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모방을 오가는 아슬아슬한 행보
창작과 모방을 오가는 아슬아슬한 행보
  • 글 사진 ‘양식고등어’ 조민석 기자
  • 승인 2016.04.27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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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고등어’의 텐트 이야기 | 카피

2년 전 4월은 제가 텐트 소재 연구에 몰두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때 텐트의 카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결국 저는‘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다음세대 아이들이 쥐고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논리적이지 못한 생각이지만 카피는 지금까지도 민감하고 까다로운 이야기라 누구도 단정해서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다소 민감하지만 카피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 1910년대에 들어 레오나르도 다빈치 작 모나리자와 표절 논란으로 화제가 되었던 마르셀 뒤샹의 L.H.O.O.Q. 입니다. 모나리자의 인중에 수염을 붙이고. 작품 아래에 자기 서명과 작품 이름을 적고. 이게 창작의 전부인가에 대한 것이 논란이 되었지요.

조심스레 꺼내는 카피 이야기

캠핑하는 사람들이 모여 앉아서 술잔을 기울이다 보면 으레 등장하는 주제가 카피입니다. 솔직히 다들 한 번쯤 카피에 대해서 생각해 보셨을 겁니다. 좋게 말하면 벤치마킹이 될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표절이 되는 것이지요.

아웃도어에서 카피라는 말은 다소 불편하고 어려운 단어일 수 있지만 언젠가 짚고 넘어가야할 주제임은 확실합니다. 그런데 표절과 창작의 경계에 있어서 누가 봐도 ‘이건 표절이야!’ 혹은 ‘아니야!’라고 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은 없어 보입니다. 사람마다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주관적인 생각에 의해 그 기준이 좌지우지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지요.

▲ 마르셀 뒤샹의 데뷔작으로 잘 알려진 샘이라는 작품입니다. 샘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거나 L.H.O.O.Q.를 만든 작가가 만든 작품이라서 가져온 것은 아닙니다. 정확하게는 저 작품이 카피라고 할 수는 없다는 이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가져온 겁니다. 소변기를 뒤집어 그것에 샘이라는 철학적인 의미를 담았다는 건 마르셀 뒤샹이 소변기를 만든 사람의 ‘생각’을 훔친 것이 아닌 자기 스스로가 창의적인 관념을 창조했다는 이야기이지요. 굳이 텐트를 뒤집지 않더라도 이런 창의성이 텐트에도 필요하겠죠.
사실 창작과 표절의 경계에 대한 논의는 단순히 텐트라는 장비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무수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떤 분야의 경우 카피에 대한 공론화가 생각보다 빨리 진행되어서 수용자의 생각이 상당히 개방적으로 바뀐 사례도 있습니다.

텐트와 가깝고도 먼 분야라고 할 수 있는, 예술 역시 그 중 하나입니다. 아방가르드, 즉 전위 예술의 대가로 손꼽히는 마르셀 뒤샹이 1900년대 초 표절과 창작의 경계를 완벽하게 허문 사건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사실 더 화제가 되었던 것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렸던 모나리자에 수염을 붙여 L.H.O.O.Q 라는 작품으로 선보인 것이 있었지요. 저 알파벳을 프랑스식으로 발음하면 대충 ‘그녀의 엉덩이는 뜨겁다’라는 말과 유사하게 들린다고 합니다. 제목마저도 도발적이고 선정적이었지요.
마르셀 뒤샹의 행적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첫 데뷔작은 더 도발적이었습니다. 남자화장실에 있는 소변기를 뒤집어서 자기 서명을 남기고 그것에 ‘샘’이라는 작품명을 붙여 미술박람회에 출판했던 적도 있습니다. 볼 것도 없이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지요.
기존에 존재하던 미술에 대한 능멸인가, 새로운 미술에 대한 패러다임인가를 두고 논쟁이 일어난 것은 안 봐도 비디오였습니다. 결과적으로 패러다임이라는 의견에 힘이 실렸고, 이후 아방가르드 예술이라는 새로운 장르와 계파를 만들어 내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창작을 감싸고 있는 딜레마
하지만 마르셀 뒤샹의 사례를 아웃도어 분야 텐트에 적용하기에는 애매한 구석이 많습니다. 예술계가 개방적이라고 해서 아웃도어 분야도 개방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비논리적이지요. 오히려 창작과 표절의 적정선을 정하는 것이 빠를 수도 있겠습니다.

