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로 가기위한 모험
남미로 가기위한 모험
  • 글 사진 정효진 기자
  • 승인 2016.04.23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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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여행자의 지구별 자전거 여행

세계에서 가장 미스터리 한 곳 중 하나가 바로 남미와 중미를 이어주는 지점이다. 육지가 서로 이어져 있지만 누구도 건널 수 없다. 밀림에 숨어 사는 마약 갱들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비행기나 배를 타고 중미와 남미 사이를 오가야 한다. 짐이 많은 데다 돈도 부족한 나로서는 배로 가는 모험을 선택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국경 넘기
파나마의 작은 항구 도시 포르토벨로에 도착해 경로를 탐색했다. 예상과 달리 콜롬비아로 넘어가는 요트가 별로 없다. 마을에서 알게 된 포르투갈 사람과 저녁에 근처 술집을 갔지만 별다른 정보를 얻지 못했다. 여자 혼자 항구를 돌아다니며 배를 찾는 건 위험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호스텔에서 지내며 일행을 찾으면 어떨까 싶었지만, 그것 또한 큰 도움이 되진 못했다. 마침 호스텔 사장이 요트를 소유하고 있었다. 콜롬비아로 항해는 4~5일 걸리는데 가격이 450달러란다. 불행하게도 호스텔에는 나처럼 싼 가격의 배를 찾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과연 콜롬비아에 갈 수 있을까?

▲ 요트로 갈아타기 위해 조그마한 배에 자전거를 싣다.

▲ 요트에 자전거를 태우다.
호스텔에선 요리도 할 수 없고 와이파이도 유료라 오래 머물수록 손해였다. 하루빨리 배를 찾아야 했다. 전날 저녁에 갔던 호프집에서 1달러짜리 맥주를 먹으며 인터넷을 하다가 포르투갈 친구를 다시 만났다. 그 친구에게서 새로운 소식을 들었다. 산블라스까지 가는 배가 50달러고, 5일 뒤에 산블라스에서 콜롬비아로 가는 배가 175달러에 있단다. 이 말은 즉, 5일 동안 산블라스 섬에 있어야 한다는 소리다. 그러면 그만큼 숙박비가 나갈 테니 큰 이익은 아니었다. 그냥 파나마시티에서 다 해결하고 올걸, 괜히 여기 와서 숙식비만 축내는 중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50달러짜리 배를 타고 산블라스까지 간 다음, 콜롬비아로 넘어가는 배를 다시 찾기로 했다.

산블라스로 떠나는 날 아침엔 비가 내렸다. 전날 밤부터 내리던 비다. 요트 갑판에서 실내로 들어가면 화장실, 부엌, 방이 나온다. 그런데 실내에 있으니 머리가 너무 어지러웠다. 요트가 작다 보니 배가 심하게 흔들렸다. 항해가 시작되고 바다 한가운데 다다를수록 상황은 최악이 되었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멈추지 않고 계속 타는 거 같았다. 생애 이렇게 극심한 고통은 처음이다. 너무 힘들어서 포르토벨로로 다시 돌아가자고 말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정신을 잃지 않은 걸 감사하게 생각한다. 정신을 놓았다면 아마도 고통을 잠재우기 위해 바다로 뛰어들었을 거다.

산블라스까지 12시간 걸린다고 했는데, 그들의 말에 의하면 고맙게도(!) 폭풍 덕분에 10시간 만에 도착했다고 했다. 선장은 참 여유로워 보였다. 나는 10시간 동안 물 한 모금 못 마셨는데, 선장과 그의 친구는 그 폭풍 속에서 커피도 마시고 점심도 먹고 심지어 줄낚시도 했다.

▲ 작은 요트의 실내.

내 보트는 어디 있지?

막상 산블라스에 도착하니 막막했다. 산블라스제도에는 378개의 섬이 있으며 12%에 해당하는 49여 개의 섬에 사람이 거주하고 있다. 원주민 쿠나를 볼 수 있는 곳이다. 배에서 내렸지만, 여전히 머리가 어지러웠고 몸이 좋지 않았다. 모든 게 다 흔들리는 거 같다. 마땅히 머물 곳이 없어서 10달러를 내고 현지인 오두막에서 머물렀다. 그런데 그곳에서 베드버그에 온몸이 뜯겼다. 내가 머물던 곳엔 고작 5채의 집이 전부였다! 모든 배는 바다에 떠 있고 나는 섬 안에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콜롬비아에 가는 배를 찾는단 말인가?

