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산? NO! 늘 새로운 북한산!
똑같은 산? NO! 늘 새로운 북한산!
  • 글 성신여자대학교 산악부 / 사진 정영찬 기자
  • 승인 2016.10.25 15:2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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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백운대 백패킹

여대생은 등산을 싫어한다? 이제는 편견을 깨주시길. 여기 거침없이 백패킹 배낭을 꾸리고 산 정상에서 맞는 바람을 사랑하는 여대생들이 있다. 산을 아끼는 마음만은 그 어떤 베테랑에도 뒤지지 않는 성신여자대학교 산악부가 바로 그들. 걸크러시 유발하는 그녀들과 함께 전국 명산 백패킹을 시작한다. 첫 번째 산행지는 초가을을 맞은 북한산 백운대다. <편집자주>

백운대까지 오르는 길은 늘 같은 모습이지만 찾을 때마다 새로운 기분이다.

뭐니뭐니해도 산행의 첫 시작은 장보기부터다. 매번 마트로 향할 때마다 이번에는 어떤 음식을 먹으며 추억을 쌓아 나갈까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이 앞선다. 여대생에게 맛있는 음식이란 연애만큼 중요한 삶의 낙이라는 사실. 특히 우리 산악부는 ‘성신애슐리’라고 이름 붙을 만큼 맛깔 나는 음식으로 명성이 자자한 덕에 메뉴에 각별히 공을 들이고 있다. 성신여대 산악부의 시그니처 메뉴는 돼지 불고기와 콘치즈다. 거기에 신입생들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메뉴가 그때그때 추가된다. 이번 산행에서 가장 기대되는 메뉴는 베이컨 떡말이다.

야영장까지 가는 길은 호락호락하지 않지만 도착하는 순간 집에 온 듯한 기분이 들어 좋다.

여대생도 언제나 배고프거든요
야영지에서 쓸 식재료와 산행 중에 에너지를 보충해줄 행동식 등을 꼼꼼히 골라 카트에 담는다. 대학 산악부의 예산이란 언제나 빠듯한 것이기에 까다롭게 가격을 비교하는 과정은 필수다. “사장님! 저희 매번 오잖아요~ 아시면서! 덤 조금만 더 주세요! 저희 오늘 개강산행이란 말이에요~” 200원이라도 깎기 위한 필살 애교 장전. 어느새 몇 년째 단골이 된 학교 앞 정육점 사장님은 이번에도 못 이긴 척 기분 좋게 흥정에 응해주신다. 카트를 가득 채운 음식을 보니 벌써 배가 고파져 온다. 아직 출발도 안 했는데 벌써 머릿속에서는 야영지에 도착해 부대찌개를 끓이고 있다.

산악부에 맨 처음 들어오면 딱 두 번 크게 놀란다. 산행 전 패킹할 때와 북한산 우이동 종점에서 도선사까지 이어지는 아스팔트길 위에서다. 패킹할 때는 대개 3단계로 놀라게 되는데 겉보기보다 짐이 적게 들어가는 가방에 먼저 놀라고, 그 많은 짐을 배낭 속에 요리조리 쑤셔 넣는 선배들의 노련한 손놀림에 다시 한 번 눈을 비비게 된다. 마지막으로 패킹을 마친 배낭을 멨을 때 어마어마한 무게에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지며 놀란다.

성신애슐리의 주목할 만한 신메뉴, 베이컨떡말이.

가끔 패킹이 제대로 안 됐을 때는 가방의 무게 균형이 안 맞거나 등판이 휘어 평소보다 더 힘든 산행을 하게 된다. 그만큼 꼼꼼한 패킹은 안전한 산행에 중요하다. 이번 산행에 함께 한 툴레의 배낭은 등판 부분의 몸통 길이 조절 기능과 두툼한 허리 패드 덕에 몸에 착 감기는 착용감이 만족스러웠다. 동시에 빈 가방에도 각이 잘 잡혀 있어 패킹이 수월했다.

다 같이 모여 산에서 먹는 음식은 세상에서 가장 맛나다.
선후배가 도우며 함께 하는 패킹.

