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으로 만드는 수제 맥주 체험기
내 손으로 만드는 수제 맥주 체험기
  • 임효진 기자 | 정영찬 사진기자
  • 승인 2017.05.16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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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의 계절 …아이홉 맥주 공방서 자신만의 맥주 만들자!

몇 해 전부터 서울 이태원, 홍대를 중심으로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한 수제 맥주 펍. 소수의 전유물이었던 수제 맥주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면서 펍이 늘어나고 소규모 양조장이 생겨나더니 이제는 자신이 원하는 맥주를 만들어 먹는 이색 문화가 태동하고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에게도 ‘언젠간 내 손으로 술을 담그는’ 로망이 있었다. 인생 버킷리스트를 실현하기 위해 잠실에 있는 아이홉 맥주 공방으로 갔다.

아이홉 맥주 공방.

Prologue
수제 맥주가 어렵게 느껴지는 건 카스나 OB같은 상표 이름으로 구분하던 맥주에 종류가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처음 듣는 영어 이름으로 나뉘면서부터일 거다. 하지만 한 번만 정리하고 가면 맥주의 세계도 그리 어렵지 않다.

보리처럼 생겼지만 우리가 보던 보리와는 성격이 다른 제품을 사용한다.

맥주에는 물, 보리(맥아 혹은 몰트), 홉, 효모가 들어간다. 모두 자연에서 나는 재료다. 보리는 우리가 자주 보는 보리와는 약간 성질이 다른 보리를 싹을 틔워서 사용한다. 이 싹튼 보리는 한자로 보리 맥자에 싹 아자를 써서 맥아라고 부르며, 영어로는 몰트라고 한다. 발아 현미나 식혜를 만들 때 쓰는 엿기름을 생각하면 된다. 싹을 틔워서 사용하는 이유는 전분을 추출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맥아는 맥주 특유의 달콤한 맛을 결정하고, 맥주의 색깔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홉은 독특한 향을 가진 식물이다. 방부 효과와 살균 효과, 맥주의 풍미를 더해주는 역할을 한다. 재배되는 지역에 따라 다양한 맛과 향을 지니고 있다. 흔히들 수제 맥주의 종류가 무한대라고 얘기하는데 보리와 홉의 종류가 다양해 이 둘을 어떤 조합으로 섞느냐에 따라 새로운 맥주가 탄생하기 때문이다.

향긋한 홉 향을 느껴보자.

효모는 맥주의 발효를 돕는 역할을 한다. 크게 상면발효 효모(에일 이스트)와 하면발효 효모(라거 이스트)로 나뉜다. 효모를 넣음으로 인해 맥주에 알코올과 탄산가스, 다양한 향과 맛이 더해진다. 마지막으로 물이 들어간다. 맥주의 95%를 차지하는 게 물이다. 미네랄이 적절히 균형을 이룬 물을 써야 맛있는 맥주가 나온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맥주에 들어가는 재료이다. 이제 맥주의 종류에 대해 알아보자. 맥주의 종류는 크게 라거와 에일로 나뉜다. 라거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맑고 탄산이 많은 맥주를 말한다. 산업혁명 이후 저장 기술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맥주로 역사는 짧지만 오늘날 전 세계 맥주라는 이름을 대표할 만큼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생산되는 맥주 대부분이 라거라고 보면 된다.

반대로 에일 맥주의 역사는 인류 문명사와 궤를 함께할 정도로 깊다. 오늘날 우리가 맛보는 에일 맥주 형태는 영국, 아일랜드, 벨기에에서 발달했으며, 과일, 꽃 향 등 다양한 풍미와 맛을 지닌 것이 특징이다. 맥주를 발효시킬 때 위로 떠오르는 효모, 즉 ‘상면 발효 효모’로 만들기 때문에 ‘상면발효 맥주’라고도 한다.

수많은 종류의 몰트를 고르는 과정.

맥주가 익어가는 시간
아이홉 맥주 공방은 자신의 손으로 맥주를 만들고 싶어 했던 청년들이 모여서 만들었다. 이들은 처음부터 공방을 열 생각은 아니었다. 맥주 만드는 법을 배우기 위해 찾아간 아카데미에서 처음 만난 홍인영·임태혁·서원형·최형섭·김용현 씨는 아카데미를 마친 후에 함께 공부도 하고 래시피도 개발하기 위해 소규모 양조장을 구하다 지금의 아이홉 공방까지 창업하게 된 것.

