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다와 절벽의 詩, 이탈리아 남부
하늘과 바다와 절벽의 詩, 이탈리아 남부
  • 글 사진 이두용 기자
  • 승인 2017.02.19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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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 백미 중의 백미로 손꼽히는 휴양지, 포지타노
영화스크린이나 액자를 통해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소렌토의 풍광.

비가 오는 날엔 비가 와서, 맑은 날엔 또 맑아서, 해가 뜨거나 질 땐 또 그만의 이유로 눈에 보이는 풍광이 한 폭의 유화가 되는 곳. 이탈리아 남쪽 해안 마을이다. 새하얀 모니터와 맞대고 앉아 타자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하루를 보내는 우리. 하지만 언젠가 일탈을 꿈꾸는 그대를 위해 몽환적인, 혹은 비현실적인, 아름다운, 때론 절묘한 하늘과 바다와 절벽이 있는 풍광으로 인도한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하면 ‘돌아오라 소렌토로’가 흥얼거려진다.
아말피 해안도로를 따르다 보면 아찔한 절벽에 지어진 건물들을 볼 수 있다.

로마와 다른 매력 남부로
“생각했던 것보다 별론데?” 로마에 머문 지 막 한 달을 넘겼을 때 로마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한 말이다. 한 번도 와보지 않았던 유럽. 거기에 이탈리아 로마. 마법의 성처럼 여겨져 오기 전부터 기대가 컸는데. 생각보다 많은 길거리의 쓰레기, 건물 벽에 가득한 낙서와 그림들, 명소마다 넘쳐나는 호객꾼에 밤길이 위험하다는 이야기까지. 몇 년 살아본 것도 아니면서 흥미를 잃어버렸다. 친구 집에 얹혀있는 주제에.
“사람 사는 곳 다 똑같지 뭐. 그럼 남부에 한 번 다녀와 봐. 거긴 또 다를걸?” 그 한마디에 사라지던 열정을 영혼까지 끌어올려 바로 다음 날 이른 아침 소렌토로 향했다. 출발이야 했지만, 소금에 절여놓은 파김치처럼 축 늘어진 호기심이 단박에 살아날 거란 기대는 없었다.

포지타노의 해변에서 올려다본 마을은 여행의 피로를 씻기에 충분했다.

사실 유럽 여행 좀 해봤다고 하면 이탈리아 남부 해안을 모를 리 없다. “할리우드 스타 누가 거기서 성대한 결혼식을 했다더라” , “누구는 근처에 섬을 샀다며” , “누구는 영화 촬영을 끝내면 바로 이탈리아로 날아와 오토바이를 타고 해안 달리는 걸 즐긴대” 등등 셀럽들의 끊임없는 이야기 목격담과 함께 ‘그만큼 아름다운 곳’으로 통하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하지만 로마에 한 달을 살았음에도 난 사실 잘 몰랐다.
나폴리까지 내려와서 해변도로에 올라 아말피 해안을 달리기로 했다. 이 해안은 본격적인 이탈리아 남부 투어의 시작점인 캄파니아 주 소렌토에서 포지타노~프라이아노~아말피~마이오리~살레르노를 잇는 약 80km를 말한다. 드넓은 하늘과 청명한 바다, 아찔한 절벽이 이어지는 곳으로 세계 모든 이에게 사랑받는 명소다. 1997년에는 깐깐하기로 소문난 세계문화유산에서 80km 코스 전체를 등재하기도 했다.
해안도로에 오르니 우측으로 끝도 없는 바다가 펼쳐진다. ‘에이 우리나라에도 이 정도는 많지’하려는 찰나 유명작가가 그린 화려한 유화작품 같은 풍경이 나타났다. 소렌토였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본 듯한 언덕 위에 지어진 아름다운 건물들.

