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데 볼수록 색다른 홍콩의 겨울
작은데 볼수록 색다른 홍콩의 겨울
  • 글 사진 이두용 기자
  • 승인 2018.01.01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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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면 더욱 빛나는 도시… 와인, 트레킹, 축제

별 것 아닌데도 신기하다. 내가 홍콩을 정말 좋아한다는 것, 질리지 않는다는 것, 꾸준히 새로운 게 있다는 것, 다음이 또 기대된다는 것. 내 인생 열아홉 번 째면서 2017년 한 해 다섯 번째인 홍콩. 여전히 좋은 이곳. 죽기 전까지 백번을 채울 수 있을까.

2017년 10월 말 문 연 오션 터미널 데크에서 바라본 홍콩의 일몰과 야경.

홍콩에 와인 축제가 있다?
홍콩에 한두 번 와본 사람이면 ‘홍콩은 나도 잘 알아. 땅이 좁아서 한 번만 가면 대충 알 수 있어’라고 한다. 실제로도 홍콩을 좀 안다는 사람은 많이 만나봤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아는 사람은 못 만난 것 같다. 마치 쇼핑을 위해 우리나라 서울 명동에만 왔다가 간 외국인이 ‘난 한국은 잘 알아’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홍콩 와인 앤 다인 페스티벌에 참가한 한 와인 브랜드 담당자가 자사 와인 종류를 설명하고 있다.

‘홍콩에 와인 축제가 있는 건 아세요?’라고 물으면 바로 ‘그게 뭐야?’라고 한다. 홍콩엔 매월 도시가 들썩일 정도의 다양한 행사가 열리지만, 가을엔 역시 ‘홍콩 와인 앤 다인 페스티벌Hong Kong Wine & Dine Festival’ 메인이다.

홍콩 좀 다녀봤다며 방문한 회수를 자랑하곤 했던 나도 전혀 몰랐다. ‘홍콩에 와인이라니.’ 근데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매년 10월 말, 홍콩섬 센트럴 야외에서 열리는 이 행사는 전 세계 다양한 와인을 한 자리에서 맛볼 수 있는 특별한 축제다. 2017년에도 400여 개의 부스가 열려 맛있는 음식과 함께 홍콩의 밤을 와인으로 물들였다. 놀라지 마시라. 홍콩 ‘와인 앤 다인 페스티벌’은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10대 미식 축제 중 하나다.

와인 한 잔을 받아 들고 공연을 즐기는 것도 행사의 특별한 경험이다.

솔직히 와인 맛을 모르는 무식쟁이 나인데도 와인 잔을 하나 들고 부스를 다니며 조금씩 받아 마시다 보니 ‘좋았다.’ 와인 산지에서 온 담당자들에게 생산지에 대한 소개와 와인의 특징을 듣는 것도 재밌다. 한 편에는 공연장이 있어 와인 한 잔 들고 바닥에 앉아 즐기기에도 좋았다. 나라별 위스키와 일본 사케도 음미해볼 수 있다. 술과 음식 좋아하는 사람에게 가을의 홍콩은 분위기에 취해 색다른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일 것 같다.

홍콩은 국토의 70%가 녹지고, 그 안에 총 303km의 트레킹 코스가 있다.

아시아 트레킹의 최고봉
난 태생적으로 걷는 걸 좋아한다. 어린 시절부터 산을 다녔고, 먼 거리도 일부러 걸어 다니곤 했다. 어제(12월 17일)도 홍콩에서 약 25km, 2만9,000 보 정도를 걸었다. 늘 메는 카메라 가방이 약 10kg. 사진이나 영상 촬영을 위해 출장을 가면 그걸 메고 매일 주야장천 걷는다. 어깨와 목을 시작으로 온몸이 정말 힘들다. 그런데도 걷는 게 신기하게 즐겁다. 걸어야만 볼 수 있는 것이 있고, 걸으면서 볼 때라야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그러고 보면 걷고 무언가를 보면서 사진을 찍고 생각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홍콩은 도보 여행자들에게 천국이다. 아마 쇼핑을 좋아하는 사람이 와도 하루 1만 보 이상은 걷게 되는 곳이 홍콩이다. 하지만 쇼핑을 제외하고도 홍콩은 아시아 최고의 트레킹 명소다. 이 대목에서 또 한 번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도 있겠지만 빌딩 숲 천지인 홍콩은 국토의 70%가 녹지다. 거기에 영국 식민지 시대부터 만들어진 트레킹 코스의 길이가 총 303km에 이른다. 홍콩이 좁다는 사람들은 이 부분이 믿기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피크서클워크를 걸으면 전망대보다 더 멋진 홍콩의 전경을 볼 수 있다.

홍콩 트레킹 코스의 핵심은 역시 ‘드래곤스 백Dragon’s Back’이다. 굽이굽이 이어진 길이 마치 용의 등과 같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인데 2004년 CNN이 극찬하며 ‘아시아 최고의 트레킹 코스’라고 엄지를 세워줬다. 요즘은 며칠간 오로지 숲길을 걷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홍콩으로 날아오는 사람도 많아졌다고 한다.

가족, 연인과 왔다면 홍콩 최고 명소인 빅토리아 피크 일대를 한 바퀴(3.5km) 돌아보는 ‘피크서클워크Peak Circle Walk’ 추천한다. 홍콩의 자연을 오롯하게 즐기며 걷는 것은 기본이고 돈 주고 전망대에 올라가서 보는 것보다 더 멋진 홍콩의 전경을 볼 수 있다. 경사가 없고 원점회귀라 운동화에 평상복으로도 가능하고, 어린 자녀와 걷기에도 좋다. 진심으로 걸어본 사람만 아는 매력이 있다.

