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길을 걷다
  • 글 사진 최상식 기자
  • 승인 2015.11.02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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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씨의 캠핑이야기

늦은 밤, 가을 냄새가 공기를 타고 전해져온다. 비가 내릴 거라는 날씨 예보는 맞아 떨어졌다. 타다닥, 비는 밤새도록 내렸다.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자 귓가에 빗소리가 감겼다. 제주에서 6년의 시간이 흘렀다.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을 위한 사유의 시간을 가져보고 싶었다. 흙길을 밟으며 오랫동안 걷고 싶었다. 오래 전부터 하고 싶던 낙동정맥을 걷기 위해 배낭에 짐을 꾸렸다.

제주의 푸른 하늘이 눈부시게 빛난다. 뭉게구름이 떠다니는 아침, 여자친구의 배웅을 받으며 공항으로 떠났다. 고향인 부산 집에서 하루를 쉬고, 금정산을 올라 낙동정맥을 따라 산을 오르내렸다. 30kg가 넘는 배낭을 메고 걸어본 지가 오랜만이라 한 시간을 채 가지 못하고 쉬다 걷기를 반복했다. 땀은 비 오듯 쏟아져 수건이 마를 새가 없었다. 길 상태도 엉망이었다.

한두 시간만 걸어도 허기진 배는 계속 먹을거리를 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입에다가 주기적으로 달콤한 간식을 넣어줬다. 6리터나 되는 물은 하루가 지나기 전에 다 없어졌고, 샘을 찾지 못한 날이면 계곡물을 담아 마시거나 마을 아래까지 다녀와야 했다. 그것 또한 여행의 한 과정이니 충분히 참을만했다. 밤이면 어깨를 짓누르는 짐의 무게와 오르락내리락 허벅지에 전해오는 통증에 사색의 시간을 가지기보단 피곤한 몸을 누이고 잠들기 바빴다.

소나기가 쏟아질 것처럼 천둥소리가 우루루쾅쾅 몇 번이나 울려 퍼졌다. 지루한 아스팔트길을 걷다가 우제치 늪의 관리자 차를 얻어 타게 되었다. 얼마 되지 않아 장대비가 쏟아졌다. 무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여름날, 뜨거운 태양에 피부는 까맣게 그을렸다. 숲과 오름길을 걷다가 몸 여기저기에 난 상처도 아물지 않았다.

도시에 머무를 때면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편두통 때문에 마음에 담긴 고민들은 희미해지고 온 신경은 아픔에 집중하게 된다. 풀숲을 걷다가 생긴 상처에 연고를 바르고, 지끈거리는 편두통의 통증을 잊으려 간간히 약을 먹었다.

보름을 넘게 잡고 걷고자 했던 길을 미처 다 걷지 못하고 돌아왔다. 여행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누우니 여러 상념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다 걷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과 정리되지 못한 고민들까지. 여러 생각들로 복잡했던 내 맘도 모른 채, 시계바늘은 멈추지 않고 계속 돌고 있다.

밤새 내리던 비가 멈추고 싱그러운 아침 햇살이 커튼 사이로 쏟아져 들어온다. 창틈으로 초가을의 싱그러운 아침 바람도 불어온다. 기분이 좋아진다. 평온한 일상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러나 내 여행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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