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남알프스 종주, 행복한 12일의 여정
일본 남알프스 종주, 행복한 12일의 여정
  • 글 사진 김동규(경희대 산악부 OB)
  • 승인 2016.09.30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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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남알프스 단독 종주 ⑥10개의 일본백명산을 오르다

지난밤 노자카 씨와 일본 소주를 마시며 후련한 대화를 한 덕분인지, 최종 목적지 데카리다케를 앞두고 산뜻한 새벽을 맞이하게 되었다. 남알프스 종주를 하는 나에게 데카리다케는 히말라야 최고봉 에베레스트 정상과 다름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차우스(茶臼) 산장은 마지막 캠프에 해당된다. 새벽 3시에 일어나 가볍게 식사를 하고 짐을 꾸려 4시에 정상으로 향했다.

▲ 히지리다케와 가미고치다케의 웅장한 모습.

정상 공략의 새벽은 짙은 안개로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헷갈리는 길에서는 몇 번 망설이고 더듬거리기도 했지만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동안 산길을 오랫동안 걸었던 경력이 체화되어 본능의 수준까지 이른 것 같다. 사실 산세만 보고 어딘가에 길이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는 능력도 자부하고 있다. 심지어 아내도 충분히 인정하는 사실이다. “길은 그렇게 잘 아는 사람이 어째서 자기 부인의 마음은 하나도 모른대유?”

잠시 아내 생각을 해서일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고 갈림길을 놓치고 잠시 닛타다케(仁田岳) 방향으로 가다가 뒤돌아왔다. 짙은 안개가 비로 변할 지 아니면 바람에 날려 태평양으로 사라질 지 아직은 예측이 불가능했다. 아무튼 비옷만큼은 철저히 챙기고 있으니 큰 걱정은 없었다.

▲ 데카리다케 정상에 자리한 불상.
최종 목적지 데카리다케
구름이 오락가락하면서 하늘이 차츰 많아졌다. 오르막이 끝난 지점은 나무데크길이 이어졌다. 데카리다케가 에베레스트 정상의 힘든 힐러리스텝이 아닌 카펫을 깔아 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데크를 따라 가다 ‘데카리다케’ 푯말에 손을 댄 것은 오전 9시, 마지막 캠프를 출발한 지 5시간이 지난 시점이자, 베이스캠프에 해당하는 히로가와라에서 산행을 시작한 지 11일이 경과한 시점이었다.

그 때 아침 식사를 하고 뒤늦게 출발한 노자카 씨가 차분한 걸음으로 올라왔다.
“쯔이타! 쯔이타(도착했다)!”
그가 또 천진한 웃음으로 답례했다.
“이곳이 눈잣나무 세계 최남단 서식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이렇게 물으니 그도 백명산 책에서 읽었다고 답을 했다. 나는 이상하게 이 사실이 신기했다. 어쩌면 나는 가장 남쪽에 위치한 눈잣나무가 커다란 푯말을 앞에 두고 자랑스럽게 서 있을 줄 알았다. 사소한 것에도 의미 부여를 잘 하는 일본이라면 능히 그러고도 남을 것이었다. 할 수 없이 내 나름 시라비소(シラビソ) 소나무 틈 사이에서 최남단 눈잣나무를 찾아내어, 이것이라고 추측해 보기도 했지만 한 참을 더 가서도 눈잣나무가 많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정상에서 진행 방향으로 잠시 내려가 나타난 히카리(光) 바위는 데카리다케 산 이름의 유래다. 칙칙한 숲속에 하얀 바위가 커다랗게 드러나 있고 그것이 반짝반짝 빛을 반사하고 있으니 그것이 산 이름이 되는 것은 당연해 보였다.

▲ 최종 목적지 데카리다케.
이제 빨리 뒤돌아가 이자루가다케(イザルガ岳)에 올라야 한다. 이자루가다케도 데카리다케의 일부라고 본다면 예외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정상에서 후지산이 보이지 않는 것은 데카리다케 뿐이었다. 눈잣나무도 힘겨워하는 남쪽의 해발 2,591m는 정상의 무성한 나무로 후지산을 가렸다.

과연 이자루카다케에서는 후지산이 산 능선 옆으로 얼굴을 쏘옥 내밀고 있었다. 가슴을 흰 터번으로 가리고 눈 근처만 살짝 드러낸 수줍은 새색시의 얼굴이다. 이제 어쩔 것인가? 저 여인은 항상 저렇게 있겠지만 나는 이제 떠나야 하는 것을.

