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번개가 끊이질 않는 죽음의 레이스
비와 번개가 끊이질 않는 죽음의 레이스
  • 글 김정훈 트레일 러너 기자
  • 승인 2015.10.26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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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토르 데 지앙 2015 ②발그리센체~꼬뉴 53.5km 구간

지난 9월 13일 이탈리아 아오스타 계곡 일대에서 ‘토르 데 지앙(Tor des geants) 2015’ 대회가 열렸다. 330km 구간을 150시간 안에 달려야하는 죽음의 레이스에 지난해에 이어 2번째로 참가한 한국인 김정훈씨. 2014년 완주 이후 더욱 실력을 쌓아 도전한 이번 대회에서 그가 겪었던 생생한 이야기를 글과 사진으로 엮어 4회 연재한다. <편집자주>

▲ 꼬뉴 마을 입구에서 동네 아이들이 선수들을 반기고 있다. 사진 Tor des Geants Official

Part2. 발그리센체~꼬뉴|53.5km

베이스를 나서는 순간 관계자들이 “산 위에는 눈이 오고 있다”고 귀띔을 해왔다. 그렇다고 머뭇거릴 수는 없는 일. 주저 없이 출발했다. 산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나를 환영이라도 하듯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날씨는 춥고 땅은 질척거렸다. 뭐든 시작이 어렵다. 비도 처음 맞을 때가 힘들지 한 번 시원하게 맞고 나면 체념하게 된다. 이슬비를 맞으며 다음 체크 포인트인 레퓨지오 샬레 드 레뻬에 도착했다. 갑자기 따뜻한 곳에 들어서자 머리가 핑 돌며 현기증이 났다. 쓰러질 듯한 몸을 일으켜 뜨거운 차 한 잔과 쿠키, 초콜릿을 양껏 움켜쥐고 탁자에 앉아 우걱우걱 입에 구겨 넣었다. 먹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쿠키를 입에 넣고 차로 녹여 마시듯 먹었는데 나중엔 속이 안 좋아져서 고생을 했을 정도다.

▲ 2번째 라이프베이스인 꼬뉴로 가는 길에 만난 양떼들.

▲ 눈이 내리기 시작한지 4시간 도 채 되지 않았는데 꼴 엔트렐로 봉우리가 눈으로 뒤덮였다.

생존을 위한 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길을 나섰다. 빗방울은 점점 거세져갔다. 다음 체크 포인트까지 남은거리는 12km. 비가 와도 지체할 수가 없었다. 폭우 속에서 또 다시 코피가 터졌다. 오르막을 쉬지 않고 달리다보니 피는 멈추지 않고 힘이 빠져 쓰러질 것 같았다. 정신이 나간 듯 멍한 상태였다. 13일 새벽 2시쯤 정상에 오르자 비는 눈으로 바뀌었다. 옷이 완전히 젖은 상태에서 추위가 겹쳐지자 체온이 급격히 내려갔다. 다음 7km는 내리막이라 그나마 다행이다.

▲ 눈으로 뒤덮힌 꼴 엔트렐로 정상에 선 필자.

▲ 꼴 로손의 체크포인트. 고도가 높은 지역의 체크포인트에서는 물과 콜라 정도만 지원된다. 사진 Tor des Geants Official

내리막을 달리는데 갑자기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선수들은 심상치 않은 날씨에 미끄럽고 위험한 내리막을 미친 듯이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내달리다보니 어느덧 다음 체크포인트 레메 엔.디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40분. 빗방울은 더욱 굵어졌고 결국 대회가 일시적으로 중단됐다.

▲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자기를 재촉하는 선수들의 모습. 사진 Tor des Geants Official
다시 출발하기 전까지 젖은 옷을 드라이기로 말리고 휴식을 취했다. 경기는 아침 7시에 다시 재개됐다. 고작 4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눈앞에 꼴 엔트렐로(3002m) 봉우리가 눈으로 뒤덮여있었다. 아름다운 풍광에 넋을 잃은 것도 잠시, 다시 운동화 끈을 조이고 꼴 엔트렐로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오늘은 지칠 겨를도 없다. 대회 기간 중 가장 고도가 높은 3299m의 꼴 로손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을 지날 땐 20m마다 한 번씩 쉬어야 살 것 같은 기분이다.(훗날 대회 5등 수상자인 오노 선수에게도 물어봤지만 순위권 선수들도 이 구간은 산소 부족으로 엉금엉금 기어간다고 한다.) 그렇게 부족한 산소를 삼키며 오후 3시 30분 드디어 꼴 로손을 넘었다.

다음은 10km 내리막 구간이다. 대회 기간 동안 10km가 넘는 내리막이 자주 나왔는데 한국에는 이런 곳이 없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이런 코스에서 훈련을 할 수 있는 해외 선수들이 부러워지는 순간이다. 후들거리는 다리와 지친 몸을 이끌고 저녁 6시, 다음 라이프베이스 꼬뉴에 도착했다.

▲ 토르 데 지앙 대회는 코스의 고도차가 심해 죽음의 레이스로 불리지만 달리는 도중 만나는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산군은 환상적이다. 사진 Tor des Geants Official

▲ 꼬뉴 라이프베이스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선수들. 사진 Tor des Geants Offi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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