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E, 한 편으로 톺아보기
ROME, 한 편으로 톺아보기
  • 글 사진 이두용 기자
  • 승인 2016.12.21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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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로마

한 때 배낭여행이 열풍이었던 적이 있다. 당시에도 그랬지만 배낭여행을 떠올리면 여전히 목적지는 자연스레 유럽으로 향한다. 그리고 여행지로 유럽이 정해지면 이구동성으로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를 외친다. 거리상으로는 멀지만 여러 방송과 책을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로마. 겨울 배낭여행을 준비하는 이를 위해 로마에 몇 달 머물던 기억을 되살려 길라잡이가 돼 본다.

로마여행의 시작, 콜로세움
콜로세움Colosseum은 로마의 상징이면서 이탈이라 전체를 대표하는 명물이다. 로마에 처음 갔을 때 두 달 정도를 머물렀는데 숙소를 고르면서 가장 중요시했던 것이 바로 ‘콜로세움과 얼마나 가까이에 있는가’였다. 로마의 상징을 매일 볼 수 있는 곳에 머물고 싶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콜로세움에서 도보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에 숙소를 정하고 매일 그 앞을 지나다녔다. 자주 보니 익숙해지긴 했지만, 로마에 머무는 동안 늘 뿌듯했다. 콜로세움에 처음 방문하면 보통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2,000년 가까운 세월을 견뎌온 건물이 여전히 위풍당당 이탈리아를 대표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의미는 상당하다.

콜로세움은 로마의 상징이면서 이탈리아 전체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콜로세움에서 좌측으로 난 길을 따르면 지척에 진실의 입Bocca della Verita이 있다. 기원전 4세기경에 만들어졌다 하니 6천 년이 넘은 유물이다. 강의 신 ‘홀르비오’의 얼굴을 조각한 것인데, 이 조각상이 진실과 거짓을 심판하는 ‘진실의 입’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훨씬 후대의 일이다. 로마시대에는 가축시장의 하수도 뚜껑으로 사용되었다는 설도 있다.

진실의 입에 손을 집어넣고 거짓말을 하면 손이 잘린다는 얘기는 과거 특정 대상을 심문할 때 진실을 말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사용했다는 설이 있지만, 거짓말 잘하는 사람조차 손이 잘렸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 말을 한 자 진실의 입에 손을 넣어라!”

콜로세움에서 큰길을 따라 베네치아 광장 방향으로 10여 분 걸으면 과거 로마의 중심지였던 ‘포로 로마노Foro Romano’가 나타난다. 현재는 무너진 건축물 잔해와 돌무더기만 잔뜩 이지만, 한때 로마의 정치·상업·종교 활동이 활발히 이뤄졌던 곳이다. 포로 로마노 가운데는 성스러운 길Via Sacra이 놓여 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돌아온 장군들이 개선 행진을 하던 거리다. 이 길 양쪽으로 유적이 줄지어 서 있다. 인근 캄피돌리오 광장에 오르면 포로 로마노의 장관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과거 검투사들의 치열한 대결이 이뤄지던 콜로세움 내부.

로마가 품은 교황의 나라 바티칸
로마에 가는 사람이면 빠지지 않고 돌아보는 코스 중 하나가 바로 바티칸Vatican City이다. 이곳은 가톨릭 신자에게 가장 성스러운 곳 중 한 곳이면서 최대의 버킷리스트다.

이곳은 교황이 통치하는 독립국으로 교황청의 기능수행보호를 위해 창설된 작은 영토주권 국가다. 실제 국제법상으로도 완전한 주체이며 영세중립국이기도 하다. 로마 안에 있지만 말 그대로 하나의 도시이며 나라이기도 한 것.

명소인 바티칸을 배경으로 광장에서 다양한 사진을 찍어봤다.

놀라운 건 이 조그만 국가의 경계 안에 수많은 예술품과 건축물이 있다는 것이다. 이중 바티칸 중앙에 있는 성 베드로 성당St Peter’s Basilica이 대표적인데 이 건물은 이름만 들어도 놀라운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 베르니니, 마데르나, 브라만테 등 예술가들이 심혈을 기울인 명작이다.
바티칸에 들어서면 거대한 예술품 안에 들어와 있는 착각을 일으킨다. 걸음마다 역사책과 미술책에서 봤던 거장들의 작품이 줄을 잇는다.

