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보다 반 박자 빠른 오사카의 봄
한국보다 반 박자 빠른 오사카의 봄
  • 글 사진 이두용
  • 승인 2018.03.3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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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속 5센티미터, 벚꽃 속으로

‘일본’ 하면 개인적으론 오사카(大阪)가 먼저 떠오른다. 사실 수도인 도쿄를 가장 먼저 가봤다. 더욱이 도쿄를 세 번쯤 가고 오사카에 갔다. 그럼에도 내겐 오사카가 더 특별하다. 사람은 어딜 갔느냐보다 왜 갔느냐, 혹은 언제 갔느냐, 무슨 일로 갔느냐, 그때 어떤 일이 있었느냐에 따라 추억이 달라진다. 2008년 벚꽃이 피던 그때, 오사카에서 보냈던 며칠. 그 특별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신사가 모여 있는 외곽에서 처음 벚꽃을 만났다. 한국은 여전치 싸늘한 3월이었다.

봄이 먼저 와 있는 오사카
무계획이 가장 행복할 때가 있다. 순서를 따르지 않아도 되니 그렇고 돈이나 시간을 내키는 대로 쓸 수 있어서 그렇다. 즐거운 일에 돈과 시간을 낭비한다고 해도 내게 좋다면 그게 전부니까. 사실 잘 그러지도 못한다.

무작정 떠나온 여정, 창밖으로 보인 오사카가 생소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무작정 떠나온 한국. 얼마 동안 어디서 어떻게 지낼지도 정확히 계획하지 않고 왔다. 일단 첫 여정인 오사카에서 5일을 보내기로 했다. 일단 잠잘 숙소만 정했다. 지금은 TV만 틀면 저렴한 해외 항공권이나 숙소 검색 사이트 광고가 줄을 잇는데, 그땐 몇몇 인터넷 카페를 제외하곤 사이트를 뒤져도 정보가 많이 없었다. 그냥 혼자 쓸 수 있는 방 하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오사카 땅을 밟았다.

오사카를 방문하는 모든 사람이 인증사진을 찍는 명물 글리코상.
도톤보리 중심에는 과거 물자를 실어 나르던 물길이 있다. 이곳을 따라 걸었다.

한국은 여전히 늦겨울의 기운이었는데, 따뜻했다. 간사이공항을 나오자마자 외투를 벗었다. 완연한 봄이었다. 고작 한 시간을 날아왔는데 기온 차가 이렇게 크다니. 신기했다.

숙소가 있는 도톤보리(道頓堀)로 가면서 우리보다 먼저 와 있는 봄이 반가워 연신 지하철 창밖을 기웃거렸다. 따뜻한 햇볕을 받은 마을이 어린이 영화 세트장 같다. 아담한 집과 앙증맞은 자동차들이 마치 장난감 블록으로 만든 것처럼 귀여웠다.

판매하는 음식에 따라 간판도 이색적이다. 이곳은 유명한 타코야키집.
과거 극장이 많던 이곳이 지금은 음식점과 오락을 즐기기 좋은 명소로 바뀌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바로 짐을 풀고 밖으로 나왔다. 모르고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했나. 와서 보니 숙소 인근 도톤보리가 오사카에서 가장 유명한 지역이었다.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 중심부에 흐르는 강을 찾았다. 오사카에 대해 잘 몰랐지만, 이곳은 TV나 책에서 여러 번 본 적이 있었다.

아담한 집과 앙증맞은 자동차들이 마치 장난감 블록으로 만든 것처럼 귀여웠다.

