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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팩을 위한 텐트
백팩을 위한 텐트
  • 글 사진 ‘양식고등어’ 조민석 기자
  • 승인 2015.11.30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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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고등어’의 텐트 이야기 | 스웨덴 피엘라벤

20세기 중반 ‘시원찮은’ 아웃도어 장비를 쓰느니 직접 장비를 만들어 쓰겠다며 MSR이라는 아웃도어 브랜드를 만들었던 래리 팬버시 아저씨. 혹시 기억나시나요? 이번 이야기도 한 산꾼의 불만에서 시작됩니다. 스웨덴의 피엘라벤입니다. 국내에 정식으로 런칭한 지 2년밖에 되지 않은 탓에 국내에서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브랜드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와 해외의 산꾼들 사이에서는 꽤 알려진 브랜드입니다.

▲ 1960년 피엘라벤 설립 당시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던 로고와 오늘날 공식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피엘라벤 로고의 모습입니다. 서체는 바뀌었지만, 피엘라벤의 마스코트라고 할 수 있는 붉은여우는 50년이 넘도록 그 자리에 웅크리고 있습니다.

▲ 현재 故 오케 노르딘 (Åke Nordin, 1936~2013)와 그의 뒤를 이어 피엘라벤의 CEO를 맡고 있는 마틴 액슬히드Martin Axelhed의 모습입니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마틴 액슬히드는 소문난 스키광입니다.

“왜 배낭이 이 따위야!”

래리 팬버시 아저씨는 빙벽 등반 장비에 불만을 품었고, 힐레베르그의 보 힐레베르그가 형편 텐트 디자인에 불만을 품었다면, 피엘라벤을 만든 오케 노르딘은 백팩의 디자인에 불만을 품었습니다. 왜 멀쩡한 장비에 불만을 품냐구요? 몸에 안 맞으니까요! 한 번이라도 백패킹을 다녀오신 분들은 등에 메는 백팩이 체형에 맞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불편하고 피곤한 일인지 잘 아실 겁니다.

▲ 10대 때 활발하게 보이스카웃 활동을 했던 오케 노르딘과 그가 직접 개발한 배낭을 함께 촬영한 사진입니다. 산꾼들만을 위한 배낭을 만드는 데에 그치지 않고, 일반인들도 편하게 쓸 수 있는 백팩 프레임을 대중화시킴으로써 스웨덴을 대표하는 아웃도어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것은 생전에 그가 남긴 가장 큰 업적입니다.

▲ 오케 노르딘이 최초로 개발한 스틸 프레임 백팩의 프로토타입의 모습입니다. 하단부에 배낭 길이에서 오버되는 침낭이나 텐트를 수납할 수 있게끔 프레임 길이를 길게 잡음으로써 하중 부담을 허리로 일부 분산시키는 것이 이 구조의 또 다른 특징입니다.
오케 노르딘이 배낭에 불만을 품기 시작한 시기는 1950년대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때 그의 나이가 고작 14세에 불과했습니다. 보이스카웃 회원이었대요. 파타고니아와 취나드 이큅먼트의 창업주인 이본 취나드가 10대에 암벽타기를 즐겨 했다는 이야기가 생각나는 대목이지요. 사람의 체형에 맞지 않는 백팩의 구조에 불만을 품고 있던 오케 노르딘은 마침내 스스로 목재를 이용해 체형에 맞는 백팩용 프레임을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일에 뛰어들었습니다. 많게는 20kg 이상의 하중이 부하되고, 그 자체가 몸에 적지 않은 무리를 주는 장비의 특성 상 백팩용 프레임 개발에 대한 오케 노르딘의 출사표는 당대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의미 깊은 시도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사실 백팩이 거기서 거기지 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오늘날 백패커들이 쓰는 보편적인 백팩 디자인과 당시의 백팩 디자인은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불만스러운’ 백팩 디자인에 대해 간단하게 묘사해보겠습니다. 울퉁불퉁하고 크고 무거운 오렌지 모양의 주머니에 가방끈을 2개 달아서 하루종일 매고 다니는 것을 상상해 보세요!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고, 상상만 해도 몸이 피곤해지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백팩 디자인에 프레임 시스템을 도입하고자 하는 오케 노르딘의 꿈이 현실이 된 것은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1960년의 일입니다. 그 동안 오케 노르딘은 군에서 복무하며 프레임 개발에 몰두했습니다. 스웨덴어로 ‘붉은 여우’를 뜻하는 피엘라벤이라는 브랜드가 당시 24세였던 오케 노르딘의 열정에 힘입어 공식적으로 첫 발을 내딛은 것이지요.