배가 정박했을 당시 슈퍼맨 티셔츠를 입은 선장의 친구로 보이는 사람이 방문했는데 다음날 그를 다시 만났다. 그가 콜롬비아로 가는 배를 알고 있다며 그 배에게 한번 물어보자고 했다. 그의 조그마한 보트를 타고 프랑스인의 요트에 접근했다. 그 프랑스인은 나에게 파나마 출국도장을 받아오면 무료로 배에 태워주겠다고 했다. 이게 웬 횡재인가? 그는 내일 아침 7시에 콜롬비아로 간단다.

▲ 10달러짜리 현지인 호텔.

슈퍼맨 티셔츠를 입은 선장 친구가 현지인을 소개해줬다. 그 현지인은 모터를 빌린 거라며 나중에 섬에 도착해서 모터 주인에게 연료비용을 물어본 후 배 비용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혹시 몰라서 슈퍼맨 티셔츠에게 얼마 정도가 평균이냐고 물으니 20달러 정도라고 한다. 배에는 원주민의 가족도 함께 탔다. 역시나 바람이 심해서 배가 흔들렸다. 배는 출입국관리소가 있는 섬에 바로 가지 않고 그들이 사는 조그만 섬에 먼저 멈췄다. 그리고 그의 가족들이 내리고 갑자기 협상이 시작되었다. 그들끼리 막 목소리를 높이며 토론을 하더니 나에게 40달러의 요금을 요구했다. 어제 10시간 타고 온 배가 50달러였는데, 2시간 왕복하는 데 비용이 40달러라고? 게다가 솔직히 자기네들 집에 가는 길에 나 태운 거잖아. 하지만 분위기가 너무 삭막했다. 협상이 잘 안 되면 그 섬에 평생 갇힐 거 같았다. 정말 너무 한 거 아닌가. 모터 주인이 따로 있는 것처럼 처음에 말했으나, 라틴문화를 대충 아는데 절대 그들은 한 가족 한 무리다. 결국, 25달러에 협상했다.

그런데 더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출입국 관리소에서 도장을 찍어주지 않았다. 반드시 선장과 같이 와야 한단다.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내가 머물던 치치메 섬으로 돌아가는 길은 더욱 험했다. 도대체 운전을 왜 그렇게 험하게 하던지. 첫 운전은 자기 가족들이 타고 있어서 그랬는지 바닷물을 하나도 튀지 않게 조심해서 운전했는데, 돌아갈 때 운전은 모든 바닷물을 배 안에 다 유입시키려는 듯했다. 나는 홀딱 다 젖었다.

▲ 마침내 산블라스 제도에 도착하다.

▲ 콜롬비아로 가는 배를 찾다.

치치메 섬으로 돌아와서 그 프랑스인에게 출입국에서 도장을 안 찍어준다고 같이 가달라고 부탁했으나, 자기는 내일 아침 떠나야 한다며 거절했다. 오후 3시였다. 충분히 같이 갈 시간이 있는데.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똥개 훈련시키는 건가? 나를 더욱더 분노하게 하는 건 그가 계속 반복해서 “You have a boat. Talk to him (네가 타고 갈 보트 있으니까 그와 얘기해)”라고 얘기해서다. 이게 뭔 소리인가? 내가 모르는 보트를 당신이 어떻게 알아? 억울하고 분노가 치밀어 올라 눈물이 쏟아졌다. 안 그래도 몸이 좋지 않았는데, 몸을 이끌고 원주민의 배를 타고 고생고생해서 갔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었다. 원주민의 섬에 가서 당한 일 하며, 모든 사람이 나를 갖고 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잔돈이 없어서 배를 운전한 원주민에게 21달러를 주었다. 원주민은 울고 있던 내가 불쌍했던지 더 이상의 돈을 요구하지 않았다.

▲ 눈부시게 아름다운 산블라스 섬.

