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서 봉사 활동하기
아프리카에서 봉사 활동하기
  • 글 사진 정효진 기자
  • 승인 2017.01.24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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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여행자의 지구별 자전거 여행, 아프리카 스와질란드

친절한 남아공을 떠나려니 아쉬웠다. 결국, 보츠와나에서 일주일을 머문 뒤 다시 남아공으로 되돌아가기로 했다. 보츠와나 이민국은 좀 까다로웠다. 모든 나라 이민국 서류에는 머물 주소를 적는 칸이 있지만 실제로 적은 나라는 캐나다, 미국 정도다. 보츠와나 이민국 직원이 머물 주소를 적으라며 인상을 쓸 때 살짝 겁먹었다. 보츠와나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성공적인 나라로 꼽힌다. GDP는 남아공보다 낮지만, 정치가 안정됐다. 사형제도를 집행할 정도로 법이 엄격해 범죄율이 낮다. 많은 남아공 사람이 보츠와나를 부러워한다.

갑자기 차를 세우더니 내게 현금을 건네주던 현지인.

남아공으로 돌아가다
오후 6시가 넘어 중소 도시를 지나쳐 달렸다. 그런데 아무리 달려도 머무를 집이 안 보였다. 우여곡절 끝에 한 가정집에 텐트를 칠 수 있었다. 여행 중 가장 힘든 점은 잠자리 찾기다. 그런 면에서 남아공은 천국 같았다. 사람들이 항상 문을 활짝 열어 주고, 심지어 내가 가는 경로에 자기 친구가 있으면 소개까지 해줬으니 말이다. 남아공을 벗어나니 갑자기 모든 게 예전으로 돌아왔다. 보츠와나 사람들은 흔쾌히 집 안에 초대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덕분에(?) 특이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이곳 사람들은 가끔 밖에서 잔다. 왜냐하면, 보츠와나는 안전하니까! 집주인이 내 텐트 옆에서 자겠다며 걱정 말란다. 남아공에서는 항상 집 안으로 초대받았는데, 보츠와나에서는 집 밖에서 집주인이 함께 자주니 기분이 요상했다.

조이의 지인들과 사파리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남아공에서 만난 사람이 보츠와나 수도 근처에서 라이온 파크를 운영하는 부부를 소개해줬다. 이곳엔 사자가 다섯 마리 산다. 매일 밤 울어 댄다. 정말 오싹하고 살벌한 이웃이다. 며칠 그들의 집에 머물다 남아공으로 다시 자전거를 타고 돌아갔다.
남아공에 돌아온 가장 큰 이유는 한 달간 봉사활동 할 곳을 찾기 위해서다. 예전에 나에게 머물 곳을 제공해줬던 한 현지인이 프리토리아에 있는 고아원을 위해 후원금을 모으는 일을 했다. 혹시 그녀를 통해 봉사활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돌아온 것. 하지만 결국 실패했다. 어쩔 수 없이 다음 나라로 이동해야 했다.
한참 오르막길을 올라가는데 차 한 대가 서더니 나에게 성큼성큼 걸어와서 아침에 날 봤다는 얘길 한다. 그러다 갑자기 지갑을 꺼내고는 돈을 준다.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명함을 줄 줄 알았다. “너에게 기부할게.” 2만5,000원가량의 돈과 짧은 말을 남기고 바로 뒤돌아선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정신이 없었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가는 그를 급히 멈춰 세웠다. 그의 이름은 프릭 반 디크. 이곳엔 친절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나는 이곳에서 끊임없이 받았다. 봉사활동으로 받은 걸 돌려주는 일을 못 해 아쉬운 마음뿐이다.

뱀을 잡는 멋진 여성 조이와 그녀의 딸.

뱀을 잡는 조이
남아공 안에는 조그마한 나라 두 개가 있다. 그중 한 개가 스와질란드다. 언뜻 보면 스위스(Switzerland)와 발음이 비슷해 ‘아프리카의 유럽인가’하는 호기심이 생길 수도 있다. 풍경도 스위스처럼 산으로 둘러싸였다. 하지만 사실 스와질란드는 GDP가 낮고 에이즈가 만연하고 독재자가 존재하는, 전형적인 아프리카 국가다.
스와질란드로 들어오자 고질적인 아프리카의 문제들이 보였다. 10살도 채 안 되는 아이들이 고속도로 위를 아슬하게 걸어가고 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기 위해 매일 약 10km를 걷는다. 교육비가 비싸 그렇게라도 가는 것이 행운일 정도다.
자전거를 타다가 너무 더워서 기진맥진하고 있을 때 한 코카서스인이 괜찮냐고 묻더니 자기 집에 와서 쉬라고 했다. 조이라는 이름의 여성이다. 딸과 함께 사는 조이는 못하는 게 없었다. 특히 뱀을 잘 잡는다. 사람들은 조그마한 슈퍼를 운영하는 조이에게 자주 연락해 뱀을 잡아달라고 부탁한다.

