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와 피부가 만나는 그곳, 가죽 공방
피부와 피부가 만나는 그곳, 가죽 공방
  • 글 이슬기 기자 | 사진 정영찬 기자
  • 승인 2017.04.13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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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레더 아이템

모든 것이 너무 빠른 시대다. 디지털 기술은 빛의 속도로 진화하고, 공장은 그 어느때보다도 빠르고 신속하게 대량의 물건을 찍어낸다. 이렇게 상품이 된 물건들은 만들어진 속도만큼 금세 소비되고 또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많은 것이 편리해졌고, 그만큼 가치는 빛을 잃었다. 기계 문명이 우리의 생활을 매일 다른 모습으로 바꿔놓고 있지만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잊혀진 것들에 주목한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에 대항하듯 느릿한 아날로그 감성에서 우리는 위안을 얻기도 하고, 삶의 균형을 찾기도 한다.

너에게는 없는 나만의 특별한 무언가
비슷한 이유에서인지, 최근 몇년 새 가죽으로 무언가 만들고자 하는 이가 눈에 띄게 늘었다. 이전에는 잘 보이지 않던 빈티지한 느낌의 공방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무엇, 다른 물건처럼 너도나도 가지고 있지 않은 나만의 물건을 가질 수 있다는 점 외에도 가죽 공예는 더욱 특별함이 있다. 가죽을 고르고 자르고 꿰매고 붙이는 모든 과정에서 가죽과 손은 처음부터 끝까지 맞닿아 있다. 결국 가죽 공예는 피부와 피부의 교감을 통한 작업인 셈이다.

완성도가 높지 않더라도 내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일은 큰 성취감을 안겨준다. 소위 말하는 ‘금손’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누군가의 추천에 호기롭게 가죽 공예에 도전장을 던졌다. 조금의 집중력과 약간의 수고로 나만의 손때가 묻은 가죽 공예품을 손에 넣을 수 있다니,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마침 넉넉한 크기의 파우치가 필요해 온라인 쇼핑몰을 열심히 뒤지고 있을 때기도 했다.

서교동에 자리한 아코자인 가죽공방에 들어서자 가죽 특유의 냄새가 느껴졌다. 둥글게 혹은 넓게 펴서 말린 가죽 원단이 한쪽 벽면에 가지런히 정돈돼 있고, 구석에는 알록달록한 코팅제와 약품병이 즐비하다. 가죽을 통과하는 바늘 한 땀, 날카로운 구두칼 끝에 집중한 수강생들 사이로 작업에 몰두 중인 이세연 대표를 만났다.

좋은 가죽이란? ‘개취’입니다
처음 가죽을 만났을 때 누구나 놀라는 것 중 하나. 생각보다 엄청나게 많고 다양한 가죽 종류가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만들고자 하는 제품과 잘 어울리는 가죽을 고르는 일부터가 바로 진짜 가죽 공예의 시작이다. 가죽을 잘 고르기 위해서는 소재가 지닌 고유한 특성뿐 아니라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가죽은 소가죽이지만, 돼지와 양을 비롯해 악어와 뱀 같은 파충류까지 여러 종류가 존재한다. 각각 고유한 특성이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가죽 제품은 무게가 가벼운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고급 가죽일수록 가볍고 결이 가지런하다. 가죽에는 크게 두가지 종류가 있는데, 인공 약품 처리로 데미지나 오염에 강한 크롬 가죽과 천연 마감을 거친 베지터블 가죽이 그것이다. 가공을 거친 크롬 가죽은 총천연색을 만들어낼 수 있어 기성품에 많이 쓰인다. 가죽 본연의 질감을 살린 베지터블은 스크래치와 물에 약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용하는 사람의 손을 타 멋스럽게 변한다는 매력이 있다.

사실 좋은 가죽이란 지극히 주관적이어서 정답이 없다. 쓰고자 하는 개인의 취향에 맞는 가죽. 그것이 가장 좋은 가죽이라 하겠다. 처음으로 찾은 가죽공방에서는 초보자도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는 똑딱이 파우치와 캠핑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수저 파우치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본격! 칼을 잡다
에디터가 선택한 가죽은 푸에블로 가죽이다. 베지터블 계열의 가죽으로, 미네르바 가죽의 표면에 쇠구슬을 굴려 인위적으로 스크래치를 만든 소재다. 표면의 거친 느낌과 투톤의 컬러감이 인상적이지만, 사용할수록 천연가죽이 머금은 오일이 자연스럽게 올라와 광택이 나면서 세월의 멋을 더해간다.

만들고자 하는 아이템의 모양과 가죽을 결정했다면 구상한 디자인을 바탕으로 패턴 작업에 돌입한다. 패턴 작업은 제품의 본을 뜨는 일을 일컫는데, 다른 사람이 패턴지만으로도 똑같은 제품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크기, 액세서리의 위치, 실 두께 등 제작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담아야 한다. 캠핑용 수저의 길이를 고려해 수저집 패턴을 밀도 300~350g 정도의 로얄지 위에 꼼꼼히 그려낸다.