▲ 스틸 프레임 백팩이 출시된 이후 초창기에 피엘라벤을 이끌었던 백팩 라인업입니다. 세로로 두 줄이 내려가는 가죽 스트랩 디자인이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빙벽 등반에 사용되는 아이스 액슬을 장착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 둔 것도 주목할 만한 기능입니다.

▲ 피엘라벤이 설립된 이후로 그린랜드 자켓이나 백팩 등에 폭넓게 사용된 주력 원단인 G 시리즈의 모습입니다. 방수, 방풍, 자외선 차단 기능에 심지어 모기가 물리는 것을 막아주는 기능까지 가지고 있는 다목적 원단인데요, 별도의 왁스를 통해 꾸준히 관리해 주면 수명이 기대 이상으로 길어지는 것이 장점입니다.
거친 환경에서 사는 붉은여우

오케 노르딘이 브랜드의 이름을 피엘라벤으로 지은 데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스웨덴에서 가장 기후와 환경이 험난한 산악지대에서 작은 몸집을 가지고 환경에 대한 뛰어난 적응력으로 꿋꿋이 명맥을 이어나가는 포식자가 바로 붉은 여우입니다. 붉은여우에 대한 산꾼으로서의 존의를 오케 노르딘은 브랜드의 모토로 삼았던 것이지요.

오케 노르딘이 선보인 백팩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산꾼들 사이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초기에는 목재를 이용해 프레임을 만들었지만 공식 출시 당시에는 이를 한 차례 더 개선하여 스틸 소재로 제작한 것을 선보였지요. 경량화된 알루미늄 같은 소재에 대한 기술이 당시에 상용화되기 이전이었다는 점에서 스틸 백팩 프레임을 달고 나온 가방은 가방 자체의 무게를 증가시킨다는 아이러니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무거워진 오케 노르딘의 백팩 프레임이 산꾼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합니다. 개미 손톱만큼의 과장을 보태서 ‘아주 조금’ 무거워지긴 했지만, 이전보다 더 많은 짐을 넣고 배낭을 매도 하중 분산 구조의 완성도 자체가 뛰어났던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거기다 마모에 강한 자체 원단인 G 시리즈를 적용했던 것도 한 술 더 보탰지요.

▲ 1964년도에 최초로 런칭한 텐트 라인업 중 하나인 서모Thermo 모델의 모습입니다. 다른 브랜드의 텐트와는 달리 구조적 측면에서 눈에 띌 만한 기교는 없지만, 텐트로서의 기능 그 자체에 공을 들이며 지금까지도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 4년 전 처음으로 출시된 터널형 텐트인 아카 엔듀런스 3 모델의 모습입니다.