조이의 가족, 친구들과 함께 간 사파리.

하루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한 가정집에 뱀이 출몰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도 따라나섰다. 코브라였다. 코브라는 2m까지 독을 쏠 수 있어서 선글라스를 꼭 써야 했다. 코브라가 머리를 세우고 소리를 내며 조이를 위협할 땐 정말 무서웠다. 결국은 코브라를 통 안에 가두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조이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차를 세우더니 코브라를 숲에 풀어주었다.
두 번째로 뱀을 잡은 곳은 농장이었다. 조이는 그냥 놔두면 밤에 저절로 나갈 거라고 했지만, 농장주는 꼭 잡아달라고 애원했다. 저번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이었다. 하지만 힘겹게 잡은 뱀을 이번에는 집 뒤에 풀어주는 게 아닌가? 사실 그녀는 뱀을 매우 사랑한다. 뱀을 숲에 풀어놓으며 “어휴 가엾은 것, 먹은 것을 다 토해냈어. 뱀은 절대 해로운 동물이 아니라고. 먼저 공격하지 않는 이상은 절대 공격하지 않아.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쥐 같은 걸 잡아주는 동물이라 정말 이로운데, 사람들은 왜 이렇게 뱀을 못 죽여 안달인지 이해를 못 하겠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뱀이 토해놓은 쥐 두 마리가 보였다. 뱀은 위험한 동물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가엾고 안타깝게 보였다.

환자에게 일회용 장갑 사용법을 알려 주는 중.

봉사활동을 실천하다
조이는 ‘호프하우스’라는 요양원의 환자를 지원해주고 있었다. 그녀 덕분에 요양원에 방문할 수 있었다. 수녀님과 가톨릭임원장 윌리엄에게 최종 허락을 받아 2주간 봉사활동을 하기로 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 8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조이 집에서 요양원까지는 자전거로 30분 정도 걸린다.
호프하우스에는 25개의 조그만 집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이 중에 환자가 있는 집은 대략 15개. 아침에 간호사들과 함께 모든 집을 방문한다. 이후 간호사들을 도와주고 개인적으로 일부 집을 방문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난다.
환자 A의 경우 뼈만 앙상하게 남은 상태였다. A는 HIV/AIDS 환자다. 23살의 젊은 여성인데, 언니 3명, 오빠 1명. 총 5명의 자식이 있는 가난한 집 안의 막내로서 사회적인 혜택을 제대로 못 받고 자랐다. HIV는 바이러스의 명칭이다. 한글로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라고 불린다. HIV 바이러스가 몸속에 침입하여 면역기능을 저하한다. HIV로 인해 몸이 약해져 각종 질병에 걸리는 것을 AIDS, 에이즈라고 한다. 스와질란드에는 인구의 50%가 HIV/AIDS 환자라고 한다. A는 무뚝뚝한 편이었다. 약간의 영어를 사용할 줄 알지만 많은 대화를 한 적 없어서 내내 그녀의 감정을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런데 떠나기 전날, 그녀가 내게 “방문해줘서 정말 좋았다”고 말했다.

호프하우스 현지 봉사자들의 모임.

사실 봉사활동을 한 건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다. 나름 꾸준히 봉사 활동을 했다. 제주도에 내려가 잠깐 살았을 때 제일 먼저 알아본 게 봉사활동 단체였고, 캐나다에 정착했을 때도 제일 먼저 봉사활동 단체를 찾았다. 아메리카 대륙 여행에서 봉사활동을 안 해 많이 불편했다. 아프리카에서 적극적으로 찾은 것도 이런 이유다. 그리고 이곳에서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시선을 느꼈다. 마치 봉사 관광 온 사람처럼 취급하는 태도였다. 나는 그냥 평소 하던 것을 하는 것뿐인데 억울한 면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A가 내게 그런 말을 해주니, 참 고마웠다. 내 마음이 전달된 것 같았다. 내가 봉사활동을 하는 가장 궁극적인 목표는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기 위함이다.

