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춰버린 고대도시 요르단 페트라
시간이 멈춰버린 고대도시 요르단 페트라
  • 글 사진 이두용
  • 승인 2018.06.01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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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전환점이 된 시간들

5년 만에 피터에게서 연락이 왔다. 10여 년 전 요르단에 머물 때 나와 같이 살았던 호주 친구다. 그동안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고 한다. 여전히 요르단에 살고 있단다. 함께 살 때 몇 번을 같이 가자고 했던 페트라. 문득 못 갔던 게 생각나 수소문해서 나를 찾았다고 한다. 정말 반가웠다. 지금이라도 당장 요르단 페트라에 가고 싶어졌다.

페트라의 심장인 알카즈네는 한 장의 사진으로 신비로움을 극대화 시킨다.

처음 마주했던 신비의 세계
내가 요르단에 가게 된 이야기는 짧지 않다. 거기에 요르단과의 인연까지 더하면 이야기는 더 길어진다. 두꺼운 책 한 권으로 출간했었지만, 고작 하고 싶은 말은 5분의 1도 못 했다. 게다가 이후 요르단과의 인연도 계속 진행형이다.

낙타나 당나귀를 타고 돌아보는 프로그램도 많은데 가격은 흥정 가능.

오늘은 요르단의 국가 수입에 지대한 공헌을 하는 명소 페트라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것도 내가 경험한 이야기다. 10년을 두고 양손에 꼽을 만큼 여러 번 찾아갔던 곳, 비행기를 갈아타고 차를 여러 번 바꿔 타야 갈 수 있는 먼 땅이지만 우리나라에 있는 가까운 명소보다 더 많이 갔다. 그럼에도 여전히 신비하고 단정하지 못하는 곳이다.

페트라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불가사의’라는 단어의 정수라고 생각한다. 실제로도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손꼽힌다. 세계 여러 나라 많은 도시를 다녀봤지만, 페트라만큼 독특하고 매력적인 곳을 아직 가보지 못했다. 백문이 불여일견, “그 정도야?”하고 의심하던 사람도 일단 가보면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사람의 상식으로 역사와 규모를 가늠할 수 없는 도시다.

페트라는 기원전 6세기 아랍 민족인 ‘나바테아인’이 건설한 왕국이었다. 평평한 땅에 건물을 세우고 길을 낸 것이 아니라 한없이 펼쳐진 사암 언덕과 계곡을 조각해서 건물과 거리를 만들어 세운 나라다. 변변한 장비 하나 없던 수천 년 전 수백 미터 높이의 바위산을 깎아 건물의 모양을 만들고 내부를 파내서 실내를 설계했다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 그것도 밤엔 살을 에는 추위, 낮엔 40도가 넘는 사막 기후에서.

과거보다 상인과 호객꾼이 늘어난 모습. 그럼에도 고대 모습이다.

페트라 들머리를 지나면 양쪽으로 깎아지른 절벽 가운데 아래 길을 따라간다. 지각변동으로 생겨난 형형색색의 협곡 시크다. 굽이진 길을 따라 좌우에 높다랗게 이어진 협곡은 마치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으로 들어온 느낌을 준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면 협곡의 빗장이 풀리면서 페트라의 심장 알카즈네가 등장한다.

요르단을 찾는 관광객 중 대부분은 어딘가에서 마주친 알카즈네의 모습에 반해 실제로 보기 위해서 페트라까지 날아온다. 알카즈네는 지나치게 큰 기대를 품고 온 사람에게도 그 이상의 감동을 선물한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 왔든, 이곳까지 찾아온 수고가 헛되지 않았다는 걸 깨닫게 해준다.

거대한 절벽에 신이 빚어놓은 조각처럼, 처음 이 절벽이 생겨났을 때 원래 있었던 건축물처럼 과거 이곳에 살았던 나바테아인들은 기둥이나 벽을 세우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절벽을 깎아 바위를 정교하게 다듬고 파내어 알카즈네를 완성했다.

화려한 왕의 궁전처럼 보이는 알카즈네는 사실 나바테아인의 왕 아레타스 3Aretas Ⅲ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높이는 43m, 너비는 약 30m 규모로 2층 구조의 신전 형태를 보인 건축물이다.

방송 촬영은 분량이 나올 때까지 자연과 시간과 싸움을 한다.

방송 진행자로 페트라를 찾다
거대한 절벽에 신이 빚어놓은 조각처럼, 처음 이 절벽이 생겨났을 때 원래 있었던 건축물처럼 과거 이곳에 살았던 나바테아인Nabatea들은 기둥이나 벽을 세우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절벽을 깎아 바위를 정교하게 다듬고 파내어 알카즈네를 완성했다.

왕의 거대한 궁전처럼 보이는 알카즈네는 사실 나바테아인의 왕 아레타스 3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높이는 43m, 너비는 약 30m 규모로 2층 구조의 신전 형태를 보인 건축물이다.

요르단에서 살다가 한국에 돌아온 나는 여러 나라를 돌며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다음 해에 요르단에서 찍어온 사진들로 전시회를 열었다. 요르단 정부와 암만 시청, LG중동법인의 도움을 받았다. 그 계기로 이후에도 요르단을 여러 번 갔다.

수년이 지나 요르단에 관한 이야기를 책으로 출간하고 <세계테마기행>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연락이 왔다. 요르단 편을 찍고 싶다고 했다. 마다할 이유가 없어 함께 요르단으로 날아갔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한 달을 그곳에서 겪었다. 가장 소중하고 특별한 시간이 되기도 했다.

방송 촬영 중 만났던 아이들. 나를 신기해했다.

