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트메이커에 진짜 필요한, 그 무엇
텐트메이커에 진짜 필요한, 그 무엇
  • 글 사진 ‘양식고등어’ 조민석 기자
  • 승인 2016.01.22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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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고등어’의 텐트 이야기 | 하우스브랜드

텐트메이커의 시작, 하우스브랜드
지난 19개월 동안 이어 온 ‘캠퍼들을 설레게 한 텐트메이커’ 이야기, 재미있으셨나요? 2016년에는 텐트에 관한 키워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할까 합니다. 그 첫 키워드는 하우스브랜드housebrand입니다. 하우스브랜드, 아직 영어사전에 공식적으로 등록되진 않았습니다만 많이 사용되는 말입니다. 말그대로 집에서 소규모로 자신들만의 전문적인 노하우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만든 상품들을 직접 마케팅하고 판매하는 브랜드입니다. 브랜드 전체의 규모가 작으면서도 실제 제품의 완성도는 일반적인 종합 브랜드의 것을 뛰어넘는 경우가 많지요.

유럽이나 일본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독자적인 브랜드 파워로 자기 자리를 굳건히 오래도록 지키고 있는 하우스브랜드들이 많습니다. 안경테 시장에서 하우스브랜드의 약진이 돋보이는데요, 가볍고 견고한 티타늄 안경으로 정평 난 덴마크의 린드버그나 일본의 자포니즘 등을 사례로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우스브랜드라는 용어를 패션이나 뷰티 분야에서는 종종 쓰지만 아웃도어, 특히 텐트 분야에서는 쓰인 적이 없습니다.

연재를 해오면서 자료를 찾다보니 하우스브랜드의 정의에 딱 들어맞는 모습과 규모로 당대 텐트 시장을 깜짝 놀라게 한 텐트메이커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어쩌면 하우스브랜드의 전철을 밟지 않은 브랜드를 찾는 것이 더 어려워 보입니다. 소개한 브랜드 중 하우스브랜드의 과정을 건너 뛴 텐트메이커라고는 네덜란드의 드바르드나 미국의 마운틴 하드웨어 정도가 다입니다. 텐트메이커들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하우스브랜드라는 말을 쓰지 않았을 뿐 실제로는 거의 모든 텐트메이커들이 하우스브랜드로 출발했다는 것이 저의 결론입니다.

▲ 하우스브랜드 성격의 텐트메이커라는 것이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지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텐트메이커 가루다의 필드테스트 현장을 촬영한 사진입니다. 말 그대로 집에서 텐트 제작에 관한 전반적인 작업을 하는 것이죠. 가루다의 경우 말기에 집이 아닌 별도의 작업실을 차려 그곳에서 텐트를 만들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독창적 디자인과 뛰어난 품질

하우스브랜드라는 프레임은 텐트메이커들의 흥망성쇠와 도대체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요? 그간 소개한 브랜드의 특징과 성장과정을 살피면 몇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로, 텐트메이커 고유의 개성이 잘 드러난 텐트 디자인입니다. 딱 봐도 어느 브랜드인지 알아볼 수 있는 고유한 디자인. 일례로 가루다는 텐트 전방에 실내공간의 높이를 확보하기 위해 사다리꼴 모양의 폴을 즐겨 사용하였고, 힌두교의 승복에서 착안하여 노랑색과 버건디 색상의 원단 배색을 주력으로 사용하였지요. 덕분에 가루다를 아는 이들은 멀리서도 가루다 텐트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유려한 곡선미를 뽐내는 베이지색의 텐트메이커 모스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두 사례 속의 텐트 모두 두 브랜드가 하우스브랜드 규모였을 때 출시된 텐트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이지요.

