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여성 산악인으로 산다는 것
한국에서 여성 산악인으로 산다는 것
  • 김경선 부장 | 정영찬 사진기자
  • 승인 2018.03.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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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형 한국여성산악회 신임회장

한국 사회가 미투로 들썩이고, 젠더 감수성이 중요한 사회 이슈로 떠올랐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특히 남성 중심의 산악계에서 여성의 위치는 여전히 유리천장에 가로 막혔다. 여성 산악인만을 위한 단체, 한국여성산악회가 중요한 이유다.

등반은 고도의 테크닉과 체력이 필수다. 특히 히말라야를 중심으로 하는 고산등반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점에서 여성 산악인에게 한계는 불가피하다. 테크닉이 아무리 탁월하다 해도 남성에 비해 선천적으로 뒤처지는 체력의 한계는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우리나라의 해외 등반 원정은 80년대와 90년대를 지나 2000년대에 이르러 절정에 다다랐다. 국내 산악역사는 故 지현옥, 故 고미영, 오은선 같은 걸출한 여성 산악인을 낳았다. 하지만 한국 산악계의 중심은 언제나 남성이었다. 여성 산악인들은 좀 더 차별 없는, 편안한 원정 혹은 등반을 원했고, 뜻을 모아 한국여성산악회를 만들었다.

지난 3월 초, 한국여성산악회 정기총회를 통해 신임회장으로 이승형 씨가 선출됐다. 오랜 세월 산악계에 몸 담아온 이승형 회장은 스포츠클라이밍 심판이자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스포츠클라이머 김자하, 김자비, 김자인 남매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20대 초반, 몸이 약하고 체력이 턱 없이 부족한 탓에 등산을 시작한 것이 지금껏 산과의 인연으로 이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결혼 후 아이를 키우면서도 없는 시간을 쪼개 남편과 스포츠클라이밍을 배웠다. 슬하의 세 자녀 역시 부모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스포츠클라이머의 길로 접어들었다. 자녀의 평범한 삶을 꿈 꿨던 엄마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완강한 고집에 부모도 두 손을 들었다. 그렇게 첫째와 둘째, 셋째까지 모두 스포츠 클라이머의 삶을 살게 됐다.

운동하는 자녀를 둔 엄마의 삶은 녹록치가 않았다. 당시 세 아이들은 번갈아 가면 국내외 대회를 출전했다. 지금처럼 기업이나 단체의 후원이 있었던 시절도 아니다.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맞벌이를 해야 했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와 밥을 하고 밀린 집안일을 하고 나면 새벽 3시를 넘기기 일쑤였지만, 출근을 위해 오전 6시 반이면 일어나야 했다. 매일 매일 지친 몸을 이끌고 회사와 가정의 일을 병행하는 삶은 쉽지 않았다. 개인 시간은 꿈꿀 수 없었다. 막내(김자인 선수)가 대학에 들어가자 숨 쉴 여유가 생겼다. 성인이 된 아이들은 전처럼 엄마의 손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을 허투루 쓸 순 없었다. 매해 바뀌는 스포츠클라이밍의 규정이나 규칙을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기에 이를 악물고 심판이 되기 위해 공부를 했다. 쉽지 않은 시험이었지만 자격증을 획득했다. 그렇게 2003년부터 심판 활동을 시작했다. 엄마가 아닌 심판 이승형의 삶은 즐겁고 뿌듯했다. 그렇게 삶의 여유가 생길 무렵 한국여성산악회에 들어갔다. 여성 산악인 동료들과 함께 워킹도 하고 등반도 하며 동지애를 느끼고 싶어서다.

한국여성산악회는 크지 않은 단체다. 회원이 100여명 밖에 되지 않은 작은 단체지만 매년 나눔음악회를 열며 의미 있는 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8년 전부터 시작한 나눔음악회는 매년 콘서트를 열고 생기는 수익금을 어려운 산악인에게 후원하는 행사다. 처음 음악회를 시작할 무렵에는 국내 아웃도어 시장이 호황기라 브랜드 후원이 활발했지만 몇 년 전부터는 이마저 뜸해져 티켓 판매 수익과 에코백을 제작해 판매한 수익금을 모아 후원을 진행중이다. 매년 행사를 열며 어려움도 많지만 십시일반 후원을 지속하는 후원자가 있고, 어려운 산악인을 돕겠다는 회원들의 열정이 있어 멈출 수 없는 행사이기도 하다.

한국여성산악회는 50~60대 회원이 많다. 엄마로서의 삶을 살아야하는 세대인 만큼 자주 모일 순 없지만 시간이 되는 회원들에 한해서 번개모임을 꾸준히 가지고 있다. 정기모임도 물론 있다. 한 달에 한번 모임을 가지며 워킹 산행을 주로 진행한다. 반면 수시로 등반 번개모임도 활발하다. 일 년에 두 번, 하계와 동계에 강도 높은 등반 훈련도 진행한다. 올겨울에는 5박6일간 한라산에서 야영하며 설산훈련을 하기도 했다. 올해 가을에는 히말라야 6000m급 피크 등반에 도전할 예정이다.

이승형 회장은 몇 년 동안 미미했던 한국여성산악회의 활동을 조금씩 늘려갈 계획이다. 그동안 흩어졌던 회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화합하고 소통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다. 그 다음이 새로운 회원들을 모집하는 일. 한국여성산악회는 산을 사랑하는 여성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있다. 산과 여성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이들이 모여 자연을 사랑하는 일. 한국여성산악회가 추구하는 이상이다. 이승형 개인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삶에서 산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그녀에게 산의 의미를 물었다.

산은 인생의 전부, 나는 산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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