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한가운데서 온전히 나답게 살아내는 법
어둠의 한가운데서 온전히 나답게 살아내는 법
  • 글 이주희 / 사진 양계탁 / 사진제공 김미순
  • 승인 2016.12.21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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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 마라토너 김미순

인생이란 얼마나 얄궂은 것인가. 아내이자 엄마로 더없이 평범하게 살던 한 여자는 어느 날 갑자기 잔인한 운명과 정면으로 맞닥뜨린다. 깜깜한 어둠 속 한가운데 내던져진 삶, 그 무게를 어찌 감히 가늠할 수 있으랴. 그러나 그럼에도 살아야 했다. 삶은 여전히 유효하므로. 마른 사막에도 선인장은 자라듯 절망의 끝에서도 희망은 피어났다. 수렁 속에서 그녀가 건져 올린 희망은 다름 아닌 마라톤이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시각장애인 최초, 여성 최초로 울트라 마라톤 그랜드 슬램 2회 달성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우셨어요.
안녕하세요. 마라토너 김미순입니다. 우리나라 울트라 마라톤 대회 가운데 강화~강릉 308km, 부산~임진각 537km, 해남~고성 622km 등 세 가지 코스를 두 번 완주했어요. 여성으로서는 처음 해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뿌듯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마라톤에 도전할 생각을 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딸아이를 낳고서 희귀병인 베체트병이 발병했어요. 의사 말이 시신경이 손상되어 10년 안에 실명한다더군요. 도저히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어요. ‘하필 왜 나인가’ 자책도 하고 ‘살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도 많았어요. 불면증 때문에 하루에 두 시간도 채 못 자고,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어요. 그 고통이야 이루 다 말로 할 수가 없죠. 그렇게 세상을 원망하다 10년이란 세월이 흘러갔고, 결국 마흔 하나에 시각장애 1급 판정을 받았어요.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은 미련 없이 접고, 대신 다른 잘할 수 있는 뭔가를 찾기 시작했어요. 그때 만난 것이 마라톤이에요. “여보, 나 마라톤 한번 뛰어볼까?” 남편에게 농담처럼 건넨 한마디로 인해 지금까지 달릴 수 있게 된 거예요.

말씀드리기 외람되지만 장애인으로 살아가기까지 많이 힘드셨던 것 같아요. 김미순 씨를 다시 일으켜 세운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한 가정에 장애인이 있다는 건 전적으로 가족의 헌신을 필요로 해요. 저 역시 남편과 딸아이가 한결 같이 지켜주고 보듬어준 덕분에 일어설 수 있었어요. 가족만큼 든든한 백도 없어요.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 아픈 게, 제가 기억하는 딸아이는 중학교 2학년 얼굴이 마지막이에요. 한날은 아이에게 물어봤어요. “너, 그때 사춘기 아니었니?” “엄마, 난 사춘기가 뭔지 몰라.” 엄마가 죽겠다고 펄펄 뛰던 때였으니, 사춘기라고 엄마에게 투정부리고 반항할 새도 없었던 거죠. 그 말을 듣는데 얼마나 미안하고 속상했는지 몰라요. 엄마 때문에 너무 일찍 철이 들었으니까요.

남편 김효근 씨가 가이드 러너로 함께하시죠.
초반에는 아는 사람과 같이 뛰었는데, 아무래도 가이드 러너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호흡이 안 맞고 많이 힘들었어요. 1년 정도 뛰다가 남편에게 “더는 이렇게 못 하겠으니, 당신이 연습을 해서 함께 뛰자”라고 말을 했죠. 매일같이 손을 잡고 뛰어줄 사람이 남편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남편은 저 때문에 선택의 여지도 없이 마라톤에 뛰어들게 됐어요. 사람의 정신력이란 게 어마어마한 거 있죠. 그저 아내를 데리고 뛰어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1년 만에 10km, 22km, 32km까지 다 뛰더라고요. 우스갯소리로 그래요. 당신의 숨은 재능을 내가 발굴해 준거라고. (웃음) 남편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들려줘요. 그토록 수많은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었던 것도 저의 눈이 되어준 남편 덕이에요.

지금까지 완주한 대회가 몇 개나 되나요?
공식 대회 42.195km 풀코스는 275개, 울트라 마라톤 대회는 100~600km 코스를 63개 뛰었어요. 1년에 보통 풀코스는 50개 정도 뛰고, 울트라 마라톤은 15개쯤 뛰는 것 같아요. 지난해에는 공식 대회만 3,800km를 뛰었어요. 한마디로 그냥 미친 듯이 달렸어요. 지구 한 바퀴는 뛰었다 하던걸요?