두 번째, 뛰어난 완성도와 높은 희소가치를 들 수 있습니다. 하우스브랜드 텐트메이커의 경우, 제작에 참여하는 직원 수가 많지 않다 보니 하루에 만들어낼 수 있는 물량이 한정적입니다. 대신 오너가 자기 자신의 이름을 걸고 텐트를 디자인하고 개발하는 것이 보편적인 일이었고, 제품의 완성도는 오너와 직원들의 사명감으로 인해 무척 높았다는 점이 장점이었습니다. 텐트메이커 모스의 초대 텐트 총괄 디자이너였던 빌 모스나 텐트메이커 가루다의 창업주였던 바이런 슈츠 모두 장인정신으로 중무장하여 텐트에 대한 그들만의 철학을 완고하게 관철시키고 그것을 세상에 보여주었던 사람들이지요.

▲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가루다 텐트에 대한 수요를 감당해 내기 위해 텐트메이커 가루다의 수장인 바이런 슈츠는 하우스브랜드의 이점을 최대한 살리는 범위 안에서만 생산 공정을 조금씩 확장해 나갔습니다. 흥미롭게도 당시 텐트 원단을 바느질하는 작업을 한국계 아주머니들이 했었다고 하는군요. 완성도는 두말할 나위 없이 흠 잡을 데가 없었구요. 이것이 바로 반도의 손재주입니다.

독특한 디자인과 뛰어난 완성도가 강점인 하우스브랜드 텐트의 인기는 당연히 높을 수밖에 없었던 반면, 하우스브랜드라는 특성상 그 수요를 따라갈 수 없었다는 게 하우스브랜드의 역설이었지요. 그럼 어떤 현상이 벌어지게 될까요?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의 결과는 크게 두 가지 나뉘었습니다. 하우스브랜드 규모의 텐트메이커가 규모의 경제에 의해 비대해지느냐,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다가 경영적인 부분에서의 어려움으로 인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느냐로 말이지요.

안타깝게도 텐트메이커 모스와 가루다, 여기에 토드 바이블러가 이끌어나가던 바이블러까지 세 회사 모두 전자와 후자를 모두 경험했습니다. 물론 끝까지 수익성과 제품에 대한 철학까지 완고하게 고수해가며 지금까지도 명맥을 이어나가는 힐레베르그나 외부의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텐트 개발 자체를 중단해야 했던 잔스포츠같은 사례도 있지요.

▲ 텐트메이커 가루다에서 세상에 선보인 텐트가 공통적으로 어떤 디자인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카탈로그의 한 페이지를 가져 왔습니다. 사다리꼴 모양의 폴이 사용자의 머리가 위치하는 곳의 공간감을 증대시키기 위해 사용되고 있고, 텐트의 후면부에는 환기를 위한 길다란 환기구가 있었지요. 색상 조합도 눈여겨볼만 합니다.

▲ 일반적인 미국계 하우스브랜드 형식을 갖추었던 텐트메이커들과는 달리 보 힐레베르그가 이끌던 힐레베르그는 그들과는 조금 다른 전철을 오늘날까지 밟고 있습니다. 가족 중심의 경영 체계도 경영 효율성 제고를 위해 전문 경영인을 영입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는가 하면 초고가 정책을 유지하면서도 텐트의 품질에 대한 기존의 철학을 고수하기 위해 텐트 하나를 한 명의 생산자가 전담해서 제작하는 시스템을 오늘날까지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영광은 재현불가능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우스브랜드 규모였을 당시에 텐트메이커들이 만들어낸 텐트는 그 수가 적거니와 수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적지 않은 매니아층을 보유하고 있고, 더 나아가서는 경매 시장에서 감가가 되지 않거나 더 높은 가격에 낙찰될 정도로 그 몸값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워낙 야무지게 만들어서 20년, 30년이 지나도 텐트가 멀쩡하니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지요. 저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1980년대에 생산된 바이블러 텐트 몇 동을 소장하면서 정말 잘 만든 텐트는 30년이 지나도 원래의 완성도와 내구성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요즘 출시되는 아웃도어 토탈 브랜드 텐트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완성도가 뛰어납니다.