경사가 없고 원점회귀라 운동화에 평상복으로도 가능하고, 어린 자녀와 걷기에도 좋다.

밤이라야 더욱 빛나는 도시
홍콩은 낮보다 밤이 아름답다. ‘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밤거리’는 시대가 바뀌고 달력이 수천 장 넘어갔어도 그대로다. 야경이 좋고, 실제 밤거리도 변함없이 좋다. 그 옛날 거리를 밝히던 홍등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저녁 8시 펼쳐지는 조명·레이저 쇼 ‘심포니 오브 라이트Symphony of Lights’가 충분히 대체하고 있다.

이제까지 보지 못한 홍콩의 일몰을 즐기고 싶다면 하버시티 옥상으로 향해보자.

홍콩섬에 바다를 향해 늘어선 건물들이 각자의 색으로 빛을 발하고 레이저와 조명으로 펼치는 빛의 향연인데 이것 역시 못 본 사람이 아는 척하기는 힘들다. 정말 환상적이다. 2017년에는 연말을 위해 다섯 번만 특별히 다른 3D 영상 쇼도 펼쳐졌다. 전혀 모르고 갔다가 우연히 보고는 현대 기술에 혀를 내둘렀다. 올 때마다 봤던 야경인데 질리지 않는다.

야경 사진을 찍고 싶은 사람은 물론 이제까지 보지 못한 홍콩의 일몰을 즐기고 싶다면 하버시티 옥상으로 향해보자. 2017년 10월부터 오픈한 오션 터미널 데크가 새로운 홍콩 일몰 포인트 명소다.

영국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진 벤치가 홍콩 트레일의 역사를 대변해준다.

빅토리아항구를 270도에 걸쳐 감상할 수 있게 설계해 마천루로 가득한 미래 도시와 멀리 산 능선 사이로 사라지는 태양을 볼 수 있다. 위치만 잘 잡으면 인생 사진도 담을 수 있다. 지금까지 홍콩에 와서 본 일몰은 이곳에서 본 게 으뜸이었다.

밤거리도 빼놓을 수 없다. 해가 지고 난 시각 올드타운 센트럴의 란콰이퐁으로 향하면 ‘이곳이 동양인가?’ 싶을 정도로 이국적인 거리 풍경을 볼 수 있다. 거리엔 노천카페와 바가 즐비한데 손님 대부분이 서양인이라고 느껴질 정도다. 근처엔 트렌드를 주도하는 클럽도 많아서 젊은 사람에게 인기다.

‘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밤거리’는 시대가 바뀌고 달력이 수천 장 넘어갔어도 그대로다.

따뜻한 크리스마스 축제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뜨거운 12월 중순 홍콩을 찾은 것은 꼭 10년 만이다. 2007년 겨울, 그리고 10년 뒤 오늘. 두 번 모두 개인적인 일정으로 왔다. ‘그저 오고 싶어서’. 10년이란 세월 홍콩은 많은 것이 변했고 역시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마치 내 혼자만 10년의 시간을 몸으로 막아낸 느낌이다. 그래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생각이 많았다.

홍콩은 크리스마스를 즈음하여 곳곳에서 할인 행사를 시작한다. 보통 2월까지 진행하는데 이때는 쇼핑의 천국인 면세국가 홍콩이 더 들썩거린다. 할인에 또 할인을 하기 때문에 브랜드 매장에 길게 줄을 선 진풍경을 쉽게 마주칠 수 있다.

쇼핑몰과 관공서 등 시즌의 분위기를 가득 담아 반짝반짝 예쁘게도 만들어 놨다.

개인적으론 거리와 쇼핑몰, 백화점 등에 마련된 크리스마스·연말 트리나 전시물 등이 더 눈에 간다. 시즌의 분위기를 가득 담아 반짝반짝 예쁘게도 만들어 놨다.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크리스마스트리도 저마다 모양과 장식, 색상이 달라 찾아다녀 보는 것도 재미다.

카메라를 보통 두 대는 메고 다니는데 이번에는 홍콩 풍경을 거의 카메라에 담지 않았다. 그냥 눈으로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다. 눈으로 오래 보고 더 생각하며 걸어 다녔다. 그게 더 좋았다.

개인적으론 2017년 크리스마스 장식은 1881 헤리티지가 가장 잘한 듯싶다.

한국은 눈이 온다거나 영하 몇 도까지 떨어졌다는 뉴스가 있었지만, 홍콩은 흐리거나 맑아지기를 반복할 뿐 변함없이 따뜻했다. 홍콩의 12월과 1월은 우리나라 가을과 비슷한 기온이다. 크리스마스가 여름인 나라도 있지만, 홍콩은 덜 습하고 따뜻해서 1년 중 활동하기 가장 좋은 시기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겐 이때의 홍콩을 가장 많이 추천한다. 물론 쇼핑도 한몫하고.

2017년 크리스마스 장식은 1881 헤리티지가 가장 잘한 듯싶다. 쇼핑을 즐기지 않아 자주 찾지 않던 곳인데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잘 만들어낸 덕분에 곳곳을 돌며 구경했다. 마치 유럽에서 맞은 연말 분위기 느낌. 알뜰한(?) 쇼핑과 함께 2018년 신년 분위기를 물씬 느끼고 싶다면 이미 잘 알고 있는 홍콩이라고 할지라도 또 한 번 가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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