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청춘도 반했다…고독이 하얗게 내린 아이슬란드
꽃보다 청춘도 반했다…고독이 하얗게 내린 아이슬란드
  • 글 사진 박지연 기자
  • 승인 2016.02.16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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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떠난 아이슬란드 여행기 1탄…얼음의 땅에서 만난 아름다운 도시 레이캬비크

“팀장님, 저 이번에는 정말 관두려고요. 더 이상은 못 버티겠어요. 죄송합니다.” 직장생활 365일 중 300일은 사직서 내던지는 꿈을 꿨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었다. 대안을 세우지 않으니 더 홀가분했다. 치열한 경쟁에서 ‘툭’하고 떨어져 나온 나. 잘한 짓일까. 방랑 꽤나 했던 내게 여행을 선물하기로 했다. 꿈같은 퇴직을 했으니 정말 꿈같은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예정했던 곳도 아닌데 마음은 이미 오로라의 땅 아이슬란드를 가리키고 있었다.

▲ 아이슬란드에 발걸음을 내딛었다. 동양인 한 명 보이지 않는 낯선 땅.

낯선 시선과 마주하기

아직 아이슬란드는 직항이 없다. 몇 개의 국가를 경유해야 한다. 매의 눈으로 조금이나마 저렴한 티켓을 검색하다가 네덜란드 항공을 예약했다. 그리고 암스테르담을 거쳐 아이슬란드 케플라비크 공항을 밟았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 심지어 동양인도 한 명 보이지 않는다. 소외된 느낌이다. 낯선 풍경에 고개를 사방으로 저으며 두리번거리다가 입국심사도 없이 공항을 빠져나왔다.

아이슬란드는 적은 금액도 카드 사용할 수 있어 환전을 하지 않고 카드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알고 갔지만 졸보인 나는 80유로를 아이슬란드 화폐 크로나(ISK)로 환전했다. 이곳은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아 렌터카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다. 혼자라 렌터카가 부담되는 사람은 Fly bus를 타고 시내터미널까지 이동한다. 고민할 것도 없이 난 버스에 몸을 실었다.

시내에 도착해서 미리 예약해둔 숙소로 향했다. 여행이 내게 주는 선물이라는 생각에 게스트하우스를 버리고 과감히 호텔을 선택했다. 방을 배정받고 시계를 보니 오후 5시. 창밖은 이미 어둑어둑하다. 첫날 시내구경은 포기. 한국을 떠나오기 전 예약한 오로라투어를 기다리기로 했다. (와서 보니 모든 투어는 호텔에서도 쉽게 예약할 수 있었다) 그런데 투어 차량이 픽업하기로 한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이거 뭐지?’ 조바심이 나서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기상악화로 취소됐단다. 내일 다시 신청해보라는 말을 듣고 방으로 돌아왔다.

마음이 불편했다. 이미 취소된 투어는 환불이 안 된다는 정보를 들었기 때문이다. 속은 기분에 실망감은 두 배로 커졌다. 아무래도 억울함이 가시지 않아 꼼꼼하게 확인해보니 오로라 투어는 한번 신청하면 성공할 때까지 추가비용 없이 계속 진행할 수 있다고 했다. 순간 거짓 정보를 알아차렸다는 마음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미 늦을 대로 늦어버린 밤, 한결 가벼운 마음을 핑계 삼아 컵라면 하나를 뚝딱 해치웠다.

▲ 마음을 다잡고 아이슬란드와 반가운 첫인사를 나눈다.

랜드마크 할그림스키르캬
호텔에 구비된 커다란 시내지도를 챙겼다. 아침 아홉 시. 밖은 아직도 캄캄하다. 일찌감치 눈이 뜨여 동트기를 기다리며 가 보고 싶은 곳을 골라 루트를 짰다. 늘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여행을 해왔고, 예약 없이는 불안한 여행자였기 때문에 무작정 떠나온 여행인데도 몸은 자연스레 계획을 짜고 있었다. 이번만큼은 자유로워지자고 다짐했건만, 온전히 내려놓음은 실패했다.

새벽 내내 오다 멈추길 반복하던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적지 않은 여행경험이 쌓여 지도는 웬만큼 볼 줄 안다. 초행길이지만 할그림스키르캬(홀그림교회)를 향해 자신 있게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슬란드의 첫인상. 내리는 눈이 효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눈앞에 펼쳐진 거리, 골목과 마주하는 골목들, 이국적인 건물들이 북유럽 그림엽서를 옮겨다 놓은 듯 아름다웠다.