일반 마라톤도 힘든데 울트라 마라톤까지 도전하게 된 계기가 뭔가요?
지인의 권유로 청남대 100km 울트라 마라톤에 처음 참가하게 됐어요. 배낭 하나 메고서 산 넘고 강 건너가며 밤새 뛰는 거예요. 중간에 체크포인트가 있는데 시간 내 통과를 못하면 아웃이에요. 16시간 이내 완주를 해야 하는데 저와 남편 기록이 15시간 6분인가 그랬어요. 처음 해본 것치곤 선방했죠. 그 대회를 시작으로 울트라 마라톤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됐어요. 목표만 보고 뛰는 게 아니라 사람들도 만나고 이야기하면서 뛰는 거라 더 재밌고 가슴이 탁 트이더라고요. 두 발로 100km를 뛰었다는 성취감도 엄청나요.

훈련과정도 만만치 않을 듯한데, 어떻게 하시나요?
훈련은 일상생활이에요. 인천 논현동에 있는 집에서부터 옥련동 카센터까지 7km 정도 되는데 산을 넘어다니며 출근해요. 문학경기장 가서 언덕치기 연습, 스피드 훈련을 할 때도 있고요. 윗몸일으키기는 하루에 120개씩 하고 스트레칭도 2시간씩 해요. 하루도 쉬는 날 없이 매일 훈련해요. 쉬면 오히려 몸이 아파요. 미치지 않으면 이렇게 할 수 없기는 하죠. (웃음) 장애인 대회를 나가는 게 아니고 비장애인들 틈에서 달려야 하는 만큼 무진장 노력해야죠.

마라톤을 통해 무엇을 얻었나요?
혹자들은 왜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 물어요. 그건 뛰어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저는 마라톤을 하면서 살아내는 법을 배웠어요. 자신감도 많이 얻었고요. 그 힘든 것도 해냈는데 이까짓 어려움쯤은 별 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몸도 많이 건강해졌고요. 조금 아이러니한 게, 장애인이 안 되었더라면 마라톤이라는 걸 아마 모르고 살지 않았을까 싶어요. 죽어라 산만 올랐겠죠. 장애인이 되고 난 후에야 마라톤에 눈을 떴고, 몰랐던 것들을 깨닫게 됐어요. 우리는 침대에서 잠드는 편안함을 당연하게 여기잖아요. 그런데 울트라 마라톤 대회 다니면서 땅바닥에서 자보면 침대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돼요. 이것 안 했으면 전혀 몰랐을 행복인 거죠. 당연한 것도 감사하게 여길 줄 아는 마음, 마라톤이 제게 가르쳐준 거예요.

장애 선수들에게 후원도 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삶을 다 살아보니 장애인들이 얼마나 힘든지 너무 잘 알겠더라고요. 도움을 주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인천가스공사와 연이 닿아 후원으로 연결이 됐어요. 1km 달릴 때마다 1,000원씩 적립해 장애인 체육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거예요. 지난해에는 3,800km를 달려 모두 380만 원의 후원금이 모였어요. 내 한 발 한 발이 학생들에게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참 행복해요. 더 부지런히 뛰어야 할 이유가 생긴 거죠.

쉼 없이 계속 달리는 이유는?
좋으니까 뛰어요. 내내 갇혀 있다가 밖으로 나와 전국을 쏘다니며 뛰어다닐 수 있으니 마냥 즐겁고 신나요. 달리는 동안 가슴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걸 느껴요. ‘그만 할까?’ ‘내가 왜 뛰고 있지?’ 이런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사실 제게 있어 마라톤 몇 개 완주, 이런 숫자는 중요치 않아요. 그저 ‘완주’가 목표예요. 남과의 경쟁이 아니라 나 자신과의 싸움이죠. 마라톤은 정직해요. 연습한 만큼 결과가 나와요. 그래서 멈추지 않고 달리는 거죠. 또 다른 이유는 ‘김미순’으로 살 수 있다는 것. 여자 나이 쉰여섯쯤이면 이름을 잃어버리고 누구의 엄마로 살게 되는데, 지금 나는 내 이름 ‘김미순’으로 살아요.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요?
올해는 맛보기로 몽골 고비 사막 225km를 달렸어요. 내년엔 사막 레이스 그랜드 슬램에 도전할 생각이에요. 중국 고비, 칠레 아타카마, 이집트 사하라, 남극까지 달리고 또 달리는 거죠.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레이스인 만큼 결코 쉽진 않을 거예요. 비용과 시간, 노력도 만만치 않게 들 테고요. 그래도 기왕 마라톤 세계에 발을 들인 이상 그랜드 슬램을 달성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마지막 꿈은 미국 대륙 5,060km를 횡단하는 것. 경비가 1억 넘게 든다고 해서 방법을 찾아야겠지만 언젠가 꼭 이룰 수 있으리라고 봐요. 닥치면 어떻게든 길은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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