도선사까지의 아스팔트 길은 언제나 가파르고 지루하다. 사실 차로 오를 수 있는 길이지만 택시비도 아끼고 체력도 기를 겸 우리는 늘 걸어 올라간다. 오래간만에 산을 찾은 부원은 벌써부터 힘든 기색이 역력하고, 이 길에 처음 선 신입생의 발걸음은 끝없는 오르막길에 금방이라도 퍼져버릴 것만 같다. 그렇게 한밤중에 우이천을 벗 삼아 아스팔트 길을 오르다 보면 쉴 수 있는 지점이 두 군데 나온다. 개나리 산장 앞과 데크길 위 나무 밑이다. 몇십 년은 족히 살았을 이 나무 밑에서 반쯤 누워 휴식을 취한다. 때로는 출발하는 것도 잊은 채 아득한 하늘 위 별 구경에 빠져버릴 때도 있다.

도선사 화장실에 들러 괜히 거울이라도 보고 나온다. 이제 산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면 이만큼 깨끗한 화장실을 쓸 수 없어서다. 예상했던 대로 시작부터 땀을 한 바가지 쏟고 있는 내 모습이 못나 보이기도 하지만 자랑스럽고 또 상쾌하다.

달빛 랜턴 아래 고고!
이제 본격적인 산길이다. 랜턴 배터리를 제대로 채우지 않아 밝기가 마치 달빛 같다고 이름 붙인 달빛랜턴, 핸드폰 플래시, 제대로 된 밝은 헤드 랜턴 등 각자의 불빛으로 어둠 속에서 발밑, 저 멀리, 그리고 내 옆 사람 앞사람의 길까지 비춰주며 열심히 오른다. 도란도란 이야기하다가 점점 말수가 적어지고 가쁜 호흡만 들린다.

인수암 앞에서 한 컷.

도선사부터 야영장까지는 두 곳에서 쉴 수 있다. 두 군데 모두 1평 정도의 공터가 있어서 물을 마시고 숨도 고를 수 있다. 물을 너무 벌컥벌컥 마시지 말라고 잔소리를 듣던 신입생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 잔소리를 그대로 신입생들에게 하는 내 모습을 보고 묘한 기분이 든다. 몸이 지쳐 엄마 생각이 절로 날 때쯤 커다란 엄마 바위가 보인다. 바위를 붙잡으며 엄마 한번 불러보고 하루재를 만난다. 바위에 기대앉아 우리가 올라온 길, 나뭇잎 사이 밤하늘, 저 멀리 서울의 야경을 바라본다. 올 때마다 늘 새로운 기분이다. 좋다. 이제 야영장까지는 다시 내리막길이다. 도착 전에 야영장 입구 근처 경찰산악구조대에 들러야 한다. 미리 팩스로 보내둔 야영허가서와 인원을 확인하고 오늘 밤 사용할 텐트사이트를 배정받기 위해서다.

산행 중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스트레칭을 반드시 선행한다.

배정받은 사이트에 도착해 짐을 풀고 잠시 숨을 돌린 후 팀을 나눠 한쪽에선 텐트를 치고 한쪽에선 요리를 한다. 후배들이 벌레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코펠밥을 하면서 뜸을 들이고 불조절하는 모습이 제법이다. 이제 내년에 후배들을 받아도 손색이 없겠다 싶다. 테이블에 램프까지 더해지니 이렇게 호화로운 야영이 있을 수가 없다. 말하는 순간 입에서 뭔가 미끄러운 것이 씹힌다. 부대찌개에 들어간 소시지의 얇은 비닐을 우리가 미처 제거하지 못했던 것이다. 입에서 연거푸 비닐을 뽑아내는 서로의 모습에 우린 또 다 같이 “하하하” 웃어 버리고 만다. 비록 재료가 모자라거나 간이 완벽하지 않거나 또 다른 어떤 실수가 있을지 모르지만 혀에서 느껴지는 맛은 언제나 환상적이다. 같은 음식을 산 아래서 먹어도 과연 이렇게 느낄 수 있을까. 아마 아닐 거다. 모든 음식이 맛있게 느껴지는 것은 산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행복한 마술인 것 같다.

이번 산행에서도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몸통 길이 조절이 가능하고 허리 패드가 두툼해 몸에 착 감기는 툴레 배낭을 메고.

