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간다
흘러간다
  • 글 사진 최상식 기자
  • 승인 2015.10.05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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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씨의 캠핑 이야기

장마가 지나갔음에도 뜨거운 여름은 오지 않았다. 덥고 습한 날씨가 계속 이어졌고 구름만 태양을 가릴 뿐 판타지 느낌 물씬 풍기는 제주의 여름 하늘이 아니었다. 맑은 날을 골라 다니던 캠핑은 장마철엔 욕심이다. 캠핑을 즐기기 적당한 날을 기다리게 된다.

장마가 한참 지나고 하늘이 개면서 하루 종일 뭉게구름이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 날이 왔다. 해가 질 즈음에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군산오름으로 향했다. 대평리 마을 뒤 꼭대기에 위치한 군산오름은 한라산부터 서귀포 시내와 산방산까지 사방이 탁 트여서 한번쯤 캠핑을 가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오름으로 향하는 산의 9부 능선까지 포장된 도로가 나있다. 차를 세우고 뒤를 돌아보면 굳이 오름에 오르지 않아도 산방산의 주변의 풍경들이 시원하게 펼쳐져 가슴이 탁 트인다. 차를 주차장에 세우고 짐을 꾸리는 중에 하늘을 보니 맑았던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다행히 기상예보에 비 소식은 없었기에 배낭을 챙겨서 능선에 올랐다. 능선에 오르니 대평리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날이 좋으면 패러글라이딩 팀들도 가끔 마주치곤 하는데 능선을 밟고 뛰어가면서 하늘을 나는 그들을 보면 저렇게 높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기분은 어떨까 궁금했다.

배낭을 잠시 내려놓고 쉬니 산을 넘어가는 바람이 몸을 훑고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한여름이건만 기상이 안 좋아지니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능선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다행히 바람은 적당하게 불어왔다. 바람 많은 제주이기에 오름에서는 바람이 불면 어떻게 막을 방법이 없다. 그래서 바람이 많이 부는지 아닌지도 잘 체크하고 사이트를 골라야 한다. 배낭에서 텐트를 꺼내 폴을 끼우고 펙을 박아 무사히 자리를 잡았고 어둠이 내리기 전에 주변의 풍경을 담으려고 동쪽 능선의 정상부에 올랐다.

사진을 찍고 어둠이 지기 전의 풍경들을 담은 후에 울퉁불퉁한 화산석의 적당한 곳에 앉았다. 먹구름 사이로 다행히 구름의 끝자락에 석양이 번져 내렸다. 그렇게 산방산 너머의 저녁 풍경을 감상하고 있으니 여행자들로 보이는 젊은 남녀들이 오름의 정상부로 올라오고 있었다. 흐린 날씨임에도 주변의 자연에 감탄하며 좋아하는 그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잠시 머물렀던 그들도 떠나고 어둠은 다시 찾아왔다. 저 멀리 밤바다에 한치잡이 배들이 제주의 여름밤을 수놓고 있었다.

혼자 남겨진 오름의 밤 속에서 나는 생각에 잠겼다. 사람으로 인해 부서진 마음의 조각들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몸이 아프면 약을 먹듯이 마음이 아프면 나는 자연의 공기를 마신다. 모래성처럼 부서지기 쉬운 사람 관계에 씁쓸한 내 마음을 보듬고 싶어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무어라 말하지 않아도 자연 속에 머무르는 짧은 밤들은 분명 마음을 어루만지고 보듬어주었다. 불어오는 바람도 흘러가는 강물도 순간에 머무르지 않고 모든 것이 흘러간다는 것이 위안이 되는 그런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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