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거닐기, 특별한 유레일 가족여행 1
아이와 거닐기, 특별한 유레일 가족여행 1
  • 글 사진 표현준(seanpyo)
  • 승인 2018.03.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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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아이와 떠난 영국,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4개국 여행

비행기, 기차, 자동차. 아이와 유럽여행은 어떤 이동수단을 선택해야 할까? 유럽여행은 인접한 국가 순으로 이동하는 것이 효율적이니 공항에서 소요되는 시간과 번거로움을 생각하면 비행기는 답이 아니다. 이동하는 내내 창밖을 살피며 운전대를 잡아야 하는 자동차 여행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도시와 나라를 넘나드는 유럽여행은 아이와 오롯한 시간을 누리기 위해 운전대를 버리고 기차를 선택했다.

아이와 유럽여행, 유레일을 선택한 이유
역사를 살펴보면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이 광산 채굴에서 철도 운송으로 발전해 교통혁명을 가져왔다. 이는 마침내 유럽의 산업혁명을 여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오랜 시간동안 레일을 따라 도시가 발전하고 사람들의 삶이 켜켜이 쌓였을 것이다. 유럽의 역사, 그들이 겹겹이 쌓아 올린 오벨리스크를 아이와 함께 여행하기로 했다. 영국,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의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기차여행이다.

유레일의 장점
유레일은 떠나기 전 자신의 행선지와 일정에 맞는 맞춤형 티켓을 선택할 수 있고 여행하는 동안 이동에 관해서도 고민할 필요가 없다. 갑작스럽게 계획이 변경되어도 자유롭게 시간과 경로를 수정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스위스에서 계속되는 비로 계획했던 리기산 등반을 포기한 우리는 당일 아침, 계획에 없던 베른으로 일정을 변경했다. 기간 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글로벌 패스 덕을 톡톡히 보았다.

지정석을 예약한 고속 열차의 경우 전용 앱을 통해 다음날 탑승 시간을 변경하는 것도 간단하다. 유레일은 나라 간 이동에도 탑승 시 일찌감치 도착할 필요가 없다. 티켓도 끊지 않고 여권도 보여줄 필요 없이 정해진 시간까지 기차에 오르기만 하면 된다. 짐을 검사하거나 별도로 붙일 필요도 없고 번거로운 절차가 모두 생략되니 세상 편하다.

유레일을 택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의 여행이 우리가 바라는 목적은 아니었다. 알려지지 않은 작은 소도시나 자연을 만나기 위해서라면 수고스럽게 멀리 유럽을 찾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유럽을 선택한 이유는 아이가 읽고 있는 책과 혹은 앞으로 접하게 될 미술사와 세계사에 등장하는 랜드마크가 가득한 도시여행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이와 함께하는 유럽여행의 특별함
여행 전 아이가 가고 싶은 행선지를 노트에 적도록 했다. 관련 영화와 책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부모의 역할이다. 빅벤, 런던아이, 패딩턴, 에펠탑, 개선문, 파리 자연사박물관, 콜로세움, 곤돌라, 진실의 입. 긴 시간을 두고 하나하나 도시의 랜드마크들이 노트에 채워진다. 아빠는 아이의 노트를 참고해 일정을 만들고 엄마는 유레일패스 예약과 사용법을 공부했다.

아이와 함께하는 유럽여행의 특별함은 무엇일까? 일반적인 해외여행은 한 문화권의 낯섦을 즐기지만 유럽여행은 국경을 넘을 때마다 미묘하게 달라지는 풍경, 사람, 문화를 경험한다. 언어도 다르고 대중교통의 요금 체계와 방식도 다르다. 런던이나 이탈리아에서 어린이는 티켓이 필요 없지만 프랑스에서는 아니다. ‘어린이’에 대한 기준도 10세 미만, 12세 미만으로 나라마다 다르다.

이런 제도적 차이가 단기 여행자에게는 불편함을 주지만 아이의 관점으로 보면 미로, 퍼즐, 추리와 같은 재미의 요소로 재탄생된다. 아이는 지하철 혹은 버스 자판기 앞에서 버튼을 누르며 함께 고민하는 것에 호기심을 느끼고 오래된 성당의 규모와 화려함보다 계단 오를 때 가위바위보에 열중한다.

기름진 티본스테이크보다 시장의 저렴한 피자를 더 사랑하며 예술품이 즐비한 우피치 미술관보다 처음 보는 사탕과 젤리가 가득한 스위스의 슈퍼마켓 쿱COOP을 더 좋아했다. 랜드마크를 보여주겠다던 부모의 여행 계획은 말 그대로 부모의 욕망이었고 정작 아이가 즐긴 것은 길 위에서 나눈 우리의 선택과 소소한 모험들이었다.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 날씨는 하늘이 아니라 아이가 결정한다.

여행을 시작하면서 만난 런던의 비구름은 우리가 유럽을 떠나는 날까지 줄곧 함께 했다. 하지만 정작 우리의 날씨는 아이의 기상도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힘들면 비, 아이가 즐거우면 맑음. 아이들은 체력적으로 성장하는 시기라 조금 힘들어도 기분이 금방 드러난다. 빨리 걷자는 말에 10cm 보폭으로 걷기도 하고 출발한 지 10분도 되지 않아 힘들다고 칭얼거리기도 한다.

추억을 남기기 위해 항상 즐거움으로 여행을 채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단맛 하나로 좋은 음식을 만들 수 없듯 좋은 여행의 재료 또한 한 가지 감정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좋은 여행에는 맵고 짜고 때로는 시리고 밋밋한 맛도 필요하다. 여행이란 시간이 지날수록 모든 것은 희미해지고 인상적인 기억 몇 가지만 흔적처럼 남는 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함께한 우리의 유럽여행도 어느새 희미해져 가지만 빗물에 반짝이는 보도블록에 ‘드륵드륵’ 튕기던 캐리어의 경쾌한 바퀴 소리는 아직도 귓가에 선명하다.

표현준 여행사진가 @seanpyo
홍익대학교 대학원 사진과 졸업. 사진, 자연여행, 캠핑을 테마로 신문·잡지 기고 및 개인미디어 운영으로 독자와 소통하고 있습니다. 매년 두근두근 몽골원정대를 인솔해 몽골의 자연을 여행합니다. 저서로는 <쨍한 사진을 위한 DSLR활용 테크닉>(2005), <아이와거닐기>(2017)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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