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기억 조각, 지난가을의 강천섬
따스한 기억 조각, 지난가을의 강천섬
  • 글 박지인 | 사진 김세영 기자
  • 승인 2015.12.31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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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도어크루 강천섬 캠핑

차가운 칼바람이 불고, 오색 빛 풍성했던 단풍나무가 앙상해지는 12월. 싸늘한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이따금 떠오르는 지난가을의 따뜻한 기억.

여주의 강천섬은 단풍철이면 온 섬이 황금 물결로 뒤덮인다. 넓은 잔디 평원 사이로 뻗은 흙길을 따라 질서 있게 심어진 커다란 은행나무들이 샛노란 속살을 드러내고, 군락을 이룬 억새가 바람에 하늘거린다. 잔디마저 흐릿한 개나리색으로 변해 과거의 푸름은 희끗희끗할 뿐이다. 여기에 따스한 햇살까지 여과 없이 비추면 강천섬은 완벽한 황금의 섬이 된다. 이 아름다움은 어떤 면에서 상당히 노골적이나, 전혀 속되지 않고 운치를 풍긴다. 쓸쓸함, 그리움, 슬픔. 가을의 짙은 감성조차 강천섬의 작렬하는 황금빛과 함께 산화하고 만다. 말 그대로 온 힘을 다해 노랗게 불태우고 찬란하게 산화한다. 머지않아 차갑게 몰아칠 겨울비에 모두 휩쓸릴 운명을 마치 예감이라도 한 듯 말이다.

강천섬에 도착한 건 서울을 떠난 지 한 시간 반 만이었다. 강천교를 따라 반짝이는 남한강을 건너 잔디 광장으로 향하는 길에 넓은 억새밭을 마주했다. 따스한 가을 햇살을 받아 황금빛, 때로는 은빛으로 일렁이는 억새.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둔탁한 나무 울타리가 길을 내어 훌륭한 산책로를 만든다. 잠시 후 만난 두 갈래 길에서 오른편으로 진입하자, 끝없는 황금 지대가 시야에 들어왔다. 항해 실력 서투른 어느 해적이 서해를 떠돌다 잘못해서 남한강까지 흘러들어왔다면 틀림없이 보물로 가득한 전설의 황금섬을 찾았다고 소리쳤을 것이다. 눈앞에 펼쳐진 비현실적인 풍경 앞에서 텐트를 설치하는 일 따위는 그저 권태롭게만 느껴졌다. 아침에 방금 일어난 것처럼 눈이 부셨고, 코끝에는 온기를 머금은 가을 향이 감돈다. 잠시 배낭을 내려두고 카메라 셔터를 연거푸 누르며 환상에 가까운 가을의 정취를 가득 담았다.

활활 타오르던 노란 은행 단풍은 시커먼 밤이 돼서야 사그라졌다. 온기가 사라진 빈자리에 차가운 밤공기가 내려앉았고, 여주의 밤하늘은 무수히 많은 별을 띄웠다. 그런 밤을 만날 때면 나의 가슴 속에는 잔잔한 파문이 인다. 괜스레 지난 시간을 추억하고 이내 감성적인 고독감에 사로잡힌다. 찰나의 감정 속에 파묻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별들이 나에게 가까워지는 듯한 착각이 든다. 바람 한 점 없는 차분한 가을밤. 사이트로 돌아가 커다란 타프 아래 옹기종기 모여 단란한 저녁 식사를 즐겼다. 서로의 따스한 체온을 나누며 담백한 이야기로 시간을 채웠다. 강천섬에서 보낸 따뜻한 기억은 여기서 끝을 맺는다.

강천섬
주소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강천리길 76-14
전화 031-882-7588(강천섬권역 운영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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