▲ 돌고래를 만나다.

쉬운 길을 돌아오다

사실 포르토벨로에 있을 때 다비드라는 사람이 나에게 보트 탈건지를 물어봤고 400달러를 낼 돈이 없어서 그와의 인연은 이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50달러에 나를 태워준 선장이 다비드의 친구였다. 슈퍼맨 티셔츠 역시 다비드의 친구였다. 모든 사람이 다비드의 이름을 말했다. 다비드가 내일 도착한다며, 그의 배를 타보라고. 혹시 슈퍼맨 티셔츠가 배를 가진 프랑스인에게 내가 배가 있으니 나를 도와주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 게 아닐까. 하지만 슈퍼맨 티셔츠는 그런 말하지 않았다며, 그 프랑스인 애가 출입국 관리소에 가기 귀찮아서 그런 거라고 했다.

▲ 캐리비안 해의 아름다움.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 모든 사람이 다 나를 갖고 노는 거 같았다. 배 주인인 프랑스인도, 슈퍼맨 티셔츠도, 난폭한 운전을 하고 가격을 올린 원주민도. 모두 나를 바보로 알고 있는 거 같다. 눈물 마를 날 없는 모험이다.

결국, 이날 저녁 다비드의 보트가 도착했다. 슈퍼맨 티셔츠가 다비드의 배에 가서 나를 소개해주었다. 이젠 선택의 여지가 없다. 콜롬비아로 가는 배는 오직 다비드밖에 없었다. 싫든 좋든 협상을 봐야 했다. 결국, 150$에 식비를 포함하고 산블라스에서 카르타해나까지 함께 가기로 했다.

협상을 본 날 저녁부터 다비드의 배에서 자게 되었다. 배가 계속 흔들려서 깊게 자지 못했다. 하지만 다리의 간지러움은 많이 나아졌다. 아침에는 출입국관리소에 가서 도장을 받았다. 이 쉬운 걸 나는 왜 그렇게 돌아갔던 걸까. 출입국관리소로 가는 길에 돌고래 한 마리를 발견했다. 카메라를 들고 나온 사이 더 많은 돌고래가 모였다. 돌고래는 우리와 같은 속도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다가 어느 순간 사라졌다. 사람들이 왜 카리브 해를 가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물이 정말 투명했고 물색도 아주 예뻤다. 모든 게 환상적이었다.

▲ 이색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카르타헤나.

아침엔 출국서류를 준비하고 오후에는 다른 섬에서 느긋하게 휴식을 취했다. 다른 여행자와 섬 안쪽으로 들어가서 코코넛을 샀다. 오후 5시가 넘어서 산블라스 제도와 작별인사를 하고 콜롬비아로 항해를 시작했다. 내가 탔던 요트는 가고자 하는 곳의 방향을 기계에 입력하면 사람이 운전할 필요가 없는 자동이다. 그런데 밤에 우리는 2시간 간격으로 교대를 서야 했다. 나는 좀 싸게 탔다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400달러 넘게 주고 탔을 텐데, 그렇게 비싼 돈 내고 불침번을 서다니 고생이 많아 보였다. 배가 심하게 흔들리는 새벽에도 캡틴은 잠을 자고 있었다. 분명히 3식을 제공한다고 했었는데, 아침은 탑승객들이 직접 준비해 먹었다. 하지만 점심, 저녁만큼은 캡틴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줬다.

이튿날 새벽 늦게까지 불침번을 섰던지라 아침에 살짝 늦게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밖을 바라보니 육지가 보인다. 6일 만에 보는 육지였다. 육지에 내려와서 바퀴 펑크 난 걸 수리하는 도중 큰 충격에 휩싸였다. 자전거가 녹슬었다. 아무래도 파나마에서 산블라스 제도로 갈 때 폭풍에 자전거가 흠뻑 젖었던 거 같다. 상상 이상으로 자전거가 상했다.

사실 중미에서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차라리 유럽으로 가는 건 어떨까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내가 남미까지 내려올 수 있었던 건 바로 사람들이 남겨준 댓글 하나, 가끔 보내주는 이메일 덕분이었다. 그동안 정말 많이 힘들었지만, 어디다 하소연 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힘들어하던 나날을 이겨내고 드디어 남미에 다다랐다. 사실 남미가 중미보다 쉬울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래도 할 수 있는데 까지는 최선을 다해서 가보고 싶다.