정리해볼까요? 20세기 후반기를 주름잡던 텐트를 만들어낸 텐트메이커들은 대체적으로 하우스브랜드 규모의 브랜드 경영을 통해 대규모의 아웃도어 토털 브랜드들이 해내지 못한 결과물들을 만들어냈습니다. 그것은 20세기 후반 텐트메이커 시장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 힐레베르그 사가 자랑하는 기술인 실리콘 코팅 원단을 테스트하는 모습입니다. 하우스브랜드라는 형식적인 틀에 갇혀 있었더라면 쉽게 할 수 없었을 테스트이겠지만, 그들은 부분적으로 하우스브랜드이기를 포기하면서 그 희생을 자본 투입에 기반한 기술 개발과 투자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였지요. 이런 점에서 생각해 본다면 하우스브랜드 스타일의 텐트메이커가 가지는 기술적인 한계도 아직은 분명히 있습니다.

나아가서는 하우스브랜드 텐트메이커들의 공통점도 지금의 아웃도어 시장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텐트를 만드는 데 참여하는 사람들 간의 긴밀한 커뮤니케이션과 자기가 맡은 부분에 대한 책임 의식, 자기 이름을 내걸고 텐트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과 원칙 그리고 그것을 고수하는 오너의 마인드.

20세기 후반의 텐트메이커 시장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던 세기의 텐트 디자이너들과 텐트메이커들이 그리워지는 밤입니다. 빌 모스, 토드 바이블러, 바이런 슈츠…. 그리고 아직도 제가 모르고 있을 수많은 하우스브랜드 텐트메이커를 이끈 수장들 말입니다. 문화나 사용자의 경험, 만족보다는 수익을 우선시하는 규모의 경제와 신자유주의 시대에 하우스브랜드의 영광이 재현되기를 바라는 건 한낱 꿈에 불과한 걸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하우스브랜드 텐트메이커를 말할 때 초창기의 모스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텐트메이커 모스의 선봉장이었던 빌 모스가 군용 텐트의 디자인에 불만을 품으며 스스로 텐트 디자인을 직접 하기로 결심했다는 이야기는 다들 잘 아실 텐데요, 구조 디자인이나 바느질도 자기 손으로 직접 해보며 텐트 제작에 열의를 쏟았던 사람이 바로 빌 모스입니다.

▲ 빌 모스가 디자인한 거의 모든 텐트의 디자인적 근간이 되었다고 여겨지는 사진입니다. 원이 겹치며 만들어지는 곡선을 살려 최대한 자연으로 돌아가는 느낌을 주는 디자인을 추구했고, 그 노력이 텐트라는 결과물에서는 곡선미로 표현되고 승화되었지요.

▲ 초창기 텐트메이커 모스에서 빌 모스와 함께 일했던 직원들의 모습입니다. 비록 중반기에는 빌 모스의 미망인인 마를린 모스 여사가 적극적으로 투자에 참여하면서 하우스브랜드의 성격을 조금씩 벗어나기는 했지만, 중반기에 그의 고유한 텐트 디자인이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던 데에는 그들이 하우스브랜드의 형태로 텐트메이커를 운영했을 때의 경험과 노하우가 적지 않은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 빌 모스는 그의 후임이었던 찰스 듀발과 함께 디퍼 시리즈를 제작할 때에도 아날로그적인 텐트 디자인 방식을 고수했습니다. 물론 당시에 CAD 같은 전문 프로그램이 없었던 탓도 있지만, 곡선미를 구현하기 위해 직접 쇠막대를 가지고 와서 원단 도면선을 직접 따 온 일화는 빌 모스가 이 부분에 대해 얼마나 자신의 철학을 강조했는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 빌 모스의 작업실 벽에 붙어 있는 그의 프로젝트 사진들입니다. 텐트메이커 모스는 후기에 대중화와 상업화에 조금씩 더 무게를 두며 성장하는 방침을 세웠고 그 이후로 생산 공정을 중국으로 이관하면서 마지막에는 하우스브랜드의 모습을 찾기 힘들어졌습니다. 텐트메이커 모스가 사라진 지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텐트메이커 모스가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데에는 전반기의 하우스브랜드 시절에 만든 텐트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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