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칸디나비아의 오랜 전통을 텐트에 담다
스칸디나비아의 오랜 전통을 텐트에 담다
  • 글 사진 ‘양식고등어’ 조민석 기자
  • 승인 2015.10.28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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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고등어’의 텐트 이야기 | 스웨덴의 캔버스 텐트 텐티피

▲ 1900년대 초반 스칸디나비아 반도 지역에 머무르던 새미족과 그 부족이 사용한 티피 텐트의 사진입니다. 당시 미국에도 같은 형태의 티피 텐트가 인디언들 사이에서 사용되고 있었음에도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있던 원주민들이 사용하던 티피에 관한 사진 자료는 미국의 경우에 비해 유독 드문 편입니다.

지난 겨울에 제가 들려드렸던 드바르드라는 텐트메이커에서 만드는 캔버스 텐트 이야기, 혹시 기억하시나요?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에서 모티프를 가지고 와서 세상에 없던 캔버스 텐트 디자인을 만들어낸 드바르드. 그들은 지금도 새 모양의 텐트를 만들고 있으며, 앞으로도 만들어 나갈 겁니다. 아, 오늘도 텐트메이커 드바르드의 이야기를 다시 하려는 건 아닙니다. 오늘은 드바르드의 본고장인 네덜란드와 지리적으로 비슷한 곳에 위치한 캔버스 텐트메이커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이번엔 또 무슨 기상천외한 캔버스 텐트메이커냐구요? 네. 바로 스웨덴의 텐티피입니다.


▲ 텐티피가 기존의 원주민들이 쓰던 티피 텐트를 고증하면서 기존에 없던 것을 구현해 낸 기술 중 하나인 환기 시스템의 외부 모습입니다.

원주민 티피 텐트의 구조를 계승하다

스웨덴의 텐티피는 오늘날까지도 원 폴 형태의 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드바르드와는 상당히 다르지요. 원 폴 구조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원주민들이 오래 전부터 생활공간으로 사용하던 인디언 티피 구조에서 착안한 것입니다. 물론 원주민들이 오래 전부터 쓰던 티피 텐트의 구조와 오늘날 텐티피에 사용되는 구조는 외형상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차이점이 꽤 많습니다.

원주민들의 티피 텐트는 실내 공간의 전고를 확보하면서도 동물 가죽으로 만든 무거운 스킨이 안쪽으로 처지는 현상을 막기 위한 장치가 있습니다. 적당한 굵기의 나무 기둥으로 만든 지주를 중앙에 세우지 않고 벽을 따라 사선으로 일정한 간격에 맞게 수십 개를 세워서 상단에 생기는 폴 간의 접점을 묶죠. 비록 4인 가족이 넉넉하게 쓸 수 있는 생활공간을 제공하는 티피 하나를 만드는 데에는 꼬박 하루가 걸렸지만, 한국으로 치면 봄과 가을의 날씨가 반복되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기후 속에서 가족들이 따뜻하게 생활할 수 있는 보금자리로서 티피가 그 역할을 하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습니다.

▲ 텐티피 텐트에 적용된 환기 시스템의 내부 모습입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거주하던 기존의 원주민들이 사용하던 티피 텐트의 경우 미국의 경우와는 달리 유난히 폴 간의 접점, 즉 고깔 부분 접합부의 완성도가 현저히 떨어졌는데, 이 부분에 대한 재현도 완성도가 상당한데다가 실내 공기를 슈우욱 빠져나가게 만드는 기술력도 그 수준이 상당히 높습니다.

▲ 텐티피 텐트의 출입문에 적용된 로고의 모습입니다. 드바르드나 텐티피나 가격대 자체가 상당히 높게 형성되어 있어서 그런지 두 브랜드 모두 바느질의 완성도가 한 손 안에 꼽을 정도로 우수한 것이 텐티피의 장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군요.

현대식 집이 주거공간으로 사용되면서 과거 생활공간 역할을 했던 티피 텐트는 그 역할을 빼앗기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동물 가죽을 벗겨가면서까지 텐트 스킨을 만들 필요가 없었고, 적당한 둘레의 나무 기둥을 잘라서 지주로 쓸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티피 하나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이 들인 수고는 산업 사회에 들어서면서부터 점점 그 가치를 잃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설산 등의 혹독한 환경에서 인간을 지켜줄 수 있는 알파인 텐트가 그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텐트라는 개념에 있어서 티피와 알파인 텐트 간의 흐름은 끊어진 것처럼만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시대의 흐름 속에서 과거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살던 원주민들이 사용하던 텐트의 주거성에 관한 개념을 다시 산업 사회 속에서 구현해보자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과거에 원주민들이 사용하던 티피도 사람이 머무를 수 있는 생활공간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텐트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왜 그 구조를 텐트의 개념으로 구현하자는 생각을 아무도 하지 못하고 있는가? 이 질문이 바로 텐트메이커 텐티피의 효시가 되었지요. 그 아이디어를 실현으로 옮기고자 한 사람들의 중심에 바로 텐트메이커 텐티피의 창업주인 뱅트 그란Bengt Grahn이 있었습니다.