그대여 돌아오라 소렌토로
“아...!” 외마디 감탄사가 전부였다. 어지간한 감동에는 어찌어찌해서 좋다거나 그러그러해서 대단하다는 등의 소감을 내놓게 마련인데 급작스레 큰 감동을 하면 사실 아무 말 못 하는 경우가 더 많다.
조각칼을 든 신이 조심스레 깎아 놓은 듯한 절벽(이 대목에서 신은 예술 감각을 좀 가지고 있는 게 좋겠다), 에메랄드빛 지중해 위로 수없이 반짝이는 윤슬. 바다를 끌어안고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까지 조금은 비현실적인 경치가 일순간 눈앞을 막아섰다. 조금 과장하면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실제가 아니라 영화 스크린이나 액자를 통해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휴양지다 보니 해안과 골목, 상점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가 여유로웠다.

차를 세워놓고 밖으로 나가보니 현실은 더 대단했다. 항구에서 뻗어 나간 거리와 골목 주변에 세워진 알록달록한 건물들, 마을로 흘러가는 듯 묘한 기운을 품은 하늘, 이들과 절묘하게 하나가 된 독특한 색의 바다. 저 아래 멀리 보이는 도시는 주변의 시선을 흡입하는 마법이 깃든 마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시쳇말이지만 이곳을 ‘세젤예(세계에서 제일 예쁜)’ 마을이라고 붙여주고 싶었다.
이 아름다운 풍광을 보고 그 누가 노래하지 않을 수 있을까. 100여 년 전 작곡가 E.데쿠르티스가 만든 ‘돌아오라 소렌토로Torna a Surriento’가 여전히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감각을 잃은 예술가가 이곳을 찾는다면 작품에 대한 영감이 떠올라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음악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풍경이 마법처럼 눈앞에서 사라질까 봐 사진기의 셔터를 분주하게 눌렀다. 흥이 깨질 것 같아 마을에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후에도 두 번이나 더 갔지만, 소렌토 시내는 방문하지 않았다.

다양한 식료품을 파는 상점. 이마저도 그림책에 등장하는 장소 같다.

그림동화 속 해안마을 산책
다시 차에 올라 해안도로를 달렸다.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면 순간순간 나타나는 절경에 마음을 뺏겨 자꾸만 갓길에 차량을 멈추게 된다. ‘언제 이곳에 다시 와서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을까’하는 마음에서 그렇다. 하지만 매일 온다고 해도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은 한 번도 같지 않다.
넉넉하게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배낭 하나에 카메라 하나를 메고 아말피 해안 80km 트레킹에 도전해봐도 좋겠다.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그림 속 풍경을 걷는 경험은 다른 어떤 곳과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을 것 같다.

날이 어두워지면 바다가 보이는 카페와 레스토랑으로 삼삼오오 모여든다.

소렌토에서 굽이굽이 길을 따르다 또 한 번 ‘아...!’ 하는 외마디 감탄이 쏟아지면 그곳이 바로 포지타노일 가능성이 높다. 소렌토 풍광에 너무 크게 반해서 ‘이제 뭐 놀랄 건 없겠지’ 싶었는데 포지타노가 나타나자 이번엔 웃음이 나왔다. “하하하 저게 말이 돼?”
사실 이곳은 온 나라가 관광지라고 불리는 이탈리아에서도 백미 중의 백미로 손꼽히는 휴양지다. 절벽과 이어진 경사면을 따라 아슬아슬하게 지어진 집들은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내고, 해변과 도로 주변에 늘어선 예쁜 카페와 레스토랑은 동화 나라를 떠올리게 한다.
소렌토를 보고 작곡가 E.데쿠르티스가 곡을 썼다면 포지타노를 본 헤밍웨이와 존스타인 벡 등의 작가들은 그들의 작품에서 이곳을 칭송했다. 이름만 들어도 귀가 번쩍하는 전 세계 셀럽들이 이곳에 별장 하나 마련하기를 꿈꾼다고. 덕분에 포지타노는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선정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포지타노는 맑은 날에는 맑아서, 흐린 날에는 흐린 게 아름다움의 이유가 된다.