로마의 정치·상업·종교 활동이 활발히 이뤄졌던 포로 로마노 유적지.

수많은 작품이 늘어서 있지만 가장 큰 인기를 끄는 것은 단연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다. 이 작품이 그려진 공간에 들어서서 천장에 오색찬란하게 그려진 그림을 올려다보면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다. 거대한 그림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해 비현실적인 공간감을 느낀다. 나도 천지창조를 처음 봤을 때 목이 꺾여 아픈 줄도 모르고 한참을 멈춰 서서 올려다봤다. 천장에 매달려 이 그림을 그리느라 미켈란젤로는 떨어지는 분진 때문에 시력이 크게 나빠지고 허리디스크에 걸려 고생했다고 한다.

바티칸에서는 천지사방이 볼거리지만 너른 광장도 그냥 지나치면 안 된다. 세계적인 건축가 베르니니가 설계한 성 베드로 광장은 284개의 기둥이 묘한 대칭을 이루며 아름답게 조성돼 있다. 이 기둥에는 140명의 가톨릭 성인이 조각돼 있으니 찾아보는 것도 재미다.

포로 로마노 옆의 베네치아광장에 우뚝 서 있는 에마누엘레 2세 조각상.
내가 머물렀던 숙소 주변. 어디를 찍어도 유럽은 그림 같다.

다시 오게 되는 사랑의 분수
로마의 상징은 단연 콜로세움이지만 낭만으로만 따지면 ‘트레비 분수’도 뒤지지 않는다. 분수의 도시라고도 불리는 로마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다. 이 분수는 바티칸 광장을 만든 베르니니가 최초 디자인했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분수에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트리톤, 해마 등의 조각이 어울려 있다. 밤이 되면 분수의 조각상 주변으로 아름다운 조명에 불이 들어온다. 로마는 야경이 특별히 아름다우니 야간 투어도 필수다. 로마의 유적들은 낮과 밤이 다르지만, 개인적으로 트레비는 밤이 더 좋았다.

트레비 분수 주변에서는 분수 물소리를 타고 갖가지 언어가 들려온다. 세계 곳곳에서 날아온 사람들이 이곳에서 한참을 머물다 가기 때문에 다른 명소에 비해 활기가 넘친다. 때로 개구쟁이들이 기다란 막대기로 물속의 동전을 낚시질한다. 숱한 사람의 소원과 함께 던져진 동전들이다.

실제 트레비 분수에 가면 전 세계 동전을 볼 수 있는데 분수에 동전을 한 번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올 수 있고, 세 번 던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 때문이다. 분수에 동전을 던지는 방법은 저마다 다르지만 정석처럼 구전되는 것이 있다. 등을 돌리고 서서 오른손에 동전을 쥐고 왼쪽 어깨너머로 던지며 소원을 비는 것이다.

로마 관광의 쉼터라고 생각해도 좋은 스페인광장.

장난삼아 던져보는 것이지만 매일 입수하는 동전의 양이 놀라울 정도로 많다. 덕분에 로마 시는 매일 이 동전을 수거해 시의 문화재 복원과 보호에 쓰고 있다고 한다. 좋은 곳에 쓰이니 속는 셈 치고 동전을 던져보자.

트레비라는 이름은 참 멋져 보이는데 속설을 들으면 재밌다. 이탈리아어로 3을 의미하는 뜨레Tre와 거리를 뜻하는 비Via가 합친 말이란다. 한국말로 ‘삼거리 분수’ 쯤 되겠다. 갑자기 촌스러워 보이지만 실제 이 분수는 세 개의 골목 중앙에 있어 속설을 뒷받침해준다.

놀이공원의 공주의 집 같은 이미지의 쌍둥이 성당.

로마 관광의 오롯한 쉼터
로마에서 만남의 명소로 트레비 분수만 한 곳도 없지만, 스페인광장을 빼놓으면 아쉽다. 스페인광장 역시 여러 영화의 무대로 등장해 오랫동안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명소다.

그런데 Why? 로마에 있는 광장에 ‘스페인’이란 이름이 붙게 되었을까? 이야기는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교황청의 스페인 대사가 이 광장 인근에 본부를 두면서 자연스레 스페인광장이라고 불리게 됐다.

로마 외곽 언덕에 오르면서 뒤돌아서 바라본 로마시내.
로마의 골목길을 다닐 때 촬영한 ‘동상이몽’이라 이름 붙인 사진.

