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외로움과 혹독한 오르막과의 싸움에서 이기다
지독한 외로움과 혹독한 오르막과의 싸움에서 이기다
  • 글 김정훈 트레일 러너 기자
  • 승인 2015.10.27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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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토르 데 지앙 2015 ③꼬뉴~도나스~그레소네이 생장 102.2km 구간

지난 9월 13일 이탈리아 아오스타 계곡 일대에서 ‘토르 데 지앙(Tor des geants) 2015’ 대회가 열렸다. 무려 2만4천m의 고도차를 자랑하는 330km 구간을 150시간 안에 달려야하는 죽음의 레이스에 지난해에 이어 2번째로 참가한 한국인 김정훈씨. 2014년 완주 이후 더욱 실력을 쌓아 도전한 이번 대회에서 그가 겪었던 생생한 이야기를 글과 사진으로 엮어 4회 연재한다. <편집자주>

▲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혹독한 코스를 달리고 라이프베이스로 들어오는 선수들을 응원하는 자원봉사자와 동료 선수들.

▲ 라이프베이스 꼬뉴에서 다음 레이스를 준비하는 선수들.

Part3. 꼬뉴~도나스|46.6km

사람들의 열기와 시끌벅적한 소리로 가득한 베이스에 들어왔지만 나는 오히려 침울해졌다. 주위를 둘러보면 대부분이 이탈리아인. 나머지는 함께 대회에 참가한 동료들 혹은 서포터, 가족, 형제, 연인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순간적으로 너무 외롭고 힘들었다. 혼자 꾸역꾸역 밥을 먹고 씻은 후 가장 구석에 있는 간이침대에 누어 많은 생각과 함께 잠을 청했다. 다행히 휴식 후 몸은 개운해졌고 정신 또한 번쩍 들었다. 레이스를 준비하는데 뜬금없이 ‘외로울 땐 더 외로워져라’라는 문구가 생각났다. 그 후로 그나마 연락책 역할을 하던 휴대폰을 가방 구석에 던져버렸다. 그때부터 나는 지독히 혼자가 되었다. 더불어 ‘작년 내 기록을 넘어서자’는 다짐을 또 한 번 하게 됐다. 그리고 이곳 꼬뉴 이후에는 하루에 20분씩만 자기로 결심했다.

▲ 나폴레옹이 이탈리아 침략을 막았다는 포르테 바르드 요새가 보이기 시작하면 다음 라이프베이스인 도나스다.

▲ 도나스로 가는 도중에 만난 긴 내리막길.

저녁 11시 30분, 꼬뉴 이후로 밤새 걷고 뛰었다. 도나스까지는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페네트레 디 샴포르체르(2827m) 봉우리를 넘어 20~30km에 달하는 끝없는 내리막을 달렸다. 훈련이 충분히 하지 않으면 무릎과 발목에 무리가 가는 구간이다. 그렇게 긴 내리막을 4시간쯤 달려 나폴레옹이 이탈리아 침략을 막았다는 포르테 바르드 요새가 보이기 시작하면 다음 라이프베이스인 도나스다. 라이프베이스에 도착했다고 편히 쉴 순 없다. ‘나는 혼자다’라는 마음가짐으로 다음 레이스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대충 씻고 한국에서 가져 온 인스턴트 비빔밥과 선수들에게 제공되는 닭 가슴살 스테이크, 파스타를 먹으며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한국노래를 들었다. 이제 외로움도 즐길 수 있는 경지에 이른 기분이다.

Part4. 도나스~그레소네이 생장|51.6km
다음 체크포인트 레퓨지오 코다로 가기 전 길에서 마주치는 모든 외국인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악마 코스프레를 한 아이와 사진도 찍고 내 사인을 원하는 아이에게는 별명인 ‘쟁푸이’를 한글로 써 줬다. 특히 체크포인트 사싸에서 나를 아이같이 바라보시던 한 할머니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이탈리아식 죽(?)을 먹어보라며 직접 떠 먹여 주기까지 했는데 외로움에 몸부림치던 순간 할머니가 건넨 그 마음이 잊히질 않는다. 순간 감동으로 눈물이 핑 돌았을 정도다. 사소한 것들에 힘을 얻어가며 목적지를 향해 쉴 새 없이 달렸다. 아오스타시는 부유하진 않아도 따뜻한 인정이 넘치는 곳이다.

▲ 레퓨지오 코다로 가는 도중 발을 압박하는 신발 탓에 통증은 더욱 심해졌고, 결국 임시방편으로 신발 뒤쪽을 가위로 잘라내야 했다.

▲ 자원봉사자의 워낭을 빌려 선수들을 응원하면서 도리어 힘을 얻었다.
레퓨지오 코다에 도착하기 전 문제가 생겼다. 몇 일전부터 신발이 아킬레스 부분을 자꾸 건들이며 불편하게 하더니 조금씩 아파왔고 급기야 통증이 심해졌다. 계속 달리기위해서 어쩔 수 없이 신발 뒤꿈치를 가위로 도려냈다. 다행이 통증은 가라앉았고 힘든 것도 잊은 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라규 바그노를 지나 16일 새벽 1시쯤 비가 그치고 안개가 주변을 감싸더니 곧이어 지옥의 코스가 다가왔다. 그 곳은 바로 니엘. 작년에 함께 참가했던 지섭이형과 이 구간을 달리며 눈물을 글썽여야했던 곳이다. 니엘까지 가는 길은 급경사가 계속 반복되고 미끄러운 내리막이 잦은 구간이다. 특히 경사가 많이 가팔라서 ‘차라리 누워서 굴러 내려가는 게 편하겠다’ 싶을 정도다. 비까지 오기 시작해 많이 걱정했는데, 다행히 올해는 작년보다 미끄럽지 않아서 무사히 지났다.

니엘에 도착해서 30분 간 탁자에 엎드려 쪽잠을 자고 아침 7시 다시 길을 나섰다. 출발과 동시에 지겨운 비를 맞으며 꼴 라소네이 정상을 향했다. 정상은 평평하고 넓은 벌판인데 비가 오니 물이 차서 신발이 젖지 않고는 지나 갈 수가 없었다. 몸과 마음이 지쳐가는 와중에 자원봉사자들의 워낭을 빌려 뒤에 오는 선수들을 응원하며 에너지를 충전했다. 그렇게 파이팅을 외치며 드디어 네 번째 베이스 그레소네이 생장에 도착했다.

▲ 체크포인트마다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힘겨운 선수들에게 음식과 의료서비스 등을 제공하며 힘을 복돋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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