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 장소 고민 중이라면, 르 코르뷔지에 전으로
데이트 장소 고민 중이라면, 르 코르뷔지에 전으로
  • 임효진 기자
  • 승인 2017.02.09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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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6일까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려…미공개 작품 대규모 공개
왼쪽부터 피카소와 르 코르뷔지에. © Centre Pompidou, MNAM-CCI, Dist. RMN-Grand Palais / Gisèle Freund, reproduction de Guy Carrard

그의 이름이 낯설지 않다. 미술과 건축에 문외한이지만 어디선가 강렬하게 그의 이름을 보았던 게 분명하다. 건축의 신, 현대 건축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다.

유럽에서는 동전에 얼굴이 새겨져 있을 만큼 유명하지만 한국에서는 아는 사람은 매우 잘 알지만 모르는 사람은 새까맣게 모르는 사람. 프랑스에서는 그가 숨을 거뒀을 때 루브르 궁에서 국장으로 그의 장례를 치렀다. 지난해에는 이례적으로 전 세계에 그가 건축한 17개 건물이 동시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르 코르뷔지에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폐허로 변해버린 도시에 오갈 데 없이 길거리로 나앉은 사람들을 보고 처음으로 공동 주택을 설계한 사람이다. 당시에는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 올리고 정교하고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한 고전적인 집이 여전히 오랜 시간을 들여 지어지고 있을 때였다. 집이 사람이 살기 위한 공간이 아닌 권위와 지배를 위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시대정신이 있던 그는 기존 방식에 비판을 제기하며 ‘돔이노 이론’을 탄생시킨다. 오늘날 모든 건축에 적용되는 방식으로 얇은 바닥 판, 판을 지탱하는 기둥, 그리고 오르내릴 수 있는 계단이 있는 걸 말한다.

열린 손. ©FLC/ADAGP, 2016.

옥상정원도 그의 아이디어다. 집을 지어 자연의 일부분을 침해하는 걸 미안하게 생각하며 옥상에 정원을 만들어 자연에 다시 돌려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필로티 구조도 최대한 건물을 지면에서 띄워서 자연의 면적을 덜 차지하고자 했던 그의 마음이 녹아져 있다. 그 결과 건물은 사람들의 왕래를 방해하지 않았고, 시야도 막지 않았다. 또한 사람들은 먼지로부터 조금 더 자유로워졌다.

4평의 기적 카비뇽. ©FLC/ADAGP, 2016.

무엇보다 감동적인 건 마지막에 볼 수 있는 '4평의 기적' 카비뇽이다. 인생의 마지막을 보낸 곳인데 미니멀라이프의 정점에 있는 집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사는데 불편함이 없는 최적의 크기인 모듈러 이론이 적용됐다. 모듈러는 당시에는 조롱거리였지만 아인슈타인이 직접 실험하고 입증한 이론이기도 하다. 지금은 건축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에 적용되는 보편 이론이 됐다.

카비뇽은 물건이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점점 더 넓은 집을 향해 쫓아가는 우리들에게 집이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할 기회를 준다. 그나저나 그 4평 공간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무엇하나 부족한 것 없이 완벽하다.

전시 구성은 독특하다. 그가 그렸던 다양한 그림과 빛나는 그의 생각이 담긴 글씨들이 벽면을 채우고 있다. 곳곳에 읽을거리들도 꽤 있다. 르 코르뷔지에 박물관에 들어온 기분이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그의 건축 작품을 면밀히 들여다보고자 한다면 조금 부족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도슨트 해설시간만 해도 1시간을 훌쩍 넘기고 또 그로부터 1시간 정도를 찬찬히 봐야지 그를 조금이나마 안다고 얘기할 수 있다고 하니 꽤나 체력을 요구하는 전시이기도 하다. 걱정할 필요는 없다. 곳곳에 배치된 조형물, 컬렉션, 가구, 그의 사상이 엿보이는 깊이 있는 말들, 그림, 마지막엔 그가 아내와 여생을 마무리했던 4평 공간을 그대로 옮겨놓은 카비뇽까지 지루할 틈 없이 펼쳐지는 ‘종합예술인’ 르코르지뷔에를 만나는 일은 시간이 짧게만 느껴진다.

튤립 다발 앞에 앉은 여성. ©FLC/ADAGP, 2016.

하루 3회 도슨트를 하는데 꼭 들었으면 한다. 시간 맞추는 게 여의치 않다면 빅뱅의 탑, 최승현 씨가 들려주는 오디오 해설도 좋겠다. 동굴 저음을 들으면서 작품 감상을 하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나는 나중에 프랑스 남부를 여행할 일이 생긴다면 르 코르뷔지에가 만든 최초의 공동주택, 유니테 다비타시옹에 가 볼 생각이다. 예약하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서 하룻밤 묵을 수 있는 호사도 누릴 수 있다고 하니 잊지 말고 꼭 한 번 찾아가 봐야겠다.

최초의 공동주택인 유니테 다비타시옹. ©FLC/ADAGP,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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