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은 산은, 함께 가는 산!
가장 좋은 산은, 함께 가는 산!
  • 성신여자대학교 산악부 / 사진 정영찬
  • 승인 2016.11.22 18: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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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원적산 백패킹

전국 명산 백패킹 두 번째 산행이다. 이참에는 어디를 가면 좋을지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깊은 고민에 빠졌는데, 지인의 추천으로 경기 이천의 원적산이 물망에 올랐다.“원적산이 어딨어?”사실 처음 들어보는 산이어서 급히 초록창에 검색을 해봤다. 서울과 거리는 얼마나 가까운지, 고도는 얼마나 되는지. 찾아볼수록 백패킹 후기도 많고, 멋진 경치가 구미를 당겨서 단번에 결정을 내렸다.“이번 달 산행도 재밌겠다!”기대가 커졌다.

원적산은 사실 처음 들어보는 산이었지만, 멋진 풍경을 선사하는 능선이 쭉 이어져 매력적인 곳이었다.

달밤의 산행
영원사에 도착해 산행을 시작하려는데 벌써 하늘은 해가 저문 지 오래다. 까마득한 어둠을 뚫고 길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디선가 무시무시한 개들이 맹렬하게 짖어온다. 사실 진즉 깜깜해진 탓에 얼마나 무섭게 생긴 녀석들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지만, 소리만으로는 엄청난 덩치의 개가 금방이라도 목줄을 끊고 달려들 것만 같다. 한밤중의 낯선 손님들을 경계하는 것은 좋지만, 우리는 그저 백패킹을 하러 온 착한 여대생들인데! 어쩐지 억울한 마음이 들면서도 무서워서 한 발짝도 떼지 못했다. 개들이 어찌나 시끄럽게 짖어댔는지 절에 계시는 스님이 나오셔서 개들을 진정시키고 우리에게 맞는 길을 알려주셨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야경에 야간 산행의 피곤함도 잊히는 듯했다.
칼바람 속에서 함께한 저녁 식사. 그래도 맛있다.

초행길인 데다 해까지 져서였을까. 유난히도 경사가 급하게 느껴진다. 설상가상 낮에 10㎞ 코스 마라톤을 뛰고 나서 발가락에 잡힌 물집들이 오르막길 산행을 더 힘들게 만든다. 갈 길은 멀고 막막하기만 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중간중간 위치를 알려주는 나무 기둥 표지판이 잘 돼 있어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정상을 향해 오를 수 있었다는 점이다.

1-1, 1-2, 1-3…. 기둥을 차례차례 지나며 올라가다 보니 어느새 능선이다. 달빛에 하얗게 빛나는 억새밭이 장관이다. “낮에 보면 참 아름다웠겠다, 그치?” 아쉬운 마음을 나누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슬슬 세찬 바람이 불어온다. 오르막길을 올라오는 동안 온몸을 적신 땀이 서서히 식으며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어슴푸레 밝아오는 아침의 여명이 환상적이다.

‘아차’ 시간이 지나자 점점 추워지기 시작한다. “산 위에서는 10월이면 겨울이 시작인데. 생각해보니까 심지어 여름에도 얇은 우모복은 챙겼던 것 같아…. 우리 오늘 밤은 어떡하지?” 걱정이 몰려온다. 능선이라서 그런지 바람이 점차 세게 불어왔다. 동계 산행을 벌써 시작한 것만 같은 기분이다. 한시라도 빨리 사이트에 도착해야겠다 싶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 와중에도 서울 외곽의 야경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평소에 봐온 낯익은 야경과는 다르다. 시야를 가리는 높은 건물은 하나도 없고, 저 멀리서 고만고만한 높이의 불빛들이 반짝이는 광경과 억새가 어우러져 평화로운 분위기를 저절로 만들어낸다.

해발 634m 천덕봉 정상에서 한 컷.

동계 백패킹 미리보기
드디어 원적산 정상 백패킹 사이트에 도착했다! 재빨리 팀을 나눠 한쪽은 텐트와 플라이를 설치하고, 한쪽은 밥과 순대 볶음, 어묵탕 등 저녁거리를 요리했다. 바람이 너무 세차게 불어 자꾸만 날아가려는 텐트와 플라이 위로 무거운 가방을 올려 간신히 고정시켰다. 버너에 불을 켜는 것도 쉽지 않다. 한참 동안 애를 먹다 윈드브레이커로 바람을 막아주고 겨우 불을 붙일 수 있었다.

가을의 정취가 느껴지는 원적산에서.