계획 없이 걷다가 만난 벚꽃
도톤보리는 과거 극장이 밀집된 지역이었다. 아직 곳곳에 가부키 공연을 볼 수 있는 극장이 남아있다. 현재는 글리코(グリコ, glico) 광고판을 중심으로 일대에 넓게 퍼져 있는 음식점과 오락시설이 인기다. 맛집을 찾아가 먹고 이것저것 구경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글리코는 원래 일본의 식품 회사로 주로 과자 종류를 만드는 곳이다. 그런데 이 회사의 마스코트 격인 마라토너 네온사인 간판이 도톤보리강을 중심으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있다. 마라토너가 오사카 시내를 돌아 이곳으로 골인한다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어 도톤보리뿐 아니라 오사카의 상징이 됐다. 오사카에 와서 글리코를 배경으로 인증사진 안 찍는 사람을 못 봤다.

처음 오사카에 왔을 땐 그냥 걸었다. 사실 글리코도 몰랐다. 첫날은 도톤보리 중심을 흐르는 강을 따라 걸었고, 다음날은 전차 노선을 따라 걸었다. 뭔가 새로운 게 보이면 그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이후에도 오사카를 비롯해 일본을 찾을 때면 많이 걸었다. 여전히 아기자기하면서 정갈한 일본의 골목을 좋아한다.

도톤보리가 아무리 번화가라고 해도 골목을 따라 주택가로 들어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하다. 정적이 자연스러운 건 일본의 매력이다. 일본에는 부처님을 모신 절 이외에도 죽은 사람을 신으로 모시는 신사가 있다. 번화가만 벗어나면 도톤보리 주변에도 많다. 마을 공원에서 커다란 신사로 이어지는 길, 그곳에서 벚꽃을 처음 봤다.

일본 애니메이션 <초속 5센티미터>의 한 장면이었다. 여기서 초속 5cm는 벚꽃 꽃잎이 땅으로 떨어지는 속도를 말한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애니메이션에서 표현한 아름다운 장면이 그 봄, 내 눈앞에서 펼쳐졌다.

오사카성 주변에는 벌써 꽃을 보러온 사람이 제법 많았다.

벚꽃 핀 오사카성에서 만나요
벚꽃이 핀 것을 보고 오사카에서 벚꽃으로 유명한 곳에 가고 싶었다. 숙소로 돌아와 관리인들에게 물어보니 각자 아는 곳이 다르다. 해외 여러 나라에서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사이트에 가입해 ‘오사카에 처음 온 한국인입니다. 내일 오사카 벚꽃을 소개해줄 수 있는 분 있을까요’라고 글을 남겨봤다.

봄이면 흰색과 금색으로 칠한 오사카성의 성벽과 연분홍 벚꽃이 조화를 이룬다.

한 시간쯤 후 들어가 보니 한 명이 글을 남겼다. 오사카 출생이고 오사카를 사랑한다는 고등학교 교사였다. 이 분은 가족과 하와이에서 20년 정도 생활하고 몇 년 전에 들어와 다시 오사카에 정착해서 살고 있다고 했다.

다음날 오사카성에서 실제로 그분을 만났다. 나오코(奈緒子)상. 오사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게 일본의 역사나 오사카성의 역사, 벚꽃의 시기 등을 알려주었다. 오사카성의 벚꽃은 실제로도 오사카는 물론 일본 전체에서 유명하다. 약 4,000그루 이상의 벚나무가 성을 둘러싸고 있고 안쪽 니시노 마루 정원에만 600그루의 벚나무나 자라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와 일본에 가장 많은 벚꽃 종인 왕벚꽃.

아직 만개한 시기는 아니었지만, 흰색과 금색으로 칠한 오사카성의 성벽과 연분홍 벚꽃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꽃잎 날리는 길을 걸으니 진짜 애니메이션 속으로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일본의 벚꽃은 왕벚꽃이다. 원래 벚꽃은 산벚나무, 꽃벚나무, 콩벚나무 등이 있는데 여기서 파생한 원예품종은 200여 종이 넘는다고 한다. 현재 대표적인 종이 왕벚나무인데 이게 바로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품종이다.