패턴지 작업을 하면서 구두칼과 처음으로 만났다. 가죽의 종류가 많은 것처럼 칼에도 종류가 많다. 그 가운데 가장 널리 쓰이는 가죽 공예의 대표적인 도구가 구두칼이다. 실제로 구두칼은 작업 공정을 통틀어 가장 오랫동안 손에 쥐게 됐다. 구두칼을 쥘 때는 반드시 엄지손가락을 세워 손잡이에 힘이 실리도록 해야 한다. 처음에는 얇은 가죽 한장을 똑바로 자르기가 어려워 30㎝ 길이의 가죽을 펼쳐놓고 가늘게 채 써는 연습부터 수행해야 했다.

한때는 무언가의 피부였음을
깔끔하게 자른 패턴지 아래 가죽을 펼치고 둥근 송곳이나 컴퍼스를 이용해 그대로 따라 그으면 본을 뜰 수 있다. 구두칼을 이용해 가죽을 재단한다. 이때 칼의 방향, 팔의 각도에 따라 가죽의 단면이 다르게 잘리기 때문에 항상 칼을 가죽과 수직이 되도록 똑바로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어깨가 비뚤어진 모양인지 에디터의 가죽은 들쑥날쑥 잘리고 말았지만 이또한 인간미라 생각하며 위안을 삼았다.

가죽도 한때는 어떤 무언가의 피부였듯, 보들보들한 겉표면이 있고, 거친 면이 있다. 가죽의 거친 뒷면에는 토코놀이라는 풀을 이용해 일어나있는 가죽 표면을 눕히는 작업을 한다. 간혹 핸드메이드 가죽 제품 가운데 사용할수록 가루가 떨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 토코놀 작업은 그런 현상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일정량의 토코놀 풀을 가죽 표면에 바르고 손가락 끝을 이용해 잘 펴발라준다. 이내 가죽의 표면이 맨들맨들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토코놀 작업 후 본딩 작업으로 가죽을 붙여주기 전까지 디테일한 장식이나 액세서리 부착 등을 먼저 작업한다. 에디터는 가죽 제품의 디테일한 멋을 살리는 장식선 작업과 이름을 새기는 공정을 추가하기로 했다. 르가드 인두기를 이용해서 가죽의 가장자리에 선을 그어주는 랭선(장식선) 작업은 간단하지만, 한층 더 고급스럽고 깔끔하게 보이는 효과를 준다. 역시 인두를 이용해 원하는 문구를 새길 수 있는 불박 작업에는 에디터의 이름을 찍어 넣었다.

한땀한땀 이태리 장인처럼
이제 가죽 위에 바느질 구멍을 내줄 차례다. 이때 쓰이는 도구가 바로 목타. 치즐, 그리프라고도 한다. 바느질선이 사선으로 이어지도록 사선 목타를 가죽에 대고 망치로 가볍게 내려쳐준다. 이때 목타가 흔들리면 바느질선이 고르지 않기 때문에 재단선과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느질 전 마지막 공정은 본딩 작업으로, 스타 본드를 써서 가죽을 임시로 붙여준다. 본드는 울퉁불퉁한 굴곡이 생기거나 너무 두껍지 않도록 헤라를 이용해 얇게 펴바른다. 본드는 표면이 투명하게 마를때까지 기다렸다가 붙여야 접착력이 좋다.

가죽 공예에 쓰이는 바느질은 새들스티치라는 기법으로, 안장 등 두꺼운 가죽을 꿰매는데 사용했던 방법이다. 두개의 바늘을 사용해 양쪽에서 끼워 교차시키기 때문에 그만큼 튼튼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가죽을 목마 모양의 기구인 포니에 고정시키고 바느질을 시작했다. 실력은 아마추어지만 자세만큼은 이태리 장인만큼 진지하게. 사실 몇년만에 처음으로 바늘을 잡아본 덕에 서투른 솜씨가 금세 탄로났다. 가죽공예에 쓰이는 바늘이 끝이 뭉툭해 망정이지 하마터면 소중한 가죽에 피를 묻힐뻔했다.

바느질 선을 따라 둥근 망치로 쳐주면 세시간에 걸친 바느질은 이제 끝. 신기하게도 망치질 한번으로 바느질선이 납작하게 안정되면서 꽤 괜찮아 보인다. 여전히 뒷면은 엉망이지만. 끝으로 두개면이 만나는 옆면에 다시 한번 토코놀을 발라 마감처리를 한다. 마른 뒤 물소뼈로 만든 본폴더를 이용해 문질러주면 표면에 광택이 나기 시작한다. 이 방법은 가죽의 질감을 살리는 마감 기법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또 신기하게도 가죽은 사람의 피부와 상당히 비슷하고 또 민감하다. 가죽 제품은 1년에 한두차례 가죽 전용 보호제를 바르면 그만큼 오래 사용할 수 있다. 이때 가죽 종류에 따라 사용하는 보호제가 다르기 때문에 사용전에 반드시 확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죽 보호제는 혹시모를 얼룩을 사전에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평소에 보관할 때는 통풍이 잘되는 서늘한 곳이 좋으며, 곰팡이가 생겼다면 젖은 천으로 닦아낸 후 볕이 잘 드는 곳에 두고 건조한다. 가죽 제품을 사용할 때 물로 인한 얼룩이 가장 쉽게 생기는데, 물이 묻었다면 즉시 마른 천이나 종이로 물기를 닦아내도록 한다.

아코자인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로8길 34 3,4층
www.akosig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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