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트메이커의 목줄을 풀어라
텐트메이커의 목줄을 풀어라
  • 글 사진 조민석 기자
  • 승인 2016.03.29 17: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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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고등어’의 텐트 이야기 | 수익성

이번 달 주제는 수익성profitability입니다. 텐트와 경제라니 뜬금없죠? 그렇지 않습니다. 양식고등어의 텐트 이야기를 연재하면서 수익성에 대한 이야기는 텐트메이커의 역사적인 순간에 늘 결정적인 이유로 작용했습니다. 이번에는 수익성이라는 변수가 특정 텐트메이커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찬찬히 짚어보겠습니다.

▲ 80년대 후반의 모스 슈퍼돔과 2000년대 중반의 MSR 팬텀의 모습입니다. 소비자들의 요구에 충실했던 모스의 후기작입니다. 중기까지 모스 텐트에 사용된 PU코팅을 입힌 탄력 원단이 곡선미 등의 미술적 가치에 조금 더 초점을 둔 것이었다면, MSR 팬텀에 사용된 두꺼운 나일론 원단은 실용성과 수익성에 초점을 맞춘 모델입니다.

수익성? 텐트랑 무슨 상관?

수익성은 정확하게는 ROI라는 경제용어를 뜻합니다. Return On Investment, 투자자본수익률입니다. 풀자면 얼마를 투자해서 얼마만큼의 수익을 얻었는가를 비율로 따진 겁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없던 용어였는데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경영의 효율성을 따지는 시장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생긴 용어지요. 무작정 들어온 돈이 많다고 수치가 좋아지는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다들 아실 겁니다. 들어간 돈이 많다면 수익은 적을 테니까요. 많이 투자하면 많이 벌 확률이 높지만, 무작정 많이 투자하면 리스크도 커집니다. 리스크를 줄이자면 투자를 줄여야 하는데 그러면 좋은 제품을 만들기 어렵죠. 이 정도만 이해하고 텐트로 넘어가겠습니다.

텐트메이커들은 일정량의 돈을 들여 필요한 기술들을 개발하고 제작에 필요한 원단과 폴 등 원자재를 구하고 노동력을 들여 텐트를 만듭니다. 만들어진 텐트를 소비자에게 판매해 이익을 얻지요. 그 이익의 총량에서 기술을 개발한 비용, 원자재를 산 비용, 인건비, 판매를 위한 유통 및 홍보비를 빼야 실제 이익이 남습니다. 이게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원론적인 텐트메이커 시장의 운영 기반입니다.

▲ 수익성과는 거리가 먼 텐트 디자인도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빌 모스의 디자인 작품들을 손에 꼽을 수 있는데요, 왼쪽으 빅 디퍼 초기형 모델은 공간의 효율성도 많이 떨어집니다. 오른쪽 MSR 파라윙도 공간적 효율성과는 거리가 꽤 멀지요. 하지만 미적인 가치를 인정 받아 오늘날 경매 시장에서 높은 가격으로 거래됩니다. 새로운 가치를 만든 셈이죠.

수익성이라는 키워드는 1960년대 이래로 다양한 텐트들이 시장에 모습을 드러내면서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텐트를 ‘만드는’ 일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수익성이 생산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요. 텐트를 만드는 사람들은 텐트라는 상품을 팔아 수익을 거두어야 하니, 그 이익을 극대화 시킬 방법을 찾을 것입니다. 비용을 낮추거나 가격을 높이거나. 비용을 낮추면 제품의 질이 떨어지고, 가격을 높이면 소비자들이 사질 않습니다. 제품의 질이 좋아지려면 비용이 들고, 팔려면 가격을 낮춰야 합니다. 그러니 어디가 ‘적당한 균형’인지 살펴 입장을 정하고 개발과 판매를 통해 수익을 거두어야 합니다. 반세기 이상의 텐트메이커 역사를 통해 증명된 사실입니다. 텐트뿐 아니라 모든 제품이 마찬가지긴 합니다.

