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흘러 여정의 후반으로
흘러흘러 여정의 후반으로
  • 글 사진 김동규(경희대 산악부 OB)
  • 승인 2016.07.26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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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남알프스 단독 종주 ④구마노타이라 산장~시오미다케~산푸쿠 고개~와루자와다케

시오미다케(3,047m)
오늘 목적지 산푸쿠 고개 산장(三伏峠小屋)까지는 10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여서 일찍 일어나 새벽 4시에 길을 나섰다. 한 시간쯤 걷자 어둠 속에서 여명이 떠오르고 동쪽으로 길게 뻗은 능선이 검은 자태로 일렁인다. 이쪽은 낮은 길이고 오히려 저 쪽이 높으니 능선 종주를 하는 입장에서는 ‘어둠 속에서 길을 잘 못 들었나’ 하는 불안이 생겼다. 지도를 확인해 다른 갈림길이 없음을 확인하고도 이정표가 없어 불안감을 떨쳐낼 수 없었다. 다행히 신자누케야마(新蛇?山)에 이르자 안개가 걷히며 그 틈으로 풍경이 나타났다. 멀리 시오미다케를 오르는 길이 보이고 동쪽의 육중한 노토리다케 능선임을 확인했다.

▲ 도리보시코다케에서 본 후지산.

기타아라가와다케(北荒川岳)에 이르자 어제 같은 텐트장에서 유숙했던 미야다 씨가 뒤에서 쫓아오더니 이내 앞서 나갔다. 커다란 배낭에도 불구하고 그의 발걸음에는 절도가 있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시오미다케가 성큼성큼 다가오는 느낌이다.

시오미다케 정상은 동봉과 서봉 두 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옛날 나폴레옹 시절 프랑스 군인의 모자 같은 모양이다. 양 끝으로 길게 늘어난 모자는 기타아라가와다케에서 보아도 반대 방향인 산푸쿠 고개에서 보아도 비슷하다. 이는 시오미다케가 긴 능선을 거느리고 그 가운데서 불쑥 솟은 형태 때문인데, 사람들은 산푸쿠 고개에서 본 모습을 더 쳐 준다고 한다.

▲ 와루자와다케 가는 길에서 본 풍경.

좁은 산 정상에서는 단체 등산객들이 남북으로 탁 트인 조망을 만끽하고 있었다. 도쿄에서 산악전문 여행사를 통해 온 등산객들은 이런 산행을 ‘튜어Tour’라고 표현했다. 보통 시오미다케를 오르기 위해서는 도리구라(鳥倉) 등산로 입구에서 3시간 걸려 산푸쿠 고개 산장에 도착, 1박하고 시오미다케를 9시간 걸려 왕복하는 2박 3일의 일정으로, 옛날 참배(參拜) 등산 시절부터 전통적인 코스였다. 그런데 이 등산로 입구는 도쿄 사람들에게는 산의 반대 방향에 있어서 튜어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할 듯 보였다. 11명의 등산객들은 군대 행군을 하듯 일사불란한 발걸음이었다. 정상을 내려가는 길은 낙석 위험이 높은 지역이어서 사람들은 한 발 한 발 가이드의 자취를 그대로 따라서 걸었다.

시오미 산장은 예상대로 비좁았고 증축 공사가 진행중이었다. 튜어 회원들이 화장실 이용만 하고 자리를 뜨자 나도 그 뒤를 따랐다. 낙엽송이 빼곡한 길에서 앞 사람들의 모습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두 번을 그들 곁에 쉬면서 마침내 가이드와 인사를 하게 되었다. 지도가 든 주머니를 가슴에 십자로 맨 그의 모습에서 투철한 직업정신이 느껴졌다.

▲ 기타아라가와다케에서 본 시오미다케.

이야기를 나눠보니 히말라야에도 관심이 많은 전문 산악인이었다. 나 역시 히말라야 트레킹에 많은 경험이 있어서 공통의 화제가 많았다. 산푸쿠 고개 산장에 이르니 먼저 도착한 그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같이 커피 한잔을 하며 시오미다케의 유래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시오란 소금을 말합니다. 옛날 전설에는 신화의 인물이 정상에서 소금을 봤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고호 대사(弘法大師)가 바다를 보고 소금을 불러왔다는 얘기가 있습니다만, 그보다는 이 산 밑의 마을인 시카시오(鹿?)에서 시카시오 강을 따라 조금 올라간 지역에 식염광천이 있기 때문으로 보아야 합니다. 강의 염도는 바닷물에 거의 육박하는 수준으로 옛날 산중에서 아주 유용했을테죠.”

9세기 초 일본에는 쌍벽을 이루는 유명한 두 스님 고호대사(弘法大師)와 덴교대사(?敎大師)가 있었다. 당나라에서 유학 후 귀국해 각각 새로운 종파 진언종과 천태종을 창시했다. 이들 종파는 나라(奈良) 시대의 불교와는 다르게 사람들이 사는 마을과 떨어진 깊은 산중에 절을 짓고 엄격한 수행을 중시했다.

▲ 시오미다케로 향하는 길에 드러난 후지산.

