어오는 따사로운 바람은 한겨울임을 잊게 한다. 마리나 관리인으로부터 오늘저녁 시내에서 큰 파티가 있을 것이란 이야기를 들었다. 기대감에 부푼 우리는 해질 무렵 모두모여 시내 중심가로 나갔다. 어둠속에 조명을 받고 있는 옛 건축물들이 아름답다. 거리 곳곳엔 임시로 마련된 야외테이블이 줄지어 설치되어있고 술잔을 손에든 사람들이 북적인다. 우리도 합류했다. 주문을 하려하자 메뉴는 피자와 맥주. 무척 간단하다. 게다가 맥주잔도 일회용 플라스틱이다. 메뉴의 조촐함에 약간 놀라긴 했지만 막 육지에 오른 우리의 기분을 깰 정도는 아니다. 흥에 겨워 오가는 수다 속으로 박주용 선장의 낮은 목소리가 날아든다.

“김선장님 고맙습니다. 덕분에 이런 구경도하네요”

평소에 이런 표현을 잘 안하는 박선장님의 행복해하는 모습에 마음이 흐뭇해진다. 그 무렵 오늘의 절정인 신년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광장 군중 속으로 들어갔다.

“세븐… 쓰리 투 원 제로~ 해피 뉴이어!”

사람들의 환호와 커다란 폭죽 소리가 온 도시에 진동한다. 주변에 있는 아무하고나 끌어안고 볼에 입 맞추며 신년인사를 한다. 서양인들의 이런 풍습은 어색하지 않았다. 멋진 폭죽을 기대하며 밤하늘을 살폈지만 안 보인다. 폭발음이 들릴 때 마다 고개를 돌려보았지만 역시 화려함은 없다. 그런데 곳곳에서 들리는 병 깨지는 소리가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인파속에 폭음탄을 던져 터트리고 깔깔거리며 술병을 깬다. 카페에서 맥주잔을 오늘만 플라스틱으로 내주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익숙하지 않은 신년파티에 크루들에게 개인행동을 삼가 할 것을 권유했다. 그래도 허팀장은 여성 그룹을 보면 달려가 말을 걸고 농담을 즐긴다. 이렇게 우리는 2017년의 조금 특별한 새해를 맞이했다.

새로운 크루들
떠나간 네 명의 자리를 메꾸듯 새로운 멤버 네 명이 칼리아리로 왔다. 방학 기간을 활용해 참여한 김영아 선생과 송인화 선생, 그의 부인 박유진 씨 그리고 은행원 강승진 씨가 합류했다. 새로운 크루들이 칼리아리와 사르데냐를 관광하며 즐기는 동안 나머지 고참들은 다음 항해를 위한 준비로 바빴다.

메시나 출항 당시 고장 난 오토 파일럿(자동항해장비)은 합류한 크루들이 한국에서 가져다 준 예비부품으로 교체했다. 구입한 레이더는 하루 작업으로 설치를 끝냈다. 외국인들은 우리의 이런 작업 속도를 보고 놀라워한다. 외국 기술자에게 부탁하면 이틀에서 심하면 2주일 정도로 오래 걸린다. 게다가 설치비를 시간당으로 계산하면 머리에 쥐난다.

결전의 준비
마리나 부근의 낚시점에 진열된 황금색 커다란 릴이 눈을 사로잡는다. 수년전 태평양 횡단을 할 때의 일이다. 낚싯대에 커다란 청새치(블루마린)가 걸렸다. 한없이 풀려나가던 낚싯줄이 멈추더니 미끼를 문 청새치가 수면 위로 뛰어올라 몸을 털며 바늘을 빼려 한다. 그 모습이 가슴 벅차게 화려했다. 환호하며 비장한 마음으로 긴 싸움을 다짐 했으나 400m의 낚싯줄이 한순간에 모두 풀려 툭하고 끊어진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걸기는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도미 낚시 하던 작은 채비로는 역부족이었다. 당시의 전율과 허탈함은 도전심을 부추기기에 충분했다.

이번에도 같은 길을 간다. 기필코 승리할 것을 다짐하며 참치용 낚싯대와 릴의 흥정을 시작했다. 낚싯대 릴 줄 값을 더해보니 한화 200만 원을 웃도는 고가다. 실망한 표정을 하자 눈치 빠른 이탈리아인 상점주인은 자신이 직접 조립해놓은 저렴한 세트상품을 권한다. 전시된 사진만 보아도 조사로서 연륜이 있어 보이는 주인장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조립했다며 설명한다.

“나이론 줄과 합사를 연결한 부분 보세요. 특수 매듭으로 절대 안 끊어집니다. 내가 쓰려고 만들었어요.”

“흰색 라인은 뭐죠?”

“랜딩(배에 올리기) 직전 막바지싸움에 안 끊어지도록 튼튼한 합사로 20m 가량 연결해 놓았지요.”

정성스레 만들어진 세트가격은 900유로(약 117만 원)로 사정권에 가까워진다. 첫날은 여기까지, 한발 물러선 나는 4일 동안 매일 흥정을 이어가 마지막엔 현금으로 650유로(약 85만 원)에 구입하는데 성공했다. 검정색 낚싯대에 금빛 번쩍이는 릴이 눈부시다. 수평선 위로 뛰어오르는 참치의 모습을 상상하며 미소를 감출 수 없다.

