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씨의 캠핑이야기
섬에서 섬을 찾아간다. 제주의 서쪽 동네에서 중산간 도로를 한 시간 넘게 달려 성산항에 닿았다. 배낭을 메고 배에 올랐다. 날씨는 화창했고 바람도 적당히 시원하게 불어왔다. 맑은 하늘에 석양이 지면 바닐라 스카이가 되겠다 싶은 그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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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이십 분 남짓한 시간이 지나고 배는 천진항에 닿았다. 섬에 들어왔던 여행자들은 성산으로 나가는 마지막 배를 기다리고 있었고 섬으로 들어가는 내게 동행자는 없었다. 섬을 도는 관광버스는 이미 끊겼다. 그나마 머리에 그려져 있는 기억을 되뇌어 마을로 진입해 우도봉을 향하여 걷기 시작했다.
마을을 지나 돌담길 사이 밭에는 눈부신 햇살이 번져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돌담길을 지나 우도봉 방면으로 난 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십여 분 정도 오르니 주차장에 닿았다. 주차장에는 운행이 끝난 관광버스 한 대만 덩그러니 서 있고 사람들의 모습이라곤 가게를 정리하고 있는 관광 식당 주인들뿐이었다.
우도봉 산책로에 진입하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역시 아름다운 성산일출봉이었다. 성산일출봉은 늘 그 자리에 있지만 광치기 해변에서 보는 아침 풍경과 식산봉에서 바다 너머 달빛 아래로 보이는 은은한 밤 풍경 그리고 이 곳 우도봉 능선에서 해질녘까지, 가까이 가지 않고 거리를 두고 바라볼 때 더 아름다운 곳이다.
산책로를 따라 오르며 시시각각 석양빛이 변하는 걸 보며 연신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우도에 많이 왔으나 이 섬의 석양을 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서너 시간 차를 몰고 구경하다 가는 게 대부분이었다.
사람들이 떠난 조용한 섬에 평안한 저녁이 찾아오고 있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텐트를 펼치고 폴을 끼우고 적당한 자리에 텐트를 고정했다. 잠자리도 준비해뒀고 밖으로 나와 제주 본섬에 있는 오름 너머로 밤이 오는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마을 가로등에 불이 켜지고 한치잡이 배인 듯 일출봉 주변으로 환한 전구 빛을 내는 배들의 모습이 밤바다에 아름다움을 더해주었다. 뒤를 돌아 우도봉을 올려다보니 등대의 불빛이 사방을 돌며 비추고 있었다. 이제야 섬에 머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도는 밤에도 여전히 아름다웠고 나는 잠시 언덕을 서성이다가 풀섶에 앉아서 보고 싶은 사람을 떠올렸다. 유채가 피고 청보리가 넘실거리는 사월의 봄이 오면 이 아름다운 섬에 같이 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피곤한 몸을 누이려 텐트 안으로 들어가 눈을 감았고 우도봉 절벽 아래로 찰싹거리는 희미한 파도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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