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트메이커의 얼굴
텐트메이커의 얼굴
  • 글 사진 ‘양식고등어’ 조민석 기자
  • 승인 2016.02.29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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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고등어’의 텐트 이야기 | 플래그십

이번에 들려드릴 이야기 주제는 플래그십Flagship입니다. 플래그십이라는 단어, 한 번쯤 들어보신 적 있을 겁니다. 플래그십은 해군 함대가 출정할 때 가장 우두머리에 있는, 해군사령관이 타는 배를 부르는 말입니다. 요즘은 의미가 많이 확장되었는데요, ‘해당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에서 가장 매력적인 상품이나 브랜드 또는 위치’를 말합니다. 패션, 자동차, IT 등의 분야에서 한 브랜드를 대표하는 상품을 플래그십 모델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만든 가게를 플래그십 스토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 1970년대를 전후로 텐트메이커 시장을 충격에 빠뜨렸던 텐트메이커 모스의 플래그십 텐트입니다. 텐트 모델명이 플래그십입니다. 플래그십 텐트냐고요? 네, 기함급 모델 맞습니다. 외양은 호박마차처럼 생겼지만 실제로 자세히 살펴보면 플라이와 이너 사이에 라텍스 소재의 완충재를 넣는 등 다른 스테디셀러 모델에서는 볼 수 없는 진귀한 기술력들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10동이 채 남지 않았습니다.

대규모 브랜드, 플래그십 텐트를 만들다

아웃도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고 있습니다. 군용 A형 텐트만이 알파인 텐트로 사용되던 시절 텐트 사용자들의 만족도는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악천후 상황에서 텐트의 성능에 한계가 오는 경우도 많았고, 이러한 환경과 상황이 곧 텐트를 사용하는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생명과 직결되어 목숨을 잃는 경우도 생겼으니 말입니다. 이러한 해프닝이 20세기 초반과 중반에 걸쳐 반복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악천후에서도 뛰어난 성능을 발휘하는 텐트를 찾게 되었지요.

그 중에서는 ‘차라리 내가 직접 텐트를 만들어 쓰겠다’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기술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텐트를 자급자족했고, 그 텐트에 대해 다른 소비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니즈를 표출하면서 거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하우스브랜드 규모의 텐트메이커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까지는 다들 잘 알고 계시죠.

▲ 노스페이스가 출범하고 난 이후 런칭한 지오데식 돔 시리즈 텐트 라인업의 정점으로 평가되는 2m 돔입니다. 강풍에 강하게끔 설계하기 위해 폴을 이리저리 엄청나게 꼬아놓은 것이 특징인데, 뜻밖에도 외관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특히 일본계 텐트 마니아들 사이에서 정말로 인기가 많은 모델입니다.

플래그십 모델의 개념이 등장한 시점은 큰 규모의 자본을 바탕으로 생겨난 대규모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텐트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한 20세기 중후반입니다. 거대 자본이 아웃도어 시장에 개입하면서 작은 텐트메이커들의 입지에도 큰 변화가 생겼거든요. 큰 브랜드들과 경쟁하기 위해 하우스브랜드 규모의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보인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마케팅이었습니다. 이들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첫째도 성능이었고, 둘째도 성능이었습니다. 특이한 텐트 구조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모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후발주자로 나선 대규모 아웃도어 브랜드들에게는 마케팅이 더 중요했습니다. 완성도 높은 제품을 만드는 건 넉넉한 자본으로 우수한 인력을 스카웃하면 해결할 수 있지만 뛰어난 제품으로 10년 이상 시장을 선점해 온 하우스브랜드와 경쟁해야 했으니까요.

이들의 마케팅은 놀라웠습니다. 대규모 자본을 투자해서 텐트 전반에 적용되는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기술집약적 텐트를 원정대에게 지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원정대를 직접 결성하기도 하고 텐트 외에 필요한 모든 장비와 경비를 전액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노스페이스입니다. 지오데식 돔 시리즈가 1970년대에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하고 난 이후에 플래그십이라 할 수 있는 2m 돔 모델을 출시했지요. 텐트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 보더라도 경탄할 정도의 디자인과 내구성, 완성도를 자랑했습니다. 노스페이스가 2m 돔을 원정대에 지원하고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한 것은 업계 밖에서도 꽤나 흥미로운 사실로 받아들였습니다.

▲ 노스페이스에서 2m 돔 모델을 선보이며 브랜드의 위용을 과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모습을 드러낸 마운틴 하드웨어의 스페이스 스테이션입니다. 실내 지름만 해도 6m에 달하는 거대한 쉘터인데, 천정이 얼마나 높은지 사다리 없이는 혼자 설치하기도 버거운 모델입니다. 몇 년 전에 색상과 원단 스펙을 바꾼 페이스리프트 모델이 나왔지만 전작에 비해 원가절감이 심해졌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요.

