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의 스펙트럼…자브리스키 포인트
태고의 스펙트럼…자브리스키 포인트
  • 글 사진 앤드류 김 기자
  • 승인 2016.03.30 17: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ANDREW’S TRAVEL NOTE

가도가도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없는 우주의 떠돌이 행성처럼 을씨년스럽다. 황량함의 끝이 어디까지인지 보여준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와 네바다주에 걸쳐있는 죽음의 계곡 국립공원Death Valley National Park. 공원에 들어서면 처음 마주하는 곳이 자브리스키 포인트Zabriskie Point다. 국립공원 이름도 가뜩이나 섬뜩한데 입구에서 마주치는 이곳의 이름도 희한해서 궁금증이 커진다.

죽음의 계곡
주차장에서 산등성이 올라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으나 주위에 펼쳐진 풍광이 예사롭지 않다. 무엇이 펼쳐질까? 호기심에 부풀어 정상에 오르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믿을 수 없는 풍광은 그 자리에서 한 치의 움직임도 허용하지 않았다.

일생동안 희노애락의 긴 쌍곡선이 마치 연륜처럼 상징되는 인간의 주름살처럼 이곳 사막의 산등성이 하나하나에도 그 영겁의 주름살들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무려 5백 만 년 긴 풍파 견디어 낸 주름살이다. 고만고만한 굴곡진 산등성이들이 종으로 횡으로 끝없이 이어진 모습은 파도치는 듯한 파노라마를 연출한다.

그것도 모자라서 굴곡진 언덕 능선 등마루 마다 선명히 드러나는 하얀 선들은 마치 사막의 생존을 위해 생명을 불어 넣는 실핏줄처럼 보인다. 그 등마디 따라서 파스텔 톤의 스펙트럼까지 더한다. 죽음의 계곡 국립공원 안에서 대자연이 빚어낸 이런 풍광은 감동적이면서도 아이러니로 다가왔다.

지구에는 설명을 들어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불가사의한 지형들이 많다. 자연이 빚어낸 것이리라. 자브리스키의 주름진 능선들과 그 천연의 스펙트럼은 어찌 만들어졌을까? 우선 이곳이 2억 년 전 바다의 깊은 심해였다면 믿어질까? 그때부터 수 차례에 걸친 대형 지각변동에 의해 지금의 지형이 서서히 만들어졌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자브리시키 포인트 지형이 최종 완성된 것은 5백 만 년 전으로 추산한다. 그리고 이곳 일대가 갑자기 바다가 육지가 되면서 바닷물이 산맥 사이 분지 속에 갇혀 그대로 거대한 염호가 되었다.

그래서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소금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암튼 이 거대한 염호에 갇힌 바닷물은 너무나 뜨거운 이곳 날씨를 견디지 못하고 과거 수 백 만 년에 걸쳐 깨끗하게 증발되고 오늘날 우리들에게 그 민낯을 보여주고 있다. 마치 파도치는 물결이 어느날 육지화석이 되어 그대로 굳어버린 듯한 이곳 자브리스키 포인트의 신기한 지형 보면 보기만 해도 그대로 화석이 된다는 그리스 신화의 메두사마저 떠오른다.

미스터 자브라스키
그럼 자브리스키Zabriskie 이름은 어디서 온 것일까? 죽음의 계곡이라는 국립공원의 이름에 걸맞게 이 이색적인 풍광의 사막 역시 이름이 독특하다. 알고 보면 사람 이름이다. 기대에 비하면 맥이 빠지는 반전인데, 알고 보면 진짜 반전은 따로 있다. 자브리스키라는 이름 뒤에는 한 편의 휴먼 스토리가 숨어 있다. 크리스토퍼 자브리스키Christopher Zabriskie는 미국에서도 희귀한 성으로 그 인구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들의 선조는 폴란드 이민자들이다. 폴란드어 자Za는 한국어로 ‘저 건너서’ 혹은 ‘저 뒤편에’ 라는 의미이고 브리스키Briskie는 자작나무를 가리킨다. 즉 성의 의미가 ‘자작나무 뒤에서’라는 뜻이다. 자브리스키는 이 곳에 자리잡고 있던 붕소광산회사의 부사장이었다. 그는 이곳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전, 척박한 이곳까지 찾아온 관광객들 위해 광산노동자들 숙소를 사용하게 하고 관광코스도 만들어 이곳을 홍보했다.

사실 ‘죽음의 계곡’ 국립공원이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것은 1880년대 이곳에서 붕소가 대량 발견되면서 시작되었다. 미스터 자브리스키는 퍼시픽붕소회사Pacific Coast Borax Company 붕소광산의 부사장으로 36년간 이곳에서 재직하고 1933년 은퇴했다. 그는 광산에 재작하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죽음의 계곡에 펼쳐진 많은 초현실적 명소들을 답사하고 정리해서 연방정부에 탄원서를 보냈다. 이곳이 국립공원으로 얼마나 가치가 높은지를 그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광물질 붕소와 오늘날 ‘죽음의 계곡’은 미스터 자브리스키 만나면서 빛나는 찰떡궁합이 된 것이다.

그 옛날 이곳에선 수많은 화산들이 여기저기서 폭발하면서 화산재들이 바닷물 염호 속으로 계속 흘러 들어가면서 화산재 주성분인 붕소와 염호 속 나트륨이 섞이면서 고품질 광물 붕소가 대량으로 채굴되기 시작한 것이다. 어쩌면 붕소와 미스터 자브리스키가 인간에게 무서울 것 같은 ‘죽음의 계곡’ 빗장을 열어준 셈이다. 미스터 자브리스키가 은퇴한 지 3년 후 사랑하던 ‘죽음의 계곡’ 과 이 세상에서 영영 작별을 고하면서 미연방은 비로소 국립공원 전 단계인 천연기념물National Monument로 지정했다. 그리고 초현실적 지형을 품은 제일 소중한 이곳을 자브리스키 포인트로 공식 명명하여 그의 헌신적 노고에 보답한다.

앤드류 김 Andrew Kim
(주) 코코비아 대표로 커피 브랜드 앤드류커피팩토리Andrew Coffee Factory와 에빠니Epanie 차 브랜드를 직접 생산해 전 세계에 유통하고 있다. 커피 전문 쇼핑몰(www.acoffee.co.kr)과 종합몰(www.coffeetea.co.kr)을 운영하며 세계를 다니면서 사진작가와 커피차 칼럼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