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 정신 잇는 브랜드에 정체성이 산다
장인 정신 잇는 브랜드에 정체성이 산다
  • 임효진 기자
  • 승인 2017.04.15 06: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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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도어 패밀리 3…헬스포츠,스카르파, 미스테리랜치, 선데이애프터눈즈

완벽한 아웃도어 신발, 스카르파
“행복은 물건을 소유하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자신이 이룬 성과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탈리아 아웃도어 슈즈 브랜드 ‘스카르파’를 경영하는 파리조토 가의 사훈이자 가훈이다. 70년 동안 이어 내려온 그들의 이런 생각은 스카르파 제품에도 고스란히 녹아있다.

파리조토 패밀리. 왼쪽 아래에 있는 사람이 현재 스카르파 CEO인 산드로 파리조토.

스카르파는 파리조토 패밀리가 대를 이어 경영하는 브랜드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처음에는 루퍼트 에드워스 세실 기네스라는 아솔로 지역의 백작이 신발 장인들을 모아 스카르파를 시작했다. 그는 1938년 신발을 만드는 사업을 하기 위해 가죽 장인을 모집했고 아솔로 산악 지역 신발 제작사 협회(Società Calzaturieri Asolani Riuniti Pedemontana Anonima, Associated Shoe Manufacturing Company of the Asolo Mountain Area)를 설립했다. 이 모임의 약자가 스카르파SCARPA다.

처음에 여기에 합류했던 루이지 파리조토는 50년대 초반에 별도로 형제인 프란세스코, 안토니오와 함께 장인 정신을 기반으로 하는 사업체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파리조토 가의 첫 번째 브랜드 산 조르지오였다.

그 후 루이지와 그의 형제들은 아솔로 지역의 다른 17명의 장인을 모아 하나의 커다란 아솔로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그리고 1956년 5월, 스카르파와 합병하며 자신들이 만든 제품에 스카르파 이름을 입혀서 시장에 내놓았다. 그들이 만든 신발은 금세 인기를 끌었고 10년도 안 돼 명실상부한 슈즈 브랜드로 자리를 잡았다.

유럽 내에서 인지도를 쌓던 스카르파는 1965년도에 미국 시장을 겨냥한 다량의 제품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글로벌 브랜드가 되기 위한 전초를 다진다. 1970년대 들어서는 전체 생산량의 60%를 유럽, 아메리카, 극동, 오세아니아까지 전 세계로 수출한다.

그 이후 스카르파는 더욱 품질 향상과 혁신을 목표로 제품 개발에 몰두했고, 스포츠맨 사이에서 사랑받는 랠리 알파인 스키 부츠와 그린타 하이 얼티튜드 마운틴 부츠를 만들었다. 특히 그린타는 극지방 탐험과 히말라야 등정을 가는 많은 알피니스트와 과학자에게 가장 최고의 부츠로 꼽히면서 찬사를 받았다.

스카르파는 1980년대 들어서 또 다른 변혁을 맞이했다. 루이지 파리조토의 2세인 아들들이 합류하게 된 것. 샌드로, 피에로, 크리스티나, 다비드, 안드레아는 부모님을 도와 지금까지 만들어왔던 걸 뛰어넘는 제품을 개발했다. 세계 최초로 플라스틱으로 만든 터미네이터 알파인 스키 부츠다. 이 부츠는 스카르파의 전통을 이으면서 풍부한 문화적인 요소를 잃지 않았고 창의성과 상상력을 더했다. 오늘날까지도 스카르파는 최첨단 소재를 사용해서 오래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냄으로써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헬스포츠

명품 텐트라는 이름, 헬스포츠
헬스포츠는 창업주인 아릴드 헬릭슨이 1951년 노르웨이에 ‘헬릭슨 스포츠’를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1974년까지 헬릭슨 스포츠라는 이름을 사용했던 헬 스포츠는 법인으로 전환하면서 회사 이름도 ‘헬스포츠’로 변경했다.

처음에는 주로 캠핑용품을 제작하던 회사였던 헬스포츠는 침낭 개발을 시작으로 1957년에는 텐트를 출시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러던 중 1964년에 히말라야 티리치미르 산을 등반하기 위해 원정대를 꾸린 아르네 나스Arne Nass를 만나면서 탐험을 위한 혁신적이고 가벼운 원정용 침낭 개발을 시작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릴드 헬릭슨은 과로로 일찍 세상을 떠났고 그의 아들이자 현재 헬스포츠 CEO인 스테인 헬릭슨이 뒤이어 회사를 물려받는다. 홀로 북극 탐험을 하기도 했던 스테인은 아웃도어 활동과 모험을 즐기는 사람이다. 그는 극지 탐험 과정에서 아버지가 개발한 제품과 자신이 개발한 헬스포츠 제품을 사용하며 더 나은 제품 개발을 위해 몰두했다. 그 결과 1970년에 세계 최초로 터널형 텐트를 시장에 선보였으며, 1979년에는 대형 전실, 캠프 솔루션을 갖춘 텐트를 출시하며 반향을 일으켰다.