벚꽃의 원조가 일본이 아니라고?
벚꽃을 일본의 국화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국화로 정한 건 아니라고 한다. 일본 신화에도 등장할 정도로 역사에서 친숙하게 뿌리내렸고 봄이면 전국이 꽃놀이인 하나미(花見, はなみ)를 즐기기 때문에 어느 나라보다 벚꽃과 가깝다. 이제 우리나라도 봄철이면 상춘객이 벚꽃을 찾아다니며 전국이 들썩인다. 일본과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재미있는 건 벚꽃의 원조 논란이 거세다는 것이다. 일본의 국화 격인 꽃이다 보니 일본의 자존심이 강하지만 사실 원조는 우리나라라고. 몇 해 전 산림청 임업 연구원이 일본이 원산지로 알려져 있던 왕벚나무에 대한 DNA를 분석했고 제주 한라산에서 유래한 사실을 찾았다고 한다. 우스운 건 중국도 나서서 자신들이 원조라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한 전문가가 일본 서적을 근거로 당나라가 벚꽃의 원산지이며, 해당 시기에 히말라야산맥으로부터 일본으로 전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벚꽃 얘기는 여기까지.

신사 마당에는 벌써 벚꽃이 만개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온기가 가득해진다.

나오코 상이 해준 얘기는 사실 일부다. 오사카의 벚꽃은 오사카성과 공원(毛馬桜之宮公園), 일본 조폐국이 손에 꼽힌다. 케마 사쿠라노미야에는 약 4,800여 그루의 벚나무가 거리 양쪽을 수호한다. 벚꽃이 만개하면 이곳은 한편에 있는 오가와강을 배경으로 초속 5cm의 향연이 펼쳐진다.

조폐국은 말 그대로 동전과 금속 공예품을 만드는 관공서다. 그런데 벚꽃이 만개하는 시기엔 연중 딱 한 번 벚꽃을 중심으로 축제를 연다. 축제 기간엔 오사카 명물 거리 음식을 조폐국 곳곳에서 먹어볼 수 있어 사람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한다.

낯선 외국인에게 자신의 나라와 도시, 계절, 자연을 자랑스럽게 소개해준 나오코상이 고마웠다. 누군가 내게 이런 부탁을 한다면 선뜻 도와줄 수 있을까. 나 스스로 우리나라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있고,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묻게 됐다.

벚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커플이 다정해보인다.

다시 오사카에 올 땐 웃을게
남아 있는 이틀은 숙소 근처에서 산책했다. 말미에 하는 얘기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그 생각을 내려놓기 위해 회사 업무에 밤낮으로 몰입했는데 그게 잘 안됐다. 1년 넘게 돌아가신 어머니한테 뭔가 미안했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무작정 떠나온 첫 여정이 오사카였다.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컨트롤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사람이 아니다. 아프고 싶어서 아픈 사람이 없고, 슬프고 싶어서 슬픈 사람이 없다. 생각도 하고 싶다고 하고, 하기 싫다고 할 수 없는 게 아니다. 지나고 나니 어떤 노력보다 시간이 해결하도록 두는 게 가장 좋았다는 생각이다.

아직 절정은 아니었지만 봄기운이 완연한 오사카성은 만개를 기다리고 있었다.

2008년 처음 오사카에 갔고 이후 열 번은 더 간 것 같다. 다른 계절, 다른 일로 가더라도 꾸준히 그 봄의 추억이 가장 짙게 남아 있다. 몸도 마음도 싸늘했던 한국을 떠나 마주한 일본의 봄. 계획도 방향도 없던 내게 시간을 내어준 나오코상. 사실 나오코상은 인생에 대해서도,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도, 앞으로의 나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듣고 얘기해줬다. ‘언젠가 내가 오늘 이야기를 쓰게 되면 나오코상 얘기를 넣겠다’며 사진 한 장 찍는 걸 부탁했다. 10년이 지나서야 그 약속을 지킨다. 건강이 안 좋아졌다는 말을 들은 게 3년 전이다. 다시 연락이 되면 꼭 만나서 나오코상과 오사카성에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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