▲ 노스페이스나 마운틴 하드웨어 사의 기함에 비하면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시에라디자인의 그랜드마더십 모델입니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외피에 사용된 원단도 동 브랜드의 스테디셀러에 비해 완성도가 상당하고, 설치상의 편리함도 도모한 것이 특징입니다. 스페이스 스테이션이나 2m 돔이 벌인 크기 경쟁에서는 다소 밀리는 것이 사실이지만 플래그십 텐트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모델 중 하나입니다.

플래그십 텐트 전성시대

이후 많은 대규모 아웃도어 브랜드에서 앞다퉈 플래그십 모델들을 출시했습니다. 가격대도 어마어마하고, 크기도 가격 못잖았습니다. 비싼 모델은 1,000만 원에 육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당연히 완성도나 기술력은 스테디셀러에서 맛볼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플래그십 모델이라는 것이 브랜드를 상징했기 때문에 수익성을 포기하고서라도 개발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여서 브랜드 간의 크기 경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노스페이스에서 지름이 1.55m인 2m 돔 모델을 출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운틴 하드웨어에서는 당시 텐트 디자인을 총괄하던 마틴 제미티스가 3시간 만에 지름이 6m나 되는 초대형 쉘터인 스페이스 스테이션을 디자인했고, 마틴 제미티스가 마운틴 하드웨어와 결별하고 나서 설립한 슬링핀에서는 지름이 7m나 되는 BFD라는 모델이 나오기도 했지요.

▲ 마운틴 하드웨어에서 스페이스 스테이션 모델의 파생형으로 개발한 더블월 모델인 스트롱홀드 모델의 모습입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텐트 중 하나이기도 한데요, 혼자서 설치할 수도 있을 뿐더러 난방효율이 좋아서 실내에 가스버너 하나만 약하게 틀어도 금세 텐트 안이 후끈후끈해집니다. 초기에는 플라이에 고가의 다이옥신 코팅을 입히고 연안알루미늄의 스칸듐 폴을 채용했지만 페이스리프트 이후에는 스펙이 모두 격하되었지요.

▲ 유럽에서 티피 텐트의 강호로 손꼽히는 텐티피에도 플래그십 모델이 있습니다. 바로 사피르 9CP를 들 수 있는데요, 앞서 소개해 드렸던 돔 쉘터만큼의 특이한 기교는 없지만 캔버스 원단 자체로 방염 처리가 된 고급 원단을 적용하고 티피 텐트의 기본에 충실한 모델입니다. 참, 화목난로도 피울 수 있습니다. 군고구마도 구워먹을 수 있고요. 하하.

돔 쉘터 크기로 플래그십 모델 기싸움을 했지만, 일반 소비자들에게 가까이 다가서면서 새로운 활로를 도모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MSR의 경우에는 원정대급 쉘터로 베이스캠프라는 모델을 개발하여 원정대용으로 몇 동을 납품했는데, 이후 양산형으로 보드룸 모델을 개발하여 런칭하기도 했습니다. 런칭 당시에는 인기가 없어서 우리나라에선 할인판매까지 하다가 단종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가치를 인정받아 정말로 구하기 힘든 모델이 되어버렸지요. 최근에는 보드룸의 구조적 단점 등을 개선한 모델이 허브HUB라는 이름으로 등장했습니다.

과거에는 텐트가 어떻게 플래그십이 될 수 있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지만, 이제 텐트는 아웃도어 브랜드 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이템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플래그십 텐트가 곧 텐트메이커의 얼굴인 시대입니다. 유수의 텐트메이커들을 대표하는 플래그십 텐트들의 사진을 몇 장 보여드리며 이번 이야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평안한 설 보내시기 바랍니다.

▲ 세계 3대 텐트메이커로 손꼽히는 힐레베르그에도 플래그십 모델이 있습니다. 바로 아틀라스인데요, 터널을 이용하면 아틀라스 텐트를 수십 동까지도 이어 붙여 운용할 수 있습니다. 사진 속 모델은 기존의 그린 색상 원단 수급에 차질이 생기면서 한동안 출시되었던 밀리터리 버젼의 아틀라스입니다. 밀리터리의 경우 유저에 따라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데, 아틀라스 밀리터리는 중국에서 OEM으로 생산한 것이라 그런지 개인적으로는 기존의 그린 버전보다 한 수 아래입니다.

▲ 플래그십 텐트의 크기 경쟁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으로 활로를 찾아나간 MSR의 베이스캠프 모델입니다. 원정대 납품을 위해 초기에 극소량이 생산되었는데, 원정대에서 사용하고 난 뒤 고쳐 경매시장에 내놓았을 때 큰 화제가 되었지요.

▲ MSR 베이스캠프 모델의 양산형으로 잠시 생산되었다가 단종된 MSR 보드룸 모델입니다. 기존의 베이스캠프 모델에서 측면 공간을 살리기 위해 폴을 식빵 모양으로 꺾어 올린 것이 구조적인 특징인데, 저 구조가 설치하기 불편하고 폴 수명을 단축시켜 혹평을 받았습니다. 단종된 후 아시아권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경매가가 치솟는 해프닝도 있었지요. 올해 베이스캠프 모델과 보드룸 모델의 구조적 장점을 결합한 새로운 플래그십 허브 모델이 새로 출시된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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