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무쌍, 한 폭의 소백화(畵)로
변화무쌍, 한 폭의 소백화(畵)로
  • 글 이슬기 Ι 사진 정영찬 Ι 장비협조 MSR 
  • 승인 2017.01.09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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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소백산 연화봉 트레킹

모든 것을 감싸고 있던 어둠 사이로 한 줄, 두 줄, 하늘과 산의 경계가 그어진다. 발아래 깔린 구름이 발갛게 물들자 이윽고 산 너머 찍히는 붉은 점 하나. 한 번 불길이 오른 하늘은 일순간 세상을 또 다른 빛깔과 온기로 메운다.‘반짝’.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는 산그리메가 찬연한 금빛을 띠는 순간, 이 우주는 숨이 멎는 듯한 황홀감에 빠져든다. 새로운 태양의 탄생이다.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겨울왕국에 들어온 기분이다.

순백의 소백산 산릉을 따라
‘뽀드득뽀드득’. 밤새 내린 눈이 하얗게 깔린 겨울 아침의 죽령.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새 눈길이 반갑다. 죽령탐방지원센터에서 연화봉으로 이어지는 길은 널찍하게 시멘트로 포장돼 있다. 소백산천문대까지 자동차가 오르내리는 길이라 어쩔 수 없지만, 그 탓에 조금 심심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새벽부터 짙은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통에 주변이 온통 희뿌옇다.출발지부터 대피소가 자리한 제2연화봉(1,358m)까지는 약 4.2㎞로 백두대간 소백산 구간에서 가장 수월한 코스다. “모자 단단히 쓰세요. 바람이 심상치 않네요.” 이번 여정의 동행인은 배우 김빛새날 씨. ‘천상의 화원’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소백을 약속하고 끌어들였는데, 날씨가 기대만큼 따라주지 않는다. 단조로운 풍경이 이어지자 하얀 눈꽃이 흐드러진 산정에서의 설경을 상상해 본다. 마음만은 벌써 일출을 보고 있다.

제1연화봉으로 오르는 길 양쪽으로 나뭇가지마다 눈꽃이 만개했다.

소백은 작지 않다
2시간여 걸어 제2연화봉에 올라서니 바람의 기세가 만만찮다. 세차게 불어오는 북서풍의 공격이 쉴 틈 없이 몰아친다. 멋들어진 산정의 낙조 풍경을 기대했는데, 일몰은 고사하고 한 치 앞 분간도 힘든 지경이다. 어스름이 깔리며 캄캄해지는 발밑을 보고 해가 졌음을 짐작할 뿐이다. 아쉬움은 다음날 일출을 소망하며 달래기로 했다.

죽령탐방지원센터에서 대피소가 있는 제2연화봉까지는 2시간 남짓의 완만한 오르막이 이어진다. 초입 부근에 자리한 잣나무쉼터에서 잠시 겨울 숲을 감상했다.
다행히 둘째 날은 날씨가 맑아 시원스럽게 뻗은 소백의 산세와 마주할 수 있었다.


소백산(小白山). 작은 이름을 가졌지만 소백은 결코 작지 않은 산이다. 최고봉인 비로봉은 1,439m에 달하고, 연화봉 역시 1,357m로 영주 권역에서 가장 높다. 게다가 태백산, 백양산 등 백두대간 줄기의 숱한 험산들도 소백산의 거친 칼바람은 따라오지 못한단다. 이렇듯 ‘겸손’한 소백산은 웅장하면서도 모난 데 없이 부드러운 능선으로 산 손님을 푸근하게 품어준다.

비로봉이 눈 앞에 펼쳐지는 연화봉 정상에서.

정유년(丁酉年), 안녕!
오전 7시 20분쯤, 하얗게 출렁이는 운해 위로 해가 모습을 드러낸다. 저 멀리로부터 세상이 황금빛으로 물든다. 찬란한 태양의 마술, 소망했던 소백 일출의 장관이다. 살을 에는 듯 옷깃을 파고들던 칼바람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온 우주가 잠시 멈춘 듯한 찰나, 마음속으로 떠오르는 몇 가지 바람을 읊는다. “이래서 산에 오르나 봐요. 절대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지금 이 장면.” 몇 년 만의 산행이 녹록지만은 않았던 새날 씨도 이 순간만큼은 감격한 표정이다. “소원 빌었어요?” “그럼요. 새 영화 대박나길!” 새해에는 모두에게 지금보다 더 밝은 태양이 뜨기를 기도했다.

차갑게 언 볼을 녹여주는 모닝커피 한 잔.

변화무쌍한 한 폭의 소백화(畵)
어제는 먹구름과 눈보라가 그렇게 기승을 부리더니, 오늘은 따스하고 포근한 것이 꼭 벌써 봄이 온 것 같다. 안개도 말끔히 걷혀 맑은 대기를 가로지르는 능선이 눈앞에 선명하다. 제1연화봉까지 이어지는 길에는 순백과 회색이 뒤섞인 눈 융단이 깔렸다. 그 위로 천천히 발자국을 남기며 나뭇가지마다 만개한 눈꽃을 감상한다. 눈과 바람이 살아 천 년 살고 또 천 년 죽는다는 주목군락이 빚어내는 풍경이 그 어떤 그림보다도 아름답다.
수백 개의 눈 계단을 밟아 비로소 제1연화봉(1,394m)에 도착했다. 멀리 죽령에서 연화봉을 거쳐 비로봉에 이르는 11.5㎞의 소백산 백두대간 마루금이 뚜렷하다. 은빛 산등성이에 단단해진 상고대가 섞인 소백의 설경은 꿈속인 듯하다가도, 납작 엎드려 혹독한 겨울을 나고 있는 관목들의 모습이 눈에 밟힌다. 소복이 쌓인 눈 위로 싱거운 위로를 남기고 발길을 돌린다. 이 겨울을 버티면 반드시 봄이 온다고.

제2연화봉에서 바라본 소백의 일출은 온 세상이 멈춘 듯 황홀한 것이었다.
제2연화봉대피소
주소 충북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리 산13-1
문의 043-423-1439
이용금액
성수기 독립형 1만1,000원, 일반형 8,000원
비수기 독립형 1만 원, 일반형 7,000원
*성수기: 5.1~11.30
예약신청인원 최대 4명 (예약자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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