이 흥정이 조금 특별했던지 낚시점 주인에게 추억이 된 것 같다. 그로부터 삼년 후인 올해 허팀장이 낚시점을 다시 방문했을 때 자신을 알아보지 못해 콧수염을 설명하자 “아~ 미스터킴” 하며 나를 기억하더란다.

일주일이 훌쩍 지나고 어느덧 떠나야할 시간, 사르데냐를 다시 올 이유가 생겼다. 요트수리와 항해 준비로 바빠 섬을 구경할 여유가 없었다. 사르데냐 관광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돛을 올렸다. 아라파니와 함께 갈 수 있어 지금까지의 항해보다 한결 마음이 가볍다. 다음 기항지는 스페인의 발렌시아다. 칼리아리만을 빠져나와 서쪽으로 방향을 잡은 세척의 요트가 노을을 향하자 모두의 얼굴이 붉게 물든다.

“선장님 이비자섬 들리실 거예요?“

“글쎄… 속도가 빨라 시간 여유가 되면 들릴 수도 있지!”

“정말요? 거기 특이한 클럽이 무척 많데요. 흐흐 신난다.”

“바람에게 부탁해봐! 흐흐”

처음엔 다 그래
환호하며 좋아하는 젊은 크루들의 흥겨움은 여기까지다. 파도가 높아지며 새로 합류한 크루들이 하나 둘 쓰러진다. 적응이 늦는 주PD도 쓰러진다. 육지에 갈 수 없다는 절박함을 담은 괴성이 밤바다에 울려 퍼진다.

“살려 주세요!”

“괜찮아요? 하하하…”

기분이 이해는 되지만 웃음은 참을 수가 없었다. 처음 접하는 밤바다가 얼마나 무서웠을까? 게다가 멀미까지 심하니 많이 두려웠을 것이다. 새내기들의 길고 공포스러운 첫 야간항해, 이들의 빠른 적응을 기대해본다.

한밤중 쪽잠을 자던 나는 말소리에 잠이 깼다. 불침번을 서던 허팀장이 메스꺼워하는 강승진씨의 등을 어루만지며 위로의 말을 건넨다.

“아이고 힘드시죠? 물로 입가심 좀 하세요. 어떡하냐… 조금만 견디면 좋아질 거에요.”

선실 안에 누워서 듣고 있던 나는 알 수 있었다. 위로가 반 빈정거림이 반 이란 것을. 그리고 살짝 거들어 주었다.

“태완아, 풍하 쪽으로 안내해라!”

“네 선장님! 자, 자, 이쪽으로 가시죠. 바람을 등져야 이물질이 배에 안 묻거든요. 선장님께서 배가 지저분해 지는 걸 싫어하셔서….”

신참들은 괴로워하고 고참들은 키득거리며 지중해의 밤이 깊어간다. 어느새 아라파니 2호와 라르고호의 항해등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스쳐지나간 이비자
삼일 후 스페인의 팔마섬 가까운 곳에서 아라파니의 위치를 확인하니 약 30마일(약 56km, 약 6시간 거리) 뒤쪽에 있었다. 팔마 남서쪽에 위치한 포르탈 벨스Portal bells의 내만에서 아라파니를 기다리며 쉬어가기로 했다. 깊숙한 만에 들어서자 미리 자리한 몇 척의 요트가 정박해 있었다. 주변 언덕위의 창 넓은 모던한 디자인의 별장들과 파랗고 투명한 바닷물이 아름다운 풍경을 만든다. 먼저 자리 잡은 배와 배 사이에 닻을 내리고 선미의 플랫폼을 열었다. 하나 둘씩 겨울바다에 뛰어들어 수영을 즐긴다. 물은 짜릿할 정도로 차갑지만 모두들 소리를 지르며 즐거워한다. 깔깔거리며 물장난치는 유별난 행동과 펄럭이는 태극기가 지나치는 현지인의 눈길을 끌었나보다.

“한국에서 왔어요?”

“네.”

“그 먼 길을 항해해 왔어요? 와우 엄청나다. 존경합니다.”

“아니, 크로아티아에서 출발해서 한국으로 가는 중이예요.”

“그래도 판타~스틱! 굿럭!”

지금까지 8년간 요트로 지구촌 곳곳을 방문했지만 선미에 계양된 태극기를 보고 어느 나라 국기냐고 묻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외국항해를 하다보면 대한민국이 세계인들에게 잘 알려진 나라임을 실감할 수 있다.

수영을 즐기며 한참을 기다려도 마파람에 고생하는 아라파니 2호는 우리가 기다리는 곳까지 오지 못한다. 하는 수 없이 발렌시아에서 만나기로 위성 전화로 전달한 후 우리먼저 팔마섬을 출발한다. 다음날 밤 이비자섬 옆을 지나치게 됐지만 들릴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허팀장과 영아가 아쉬움을 개그로 승화시킨다.

“와아, 이비자는 등대도 클럽 조명처럼 번쩍이는데요! 어어 색깔도 변하네!”

“하하, 영혼이 소풍 갔구먼 제정신이 아니네….”

모두들 보고 또 보고 다시 뒤돌아본다. 이비자의 싸이키 등대(?)가 멀어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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