▲ 텐트메이커 드바르드의 성지인 네덜란드에 위치한 텐티피 네덜란드 지사 겸 총판에서 지난해 출시한 텐티피 라인업을 전체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입니다. 텐트 라인업은 3개인데, 라인업 안에 있는 수십 종의 텐트 디자인이 색상을 제외하고는 모두 같습니다. 가격대는 725유로에서 2400유로까지 다양~합니다.

▲ 독일 국적의 원정대에서 스웨덴 국적의 텐티피 텐트를 극한의 상황에서 사용하는 모습입니다. 티피 텐트라 그러면 상대적으로 구조적 특성상 바람에 약한 모습도 없지 않아 있는데, 텐티피는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오리지낼리티의 재해석

처음 그들이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원주민들이 사용하던 텐트 구조를 구현하는 데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우선 자재의 완성도 때문에 구조물의 강성 자체가 쉽게 확보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원주민들은 이동 생활을 위해 상대적으로 굵기가 가는 지주들을 활용했는데, 문제는 온도와 습도의 변화를 반복적으로 겪다 보니 나중에는 지주가 비틀어지거나 바람에 쉽게 부서지는 현상이 생겼습니다. 가장 큰 숙제는 그러한 사용 환경의 변화 속에서도 지주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는 소재를 발굴하는 것이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텐티피의 창업주인 뱅트 그란과 그의 동료들에게 해결해야 할 숙제들이 주어졌고,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들을 해결한 티피 텐트를 시장에 선보였습니다. 결과물은 주변에서 기대했던 것 이상의 것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동물 가죽을 캔버스로 대체한 것은 이미 이웃 나라의 텐트메이커인 드바르드 사에서 상용화한 것이니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스킨의 벽면을 따라서 세워진 나무기둥들을 없애고 쇠파이프로 중앙에 폴 하나만을 위치시킨 것은 기존에 비해 티피 텐트 구조물의 설치에 드는 시간을 간소화시켰다는 점에서 꽤나 근사하다는 평가를 받았지요.

▲ 어느 순간부터 텐티피의 주력 라인업이 된 지르콘 라이트 시리즈입니다. 폴리 계열의 원단으로 경량화에 일부분 대응하기 위해 만든 라인업인데요, 지르콘의 경우에는 면 원단의 메리트를 포기한 대신 수납 부피나 무게 측면에서 고급형 모델인 사피르 라인업에 비해 큰 진보를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요? 고작 폴 위치를 중간으로 옮긴 것만으로 근사하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사실 텐티피가 오늘날 드바르드나 벨 텐트 등과 경쟁할 수 있는 건 텐티피만의 색채가 드러난 부분들의 역할이 컸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구조적인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천정부 환기 시스템과 이너텐트 액세사리였지요. 천정부 환기 시스템의 경우에는 고깔 부분을 둘로 나눠서 기둥을 따라 내려오는 스트링을 당기면 반쪽 또는 전체를 개방할 수 있는데, 실내 공기를 순환시킬 때 동계에 굳이 출입문을 활짝 열지 않아도 천정부만 스트링으로 개방하면 실내 공기가 위로 슈우욱 빠져나가는 놀라운 성능을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마치 실내에서 상승기류가 생기듯이 말이지요! 슈우욱!

공간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텐티피만의 색채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원뿔 모양의 실내 공간에 이너텐트를 걸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점도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이 재밌는 이유는, 텐티피 공식 카탈로그에는 모든 텐트에 이너텐트가 필요 없다고 소개되어 있음에도 막상 캔버스로 만든 유일한 라인업인 사피어 텐트 라인업 밑의 텐티피 라인업은 순수 캔버스로 만들지 않은 탓인지 결로가 조금씩은 생겨서 이너텐트를 달고 살다시피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빌 모스가 세계 최초의 합성 섬유 기반 티피 텐트인 슈퍼플라이를 이미 공개하긴 했지만 그 후로 실질적인 합성 섬유 티피 텐트 분야에서 기술력을 인정받는 브랜드는 텐티피이지요.

▲ 오늘날 시장에서 접할 수 있는 텐티피의 라인업 중 최상급에 있는 모델인 사피르 9CP입니다. 사피르 라인업의 경우 텐트 원단의 100%를 면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난 얘기 아닌 진행형인 이야기
텐트 라인업이 4종류까지 세분화되었다는 점과 네 종류의 라인업을 달고 출시되는 텐트 모두가 같은 디자인이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특징 중 하나겠지만, 저는 그보다도 1990년대 초반에 합류하거나 설립 당시 원년멤버였던 직원들이 오늘날까지도 회사에서 처음에 맡았던 자기 분야의 책임자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기술적으로 뛰어난 제품을 만드는 데에도 그 사실이 중요하게 작용하겠지만, 그보다도 기업의 초기 철학에 대해 깊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제품을 만드는 일을 컨트롤하는 중책을 맡고 있으니 기업 자체의 철학이 사내에서 자리 잡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고, 지금도 그 역할을 해 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꼭 이전에 없던 새로운 혁신만이 캠퍼들을 설레게 하진 않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과거의 구조에 현재의 시대적 흐름이 요구하는 것을 반영하고 재해석한, 어찌 본다면 지극히 익숙하면서도 소비자의 구미를 당기게 하는, 한편으로는 소소하다는 느낌까지 주는 변화가 캠퍼들을 설레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게 바로 텐티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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