▲ 90년대를 주름잡았던 텐트메이커 가루다에서 출시했던 파타르입니다. 아웃도어 활동 중 극한의 상황으로부터 사람을 지켜줄 수 있는 텐트를 만들고 싶다던 바이런 슈츠가 직접 디자인하고 만들었습니다. 기술적 완성도와 세부 부속품들까지 눈길을 끌 정도입니다. 초기에 수익을 많이 못 냈는데, 후에 콜롬비아에 편입되면서 수익성이 좋아진 반면 텐트 자체의 만족도는 현저히 떨어졌지요.

하우스브랜드 저물다

텐트라는 ‘상품’은 텐트메이커의 입장에서 보면 노다지보다는 계륵에 가까운 아이템입니다. 현실적이고 경제적인 면에서 봤을 때 남는 게 없다는 거죠. ROI로 따지면, 텐트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기술력이나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에 비해 판매를 통하여 얻는 이익이 생각만큼 많지 않다는 뜻입니다. 텐트 시장이 크지 않던 시절, 원단을 개발하거나 만드는 일, 텐트를 디자인하는 일, 폴을 만드는 일, 원단을 바느질하는 일 외에도 수많은 공정과 절차들을 생각해 보면 텐트를 통해 이익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이러한 과정들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지요. (대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 내는 효과도 더불어 생깁니다. 야호!) 그렇다고 텐트메이커 혹은 토탈 아웃도어 브랜드가 텐트를 외면하기도 어렵습니다. 텐트는 아웃도어 브랜드의 상징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굳이 원정대에 공급하기 위해 텐트를 만들지 않더라도 텐트 라인업은 갖추려고 하는 게 브랜드의 입장입니다. 우리나라 토탈 브랜드들이 텐트 시장에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면서도 텐트를 생산하는 이유입니다.

1960년대에 등장하기 시작한 텐트메이커들과 오늘날 아웃도어 시장에서 경쟁하는 텐트메이커들이 보이는 가장 큰 차이는 바로 ‘규모’입니다. 20세기 후반에 텐트메이커 시장을 종횡무진하며 텐트의 혁신을 이끌었던 군소 규모의 텐트메이커들, 혹시 이름 하나 쯤은 기억나시나요? 가루다나 바이블러 같은 군소 규모의 텐트메이커들 말입니다. 이들이 많은 산꾼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독자적으로 강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소비자들의 니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기술력과 완성도였습니다. 시장 형성 초반기, 기술력과 완성도가 미미했던 시절이니까요. 하우스브랜드 규모의 텐트메이커들이 경쟁력을 가졌던 시절입니다.

▲ 80년대 싱글월 텐트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바이블러 사의 아와니 초기 모델입니다. 수익성보다는 제품의 완성도와 기술력에 초점을 맞춘 녀석이지요. 블랙다이아몬드 사에 인수합병된 후 구조조정을 거쳐 수익성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춘 텐트가 지금의 아와니입니다. 프레임은 같지만 원단의 두께나 완성도는 사진 속 모델이 한 수 위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왜 하우스브랜드 규모의 텐트메이커들의 전성기가 어느 순간 끝나버린 것일까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전문 경영 체계 도입과 브랜드 간 기술 교류로 인한 기술 평준화. 첫 번째 이유는 1990년대 이후의 노스페이스와 블랙다이아몬드를 그 예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두 브랜드 모두 아웃도어 활동 전반에 사용되는 토털 아웃도어 브랜드라고 할 수 있는데, 중요한 사실은 그들이 다른 사업 분야에서 견고히 다져온 경영 체제와 척도를 텐트 사업에 그대로 적용하고 맞춰나가고자 했다는 점입니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경영, 말하자면 수익을 추구하는 경영이었습니다. 그 결과 기업은 수익을 남겼지만 소비자들은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기술 발전의 여지가 아직 많은 시점에서 발전의 속도가 떨어졌으니까요. 이 과정에서 하우스브랜드들이 대거 희생되었고, 시장의 흐름도 바뀌었습니다.

