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로 하는 서울 도심 건축 기행
도보로 하는 서울 도심 건축 기행
  • 이지혜 기자 | 정영찬 사진기자
  • 승인 2018.04.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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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서울을 만나다

지난겨울, 지방에서 올라오신 부모님을 모시고 꼭 가보고 싶었던 서울 도보 관광. 문화 관광 해설사가 직접 서울의 곳곳을 동행하며 유익한 이야기를 주는 다양한 관광 상품이다. 당시엔 시간이 맞지 않아 놓쳤지만, 여름이 오기 전 꼭 다시 가고 싶었다. 첫 번째로 서울로 근·현대 건축기행 코스를 선택했다.

개화기, 어디 있니?
에디터는 얼마 전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 프로그램에서 핀란드 친구들이 왔던 편을 오래 기억한다. 국립중앙 박물관을 다녀온 주인공들이 아쉬움을 달래며 “개화기 이후의 정보가 너무 없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사실이다. 요즘 교과서에선 좀 나아졌겠지만, 에디터가 배운 역사 교과서만 해도 개화기 이후의 정보가 거의 없었다. 수능에도 나오지 않았다.

졸업 후 개인적으로 읽었던 소설과 인터넷으로 찾아본 정보만으로 근대 이후를 상상했다. 다행스럽게 최근 곳곳에서 개화기, 근대기하며 관광 상품을 개발한 덕분에 조금은 친근해지고 있다. 서울도 마찬가지. 서울시에서 해설사와 함께 도보로 다니는 근·현대 건축기행 코스를 다녀올 수 있었다.

평일이라 참가자는 적당했다. 마침 날씨도 좋았다. 먼저 서울역에서 해설사와 미팅을 갖는다. 오늘의 기행을 맡아준 해설사는 서울문화관광 박병호 해설사. 회사를 은퇴하고 넘치는 재능과 여전한 학구열로 투어 내내 새로운 정보와 즐거움을 선사해준 멋진 신사다. 유익한 코스 설명은 물론 재미있는 이야기로 투어를 더욱 다채롭게 해줬다.

서울역의 슬픈 역사
가벼운 인사가 끝나면 첫 코스인 서울역사의 정보를 알아본다. 수없이 지나친 이곳이 오늘따라 다르다. 오랜만에 미세먼지가 걷힌 덕분도 있겠지만, 해설사가 설명해주는 서울역의 새로운 정보가 귀에 속속 들어온다.

지금의 서울역은 1925년 스위스 루체른 역을 본떠서 만들어졌는데, 당시 2층에 자리한 서양식 레스토랑 ‘그릴’은 경성에서 커피와 서양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장소로 ‘모던보이’와 ‘모던걸’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1930년 경성을 배경으로 한 이상의 소설 <날개>에서 주인공이 커피를 마시기 위해 이곳으로 가는 대목이 등장할 정도였다. 현재까지 ‘그릴’은 역사 4층에서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해방 이후 1947년 남대문 정거장에서 서울역으로 이름을 바꾼 후 급격히 서울의 인구가 늘어가며 서부역과 남부역이 신설됐지만, 인구 증가에는 못 미치는 규모였다. 심지어 명절 귀성길 인파로 인해 역사 안에서 100명이 압사하는 인명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미처 몰랐던 서울역 이야기를 들으며 서울로 7017에 올랐다. 1970년 만들어진 서울역 고가가 2017년 다시 태어나며 새롭게 이름을 얻은 서울로 7017은 원형 화분에 220여 종과 2만4천여 주의 다양한 수목이 심겨 있어, 그야말로 도심 속 작은 수목원을 방불케 했다.

최만리와 손기정
만리재로를 넘어 손기정 기념관으로 가는 길. “세계에서 유일하게 언어의 창시자를 알 수 있는 곳이 한국입니다. 우리는 세종대왕이라는 천재이자 선왕을 가진 자랑스러운 나라죠.” 해설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만리재로’의 어원이 자연스레 따라온다. 세종 시절의 집현전 학사이자 한글 창제에 반대한 갑자상소로 유명한 최만리. 최만리의 집터가 현재 만리동 정영국 가옥이 있는 위치로 추정하며 이곳이 만리재로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유력한 설이 있다.