남은 환자 이야기
환자 B는 2007년 HIV에 걸렸다. 발병 뒤에도 꾸준히 가정 청소부로 일하다 두 달 전, 몸이 나빠져 이곳으로 왔다. 피부가 검게 변하는 증상이 팔 여러 곳에 나타났다. B에겐 21살과 6살짜리 두 아들이 있다. 내가 떠나는 날 환자 B도 몸이 좋아져서 호프하우스를 떠났다.
C의 경우 2011년 HIV에 걸렸다. 최근 뇌졸중으로 쓰러져서 중풍 증세를 겪고 있다. 시력이 너무 나빠져서 제대로 사물을 구분할 수 없다. 딸이 간병인으로 3개월 정도 함께 있었다. 내가 호프하우스를 떠나기 전에 환자가 먼저 이곳을 떠났다. 시력이 회복되지 않을 거 같고, 입원비가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됐기 때문이다.
왜 스와질란드는 HIV/AIDS 환자가 인구의 절반을 차지할까? 복합적인 문제가 있다. 교육비가 비싸서 많은 사람이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한다. 자연히 안전한 성접촉을 배울 기회가 없다. 게다가 이곳은 일부다처제다. 일반적으로 HIV바이러스는 여성이 남성에게 옮길 일보다는 남성이 여성에게 옮길 확률이 8배 높다. 무엇보다도 가부장제도로 인해 여자가 남편에게 피임을 요청할 경우 남편으로부터 버림받는다.

호프하우스 전경.

이런 복합적인 문화가 HIV 바이러스의 전염성을 악화시키고 있다면 정부는 일부다처제를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이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13명의 부인을 데리고 산다는 것. 13명을 데리고 사는 왕이 국민에게 한 명의 부인만 가지라고 할 수 있겠는가?
환자 D는 내게 너무 특별한 존재였다. D가 호프하우스에 들어 온 날은 내가 봉사활동을 시작한 날이었다. 뼈만 남은 상태에다가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HIV/AIDS 질병을 앓고 있는데 면역체계가 완전히 손상됐다. HIV 4단계 중 치명적인 4단계였다.
D의 욕창 상태는 최악이었다. 이곳에서 욕창을 처음 목격했다. D의 욕창은 일반 성인 주먹만 한 면적이었다. 손가락 한 마디만큼 깊은 구멍이 나있었다. 어쩌면 이렇게 큰 구멍이 인간의 몸에 날 수 있을까. 나는 D가 말을 못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밤 D가 엄마에게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했다. 알고 보니 D는 깊은 우울감에 말 자체를 거부하는 중이었다.
뒤늦게 D가 영어를 하는 걸 알게 되어 이러저러한 많은 얘기를 했었으나, 아쉽게도 그녀의 반응은 없었다. 눈동자만이 움직이는 게 보일 뿐이었다. 떠나는 마지막 날, 나는 D에게 HIV/AIDS에 대해서 공부한 걸 설명했다. 약을 잘 챙겨 먹는다면 일반인처럼 생활할 수 있고, 지금도 많은 약이 개발되고 있으니 희망을 잃지 말라고 했다. 내 착각일까? 그녀의 눈동자가 순간 커졌다.
D의 엄마 역시 HIV 환자다. 엄마의 감염 경로는 너무나 비참하다. 이곳은 교통수단이 최악이다. 교통비가 한국보다 훨씬 비싸다. 대중교통도 잘 안 되어 있다 보니 많은 사람이 지름길로 가려고 깊은 숲속을 걷게 되는 일이 많다. D의 엄마는 숲속을 걷다 강간당했다. 3명의 청소년에게 온갖 구타와 강간을 당한 후 HIV에 걸렸다. HIV는 일반 성접촉보다 성폭행을 당했을 때 걸릴 확률이 훨씬 높다.

호프하우스 마지막 날, 만난 사람들의 사진을 인화했다.

아프리카 교육의 현실
가톨릭임원장 윌리엄과 아프리카에 관해서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어느 날 윌리엄이 지역 회의가 있다며 직접 체험하길 권유했다. 회의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스와질란드 언어로 진행됐지만, 회의장에 도착하기 전 사무실 직원과 많은 대화를 나누어 회의를 지켜보는 게 흥미로웠다. 지역주민들은 특별한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닌 현지 자원봉사자들이다. 가톨릭에서는 이들에게 3달에 7만 원 정도를 지급한다. 해외나 다른 곳에서 온 자원봉사자가 아닌 현지 주민이 직접 자신의 지역을 보살피는 게 인상적이었다. 더 놀라운 건 지역 주민 모두 열성적으로 회의에 참석했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해외의 봉사 단체에 크게 의존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계기로 깨닫게 되었다. 지역주민이 오히려 더욱더 열성적으로 자신의 지역을 위해서 힘을 쓸 때도 있다는 것을.
호프하우스 마지막 날, 만난 사람들의 사진을 인화했다. 이번에 HIV/AIDS에 대해서 깊이 생각할 기회를 얻었고, 그들도 우리와 같은 정상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여러 가지 아프리카의 문제점에서도 깨닫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교육에 있다고 생각한다. 교육이 제대로 서지 않으니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더 문제는 낮은 임금에 비해 학비가 비싸다는 것이다. 정부는 자신들의 부정부패를 쉽게 숨기려고 국민을 계속 우매하게 하는데 앞장 설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큰 과제를 꾸준히 풀어야 한다. 많은 아이가 학교에 가서 교육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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