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살던 박쥐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여기 살던 박쥐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 글 윤대훈 객원기자|사진 양계탁 기자|협찬 마무트
  • 승인 2016.10.12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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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 선인봉 ‘박쥐길’

유난했던 올여름 폭염이 한풀 꺾인 주말, 도봉산으로 올라가는 도봉동 산길에는 수많은 등산객들이 모여들었다. 다들 그동안 지독한 더위에 산행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가 날씨가 조금 선선해지자 배낭을 둘러메고 집을 나선 산꾼들이다. 개중에는 배낭에 헬멧을 달아 멘 이른바 바윗꾼들도 많았는데, 한가하고 조용한 선인봉을 고대했던 우리의 바람이 물거품이 되는 광경이기도 했다.

박쥐길 3피치 크랙을 오르는 이상조 씨. 푸르른 가을하늘에 솜털구름이 지난다. 머리 위에는 박쥐테라스의 소나무가 여전히 푸르다.

광륜사를 지나고 도봉산장을 거슬러 올라 삼거리 쉼터에서 흘린 땀을 닦으며 한숨 돌리는 사이 낯익은 얼굴들을 여럿 만났다. 지난여름 유럽 알프스를 등반하고 돌아온 이들의 무용담을 뒤로 하고 이윽고 석굴암 돌계단을 올라 선인봉 밑동에 당도한 우리는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오르기로 한 박쥐길은 물론이고 표범길과 재원길, 거미길, 현암길 등등 바윗길마다 빼곡히 붙어있는 클라이머들과 그 아래 자리 잡고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즐비했기 때문이었다.

등반 준비 중. 이상조 씨가 새로 산 암벽화를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짓는다.

선인봉을 대표하는 바윗길 박쥐길
우리도 박쥐길 아래 자리 잡고 순서를 기다리며 천천히 등반을 준비했다. 오늘 함께 등반할 이는 익스트림라이더등산학교 초대교장을 역임했던 이상조 씨. 전북대 미대 교수이자 올해 11월 인사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는 중견 화가이다. 1997년 LSCK그레이트트랑고타워 원정대장, 2003년도 인도 가르왈히말라야 탈레이사가르 원정대장을 역임했다. 전북 전주시에서 가까운 고산면에서 사는 그이는 오늘 등반을 위해 어제 상경했고, 종로5가 장비점에 들러 새로 암벽화와 자신의 머리에 딱 맞는 헬멧을 구입했다고 자랑했다. 한 시간 가량 산길을 오르면서 “너무 오랜만에 하는 등반이라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네”라며 괜한 엄살을 부렸지만 항상 인자한 미소가 얼굴에서 떠나지 않는 그이를 우리는 존경하고 좋아했다.

선인봉을 대표하는 바윗길로 박쥐길과 표범길을 꼽는데 이견을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석굴암 뒤편 선인봉 동면에 나란히 자리한 이 두 개의 바윗길은 시원한 조망과 더불어 슬랩과 크랙 등 다양한 등반기술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오르기로 한 박쥐길은 1960년 6월 선우중옥과 전광호 2인조가 5시간 만에 개척했다고 한다. 개척당시 박쥐날개 모양의 2피치 덧장바위 밑에는 수많은 박쥐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또 박쥐날개 위 3피치 종료지점 테라스에는 굵은 소나무 한그루가 살고 있어 멀리서도 박쥐길의 위치를 한 눈에 가늠하게 한다.

“자, 이제 출발!”

예닐곱 명에 이르는 앞 팀이 대부분 박쥐날개 부분을 오르고 있을 때 우리도 등반에 나섰다. 한상섭 씨가 첫 피치 삼각바위와 관바위를 지나 박쥐날개 아래 테라스에 도착했고, ‘아주 오랜만에’ 등반에 나선 이상조 씨가 어렵지 않게 올랐다. 1피치 시작지점의 작은 테라스에는 하늘색 꽃을 피운 달개비가 가득했다.

한상섭 씨가 끙끙 거리며 2피치 박쥐날개를 꺾어 올랐고, 뒤이어 이상조 씨가 새로 산 암벽화의 위력에 감탄하며 손쉽게 따라 올랐다. 이제 날개에는 두 개의 볼트가 설치되어 있어 예전과 다르게 헥센트릭이나 캐밍장비를 설치하지 않아도 되었다. 덧장바위 아래 더 이상 박쥐는 살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쥐날개의 끝 부분은 여전히 낭창낭창한 느낌이 들었다.