텐트의 경우 특수한 조건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실용성이 있는 아이디어나 창작물의 경우 특허 등 제도를 통해 법적 보호받을 수 있지만, 텐트의 경우에는 국제법상 재난구호물품으로 구분되어 이를 등록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저는 참 현실과 동떨어진 법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직도 텐트가 난민구호단체에서 폭넓게 쓰이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그리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도 아닙니다. 하지만 특허에 보호를 받기 힘들다는 건 텐트 시장에서 카피 논쟁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 근 몇 년 동안 내전을 피해 유럽으로 떠나는 보트 피플에 대한 이야기, 많이 들어보셨죠? 그 보트 피플과 같은 난민들이 생활하는 텐트 난민촌의 실상이 이렇습니다. 아무리 캠핑을 여가로 받아들이는 인식이 넓어졌다 해도 텐트가 재난구호용품이라는 범주에서 절대 빠져서는 안되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새롭고 실용적이면서 독자적이기까지 한 텐트 디자인 하나를 만드는 데에 드는 노력은 다른 창작물을 만드는 것에 비해 진입장벽이 높은 데 반해, 완성된 텐트 디자인 하나를 몰래 가지고 와서 부분적으로 혹은 전체적으로 도용해 제 3자의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너무나도 쉽습니다. 이런 일이 빈번하다보니 창작자의 입장에서는 김이 빠지고도 남지요.

성장 과도기에서 주춤거리고 있는 현재 우리나라의 아웃도어 시장의 경우 이러한 문제를 보다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더 큰 도약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도 딜레마는 있습니다.

창작자의 입장에서는 텐트 하나를 만들기 위해 들인 수고에 정당한 대가를 원하지만 실제 발생하는 가치는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 어떤 창작자도 신제품 개발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순수한 의도로 시작한 창작이라고 해도 경제적인 부분은 뒷받침 되어야 꾸준한 창작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뚜렷한 기준이 없어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창작자가 수고를 들여 만든 제품을 카피캣들이 간단하고 쉽게 표절해 동일한 제품을 내놓는다면 창작자의 입장에선 지적 재산의 피해가 크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남이 만든 제품을 가져다가 단점까지 보완해서 판매하는 사람이 더 큰 돈을 벌게 된다면 그 누구도 어려운 창작의 길을 선택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반복될 경우 텐트 시장의 양적 성장은 어느 정도 이뤄질 수 있지만 질적으로는 사실상 침체 상태에 접어들게 될 것입니다.

▲ 한국 시장에 진출했다가 뜻하지 않게 쓴맛을 봐야만 했던 영국 태생의 벨 텐트입니다. 이른바 감성캠핑 열풍으로 온 캠퍼들이 들썩였던 당시만 해도 이만큼의 감성 품질을 보증하는 텐트는 없었지요. 그게 수요와 공급의 격차를 벌린 결정적인 이유가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사례로 살펴본 카피의 실제

실제 국내에서 일어났던 두 개의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 사례는 몇 년 전 영국의 벨 텐트가 한국 시장에 진출했던 때의 일입니다. 국내에서는 한창 아웃도어와 캠핑에 대한 붐이 일고 있던 때였지요. 당시 해외 텐트메이커들이 속속 한국 아웃도어 시장에 론칭을 했는데, 벨 텐트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벨 텐트가 한국 시장에 진출하고 나서 그 어느 때에도 누리지 못했던 최고의 호조를 이어가게 됩니다. 원폴 티피의 고전적인 디자인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출입문 쪽에 시옷 자 모양의 베스티블을 만들고 측면의 격벽을 살려 공간적 측면과 디자인적 측면에서 실용성을 한 층 더 끌어올린 디자인에 당시 캠퍼들은 열광했지요. 제법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판매가 크게 상승해 벨 텐트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를 기회라고 생각했던 카피업자들이 벨 텐트를 가지고 중국으로 가서 똑같이 카피해 더 싼 가격에 조금 떨어지는 품질의 제품을 만듭니다. 그리고 한국 시장에 감쪽같이 물량을 풀어버린 것이지요.

