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유자적 카누잉, 그 끝에는 별천지가 있다
유유자적 카누잉, 그 끝에는 별천지가 있다
  • 글 박지인 | 사진 김세영 기자
  • 승인 2015.10.05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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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바위 카누 마을

물결이 잔잔하다. 태양만이 강물 위에 아른거린다. 뒤로는 선명한 초록이 펼쳐졌고, 중심에는 거대한 배바위가 우뚝 솟았다. 그곳에서 카누를 타고 채집한 시간 속에는 여유와 휴식이 가득했다. 누군가 무릉도원으로 가는 길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홍천강 서쪽 끝, 배바위를 찾으라 얘기할 것이다.

강원도의 한적한 어느 마을
6.25 전쟁 당시, 강원도의 일부 마을은 전쟁 발발 사실조차 몰랐다고 한다. 그만큼 강원도는 멀고도 외진 곳이었다. 경제 발전의 가속화로 교통 인프라가 구축되고 나서야 강원도는 ‘오지’라는 수식어를 내려놓고 조금씩 얼굴을 바깥쪽으로 내밀기 시작했다. 영동고속도로와 서울춘천고속도로가 연결되어 시외버스가 강원도에 닿았고, 급기야 지하철만 타도 춘천까지 이를 수 있는 경춘선이 개통됐다. 동시에 강원도의 각 마을은 지역 경제 발전을 위해 특색 있는 관광 아이템을 속속들이 개발해냈다.

우리가 다녀온 배바위 카누 마을도 그중 하나다. 카누와 카약 등의 수상 레포츠, 다채로운 전통 먹거리 체험과 농촌 체험을 관광 상품으로 내놓았다. 배바위를 중심으로 조성된 수려한 자연경관과 특색 있는 프로그램으로 각종 매거진에 몇 차례 소개되었지만, 아직 관광객의 방문이 그리 활발한 편은 아니다. 그 덕분에 고요하고 오롯한 시간을 보내기에 좋은 장소다. 복잡한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마음속 얽혀있는 것들을 느슨하게 풀어놓는 편안한 휴식을 누릴 수 있다.


배바위로 향하는 느긋한 카누

강촌역에서 만난 우리는 차를 타고 배바위 카누 마을에 도착했다. 긴 여정이었던 탓에 세상과 한 뼘 멀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윽고 레포츠용품 대여소 주변 노지에 주차를 마쳤다. 종일 움츠렸던 팔과 다리를 쭉 뻗으며 ‘드디어 도착했다’는 홀가분함에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러자 몸속은 맑은 공기의 청량함으로 가득 찼다. 마을은 성수기임에도 한산한 분위기였다. 대여소에서 간단한 인적 사항을 제출하고 라이프재킷과 패들을 건네받았다. 곧 대여소 직원의 안내를 따라 배 위에서 카누 교육을 시작했다. 카누는 안정적이고 난이도가 쉬워 간단한 교육만 받으면 누구나 바로 탈 수 있다. 20분 남짓 노 젓는 요령과 안전수칙을 배우고 우리가 탈 카누를 배정받았다.

우리의 카누잉 코스는 충의대교 밑에서부터 소남이섬의 배바위까지다. 사진으로 본 배바위의 모습이 어딘가 낯이 익는다고 생각했는데, 애국가의 배경으로 나왔었다고 한다. 주말이면 소파에 누워 공중파 방송이 종료될 때까지 지켜보는 걸 좋아했던 나에게는 반가운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배정받은 카누에 조심스레 몸을 실었다. 잠들어 있던 홍천강 깊숙이 패들을 집어넣고 힘차게 저었다. 강물은 별다른 저항 없이 밀려났고, 카누는 부드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한 번, 두 번, 세 번. 패들링은 금세 익숙해졌다. 카누는 생각보다 조용하고 빨랐다. 하지만 급할 이유는 없었다. 여기서만큼은 진창 게으름을 피울 요량으로 패들링을 한 템포 늦추기로 했다. 청명한 하늘과 맑은 물 사이로 우거진 숲이 빚어낸 절경을 찬찬히 눈에 담았다.