맥주에 대해 1도 모를지라도 너무 어색해하지 않아도 된다. 맥주에 대한 전문지식보다는 호기심을 갖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대부분. 오픈한 지 얼마 안됐지만 공방에 다녀간 후로 친해진 사람들은 가끔 들러서 같이 음식도 나눠 먹고 맥주도 마시고 한단다. 아이홉 맥주 공방이 지향하는 바이기도 하다. 김용현 대표는 “맥주를 어렵게 생각하는 분이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누구나 맥주를 만들 수 있다. 공방에 놀러 온다는 마음으로 편하게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맥주 만드는 작업은 간단한 강의부터 듣고 시작한다. 강의라면 벌써 흥미가 떨어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듣다 보면 오히려 재미있어서 얼른 맥주가 만들고 싶어진다. 역사부터 종류까지 맥주의 세계가 무궁무진하다는 걸 알게 된다.

계량 후에 맥아를 분쇄하는 과정.

당신이 좋아하는 맥주 맛은?
강의를 마친 후에는 본격적으로 맥주를 만들기 시작한다. 맥주 이름이나 종류에 대해 몰라도 부담 가질 필요가 없다. 진하고 씁쓸한 맛을 좋아하는지, 화려하고 달콤한 맛을 좋아하는지, 깨끗하고 맑은 맛을 원하는지 자신의 입맛만 알고 가면 된다. 대표와 좋아하는 스타일과 만들고 싶은 맥주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만들 맥주를 결정하고, 그 자리에서 래시피를 출력한다.

이날 우리가 만들기로 한 맥주는 에일 계열. 위키드 브라운 에일WICKED BROWN ALE이라는 이름이다. 노랑보다는 붉은색에 가깝고 쓴맛은 많지 않고 향이 좋은 맥주가 나올 예정이다.
어떤 맥주를 만들지 결정했다면 이제는 방식을 정해야 한다. 맥아를 이용해서 만드는 완전 곡물 방식과 맥아에서 맥아즙을 추출해놓은 LME(Liquid Malt Extract)를 이용해 만드는 과정이 있는데 우리는 완전 곡물 방법을 이용해 보기로 했다. 시간은 약 5시간이 걸릴 예정. LME를 이용하면 1~2시간 만에 맥주를 만들 수 있고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맛도 완전 곡물보다 그리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함께 협동하고 분배해야 하는 일이 많으니 친구들과 함께 가는 게 좋다.

완전 곡물 방식은 맥아 계량→분쇄→불림→맥아즙 짜내기→끓임→홉 투여→식히기(칠링)→효모 접종→발효→숙성 순으로 진행된다. 당일 만든 맥주는 발효와 숙성 과정을 거쳐 2주 뒤에 맛볼 수 있다.

우리가 만들기로 한 맥주에는 페일 에일을 베이스 맥아로 해서 초콜릿 몰트와 로우 캐러멜 몰트를 소량 사용한다. 래시피에 맞게 계량한 후 바로 분쇄한다. 엄마 따라가서 보았던 방앗간의 곡물 분쇄기가 공방 한쪽에 설치돼 있다. 버튼을 켜고 계량해 놓은 몰트를 조금씩 부었다. 곡물 가루가 풀풀 날리지만 진짜 맥주를 만드는 기분이 든다. 몰트 분쇄는 가루처럼 가는 것보다는 껍질의 형태를 거의 보존하도록 거칠게 빻는 게 좋다. 나중에 몰트껍질이 필터 역할을 한다고.

불 곁을 지키는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과 자연이 만드는 맥주
이제 사골국을 끓이던 커다란 들통 같은 자비 솥에 물을 붓고 분쇄한 몰트를 넣은 후에 68℃가 될 때까지 끓여준다. 68℃가 되면 재빠르게 불을 끄고 효소가 몰트의 전분을 쪼갤 수 있는 시간을 준다. 맥주는 시간과 온도가 만드는 음료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그저 거들 뿐 온도, 미생물, 공기가 만나 효모는 살리고 탄산은 만들어내며 맛과 향은 배가시킨다.

식힌 맥아즙 향을 맡아보니 율무차 같기도 하고 식혜 같기도 했다. 구수한 곡물의 향과 달콤한 향이 번갈아서 코를 자극했다. 그 맛이 어떨지 정말 궁금했다. 추출한 맥아즙을 조금 맛보았더니 냄새처럼 달콤하고 구수하다. 이대로 먹어도 참 맛있겠다.