▲ 80년대에 출시되어 대중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넘버스 백팩의 모습입니다. 제가 학교 가방으로 쓰고 있는 모델이기도 한데요, 가죽 스트랩으로 고정을 시키는 부분이나 입구를 밧끈과 가죽으로 조절해서 열고 닫는 구조는 런칭한 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이후 백팩 시장에서는 하중 분산 프레임을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피엘라벤과 견줄 만한 브랜드들이 개발에 나서는 사이 오케 노르딘은 기존의 프레임을 보완해 나가는 작업을 꾸준히 하면서도 제품 개발에 대한 이론적인 부분들을 정립해 나가는 데에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오케 노르딘은 장비 개발의 이론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지금이야 원칙을 고수하고 표방하는 사례는 수도 없이 많지만, 당시 시장의 트렌드는 그렇지 않았지요. 기능성, 내구성, 신뢰도. 이 세 요소가 오케 노르딘이 입이 마르고 닳도록 강조한 피엘라벤의 3대 제품 철학이지요. 이 세 요소는 오케 노르딘이 2년 전 세상을 떠난 이후로도 철저하게 피엘라벤에서 지켜지고 있습니다.

80년대에 들어서면서 피엘라벤은 캐주얼 백팩 분야에서도 신드롬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학생들의 배낭은 여전히 체형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거든요. 백팩 프레임을 개발한 경험을 바탕으로 캐주얼 백팩 시장에 뛰어든 피엘라벤은 기존의 스틸 프레임 대신 직물 등 가벼운 소재로 프레임을 만들어 인기를 끌었습니다. 여기에 피엘라벤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두 개의 세로 가죽 스트랩으로 디자인까지 챙겼습니다. 학생과 직장인들이 피엘라벤의 캐주얼 백팩을 사용하면서 이제 피엘라벤의 백팩은 패션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붉은여우 같은 텐트
피엘라벤이라는 브랜드 안에서 텐트라는 장비가 가지는 시장점유율은 그리 압도적이지는 않습니다. 다만 1964년도에 최초로 써모Thermo 라는 시리즈의 텐트를 출시한 이래로 꾸준히 경량화와 투습성에 초점을 맞춘 텐트 개발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압도적이지 않지만, 꾸준히 배낭을 위한 텐트를 만드는 데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 또한 피엘라벤 텐트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장비 중에서도 백팩을 주력으로 밀어붙이다 보니 텐트 같은 다른 장비들은 백팩만큼 주목받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같은 국가 태생의 텐트메이커인 힐레베르그에서 나오는 텐트 디자인과는 같은 국가 태생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점도 있기는 합니다만, 힐레베르그는 텐트를 위한 텐트를 만드는 반면 피엘라벤은 백팩을 위한 텐트를 만든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브랜드 내에서 비주류라고는 해도 오케 노르딘이 강조한 3대 철학은 여전히 강조되고 있다는 점 또한 특징으로 꼽을 수 있겠네요.

▲ 넘버스 백팩이 등장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라고 할 수 있는 신문기사입니다. 헤드라인에 ‘10대의 어린 아이들이 책가방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는 내용의 글귀가 스웨덴어로 쓰여 있습니다.

비록 피엘라벤이 한국 시장에 진출한 것은 불과 2012년도의 일이지만, 세계 20개국에 진출한 피엘라벤의 브랜드와 장비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매년 가을에 모국에서 열리는 트레킹 행사와 그린란드에서 열리는 익스페디션 어드벤처와 같은 이벤트에, 붉은 여우에 대한 존의에, 20년이 넘도록 끝까지 고수하는 세로 가죽 스트랩 디자인이 만드는 감성적인 디자인에, 오케 노르딘의 3대 철학에 열광합니다.

누구보다도 텐트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제가 텐트 이야기를 이렇게 적게 써보기는 사실 처음입니다. 텐트를 메인으로 밀어붙이는 브랜드는 아니지만, 그 텐트를 만든 사람이 일으킨 새로운 변화에 대한 이야기는 캠퍼들을 설레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소개했습니다. 저 역시 글을 쓰는 내내 설렜습니다.

▲ 피엘라벤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연례행사가 있는데, 그게 바로 피엘라벤 클래식입니다. 매년 열리는 북유럽 지역에서 110km 길이를 트레킹하는 이 행사는 지속 가능한 자연환경 보호에 대한 책임이자 의무를 다하는 것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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