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름과 떠남이 공존하는 곳
머무름과 떠남이 공존하는 곳
  • 글 사진 우근철 기자
  • 승인 2017.01.02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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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횡단열차

굉장히 지루했던 어느 하루,
읽는 둥 마는 둥 책장을 넘기다

습관처럼 멍하니 창 밖을 내다보는 게
전부였으니 말이다.

굉장히 뻐근했던 어느 하루,
잠시 멈춘 간이역에서 10분 남짓
기지개를 펴며 걷는 게 전부였으니 말이다.

대부분의 일정이라고는
덜컹거리는 기차 안에서
슬렁슬렁 커피나 홀짝거리는 것.

구겨지듯 2층 침대에 누워
생각거리를 잡다하게 펼쳐놓고
이리저리 노트 위에 끄적이는 정도.

그 지루하고 뻐근하고
이제나저제나 하는 하루들 뿐이지만

책장을 넘기다 문득 눈 쌓인 마을을 마주하고,
커피를 마시다 석양이 물든 하늘과 홀로 할 때.

그게 다라서 몸을 싣는 걸지도,
시베리아 횡단열차라는 것

기관사는 말했다.
시베리아에선 ‘춥다’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고.

‘시원하다!’
‘오늘도 꽤나 시원하군!’

3박 4일간 달려 도착한 바이칼 호수.
꽁꽁 얼어붙은 호수 군데 군데에는
기이한 표지판이 꽂혀 있었다.

저건 무엇이냐 묻자,

10톤 이상은
지나가지 말라는 뜻.

그리고 사실대로 말하면,
저 표지판은 ‘거짓’이라 덧붙여 말했다.

15톤까지 버틸 수 있는데,
사고를 예방하기 위함이라는 것.

두려움을 줘야
사고가 안난다는 말처럼

두려움을 줘야
쓸데없는 생각을 안해처럼

조금 무모해도 별탈 없는
10톤 표지판 앞에서 발이 멈출 것이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두려움투성’ 이것뿐 일까?

굴뚝에모락모락
피워오른연기가
참많은이야기를
상상하게해준날

100세 노인의 흥겨운 연주는
주름진 세월의 깊이만큼
울림을 주었다

어둑하게 날이 저물 때까지
끝나지 않았던 식사시간과

잠자리에서까지 귀에 울렸던
그때 그날의 자취

어느 하루는 고요했고
어느 하루는 쓸쓸했고
어느 하루는 안락했고
어느 하루는 침묵했던

잠시 잊고 지낸 나와
진실로 마주할 수 있었던 시간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그런 하루들을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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