손기정 기념관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신의주에서 중국 단둥까지 16km 거리를 압록강을 가로지르며 뛴 손기정 선수.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거머쥐었지만, 그의 가슴엔 일장기가 새겨져 있었다. 당시 <조선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손기정이 입은 옷의 일장기를 지우거나 흐릿하게 만들어 출간했다는 이유로 폐간과 정간을 당하기도 했다.

현재 손기점 기념관에선 그의 오랜 발자취를 들여다볼 수 있다. 외에도 다양한 무료 영화 상영과 문화행사가 개최되고 있다. 특히 기념관 옆의 거대한 대왕참나무는 금메달 수상 당시 독일이 선물한 묘목을 가져와 심은 의미 있는 나무다.

최초의 서양식 성당
손기정 기념관에서 약현성당으로 가는 길은 매우 아름다웠다. 따뜻한 날씨에 만발한 꽃, 여기저기 지저귀는 새소리와 공원으로 놀러 나온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섞여 좋은 노래 한 곡을 듣는 기분이다.

중구 중림동의 약현성당은 성요셉 성당이라고도 부르는데 1893년 지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성당이다. 많은 사람이 최초의 서양식 성당으로 명동성당을 떠올리는 것과 다르다. 사실 명동성당이 먼저 계획되긴 했지만, 풍수적인 이유로 조선 정부와 문제가 생겨 공사가 중단된다. 결국, 약현성당은 명동성당보다 5년 빠르게 완성됐다.

한국인 최초로 세례를 받은 이승훈의 집이 있던 이곳은 성당 아래로 서소문 역사문화공원이 내려다보이는 멋진 경치를 자랑한다. 고딕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적절히 섞여 아름다운 풍채를 내뿜는다. 다양한 드라마, 영화의 촬영지가 되기도 한 이곳은 1998년 한 노숙자의 방화로 화재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후 이곳에선 의례적인 촛불 미사를 드리지 않는다고.

성요셉 아파트와 충정각
다음 코스는 약현성당이 수익사업 일부로 지은 성요셉 아파트다. 성당이 주체가 된 만큼 개발 양상이 성당의 성격과 많이 닮았는데, 다른 아파트처럼 있는 그대로를 부수거나 훼손하기보다는 땅에 순응하고 주위를 배려하는 성격으로 개발됐다.

실제로 만초천 지류를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아파트가 휘어져 있고 땅을 깎아내기보다는 경사가 낮은 부분은 6층, 가장 언덕에 위치한 곳은 3층이라는 층고의 차이를 만들어냈다. 애초 성요셉 아파트는 옥상과 약현성당의 마당을 이으려는 의도로 설계됐지만, 재정 부족으로 실현되지 못했다.

아파트를 지나 충정로역 인근의 충정각이 오늘의 마지막 코스다. 충정각은 미국 캘리포니아 양식의 건축으로 1896년 아관파천 이후 미국이 전기 관련 이권을 따내며 우리나라 최초의 전기회사인 한성 전기회사를 운영하기 시작한 것과 관련이 깊다. 당시 조선은 전기공이 없던 시절. 미국의 전기공들이 고임금을 받고 조선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고향이 그리웠던 이들은 몰락한 양반의 토지를 인수해 집을 지었고, 이것이 지금의 충정각이다.

충정각은 앞으로 돌출된 현관과 뾰족한 9각 지붕, 창문 아래 벽과 다른 문양으로 자리한 검은 벽돌 등의 디테일이 당시 캘리포니아에서 유행하던 양식을 그대로 모방했다. 개화기 이후 여러 차례 소유가 바뀌며 현재는 갤러리 겸 레스토랑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과거로의 서울 여행
1900년대를 기점으로 서양 문물이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하며 서울은 건축, 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2시간 30분 남짓, 서울역에서 충정로까지 개화기 이후 지어진 건축물들을 따라가는 기행이 끝났다. 평소엔 그저 스쳐 지나가던 서울의 과거를 한 페이지를 열어본 기분. 침략과 약탈, 동시에 발전과 발견, 급변하던 시절의 변화를 체험하고 그 이면에 숨은 이야기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서울로 근․현대 건축기행
문화역서울284-서울로7017-손기정 기념관-약현성당-성요셉 아파트-충정각
소요시간 2시간 30분
예약 서울시 공식 관광정보 웹사이트
korean.visitseou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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