▲ 어딜 가든 자주 보이던 경찰.

콜롬비아에서 강도를 만나다

사실 콜롬비아에 오기 전 긴장을 좀 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멕시코보다는 안전하다고 했다. 멕시코에서도 살아남았으니 콜롬비아에서도 별문제 없이 달릴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콜롬비아에 도착해서 입국도장을 받으니 마음이 홀가분했다. 나의 남미 첫 도시 카르타헤나는 198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답게 올드타운이 굉장히 아기자기하고 예뻤다. 해안가엔 성벽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한낮의 열기가 너무 뜨거워 그늘에서 자주 쉬어야만 했다.

자전거를 타고 도시 외곽을 벗어나려고 하는데 꽤 복잡했다. 달리는 내내 경찰이 계속 보였다. 아직도 내전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무장경찰이 이렇게 많은 건 아닐까. 길 위에서 혼자 달리는 나로서는 경찰이 많을수록 편하게 달릴 수 있어 좋다. 길 위에 있는 경찰서 덕분에 화장실도 이용하고 물도 4L나 넘게 얻고 지도도 얻을 수 있었다.

배를 타기 위해 돈을 너무 많이 썼기에 당분간은 숙박업소를 이용하지 않고 텐트에서만 지내려고 했다. 해지기 전에 경찰서를 발견해서 경찰서에 허락받고 텐트를 치려고 했으나 안 된다고 한다. 이후 경찰서장에게 여권을 보여주고 이것저것 얘기했고 경찰서장은 생각하게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가 생각하는 동안(?) 그와 나는 페이스북 아이디 교환도 하고 구글 번역기로 이것저것 얘기했다. 과연 이것은 심문과정인가? 아니면 친구가 되는 과정인가? 이후 그는 텐트를 쳐도 된다고 허락해 주었다. 저녁까지 챙겨줬다. 경찰서장은 뜻밖에 젊었다. 나와 동갑에 20대 중반! 한국과 마찬가지로 컬럼비아도 대학교에서 경찰 전문 과정으로 공부하면 바로 이렇게 높은 자리로 오나보다. 동갑이라 그런지 하는 짓이 좀 귀여웠다.

▲ 캐리비안 해에서의 시간.

다음날 한참 오르막 내리막 언덕을 지나치는데, 풀을 벨 때 쓰는 긴 칼을 허리춤에 찬 사람이 나에게 해맑게 웃으며 히치하이킹 표시로 엄지손을 내민 걸 보게 되었다. 물론 자전거 여행자인 나에게 그의 모습은 장난처럼 보였다. 뭐 이런 장난 한두 번도 아니고 해서 살짝 피해서 지나치려는데, 이 사람이 나한테 다가오기 시작했다. 결국, 이 사람이 너무 근접해 오는 바람에 나는 반대편 차선으로까지 넘어가서 달려야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사람과 나는 추격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정말 다행히도 당시엔 오르막이 아니었기에 페달질을 빨리할 수 있었다. 나의 페달질이 빨라질수록 그가 나를 쫓아오는 속도도 빨라지기 시작했고, 큰 위협을 느낀 나는 죽을힘을 다해서 페달을 밟았다. 귀에서 울려 퍼지는 그의 운동화 소리가 너무나 크게 들렸다. 그도 죽을힘을 다해서 나를 쫓아오는 거 같았다. 내가 미친 듯이 페달을 밟으며 빨리 달리자 그가 어느 순간 포기하더니 바로 뒤돌아섰다.

내 생각에 그 당시에 지나가는 차량이 없자 강도질을 하려고 하다가 내 속도가 빠르고 주변에 차들이 올 거 같으니 황급히 포기한 게 아닌가 싶다. 정말 끔찍한 경험이었다. 그의 신발이 아스팔트를 찰 때 냈던 소리가 한동안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콜롬비아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강도와 추격전을 하다니. 앞으로 갈 날이 먼데, 제발 이런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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