스테인의 열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999년에는 거친 겨울과 원정 여행을 위한 스발바드를, 2005년에는 공간은 넓히면서 무게는 줄인 피엘하이멘을 출시했다. 최근에는 무게가 0.85kg에 불과한 링스틴드 슈퍼라이트를 개발해 경량 텐트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며 혁신의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

선데이애프터눈즈

사랑이 담긴 최고의 자외선 차단 제품, 선데이애프터눈즈
햇빛 차단용 모자와 의류, 액세서리를 주로 생산하는 미국 브랜드 선데이 애프터눈즈는 로빈과 안젤린 부부가 만든 회사다. 로빈과 안젤린은 그의 자녀들과 피크닉을 하면서 바닥은 방수 처리돼 습기가 올라오지 않고 표면은 발수 처리돼서 물을 쏟아도 젖지 않는 담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생각한 담요를 만들었고 여기에 손잡이를 더해 ‘어드벤처 블랑켓’이라고 이름 붙였다.

지금은 거의 모든 피크닉 매트가 방수와 발수 기능을 갖췄지만 당시에는 이런 기능을 갖춘 매트는 혁신 그 자체였다. 로빈과 안젤린의 주변 친구들은 이 기발한 담요를 보고 서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했고, 그들은 ‘가족과 함께 소중한 시간을 보내는 일요일 오후’라는 뜻의 ‘선데이 애프터눈즈’ 브랜드를 만들어 사업을 시작했다.

부부는 본격적으로 피크닉 매트를 만들기 위해 거실 바닥에서 천을 자르고 방 하나를 봉재 작업 공간으로 마련했다. 그런데 천을 재단하고 나니 점점 쌓이는 남은 천 조각들이 마음에 걸렸다. 그들은 천 조각을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에 대해 고민하다가 피크닉 갈 때 쓸 수 있는 모자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부부는 어드벤처 블랑켓을 팔던 야외 공예 박람회에서 모자를 만들어 팔았고 금세 입소문이 나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햇빛을 가려주는 모자에 대한 수요가 많다는 사실을 인지한 부부는 이런 모자가 가장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지 떠올렸다. 그들은 누구보다 땡볕에서 일하는 농부들에게 이런 모자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듣고 그들을 위한 제품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95년 안젤린은 자외선을 확실하게 차단하면서 매우 가볍고 작은 곳까지 기술이 숨어있는 어드벤처 햇을 개발했다. 어드벤처 햇은 특허를 받았고 사람들은 디자인만 보고도 선데이 애프터눈즈를 떠올렸다.

엄마와 아빠가 만들었던 피크닉 매트 위에서 뛰어놀던 세 자녀 메도우Medaw, 아카시아Acacia, 매튜Matthew는 어느새 자라 2007년부터는 회사 업무에 참여했다. 선데이애프터눈즈는 전 세계에 제품을 수출하는 회사가 됐지만 여전히 가족을 위해 소규모로 시작했던 창업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선데이 애프터눈즈 카달로그에 등장하는 로빈, 안젤린 가족 그리고 그들의 손자, 손녀가 그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미스테리랜치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미스테리랜치
미국 배낭 전문 브랜드 미스테리랜치의 역사는 다나 디자인Dana Design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나 디자인은 미스테리랜치 설립자인 다나 글리슨이 1980년대 설립했던 배낭 전문 회사로 독창적이고 효율적이면서도 독특한 디자인으로 많은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다나 글리슨은 배낭 디자인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 살아온 배낭 장인이다. 그의 디자인은 심플하면서도 약간 투박해 보이지만 튼튼하고 효율적이다. 특히 그가 만든 배낭은 하중을 허리와 어깨로 적절히 분산해 장시간 착용해도 피로감이 적다. 사람들은 그가 만든 배낭에 열광했다. 하지만 다나 글리슨은 품질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와중에 개인적인 문제까지 겹치면서 브랜드를 마모트에 매각했다. 1995년의 일이다.

그 후로도 한동안 디자이너 일을 계속하던 다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더 이상 배낭을 디자인하는 게 예전처럼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돌연 스키 여행을 떠났다. 그렇게 잠시 일을 접고 쉬던 중 배낭 디자인 요청을 하나 받았다. 다나 디자인 배낭을 사용하던 특수 부대원들이 낡은 배낭을 대체 할 새로운 배낭 제작을 요청한 것이다. 다나 글리슨은 이 일을 계기로 다시 배낭을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그는 다나 디자인 배낭에서 아쉬웠던 점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미스테리랜치Mystery Ranch 브랜드를 설립했다. 하지만 아주 작은 규모로 시작해 자본과 인력이 많이 부족했다. 아버지의 상황을 모른 척 할 수 없었던 그의 두 아들 다나 글리슨 주니어 3세와 폴 글리슨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팔을 걷어붙이고 아버지를 도왔다.

미싱 작업부터 일을 배웠던 두 아들은 어느새 미스테리랜치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성장했다. 다나 글리슨 주니어3는 어드벤처 팩과 라이프스타일 디자이너로, 폴 글리슨은 나이스 프레임을 비롯한 밀리터리 팩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최근 폴 글리슨은 자신의 길을 가기 위해 독립을 했으며 다나 글리슨의 디자인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고 배운 다나 글리슨 주니어 3세는 아버지를 뛰어넘을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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