와루자와다케(3141m)

남알프스는 원래 아카이시 산맥으로 불렸던 지역으로 후지강(富士川)과 덴류강(天龍川)에 둘러싸인 쐐기 모양의 산악 지대를 말한다. 이 지역은 남북 약 120km, 동서로는 평균 40km의 광대한 지역으로 북부와 남부 두 지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 경계가 되는 지점이 산푸쿠 고개다.

남알프스의 남부에 들어선 이상 나의 종주도 벌써 후반으로 접어들었다. 그동안 남알프스에 소재하는 일본백명산 10개 중 가이고마가다케·센조가다케·호오산·기타다케·아이노다케 그리고 시오미다케를 거쳐왔고, 이제 와루자와다케·아카이시다케·히지리다케·데카리다케와 조우를 앞두고 있다. 북부 지역에서는 대부분의 정상에서, 특히 센조가다케나 기타다케에서 남알프스의 모든 산을 볼 수 있었는데, 남부 지역에서는 한 개의 봉우리를 올라서야만 다음 봉우리가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 멀리 구름 속으로 에나산이 보인다.

도리보시코다케(鳥帽子子岳)에 오르자 후지산이 나를 반겼다. 파란 평원을 펼치고 후지산을 바라보고 있는 오고치다케(小河內岳)의 대피소가 동화 속 공주가 사는 집처럼 아름다웠다.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1916)는 그의 소설 <풀 베개(草枕)>에서 이렇게 말했다. “산길을 오르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지(智)로 움직이면 모(角)가 나고, 정(情)으로 저어가면 배가 떠내려가 버린다. 의지(意志)를 내세우면 삶이 궁핍해진다. 참으로 어려운 세상살이다. 살기 어려워질수록 편한 곳으로 옮겨가고 싶어진다. 어디로 옮겨가도 마찬가지라고 깨달을 때 시가 생각나고 그림이 그려진다.”

▲ 시오미다케를 바라보며 고즈넉한 능선을 따랐다.
세상살이의 어려움을 시와 그림으로 승화시키는 마음은 얼마나 숭고한가? 그런데 나는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도 시 한 줄 쓰지 못한다. 다행이 내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 있어 마음껏 렌즈에 담아 본다. 나 같이 재주 없는 사람이 나쓰메 소세키의 시절이 아닌 현대를 살아간다는 것이 여간 고맙지 않다.

다카야마우라 대피소를 지나자 갑자기 급경사 너덜길이 끝없이 이어졌다. 몇 번 휴식을 취해보지만 진척이 없다. 옛날 고슈(甲州) 출신의 한 사냥꾼이 자기도 모르게 튀어 나온 말 ‘와루자와다케’는 바로 여길 오르며 나온 말이 아닐까? 그래서 그대로 산 이름으로 확정되고 말았다는 그 ‘나쁜 놈의 봉우리’를 나도 몇 번 내뱉고 나서야 간신히 능선에 올라설 수 있었다. 그런데 날카로운 능선의 건너편은 유실되어 금방이라도 내가 딛고 있는 곳까지 허물어질 것 같았다. 아닌 게 아니라 빨간 페인트로 X자가 쓰여 있고 노란 끈으로 가로막아 놓아 길을 벗어나 눈잣나무 위를 곡예하듯 통과해야 했다.

마에다케(前岳, 3,068m)에 올라섰을 때는 벌써 해가 지기 시작했다. 찬바람이 불어오는 길을 조금 더 가서 나카다케(中岳, 3,083m) 뒤편의 산장으로 들어갔다. 전체 일정 중 유일하게 돈을 지불하고 산장에서 유숙한 밤이었다.

그날 밤 산장에는 내가 유일해 산장 관리인과 일본 산에 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본인의 성씨 야마나카(山中)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산을 좋아했다. 나라(奈良)에서 자동차 매매상을 하고 있는 그는 여름이면 산장 관리인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런데 3,000m 고도에서의 추운 날씨는 친절한 그도 어쩌지 못하는 법이어서 텐트에서보다 더 추운 밤이었다.

▲ 산푸쿠 고개에서 본 시오미다케.

다음 날 일찍 주봉인 와루자와다케에 올랐다. 하얀 구름 위로 빨간 해가 떠올랐다. 검은색에서 회색으로 첩첩이 멀어져 가는 무채색의 능선이 황홀한 핑크 빛으로 바뀌었다.

역시 일출은 좋은 것이다. 일본 사람은 쌀이나 돈 등 귀한 물건 앞에 사용하는 존칭(御)을 ‘일출(來光)’ 앞에 붙인다. 그 ‘일출님(御來光)’이 이렇게 3,000m의 높은 산에서는 말 할 것도 없을 것이며, 후지산을 배경으로 맞이할 때는 천하일품이라 할 만하다. 산 정상 부분이 뾰족하지 않고 펑퍼짐한 와루자와다케가 백명산이 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일 것이고, 야마나카 씨가 이 곳 산장을 선택한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다시 산장으로 돌아와 배웅 나온 야마나카 씨로부터 멀리 보이는 산들을 확인했다. 서쪽 중앙알프스 너머의 주변의 산군을 멀리하고 점잖게 솟은 온다케산(御嶽山, 3,067m), 길게 뻗은 능선 중앙에 솟은 육중하고 두툼한 봉우리의 에나산(惠那山, 2,191m)이 새벽 구름을 아래에 깔고 저마다 늠름한 자태를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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