벌써 동계 시즌이 시작인 게 느껴진다. 겨울철 백패킹은 하절기와는 또 다른 맛이 있다. 밖에서 얼른 조리만 마치고 텐트 안에 들어와 나누는 맛난 저녁, 그리고 이야기꽃을 피우며 함께 지새는 기나긴 겨울밤. 이번에는 가져온 텐트가 2인용 두 동뿐이라 아쉽지만 밖에서 식사를 한 뒤 서둘러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자려고 텐트에 들어가 침낭 안에 누웠는데 바람 때문에 텐트가 심하게 흔들렸다. 마치 거인이 우리 텐트를 들고 흔드는 것 같다. 귀를 때리는 것 같은 바람 소리는 덤이었다. “우리 이 상황에서 어떻게 잘 수 있을까?” “도저히 잠이 안 올 것 같아.” 하고 걱정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잠들고 말았다. 나중에 들었는데 다른 부원들은 잠을 설쳤다고 한다.

오솔길 같은 능선을 따라 걸으며 내려다본 탁 트인 풍경.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산행을 시작했다.

우리만을 위한 원적산에서
기상 시간이 되자 미리 맞춰놓은 알람 소리가 요란하다. 아침밥을 준비하는 어수선한 소리에 눈을 떠보니 분명 아직 텐트 안에 누워 있는데 밖에서 움직이는 부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알고 보니 밤새 불어닥친 바람에 플라이 펙이 다 뽑혀 거의 날아갈 듯 펄럭이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도 꿀잠에 빠져 깨지 않은 스스로가 정말 놀라웠다.

동절기에 새벽 6시는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시간이다. 정상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는데 어슴푸레 밝아오는 아침의 여명과 산 아래 채 꺼지지 않은 불빛들이 만든 풍경은 어젯밤과는 또 다르게 환상적으로 다가온다. 산에서의 공기는 언제나 좋지만 그중에서도 이 차갑고 맑은 새벽 공기가 가장 상쾌하다. 깊숙이 숨을 들이켜 본다. 춥지만 온몸이 맑아지는 기분이다.

고맙게도 날이 맑아 저 멀리 해가 뜨는 일출의 현장도 선명하다. 괜히 휴대전화기를 꺼내 타임랩스 영상을 찍어봤다. 해가 수평선 너머에서 떠올라 순식간에 하늘 위로 자리 잡았다. 어느새 따스한 햇볕이 밤새 추위에 떨던 우리에게까지 전달됐다. 아침 일찍 일어나 피곤하긴 하지만 떠오르는 해를 보고 있자니 고단함은 사라지고 어린아이처럼 마음이 들뜬다.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하늘. 더할 나위 없이 맑은 날씨였다.

아침으로는 어제 먹다 남은 음식을 데워 먹고 콘스프를 타 먹었다. 겨울에는 역시 따뜻한 스프가 체온유지를 위해서도 입맛을 위해서도 최고다. 배도 부르고 속도 따뜻해지자 채비를 서두르고 저 멀리 보이는 천덕봉을 향해 올랐다. 한참 걸어가다가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새 우리가 머물렀던 자리가 저 멀리에 보였다. 아무리 멀어 보여도 막상 걷다 보면 실제로 생각하는 것만큼 멀지 않다는 것, 결국 묵묵히 나아가는 게 답이라는 것을 늘 산에서 배운다.

이제 정개산, 넋고개까지는 쭉 능선이다. 능선이 반가운 이유는 우리가 걸어오는 길과 우리가 걸어갈 길이 보인다는 것이다. 자연 속에서 자연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여유로워진다. 새삼 나의 생활이 평화롭게 다가오고, 지금 이 산행을 함께 하면서 같은 기분을 공유할 수 있는 부원들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산행은 언제든 즐겁다.

파도처럼 산들이 쭉 펼쳐져 있다. 이런 풍경을 만날 때마다 우리나라 국토의 70%가 산인 것을 실감한다. 큰 산이 아니라서 그런지 나무 데크나 계단이 많이 없고 흙 그대로의 길이 보존돼 있어서 마음에 든다. 등산객도 적어서 조용히 우리만의 산행을 즐길 수 있었다. 원적산은 오솔길 같은 능선을 쭉 걸으며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는 조용하고 매력적인 곳이다. 소중한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에 더없이 좋은 산이었다.

한숨 돌릴 때는 역시 달달한 걸 먹어줘야 한다.
밤에 잠을 설치고도 씩씩한 뒷모습들이다.

*장비협찬 툴레, 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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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근 2016-11-27 05:59:15
지금 원적산..텐트 날아갈거같네요
새벽1시출발3시도착. 텐트설치 한시간..사실 첨 백패킹 텐트도 새거.조명이라곤 손전등하나..준비가 너무 부족했다는것을 실감하며 해뜨기만 기닷니고있습니다 그나마 침낭과 매트가 제몫을 해줘서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