이곳은 여유 있게 둘러봐도 하루면 충분하다. 출발은 언덕 아랫마을 중심에 있는 산타마리아 아순타 성당을 추천한다. 이곳에서부터 미로처럼 이어진 골목마다 아기자기한 기념품 가게와 카페, 숙박시설이 즐비하다. 마을을 돌아보는 데는 하루면 되지만 상점을 꼼꼼하게 둘러보면 며칠도 모자라다.
한여름엔 에메랄드빛 바다에서 수영을 즐기고, 보트에 올라 지중해를 질주할 수도 있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이곳의 특산품인 레몬으로 만든 레몬 맥주를 즐기는 것도 필수코스. 영화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면 약 50유로에 빌릴 수 있는 스쿠터를 타고 포지타노를 만끽할 수도 있다.

항구에서 이어진 길을 따라 나지막한 건물이 줄지어 서서 마을을 이룬다.

화산재가 덮어 버린 휴양도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포지타노에서 하루를 묵었다. 땅거미가 지는 바다는 하늘과 함께 어둠에 물든다. 레몬 맥주 한 잔을 마시며 마주한 일몰은 감동적인 영화 한 편을 본 느낌이었다. 더욱이 어두움이 내린 포지타노에 전등이 하나둘씩 켜질 땐 눈물이 날 만큼 묘한 감정을 느꼈다. 시간을 멈출 수만 있다면 그렇게 가만히 머물고 싶었다.
다음날 이탈리아 남부 투어를 마무리하면서 폼페이로 향했다. 아말피 해안의 그림 같은 경치와는 사뭇 다르지만, 역사와 이야기만으로는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실제 남부로 여행하는 대부분 사람은 이곳을 필수코스로 넣는다.

약 2km 성벽으로 둘러싸인 폼페이는 거리 양쪽으로 다양한 유적이 남아있다.

이곳은 알려진 대로 약 2,000년 전 화산재와 용암으로 뒤덮여 순식간에 사라진 고대도시다. 1748년 발굴이 시작되면서 당시 도시의 모습과 사람들, 문화 등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발굴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매일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6m나 되는 화산재가 도시 전체를 덮고 있었지만 발굴할 때마다 나타나는 그 당시의 사람들과 건물, 거리 등의 모습이 워낙 생생했기 때문이다.
유적지에 도착하니 호기심과 함께 애잔한 마음이 들어 차분해졌다. 입구를 지나 야트막한 언덕으로 이어진 계단을 오르니 높다란 기둥이 나타나더니 그 뒤로 옛 도시의 거리가 보였다. 약 2km 성벽으로 둘러싸인 폼페이는 시청과 그 앞 광장을 시작으로 사방에 시장과 신전, 여관과 술집, 목욕탕 등이 남아 있다.

2,000년의 세월을 무색하게 만들 만큼 오롯하게 남은 폼페이 유적.

비록 무너진 건물 잔해지만 건축양식이나 기법을 그대로 볼 수 있어 신기했다. 벽에 그려진 당시 사람들의 생활 모습이 너무 생생해 어딘가에서 이런 복장을 한 사람들이 걸어 나올 것 같았다.
발굴된 유물과 사람을 보관하는 곳엔 화산재에 둘러싸여 죽어간 사람이 있었다. 화산폭발에 놀라 엎드린 사람, 아이를 안고 고개를 숙인 사람, 옆으로 돌아누운 사람 등등 형체가 다양하다. 그 모습이 마치 밀랍인형으로 재현한 모형처럼 동작이 섬세하다. 넓지 않은 유적이지만 둘러보는 동안 내게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아서 좋았다.

유물을 보관하는 곳에서 화산재에 둘러싸여 죽어간 사람을 볼 수 있었다.
과거 사람들의 풍습과 문화가 벽화에 그대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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