▲ 일본계 텐트메이커인 스노우피크에서 오랫동안 선보였던 리빙쉘 모델입니다. 반포텍이라는 제조사에서 관련 지적재산권을 모두 가지고 있다 보니 다른 브랜드에서 카피품을 출시해도 법적으로 조치를 취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스노우피크는 이에 지지 않고 리빙쉘이라는 브랜드의 가치를 독자적으로 높여가며 선두주자로서의 입지를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는 700동 한정으로 상품성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시킨 프로 그레이 한정판을 내놓았지요.

영국에서 직접 텐트를 제작하여 공수해 오던 텐트메이커 벨은 추가로 발주한 물량이 한국에 입항하기 전부터 브랜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순식간에 카피 제품들이 브랜드의 이미지를 야금야금 갉아먹었던 것이지요. 게다가 쏟아져 나온 카피 제품들이 국내 시장의 수요를 어마어마한 물량으로 잠재우면서 벨 텐트의 신드롬도 금방 끝나게 되었습니다. 결국 영국에서 출항한 진품이 한국에 도착했을 땐 텐트메이커 벨이 크나큰 손해를 보게 됩니다. 이로 인해 원조 텐트메이커 벨은 한국 시장에서 철수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사례는 스노우피크 사에서 현재도 출시되고 있는 리빙쉘 텐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사례도 전반부의 스토리는 비슷합니다. 최초 발매되었던 리빙쉘이 고가임에도 캠퍼들에게 인기를 끌었고, 이걸 기회로 삼아 카피캣들이 쏟아져 나온 것이지요.

하지만 이 사례의 경우 조금 특수한 이해관계가 존재합니다. 리빙쉘 텐트 디자인의 지적재산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스노우피크가 아니었거든요. 소유권자는 바로 60년대 대우텐트를 전신으로 하는 반포텍이라는 중국 소재 텐트메이커였습니다. 이유를 불문하고 어렵게 따낸 구조물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오픈한 것이지요.

▲ 카피에 대한 논쟁이 결코 쉽지 않은 이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재현도 과연 카피냐는 회의가 생기기 마련이니까요. 일례로 스웨덴 태생의 텐트메이커인 힐레베르그에서 출시한 알타이라는 쉘터는 몽골 유목민들이 사용하던 게르에서 착안하여 이를 힐레베르그만의 방식으로 재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과연 재현도 나쁜 것일까요? 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데, 이 의견이 나쁘게 왜곡되는 것은 아닌지 사실 꽤 걱정됩니다.

결과적으로 반포텍에서 리빙쉘 A형 폴 구조 디자인에 관한 특허를 사실상 오픈한 것은 국내 아웃도어 시장의 가성비에 중점을 둔 중저가 텐트가 발전하는 데 적지 않은 힘을 보태게 됩니다. 이때 양적인 성장과 함께 질적인 성장도 일어났습니다. 그렇다고 스노우피크가 망한 것도 아닙니다. 선발주자로서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상품성을 개선하는 데 이전보다 더 많은 노력과 투자를 아끼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때 리빙쉘을 만들던 스노우피크와 카피품을 만들던 중소규모의 메이커들이 함께 성장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단순히 어떤 제품을 비슷하게 따라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창작을 훔치는 것은 범죄입니다. 창작자의 권리가 그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혹시라도 아이디어나 특정 디자인을 빌리고 싶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지불을 먼저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텐트와 아웃도어에만 적용할 문제는 아닙니다만 제품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당장의 수익만큼 함께 지켜야 할 윤리도 소중히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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