돌아오는 길에 본 가미고치다케는 역시 예사 봉우리가 아니었다. 어제 지나온 길이 가미고치 봉우리 옆으로 붙어서 마치 비행기 트랩처럼 보였다. 더욱 신기한 것은 그보다 규모가 작은 차우스다케(茶臼岳, 2,604m)가 똑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가미코지다케와 차우스다케는 행복한 한 쌍의 부부 같았다.
노자카 씨가 이곳 차우스 산장에는 사시미가 나온다며 같이 식사할 것을 제안해 왔다. 남알프스 종주 내내 산장 식사를 하지 않았지만 마지막 저녁으로 한번은 허락해도 좋을 터였다. 산장은 올해 마지막 영업이라 남아있던 사시미를 모두 내놓아서 푸짐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와 함께 마시는 생맥주가 너무나 시원했다.

▲ 하얗게 빛나는 히카리 바위.

산장에서 맞이한 다이아몬드 후지

다음 날 아침. 산장도 폐쇄되고 나의 남알프스 종주도 마무리만 남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후지산이 처음으로 온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많은 사람들이 산장 앞 나무 펜스에 카메라를 걸치고 기다렸다. 순간 누가 소리쳤다.
“다이아몬드닷!”

남알프스를 종주하는 동안 후지산은 훌쩍 커져 있었고 멀리 떨어져 있던 태양도 후지산 곁으로 다가와 있었다. 그 태양이 후지산 왼쪽 어깨 너머로 삐쭉 흰 웃음을 터트린 것이다. 할 일이 끝난 듯 노자카 씨가 배낭을 들쳐 멨다.
“다이아몬드 후지라고 합니다. 저도 오랜만에 보았습니다.”

▲ 옥빛 물이 인상적인 하타나기 댐.
▲ 오이강의 긴 현수교 다리를 건너면 산행은 끝난다.

노자카 씨가 사라진 후 침낭을 말아 배낭 바닥에 넣었다. 텐트 후라이에 붙은 얼음 덩어리를 털고 축축한 흙도 털어서 접었다. 종주 전 가득했던 식량 자루도 구겨 넣었다. 노자카 씨의 마지막 정표인 도시락을 그 위에 올려놓음으로써 배낭 꾸리기는 끝났다. 남알프스 종주의 마지막 캠프를 떠나는 순간은 많은 사람과 악수도 하며 부산을 떨어야 마땅할 테지만 인사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괜히 빠진 물건이 없나 몇 번 두리번거리다 하산 길로 발걸음을 떼었다.

능선 길은 앞으로 갈 길과 걸어온 길이 모두 보여서 좋다. 그래서 한발 한발의 위력을 실감케 하는 길은 혼자 걸어도 지루하지 않다. 행복한 12일이었다.

▲ 가미고치다케와 차우스다케.

남알프스의 10개 백명산을 모두 돌았다. 한발 한발 오른 모든 봉우리가 백명산이었지만 노토리다케, 가미고치다케 그리고 우사기다케는 백명산이 아닌 것이 아쉬웠다. 그래도 노토리다케는 시로네삼잔이란 타이틀로 백명산인 기타다케 그리고 아이노다케와 동격이 되었으니 섭섭함을 덜었을 것이고, 가미고치다케는 신이 강림했다는 이름만은 어느 백명산의 이름과도 비할 수 없으니 또한 다행이다. 그런데 고우사기다케와 우사기다케도 명봉이라 할 수 있다. 두 봉우리는 토기의 두 귀를 연상하면 틀림없다. 재미있는 것은 토실토실 둥그런 두 귀의 크기가 달라 짝짝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 봉우리들을 아이노다케에서 멀리 고봉들 틈으로 발견하고 신기해했다.

▲ 다소 펑퍼짐한 형태의 데카리다케.

시즌이 끝나가는 하산길은 역시 적막했다. 몇 개의 현수교를 건너고, 드디어 하타나기(畑?) 댐 상류의 긴 현수교를 건너며 산행은 끝났다.

시즈오카로 가는 버스 안에서 창밖을 열심히 내다 봤으나 바다를 향해 길을 걷는 미야다 씨는 볼 수가 없었다. 아마 그는 지금쯤 시즈오카 해변의 어느 카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지나온 발걸음을 느긋하게 음미하고 있을 것이다.

다음 날 시즈오카시에서는 태풍의 영향으로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하루의 여유가 있어서 후지산이 보인다는 미호노마쓰바라(三保の松原)와 니혼타이라(日本平)를 들렸다. 궂은 날씨 때문에 볼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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