두 번째, 기술 평준화. 거친 환경 혹은 극한의 환경에서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장비인 텐트가 그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다양한 메이커들이 힘을 모았습니다. 일례로 가루다의 경우 텐트를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과정에 빌 모스나 토드 바이블러 등의 타 텐트메이커 소속 텐트 디자이너들이 다수 참여했다고 합니다. 이 결과 20세기 후반의 하우스브랜드들은 기술의 발전을 이루었지만 텐트메이커 각자의 독특한 기술과 개성은 빛을 잃었습니다. 소비자들이 하우스브랜드의 텐트를 선택할 이유가 적어진 것이지요.

▲ 노스페이스의 아포지. 토드텍스 원단을 적용한 텐트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노스페이스는에서 새로운 싱글월 원단을 개발하여 만든 텐트입니다. 가격적인 측면에서 바이블러에 절대적으로 밀리면서 기술의 완성도에 상관없이 쪽박을 찼습니다. 이후 노스페이스는 철저히 수익성에 근간한 텐트들을 선보입니다. 기업의 수익성 추구를 나쁘게만 볼 수도 없는 일입니다.

수익과 기술의 딜레마

오늘날 텐트메이커 시장은 대규모의 자본을 밑거름으로 성장한 토털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근소한 점유율의 차이로 주도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우스브랜드 규모의 텐트메이커들이 만든 텐트에 열광하던 (사실 저도 그 중 한 사람입니다) 유저들은 과거만큼 텐트메이커 시장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합니다.
자본주의 원리가 텐트메이커 시장을 장악하면서 텐트에도 변화가 나타나게 됩니다. 적자생존. 수익성이 좋아야 살아남고 수익성이 나쁜 텐트는 단종되었습니다. 좋은 텐트와 수익성이 좋은 텐트가 항상 일치하진 않습니다. 게다가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원가를 절감하기 위한 노력을 합니다.

당장의 피해는 소비자들의 몫이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습니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텐트메이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좋은 제품을 원하는 소비자의 니즈에 조금이라도 더 효율적으로 맞추기 위해 수익 창출보다 기술 개발에 노력을 기울여 시장을 일구고 문화를 만들었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되었으니까요. 이전에는 수익이 좋은 텐트의 결과물이었다면 이제는 텐트 생산 여부를 결정짓는 원인이 된 셈입니다. 물론 기업은 수익을 남기는 게 목적인 조직이니 탓할 수는 없지만 아쉬운 게 사실입니다.

▲ 바로 90년대 중반에 모습을 드러낸 마운틴하드웨어도 초반에 큰 리스크를 떠안으며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마운틴하드웨어 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실리콘 코팅 원단 기술을 적용한 텐트인 유르트입니다. 초기 디자이너 마틴 제미티스가 과감하게 다방면으로 기술을 개발했지만, 소비자들은 보편성을 갖추지 못한 모델에 냉담했습니다.

열쇠는 소비자 손에 있다

방법이 없을까요? 저는 소비자들이 해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은 규모의 경제논리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지만, 소비자 역시 경제의 한 주체이니까요. 기업이 만든 물건을 사는 건 결국 소비자잖아요. 장기적인 관점에서 합리적인 소비를 한다면 건전한 문화가 만들어질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아웃도어 포럼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비자들이 능동적으로 텐트에 대한 각자의 니즈를 표현하고, 텐트메이커들이 이를 반영하여 텐트를 만들고, 시장에 선보이는 텐트들을 사용해 본 이들이 객관적인 평가를 남기고, 이 후기가 새로운 소비자들에게 그 텐트에 대한 평가의 척도로 작용할 것입니다. 가격과 기술력, 편의성, 윤리성까지 평가의 기준이 되겠지요. 그러한 과정 속에서 텐트메이커의 역사와 철학에 대해 보다 깊이 이해한다면 더 바람직한 평가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캠퍼들을 설레게 한 텐트메이커들의 역사와 철학에 대해 말씀드렸던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고맙습니다.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 참, 수익성 이야기 하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이단아 같은 텐트메이커가 있지요. 바로 70년대와 80년대의 모스입니다. 사진 속 슈퍼플라이라는 모델은 수익성이나 기술적 완성도를 고려하지 않고 오직 조형적인 예술을 위해 존재했던 텐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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