그 끝에서 만난 무릉도원
명절 못지않은 교통 체증. 사람들로 북적일 피서지. 여름 휴가는 떠나기 전부터 스트레스다. 그래서 카누 위에서 보낸 호젓한 순간순간은 더 달콤하고 소중했다. 느려진 시간. 강물을 따라 한참을 내려갔다. 몸을 옥죄는 8월의 무더위 속, 계속되는 패들링에 땀은 비 오듯 쏟아졌다. 카누는 수상 레포츠에 속하지만, 사실 물에 빠질 일은 거의 없다. 불현듯 대여소 직원의 ‘카누는 봄, 가을에 더 적합하다’는 말이 떠올랐다. 몸은

배바위 카누 마을
위치
강원도 홍천군 서면 마곡길 153-5
가격 카누 대여 1인 한 시간 기준 1만5000원
문의 이욱희 이장
010-4510-1180

지쳤고 카누의 낭만도 슬슬 지겨워졌다. 그런데 그때, 마침 고대하던 배바위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위용에 매료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울창한 푸른 숲과 초록으로 물든 강. 배바위 위로 우아하게 뻗은 늙은 나무. 시선이 머무르는 곳마다 액자만 놓으면 걸작이 될 것만 같은 훌륭한 자연 풍광이 펼쳐졌다. 절제된 한국적인 아름다움은 동양화 한 폭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

근처에 카누를 대 놓고, 뒤편으로 돌아가 조심조심 배바위에 올랐다. 그리 높은 편은 아닌데도 꽤 괜찮은 조망이 펼쳐졌다. 평평한 좋은 자리에 주저앉아 잠깐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몇몇 크루는 지치지도 않는지 쉼 없이 카누를 즐겼고, 나머지는 배바위 왼편으로 투닥투닥 사이트를 구축했다. 이게 얼마 만의 여유인가. 솔솔 불어오는 선선한 강바람에 기분까지 붕 떠버렸다. 내리쬐는 강렬한 태양마저 따스하게 느껴졌다.

오랜 운전과 카누잉 때문인지 텐트 안에서 까무룩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시끌벅적한 소리에 깨어나 밖으로 나와 보니 캠핑 파티가 벌어져 있었다. 혹시 늦은 시간에 민폐가 되는 건 아닌지 주위를 둘러 봤지만,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이곳은 오로지 우리만의 공간이었다.

한결 마음이 편해진 나는 캠핑 체어에 앉아 푸짐한 음식과 술을 양껏 즐겼다. 꼭두새벽까지 멋대로 웃고 떠들며 술과 분위기에 취했다. 생각해 보면 온종일 그랬다. 쫓겨야 할 일정도, 누군가의 간섭도 없었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했다. 고요한 분위기와 유유자적 여유롭게 즐긴 카누잉은 복잡한 마음마저 말끔히 풀어주었다. 온전한 휴식만이 기다리는 평화로운 마을. 이곳이 진짜 우리가 찾던 무릉도원이 아닐까. 몸과 마음이 지칠 때면 홍천강 서쪽 끝에 위치한 지상낙원으로 향하자. 준비물은 시간과 게으른 자세. 놀고, 먹고, 쉬며 느긋하게 낭만에 취해 보라.

TIP 카약과 카누의 차이
카약은 카누의 일종으로 분류된다. 발생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둘의 제작 방식에서부터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카누는 단단하고 큼지막한 나무의 속을 통째로 파내는 방식이었고, 카약은 여러 개의 나뭇가지로 구축한 틀에 동물의 가죽을 씌워 제작했다. 카누와 카약을 쉽게 구분하려면 형태를 살펴보면 된다. 카누는 일반적으로 탑승하는 곳이 개방되어 있고, 외날 패들(Single-Blade Paddle)을 사용해 한쪽으로만 노를 젓는다. 반대로 카약은 탑승하는 곳이 덮여있고, 양날 패들(Double-Blade Paddle)로 양쪽을 번갈아 젓는 방식이다. 본체 모양도 조금씩 차이가 나는데, 보통 카약이 카누보다 더 길고 얇게 제작된다. 이로 인해 카약은 속도가 빨라 물살이 거친 곳에 적합하고, 카누는 잔잔한 곳에서 안정감 있게 타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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