홉을 넣으면 향긋한 특유의 향과 거품이 일어난다.

이제 서서히 맥아즙을 뽑아주는 시간. 맥아즙을 뽑고 다시 천천히 물을 붓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해야 한다. 맥주처럼 맑은 물이 나오면 맥아즙을 받아서 23L를 만든다. 물을 콸콸 붓게 되면 아래쪽에 가라앉아있던 몰트가 다시 위로 올라오고 맑은 맥아즙을 받기 어려워진다. 스푼을 받치고 조금씩 물을 흘려주는 시간이 필요하다.

맥주 만드는 과정이 크게 하기 어려운 건 없지만 혼자서 하기에는 아무래도 힘든 부분이 있다. 한번 만들 때 20L를 기준으로 만들기 때문에 혼자 들고 나르기 어렵기도 하고, 천천히 반복해야 하는 작업이 중간에 있어 친구 여럿이서 역할을 분배하고 힘을 합쳐서 하는 게 좋겠다.
맥아즙을 추출했으면 다시 끓이는 작업을 시작한다. 곧이어 홉을 투여한다. 나는 쓴 맛을 좋아하지 않아 홉을 넣지 않는 맥주를 만들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홉이 없는 맥주는 맥주가 아니라니, 어쩔 수 없지. 홉 맛을 즐겨보기로 했다.

공방에서 맛보는 맥주 맛은 지금껏 먹어본 맥주 중에 단연 으뜸이다.

홉 향을 즐길 때 당신은 진정한 ‘맥덕’
홉도 세 가지가 들어간다. 쓴 맛을 추출하기 위해 가장 먼저 넣어주는 노던 브로어, 맛과 시트러스, 패션프루트 향을 책임지는 이스트 켄트 골딩, 마지막으로 향과 청량감을 부여하는 캐스케이드를 넣어주기로 했다. 홉을 넣는 시간은 엄격하게 지켜야 한다. 노던 브로어를 넣고 정확히 45분이 지난 후에 이스트 켄트 골딩을 넣고, 또 10분이 지난 후에 캐스케이드를 넣어준다.

맥아즙과 홉이 만나면 거품이 일기 때문에 홉을 넣을 때는 살살 넣어주는 게 포인트. 팰릿 형태로 된 홉을 넣어주자 초록빛이 돌면서 거품이 부글부글 올라온다. 비로소 맥주 같은 비주얼이 나오기 시작했다. 홉은 채취한 후 6시간이 지나면 부패하기 시작해 국내에는 거의 팰릿 형태로 된 홉이 유통된다. 갓 딴 홉을 넣은 맥주 맛은 어떨지 궁금하다.

이제 칠러를 이용해 식혀줄 차례. 끓인 맥아즙을 25℃가 될 때까지 식혀주는 작업이다. 맥아즙을 식히는 이유는 효모가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칠러를 이용하지 않고 시간을 이용해 식힐 수도 있지만 그러다 보면 일반 균이 증식할 우려가 있어 대부분 칠러를 이용해 온도를 낮춘다.

숙성실에서 2주가 지나야 먹을 수 있다.

온도가 내려간 걸 확인했으면 이제 통에 넣어서 숙성하는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통에 담을 때는 최대한 산소를 넣어주기 위해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는 느낌으로 부어주어야 한다. 이쯤 되니 집에서도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붙었다.

맥주를 집에서도 만들 수 있을까. 서원형 대표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했다. 서너 번 정도 공방에서 과정이 익숙해질 때까지 익히면 집에서도 나만의 맥주를 만들어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맥주를 담은 통을 넣기 위해 항상 일정한 온도로 유지되는 숙성실에 들어갔더니 자연의 소리가 가득했다. 공기가 빠져나가는 소리가 ‘휘리릭’하고 새소리처럼 이곳저곳에서 들려왔고, 맥주가 익어가는 소리가 뽀글뽀글 들려왔다. 아, 침 고인다. 2주 뒤에 만나게 될 우리가 만든 맥주 맛은 어떤 맛일까.

아이홉 맥주공방
서울특별시 송파구 백제고분로 243 삼전빌딩
평일 12:00~21:00
주말 09:00~21:00

과정
완전 곡물 약 5시간 과정
LME 맥아 추출물(LME)
약 1시간 30분~2시간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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