3피치 쉬운 크랙을 레이백 자세로 쉽게 올라 박쥐 소나무가 있는 넓은 테라스에서 우리는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앞서 가던 팀의 여자대원 한 명이 4피치 오버행 트래버스 크랙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중이었다.

첫 피치 삼각바위를 지나 관바위를 오르는 이상조 씨.

박쥐 소나무에 앉은 참매 한 마리
확보 줄에 매달려 뒤를 돌아보면 서울시가지의 풍경이 한가득 펼쳐졌다. 그 풍경의 가장 가까운 곳에 박쥐 테라스의 소나무 가지가 걸렸는데, 거기에는 늠름하기 그지없는 참매 한 마리가 두 눈을 또록또록 굴리며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떡 벌어진 가슴 근육이며, 샛노랗게 매서운 두 눈, 억세고 날카로운 발톱이 위압적인 녀석이었다. 나는 녀석을 보는 순간 단번에 초면이 아님을 알아챘다. 지난 5월 말 선인봉 남면 측면길을 오를 때였다.

1피치 종료지점에서. 뒤로 서울 시가지 풍경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박쥐 소나무에 앉아 내내 우리를 지켜보던 참매 한 마리. 매서운 눈초리와 억센 발톱이 인상적이다.

간담이 서늘한 뜀바위를 건너 칼바위 레이백 구간과 미끄럽기 그지없는 알바위를 안간힘을 쓰며 겨우 올라 이제 오르기 쉬운 넓은 침니에서 한숨 돌리려는 찰라 “푸르륵”하는 소리와 함께 내 머리 위를 스치듯 저공비행하는 매 한 마리가 있었다.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올랐는데 매는 한차례 더 위협비행을 하더니 급기야는 내 헬멧을 강타하고 지나갔다. 자세를 낮추고 주변을 살펴보니 매의 깃털과 똥의 흔적이 역력했다. 녀석의 서식지가 근처였고, 아마 새끼를 보살피고 있는 것 같았다. 고개를 들어 가야할 길을 바라보니 녀석이 버티고 선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추호도 진입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표정이었다. 결국 나는 무단주거침입을 인정하고 그곳에서 하강하고 말았다. 그때 그 녀석이 분명했다. 소나무 가지를 움켜 쥔 발가락과 발톱은 여전히 위협적이었다.

바위를 오르는 손과 발.
박쥐길의 하이라이트인 2피치 언더크랙으로 진입하는 이상조 씨.

4피치는 두 갈래 길로 오를 수 있다. 잡기 좋은 크랙을 따라 오르다가 긴 슬링이 걸려있는 볼트 왼편으로 슬랩을 따라 오르거나, 오른쪽 오버행 아래쪽으로 이어지는 좁은 언더크랙을 트래버스하다가 턱을 넘어가는 코스다. 우리는 며칠 전 내린 비로 물기가 흥건한 좁은 크랙을 따라 트래버스한 후 턱을 넘어서는 코스로 올랐다.

원래 코스는 4피치 종료지점 넓은 테라스 위로 두 피치를 더 올라야 끝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곳에서 등반을 마치고 하강한다. 이곳에서 박쥐테라스까지 30m 하강한 후 다시 바닥까지 60m 하강하면 된다.

박쥐테라스에서 하강하며 소나무를 올려보니 여전히 매는 그 자리에서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너무 소란스럽지는 않았나, 아니면 무슨 흔적이라도 남기지 않았나’ , 괜스레 미안하기도 하고 뒤가 켕기기도 했다.

2피치 박쥐날개를 꺾어 올라서는 한상섭 씨. 마치 푸른 하늘로 오르는 듯하다.
4피치 오버행 아래 언더크랙을 따라 트래버스하는 중. 언더크랙이 끝나는 지점에서 오버행 턱을 넘어서야 한다.
2피치 박쥐테라스에서 하강을 위해 로프를 던진다.
등반을 마치고 내려와 장비 정리 중.
INFORMATION
도봉산 선인봉 ‘박쥐길’ (초·중급)
들머리
도봉동 도봉산 입구에서 광륜사, 도봉산장을 거쳐 석굴암 뒤편으로 오른다. 약 1시간 소요.
선인봉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바윗길이라 늘 등반자들이 많다.

등반시간
3인 1조 등반 시 약 2시간

등반장비
60m 로프 2동, 캐밍장비 1세트, 퀵드로 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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