교회에 도착했다. 사실 길치도 쉽게 찾을 수 있을 만큼 시내 중심에 우뚝 서 있다. 제대로 온 것 같은데 사진에서 본 것과 심하게 달랐다. 이쯤에서 감탄사가 한번 터져줘야 하는데 기대를 너무 크게 가졌던 것 같다. 입구를 찾다 보니 그제야 인적이 드문 교회 뒷길로 왔다는 걸 알았다. 아무렴 어떠리. 앞모습만 보고 돌아가는 사람도 많을 텐데.

내부는 매우 차분하고 평화로웠다. 마음을 추슬러 잠시 앉아 기도했다. 울컥. 감사함에 눈물이 흘렀다. ‘내가 여기까지 왔다니’ 여행은 평범한 일상도 특별함을 더해주는 순간들이 있어 나를 더 성장하게 한다.

▲ 교회 실내는 조명과 아이슬란드 최대의 파이프오르간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뒤를 돌아보니 무려 5275개의 파이프를 자랑하는 아이슬란드 최대의 파이프오르간이 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정해진 시간에 가면 오르간 연주를 들을 수 있다고 했다. 조용히 둘러보다가 타워로 올라갔다.

교회 내부 관람은 무료지만, 타워에 올라가는 티켓은 구입해야한다. 티켓을 사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타워에 도착했는데 티켓을 검사하는 곳이 없다. 순간 내가 너무 정직했나 싶었다. 타워에서 느껴지는 공기는 쌀쌀했다. 창밖으로 오밀조밀 장난감 같은 집들과 멀리 눈 덮인 산, 고요한 해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눈이 없었더라면 색색의 지붕을 봤겠지만, 눈 덮인 도시 풍광이 더 드물 거라고 자기 암시를 했다. 이 모든 순간이 특별해졌다.

‘땡땡땡’ 시계 종소리에 놀라 부리나케 아래로 내려왔다. 그리고 아까는 보지 못했던 교회 앞모습과 마주했다. 그저 분주했던, 모든 것이 설렜던, 계획 때문에 다급했던 머릿속을 부유하던 생각들이 일순간 멈췄다. “아.. 멋지다!” 충분한 표현은 아니지만,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감탄한 내게서 나온 건 딱 그 말이었다. 주상절리에서 영감을 받아 지어졌다는 외형. 섬세함과 웅장함을 잘 녹여놓은 듯 대단해 보인다. 충분히 랜드마크라고 불리 울만 했다.

▲ 할그림스키르캬 교회의 평온함에 마음을 추슬러 잠시 앉아 기도했다.

▲ 타워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도시는 꿈꾸고 바랐던 풍광 그대로였다.

▲ 아름다운 레이캬비크의 모습.

▲ 교회 정면에 서서 야경을 보고나니 이곳의 랜드마크라는 것이 이해가 됐다.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운 곳
레이캬비크에서 산책을 즐기기에 가장 좋다는 트요르닌 호수에 도착했다. 그런데 ‘파닥파닥’ ‘푸드덕푸드덕’ 여기저기서 난리가 났다. 물 위의 새들. 실제로 이렇게 많은 오리와 백조, 거위, 기러기는 처음 본다. 조류라면 절레절레했지만, 어찌 이곳까지 와서 사진을 남기지 않을 수 있으랴.

얼음조각이 떠 있는 호수 위로 한가롭게 떠다니는 그 녀석들에게 용기 내서 다가갔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겨보는데 앞과 뒤, 옆, 아래를 불문하고 시간차 공격을 가하며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그 덕에 기겁하며 소스라친 내 모습이 사진에 오롯하게 담겼다.

흰 눈으로 뒤덮인 집들이 호수 옆에 나란히 서 있어 호수에 비치는 모습이 더 그림 같다.
고작 며칠이지만 이곳의 낮과 밤을 경험하고 보니 낮의 분위기가 더 포근하고 좋은 느낌이다. 두 손을 맞잡고 밤을 찾는 연인들이 더 많았던 탓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충분히 밤이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만큼 누구와 함께하느냐도 중요하니까.

갑자기 눈 뜨기 힘들 정도로 눈보라가 몰려와 목도리를 칭칭 둘러 무장했다. 어두워지기 전까지는 선보야저라는 조각을 보겠다는 생각에 서둘렀다. 바이킹의 배를 닮은 철제조각물인데, 레이캬비크의 또 다른 상징이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최고의 포토제닉 장소로 동이 트거나 석양이 질 무렵에는 로맨틱한 분위기 때문에 연인들에게 인기가 많다.