방송팀과 요르단 정부 가이드들과 페트라로 향하던 중 한 마을에서 잠시 쉬었다. 갑자기 카메라를 든 나를 보고 아이들이 모여든다. 처음에는 자신들과 다르게 생긴 내가 무서운지 근처도 못 오다가 용기 있는 녀석이 먼저 내 어깨를 손가락으로 콕 찍고 도망친다. 그러더니 아이들이 점점 모여들고 신기하게 생겼는지 와서 서로 내 몸을 만졌다.

아이들에게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보여주니 자신들도 해보고 싶다고 한다. 가장 덩치 큰 친구에게 카메라를 들고 셔터 누르는 법을 알려줬다. 그랬더니 목에 걸고 셔터를 여러 번 누른다. 웃고 있는 자신의 친구와 함께 뒤에 서 있는 내 모습이 흐릿하게 담겼다.

한 꼬마가 내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 흐릿하지만 내 모습도 밝다.

방송으로 찾았을 땐 일반인은 접근할 수 없는 미공개 지역을 여러 곳 다녔다. 아직 복원 중인 코스나 방치하고 있는 계곡, 페트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 등이다. 페트라도 거대한 관광지다 보니 입구 반대쪽에 마을을 세워 페트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머물게 했다.

방송이 고독한 이유는 특정 장면을 찍어야 하면 그 장면이 나올 때까지 밤이건, 낮이건 기다린다. 덕분에 사진을 찍는 난 요르단에서 날씨와 시간, 명암이 다른 페트라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촬영 마지막 날 방송팀 운전을 도와준 요르단 정부 차량 기사님과 사진을 찍었다. 한 달 가까이 다니면서 정도 들었지만 취직을 못 하는 큰아들 걱정이 많았던 터라 얘기를 많이 나눴다. 그런데 마지막 날 대반전. 나이를 물어봤더니 나와 태어난 연도가 똑같았다. 어르신처럼 깍듯하게 대했는데 우린 그날부터 친구가 되기로 했다.

다양한 시간과 날씨를 두고 페트라의 모습을 담을 수 있었다.

천년보다 큰 십 년의 변화들
가장 최근에 페트라를 찾은 건 3년 전 주한 요르단 대사관의 초청 때다. 한국의 신문, 잡지 매체를 초대하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갔다. 다른 때보다 많이 설렜다. 마치 내 고향에 친구들을 데려가는 기분이었다.

내가 요르단에 살 땐 차를 빌려서 하루 만에도 다녀왔던 친근한 곳인데. 이들과 함께 가려니 이동하는 동안 심장이 정말 두근거렸다. 그런데 여러 가지 변수가 생겼다. 날씨가 정말 좋지 않았다. 쾌청한 날 붉은 바위가 끝없이 펼쳐진 페트라 계곡과 능선을 바라보면 ‘이곳은 우주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갔던 날은 시야가 흐렸다. 정확하게는 시리아에서 불어온 모래폭풍이 우리나라의 짙은 황사처럼 뿌연 날씨를 만들었다.

어디를 가도 그랬지만 페트라에 도착했을 땐 정말 아쉬웠다. 그런데다 며칠 동안 요르단 여러 지역을 다녀야 하는 프로그램상 페트라는 알카즈네만 걷고 바로 당나귀를 타고 밖으로 나왔다. 디즈니랜드에 가서 제대로 돌아보지 못하고 미키마우스 인형과 사진 한 장 찍고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페트라는 현재 돌아볼 수 있는 코스가 여럿인데 당일 코스도 10시간 정도 걸어야 일부라도 제대로 볼 수 있다. 3일, 5일 동안 돌아보는 코스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역시 사막의 광활한 도시 페트라의 일부 공개된 정도만 보는 것이다.

10년간 이곳도 정말 많이 바뀌었다는 게 느껴진다. 과거엔 들어갈 수 있던 공간들에 울타리가 생겼고, 폐쇄가 되기도 했다. 보존 차원이다. 10년의 세월이 길긴 길다. 방송 촬영으로 갔을 때 들어가 본 지역들은 아직 공개조차 하지 않은 곳이 많았다. 보존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이어도 많은 것이 사람에 의해 사라지기도 한다는 생각이 든다.

페트라 바이 나이트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야간에 신비의 절정을 볼 수 있다.

페트라 내부에 상인도 많아졌다. 처음 갔을 땐 소박했다. 작은 천막 하나 쳐놓고 페트라에서 주워온 예쁜 돌을 팔거나 모래로 그림을 그린 제품을 파는 몇 명이 고작 다였다. 지금은 식당도 여럿, 체인점처럼 길게 이어진 상인들의 천막이 보기 좋지 않다. 그마저도 올 때마다 점점 늘어난다. 낙타나 당나귀로 투어를 권유하는 호객꾼도 열 배는 많아진 것 같다.

인생을 살면서 전환점이 필요하다는 사람에게 ‘요르단에 가봐’라고 권한다. 실제로 후배 한 명은 6년 전 내 권유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무작정 요르단으로 떠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영어와 아랍어를 공부했고 2년 후에 돌아와 지금은 중동 관련 일을 하고 있다.

관광지 페트라가 있는 고요한 마을 페트라.

정답은 아니다. 다만 요르단에 가면 지금까지 그대가 살아오며 보고, 느끼고, 믿었던 것들과 전혀 다른 환경을 만난다. 그래서 관광보다는 생활을 하라고 한다. 그래야 일상도 바뀌게 된다. 그곳에 맞춰서 생활하다보면 생각도 삶의 패턴도 어느새 바뀐다.

난 요르단에 살다가 한국에 돌아와서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성공과 실패로 가늠할 수 없는 그저 다른 삶이다. 한 번의 인생에서 두 개의 삶을 산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시크 협곡에서 올려다본 하늘. 아찔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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