이곳 맞은편엔 로마의 쇼핑거리인 콘도티 거리가 있고 인근 코르소 거리 주변에는 박물관 등이 있어 연일 밤낮으로 사람이 넘쳐난다. 137개로 이뤄진 광장 계단에는 학창시절 단체사진을 찍는 학생들처럼 많은 인파가 빼곡히 앉아 있다. 덕분에 다른 곳보다 로마의 길거리 음식을 많이 접할 수 있다.

계단 바로 앞에는 ‘난파선의 분수’라는 뜻의 ‘바르카치아 분수’가 있다. 이 분수는 바티칸광장을 설계한 베르니니의 아버지 피에트로 베르니니가 홍수 때 스페인 광장까지 떠내려온 배를 보고 착안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모든 사물을 예술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작가의 안목이 대단하다. 노력하는 예술가에게는 미안하지만, 예술은 타고나는 것도 무시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내게 스페인광장은 사색하기 좋은 곳으로 기억한다. 로마의 많은 명소 중 관람을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곳이랄까. 오히려 바쁜 걸음을 멈추고 계단에 아무렇게나 앉아 에스프레소 한 잔에 오롯한 쉼을 청할 수 있는 곳이다. 다른 곳에 비해 오랜 시간 앉아서 담소를 나누거나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이가 많다. 로마 관광의 쉼터라고 생각해도 좋겠다.

콜로세움의 밤과 낮을 촬영할 때 나타나서 사진을 찍어달라던 꼬마.
야간 투어 중에 판테온 앞에서 만난 거리 음악가. 로마의 정취를 배가시켰다.

데칼코마니 성당과 로마 전망대
스페인광장에서 코르소 거리를 따라 끝까지 걸어가면 사방이 트이면서 포폴로광장이 나타난다. 몇 걸음 더 걸어 들어가다가 뒤를 돌아보면 지금 막 벗어난 거리 양쪽으로 정말 신기할 정도로 닮은 두 채의 성당이 서 있는 걸 볼 수 있다. 이름마저 ‘쌍둥이성당’으로 불리는 이 성당은 왼편이 ‘산타 마리아 디 몬테산토Santa Maria di Montesanto’고 오른편이 ‘산타 마리아데 미라콜리Santa Maria dei Miracoli’다. 놀이공원의 공주의 집 같은 느낌이 들지만, 실제 미사를 드리는 성당이다. 이곳은 로마의 명소 중 한쪽 끄트머리에 있어 이곳까지 걸어서 왔다면 어지간한 곳은 돌아본 셈이다.

돌아가는 길엔 ‘판테온’을 지나서 가자. 워낙 오래된 건축물이 많은 로마지만 판테온은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고대 건축물이다. 1세기인 서기 118년에 만들어졌다고 하니 입이 떡 벌어진다. 21세기에 사는 우리가 알현(?)하는 것만으로도 황송한 건물이랄까.

바티칸으로 향하는 길, 꼭대기에 천사가 지키고 있는 천사의 성을 만난다.

로마는 명소가 아니어도 소소한 뒷골목까지 유럽의 정취를 오롯이 담고 있는 도시다. 로마를 여행한다면 서민이 사는 마을에도 찾아가보자. 관광객이 없어 더 생생한 로마 풍광을 만끽할 수 있다. 커피 한잔에 과자 몇 개를 주문해도 나이 지긋한 주인장의 구수한 인사와 미소를 선물 받는다.

어지간히 걷더라도 한눈에 로마 시내 전체를 조망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로마 외곽 언덕이 명당이다. 다만, 내가 꼽은 명당이라 지도에는 없다. 콜로세움에서 진실의 입을 지나 테베레 강 다리를 건너 큰길을 따라 1시간 반 정도 직진하면 언덕으로 접어드는 길이 여럿 나타난다. 이중 어떤 길을 따라도 능선에 오를 수 있다. 무조건 직진만 기억하면 된다. 이곳에 오르면 건물 숲에 싸여 좁아졌던 시야가 단박에 트인다. 남들의 로마 여행사진에서 단 한 번 보지 못한 풍광에 한참을 멍하니 내려다보게 된다. 좋은 사진에 욕심이 난다면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지도 밖으로 행군해보자.

관광객이 거의 없는 카페에서 커피와 빵을 즐기는 것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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