익숙하고도 새로운 길 위에서
다음 날 아침 메뉴는 모두가 기대하던 비장의 메뉴 베이컨떡말이, 그리고 된장찌개와 전날 미처 다 먹지 못한 고기를 처리하기 위한 불고기 볶음밥이다. 산 밑에서 떡에 베이컨을 말아서 미리 준비해 온 덕분에 조리도 간편하고 동시에 꽤 고급스러운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부대찌개 하나로 저녁 먹고 안주하고 아침까지 해결했었는데 이제는 테이블에 머그잔에 데코레이션까지 신경 쓰고 있다니 감개가 무량하다. 된장찌개는 안에 들어갈 감자도 미리 썰어서(심지어 갈변을 막으려고 식초에 한 번 담가두기까지 했다!) 준비해 왔는데 안타깝게도 실수로 내용물을 전부 쏟고 말았다. 모두 쓰레기봉투에 들어가 버린 재료들과 노력이 아쉬웠지만 남아있는 재료들이 여유가 있어서 이 또한 웃으며 해프닝과 에피소드로 남기고 넘어간다.

화창한 가을 날씨에 산행이 더욱 즐거웠다.

배부르게 아침을 먹고 백운대로 출발했다. 주말이고 등산하기 딱 좋은 날씨라 그런지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인수야영장에서 백운대까지 오르는 길에는 백운산장을 들러 잠시 숨을 돌린다. 백운산장 앞에 세워진 큰 거울 위로 땀범벅이 된 부원들의 얼굴. 다 같이 한번 웃어주고 다시 힘을 내 백운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좁고 가파른 길 탓에 사람들의 속도가 느려져 조금씩 기다리면서 진행해야 했다. 그래도 새해 첫날 백운대 인파와 비교하면 이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위문에 도착해서 물도 마시고 행동식을 먹고 있는데 북한산성 쪽에서 올라오는 한 무리의 외국인들. 한 명도 빠짐없이 몸매와 얼굴이 핫해서 눈을 떼지 못했다. “Where are you from?” 말을 걸어 보니 “Sweden!”이라는 답변이 들려온다. 괜스레 우리가 메고 올라온 툴레 배낭이 뿌듯해졌다.

이대로 내려가긴 아쉽다. 우리의 수많은 셀카 배경이 돼준 바위 터 위에서.
백운대까지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길.
정상에서의 한 컷. 김치!

늘 사람들로 꽉 찬 백운대 정상에서는 경치를 감상할 새도 없이 몇 번의 셔터로 인증샷을 남기는 것이 전부다. 또다시 그냥 내려가긴 아쉬워 백운대 아래 넓은 바위 터를 찾았다. 서로 사진을 백 장이나 찍어줬는데도 부족하다. 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 이 경치와 기분. 마음껏 느끼며 즐기곤 하산을 시작했다.

여대생의 풋풋함(?)이 느껴지는 뒷모습.

하산은 언제나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산에서 만나는 어른들은 항상 하산할 때 다치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을 해주신다. 몇몇 부원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릎보호대나 발목보호대를 필수로 착용한다. 오래오래 산을 즐기고 싶다면 보호와 예방은 필수다. 산을 오를 때와 달리 내려갈 때는 서로 간 속도가 참 달라진다. 빨리 내려가는 것이 무리가 덜 오는 것 같다는 부원들도 있는 반면에 천천히 한 걸음씩 내려가는 것이 좋다는 부원들도 있다. 경험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속도를 알고 조절하며 내려가는 것이다. 이번이 첫 산행이었던 신입생은 조금 어리둥절한 눈치였지만 누가 가르쳐줄 수 있는 게 아닌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터득하는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깨달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익숙한 길, 익숙한 야영장, 익숙한 사람들이지만 늘 다른 추억을 만들고 조금 더 성장하는 기분이다. 산에서는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데, 이번에 대화를 나눈 분은 고등학생 시절부터 50년이 넘도록 북한산에 오셨단다. 항상 이렇게 오랜 시간 같은 산을 타는 분들을 만나면 이런 질문을 던진다. “안 질리세요?” “안 질리지. 매일 날씨가 다르고 내 몸이 다른데. 어떻게 질려? 늘 새롭지.” 오늘도 우리는 똑같지만 새로운 길을 만나러 북한산에 오른다.

*장비협찬 툴레, 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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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2016-11-20 21:15:55
성신산악부 짱이다 최고!!!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