두 커플이 내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계속 혼자였던 나인데 문득 이방인에게 보인 관심 같아서 반가웠다. 고작 한두 컷인데 혼신의 힘을 다해 사진을 찍어줬다. 말도 건네 보고 웃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혼자인 나를 두고 금세 사라졌다. 아까까지는 괜찮았는데, 쓸쓸했다. 그 마음을 담아 셀카를 찍었다. 그러고 보니 연인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는다는 선보야저가 그저 눈 쌓인 쇳조각 정도로 보인다.

▲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수의 오리와 백조, 거위 등을 가까이에서 본 건 처음이다.

▲ 아름다운 곳에 있으면 자연스레 긍정의 힘이 살아나 미소가 지어진다.

▲ 호수 한편에 한 무리가 펭귄 복장을 입고 새떼 가까이에 서 있었다.

▲ 이곳의 명물인 선보야져는 외로운 내겐 그저 눈 쌓인 쇳조각 정도로 보였다.

걸음을 멈춘 이유
난 커피를 좋아한다. 아이슬란드 정서가 묻어나는 카페를 돌아보고 싶었다. 작정하고 여러 카페를 돌아봤다. 먼저 찾은 곳은 토나르(tonar)라는 유명 레코드숍. 카페라더니 웬 레코드숍? 하지만 이곳은 착한 주인장의 배려가 돋보이는 곳으로 모든 방문자에게 에스프레소 한 잔을 무료로 대접한다. 그래서 카페. 여름철에는 종종 공연도 열리는데, 내가 찾은 날은 손님도 없어 조용했다.

1층의 멋진 인테리어에 반해 다른 곳도 궁금해졌다. 지하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도 많은 CD와 레코드판이 있었다. 재즈, 클래식, 인디밴드 등 다양한 음반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문외한인 나로서는 탁자 위 플레이어 속 음악도 충분했다.

다녀본 카페 중엔 지하에 빨래방과 어린이 놀이 공간이 있는 신선한 곳도 있었다. 바로 런드로맛카페(The Laundromat Cafe). 젊은이나 여행자들이 빨래를 세탁기에 돌려놓고 위층에서 식사나 커피를 즐길 수 있도록 디자인된 이색적인 카페다. 느릿한 여행자처럼 세탁기도 사용해 보고, 느긋하게 차도 마시고 싶었지만, 나에겐 빨래거리도, 아이도 없었기에 살짝 구경만 하고 발길을 돌렸다.

카페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그토록 가 보고 싶었던 스토판(Stofan Cafe)이었다. 빈티지한 인테리어도 좋았지만, 현지인들의 일상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 좋았다. 보통 낮에는 1층에서 커피와 케이크 등을 파는 카페로, 저녁에는 밑층까지 오픈해 맥주와 와인을 즐기는 바로 이용되고 있었다.

간단한 음료를 주문하고 앉아 있는데, 능숙한 기타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중후한 할아버지 한 분이 기타를 튕기며 흥얼흥얼 멜로디를 느끼고 있었다. 그 매력에 푹 빠져 있었는데 가만히 보니 카페 안에 그분을 의식하고 있는 건 나 혼자뿐이었다. 원체 이곳은 남을 의식하지 않으니 나또한 눈치를 볼 필요는 없었다. 카페엔 과제나 공부를 하러 온 학생이 많아 보였다. 그밖에는 대화를 나누는 중년 부부, 친구들, 가족들의 모습 등 한국과 별다를 게 없었다.

창밖으로 열정적으로 계단 눈을 치우고 있는 한 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외투를 입은 채로 열심히 눈을 퍼내다가 갑자기 외투를 벗는다. 그리고는 그 추운 날씨에 반소매 티셔츠 한 장만 걸치고 섹시한 팔 근육을 선보이며 눈과의 사투를 벌였다. 문득 내 눈이 호강한다. 아이슬란드에서 난생처음 보는 청년의 눈 치우기 전 과정을 보게 될 줄이야. 별생각 없이 봤는데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시간은 흘렀고 내 카메라엔 그의 사진이 한 가득이었다. 호텔에 돌아와서 보니 사진들은 그날의 큰 수확이었다.

▲ 토나르는 유명한 레코드숍이지만 투박한 멋을 즐기며 커피도 마실 수 있다.

▲ 마침 손님도 적어 커피를 마시며 오랜 시간 앉아서 음악을 들었다.

▲ 톡톡 튀는 상상을 카페에 쏟아 놓은 런드로맛카페.

▲ 세탁기를 돌려놓고 커피와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묘한 구성의 카페다.

▲ 스토판에는 기타 치는 남자를 중심으로 각자의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이 혼재해 있다.

▲ 창밖에서 열정적으로 눈을 치우는 남자를 오랫동안 지켜봤다. 눈이 호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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